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속의 쥐똥나무에 외 1편
이 승 욱
요즈음 내 꿈속의 쥐똥나무에
무량한 쥐들이 열렸다 주루루 떨어진다
더러는 일천 마리, 일억 마리 검은 과실이 열렸다
주루루 떨어진다 해도 된다
바라보면 볼수록 감당 못할 쥐와
똥이 가득한 무서운 쥐똥나무,
저 해괴한 요괴의 나무들을 벨 수가 없고
그 쥐똥들을 청소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불립문자 내 꿈속의 진경(珍景), 요지경
저 천진한 비밀의 풍경은 비견할 데 없이 아름답다
환각의 밤을 거슬러 아침이면 희뿌연 울타리 한쪽에 수북이 쌓이는
그 쥐똥들은 더 눈부시게 아름답다
자, 그대들도 이제 나와 똑같은 황당한 꿈을 꾸거나
아예 내 꿈속으로 밀고 들어와 낱낱이 수색해보시라
깊은 밤의 미궁마다 가득한 똥을 물고
인간이 미워서 탄생하는
저 흉측한 생명나무의 요술들을
아픈 벚꽃시절
너미*가 아프다
너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이 세상에는 지금 벚꽃이 한창이다
벚꽃이 화려할수록 너미는 더 아프다
너미의 통증의 혈관들로 벚꽃나무들은 부풀어 있다
더러는 터져서 줄줄 피 흘리고 있다
너미가 아프다
너미는 이 세상에 있지 않아서 아프다
이 세상은 이 세상이 아닌 것이 좋다
너미는 너미가 아닌 것이 좋다
지금 내 콧속의 살벌한 향기는
감당할 수 없는 이승의 환희를 전하지 않는다
엉- 엉- 꽃피 흘리는 너미가 아프다
겹겹이 쓰러지는 풍경의 저 너머가 아프다 길을 지나는 사람들은 모두 수의를 걸치고 있다
사람들은 모두 사람이 아닌 것이 좋다
부서진 수의자락 같이 흩어진 벚꽃잎을 밟으면
딱딱하게 불거진 뼈를 밟는 소리 들린다
지천으로 늘린 뼈 소리가 아프다
황급히 살을 버리고 떠나는 내 뼈들이 아프다
해골로 남은 내가 너무 아프다
앙상히 저를 버티는 벚꽃나무가 아프다
너미가 너무 아프다
이 세상은 한사코 이 세상이 아닌 것이 좋다
벚꽃나무는 한사코 벚꽃나무가 아닌 것이 좋다
너미는 한사코 너미가 아닌 것이 좋다
너미가 아프다
너미도 아닌 저 너머의 너미가 너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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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미’는 내가 지은 내 마음속의 간절한 이름일 뿐이다.
이 승 욱
경북 청도에서 태어나다
1991년『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늙은 퇴폐』(민음사),『참 이상한 상형문자』(민음사)
『지나가는 슬픔』(세계사),『한숨짓는 버릇』(황금알),
<검은 밤새의 노래> (세계사)가 있고,
번역서로『혼자 있는 사람은』(청하),『현대시의 변증법』(지식산업사),
그 밖의 저서로 시화집(詩話集)『행복한 날들의 시읽기』(하늘연못) 등이 있다.
현재 순천향대학교 인문대학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