[列國誌]
3부 일통 천하 (210)
제13권 천하는 하나 되고
제23장 멸망하는 나라들 (3)
이미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한(韓)나라가 어찌 막강인 진(秦)나라 군대를 이길 수 있으리오.
- 싸우면 망한다.
한왕 안(安)은 마지막 수단으로 한비자(韓非子)를 불러 사신으로 임명했다.
"듣자하니 진왕(秦王)은 그대를 몹시 좋아한다고 하오. 그대가 진나라로 가서 우리 나라에 대한 공격을 중지하도록 교섭하시오."
한비자(韓非子)는 즉각 함양성으로 들어가 진왕 정(政)에게 알현을 청했다.
진왕 정은 자신이 바라던 대로 한비자가 왔다는 말에 몹시 기뻐했다.
"들라 이르라!"
한비자(韓非子)는 진왕 정을 보자 말했다.
"신은 진(秦)나라에서 벼슬하기를 원합니다. 굳이 한(韓)나라를 칠 까닭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대왕께서 군사를 일으키지 않고도 능히 6국을 다스릴 수 있는 계책이 신에게 있습니다."
진왕 정(政)은 한비자에게 반해 있던 터라 그 즉시로 한나라를 향해 진격하고 있는 군대에게 명을 내렸다.
- 귀환하라!
이에 가장 당황한 사람은 한나라 병탄 정책을 입안한 이사(李斯)였다.
더욱이 그는 전부터 자신보다 재주가 뛰어난 한비자(韓非子)를 시기하는 마음이 강했다.
진왕 정(政)이 한비자를 중용하면 그로서는 여러 가지 면에서 불리한 점이 많았다.
'이것은 아니다.‘
진왕 정이 요직을 내리기 전에 그를 제거할 필요가 있었다.
이사(李斯)는 궁으로 들어가 진왕 정(政)에게 말했다.
"지금 진(秦)나라는 천하 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비자는 한나라 공자입니다.
만일 한비자(韓非子)를 중용하게 되면 그는 한(韓)나라를 위해 일할 뿐 우리 진(秦)나라를 위해서는 하나의 계책도 내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스스로 천하 통일을 늦추려 하십니까?"
생각해 보니 그 말도 맞았다.
진왕 정(政)은 자신이 너무 한 순간의 감정에 치우쳐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한비자(韓非子)를 어찌 처리하는 것이 좋겠소?"
"생각하실 것도 없습니다.
한비자는 자신의 말대로 문(文)으로써 세상을 어지럽히는 자입니다.
법(法)대로 처형하심이 좋을 것입니다.“
진왕 정(政)은 한참을 생각한 끝에 입을 열었다.
"알겠소. 우선 한비자를 운양(雲陽) 땅에 감금하시오."
졸지에 한비자(韓非子)는 운양 땅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을 환대하던 진왕 정(政)의 태도를 떠올리곤 옥리(獄吏)에게 물었다.
"내게 무슨 죄가 있어서 이렇듯 가두는 것이냐?“
옥리(獄吏)가 대답했다.
"한 집안에 주인이 둘이 있을 수 없듯, 한 나라에도 재능 있는 사람이 둘 있을 필요가 없지요.
우리 진(秦)나라에 이미 이사(李斯)가 있는 것이 그대의 죄입니다."
한비자(韓非子)는 비로소 자신이 갇힌 까닭을 알았다.
그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는데 함양에서 다른 관리가 내려왔다.
"정위(廷尉) 이사께서 이 술을 보내셨습니다."
한비자(韓非子)는 그것이 독주인 것을 알았다.
그는 자신이 살아날 수가 없음을 깨닫고 순순히 그 술을 받아 마셨다.
이렇게 전국 시대(戰國時代) 최고의 법 사상가인 한비자(韓非子)는 옥에서 사약을 마시고 이 세상을 마감했다.
- 유자(儒子)는 문으로써 세상을 어지럽히고.....
자신이 남긴 명언에 자신이 해당되어 죽임을 당할 줄이야.
사마천(司馬遷)은 이러한 한비자의 죽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한비가 <세난(說難)> 편을 저술하고도 자신은 화(禍)를 면하지 못한 것이 슬플 따름이다.
<세난(說難)>은 <한비자> 중 한 편으로 왕이나 남을 설득하는 방법을 기술했다.
그런 그가 화를 면하지 못한 것은 아이러니다, 라고 꼬집고 있는 것이다.
이어 그는 그 원인을 밝히고 있다.
한비자(韓非子)는 법률에 의거하여 모든 세상사의 시비를 분명히 하였으나, 너무나 가혹하여 은덕이 모자랐다.
법 적용이 너무 엄격하여 인간미를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세상 일에 완벽함이란 없는 것인가.
이로써 한비자를 통해 한나라의 멸망을 면해보려던 한왕 안(安)의 계책을 실패로 돌아갔다.
한비(韓非子)자의 죽음과 더불어 한나라는 마지막 희망마저 잃었다.
그가 죽은 지 3년 후인 BC 230년(진왕 정 17년), 결국 한(韓)나라는 진나라 군대의 공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멸망하고 말았다.
한왕 안(安)은 함양으로 가 진왕 정(政)에게 두 번 절하고 칭신(稱臣)한 후, 한나라 지도를 바쳤다.
한강자(韓康子)에 의해 일어난 지 174년 만의 사라짐이었다.
진왕 정(政)은 한나라 영토를 진(秦)나라 땅으로 흡수하고 그 일대를 영천군(潁川郡)으로 삼았다.
이제 중원(中原)에는 진나라를 제외하고 다섯 나라만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