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북단 고성 DMZ로 가는 길. 얼마 전 이산가족이 상봉 장소인 금강산으로 가기 위해 지난 평화와 희망의 길이다. 그래서인지 북녘과 마주한 곳으로 가면서도 추석을 맞아 고향에 가는 기분이다. 백두대간을 벗 삼고, 푸른 동해를 길동무 삼아 즐거운 마음으로 달린다. 더는 달릴 수 없는 길
끝자락에 통일전망대가 있다.
1984년 현내면 마차진리에 설치된 통일전망대
통일전망대는 1984년 분단의 아픔과 망향의 한을 달래기 위해 금강산과 가까운 현내면 마차진리에 설치됐다. 휴전선의 동쪽 끝이자, 민간인출입통제선 북쪽 10km 지점이다. 통일전망대에 오르면
한국군과 북한군 초소가 대치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불과 600m도 안 되는 거리다. 남과 북이 철책으로 갈라선 현장에는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팽팽하다.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현실이 그대로 드러나는 풍경이다.
통일전망대 포토 존에서 기념사진을 남기는 관광객
가슴 아픈 풍경만 있는 건 아니다. 시선을 돌려 해안선을 따라가면 시리도록 아름다운 금강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금강산 1만 2000봉우리 가운데 아홉 신선이 바둑을 두었다는 구선봉과 ‘바다의 금강’이라는 해금강이다. 해마다 약 50만 명이 이곳을 찾는 가장 큰 이유가 금강산과 해금강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때 묻지 않은 자연과 북녘을 바라보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 고배율 망원경을
이용하면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북녘을 세세히 볼 수 있다.
휴전선 넘어 금강산으로 이어지는 길
북으로 이어지는 도로도 선명하다. 금강산 가는 길이다. 분단의 현실은 무겁지만, 이 길이 영원토록 막힌 상태일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남과 북 사이에 평화가 안착되면 굳게 닫힌 문이 활짝 열리
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과거 금강산 관광을 위해 관광객이 지나다녔고, 올해는 이산가족이 지났다. 평화의 불씨가 피어오른 지금, 이 길을 통해 마음 놓고 북녘의 산하를 밟으며 금강산에 갈 수
있으리란 희망을 그린다.
신축 중인 해돋이통일전망타워
현재 오래된 통일전망대 옆에 해돋이통일전망타워 건설이 한창이다. 지상3층 신식 건물이 완공되면 더 높은 곳에서, 더 멀리, 더 편리하게 북녘의 산하를 바라볼 수 있다. 해돋이통일전망타워는 9월
준공 예정이다.
북녘을 굽어보는 통일미륵불
통일전망대 왼편에는 거대한 조각상이 두 개 있다. 1988년 설악산 신흥사에서 세운 높이 13.6m
통일미륵불과 1986년 천주교에서 세운 높이 10.5m 성모마리아상이다. 통일미륵불은 엄숙한 표정으로 통일 기원문을 외고, 성모마리아상은 간절한 마음으로 평화를 기도하는 듯하다.
통일전망대에 마련된 6.25전쟁체험전시관에 야간 공방전을 재현한 공간
주차장 끝에 마련된 6.25전쟁체험전시관은 사진과 유물로 한국전쟁을 만나는 공간이다. 전시관에는 북한의 남침, 피란길, 학살 등 전쟁의 순간순간을 보여주는 사진이 있다. 컴컴한 전쟁체험실은 고성에서 치러진 야간 공방전을 재현했다. 포탄이 쏟아지는 소리와 총소리가 울려 퍼져 현장감을 더한다. 한국전쟁 당시 남북한의 전투력을 비교한 자료와 전사자의 유물도 관람할 수 있다.
통일전망대로 가려면 통일안보공원에서 출입 신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출입 신고서에 탑승자와
차량 정보를 기재하고 입장료(3000원)를 지불하면 출입증을 준다. 시청각 교육 후 정해진 시각에
통일전망대로 향한다.
[왼쪽/오른쪽]전쟁의 기억과 흔적,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담은 DMZ박물관
/ DMZ박물관 야외에 조성한 휴전선철책길
통일전망대에서 나오는 길에 꼭 들르는 곳이 DMZ박물관이다. 1953년 유엔군과 북한군이 체결한 정전협정으로 탄생한 DMZ를 주제로 전쟁의 기억과 흔적,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담아 조성했다.
실내에는 DMZ의 탄생, 냉전의 유산, DMZ의 생태계를 주제로 한 전시물이 줄을 잇는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구역에 서식하는 산양과 수달, 흰꼬리수리 등의 박제, 통일과 평화를 염원하는
엽서가 달린 평화의나무도 눈길을 끈다. 야외에는 동부전선을 지키다 2010년 철거된 철책을 옮겨 조성한 휴전선철책길이 있다.
[왼쪽/오른쪽]김일성이 가족과 함께 여름 휴양지로 찾았다는 화진포의성
/ 에메랄드 빛 바다가 매력적인 화진포해변
화진포는 남과 북이 어우러진 공간이다. 화진포의성(김일성 별장), 이승만 대통령 별장, 이기붕
부통령 별장이 들어섰다. 세 별장을 아울러 화진포역사안보전시관이라 한다. 남북 최고 권력자의
별장이 얼굴을 맞댄 것은 울창한 송림과 에메랄드 빛 바다가 매력적인 풍경 덕분이다. 화진포의성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입하면 세 별장과 생태박물관을 모두 관람할 수 있다.
사명대사의 흔적이 있는 건봉사
바다에서 산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신라 시대에 창건한 건봉사가 기다린다. 법흥왕 때인 520년
아도화상이 창건했다니 역사가 무려 1500년에 이른다. 한국전쟁 때 폐허가 된 후 중건했기 때문에 전각에서 오랜 세월의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건봉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사명대사다.
그는 임진왜란 때 이곳에서 승병을 훈련했고, 전란 후에는 왜적에게 빼앗긴 통도사의 부처님 진신 사리를 되찾아 치아 사리 12과를 건봉사에 봉안했다.
도자기 체험, 천연 염색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김하인아트홀
문학에 관심이 있다면 김하인아트홀에 들러도 좋다. 드라마 〈가을 동화〉 원작으로 유명한 소설 《국화꽃 향기》 저자가 운영하는 문화 예술 체험 공간이다. 바다가 바라보이는 해변 도서관에
앉아 《소녀처럼》 《일곱 송이 수선화》 《사랑에 미치다》 등 김하인 작가의 작품을 읽고, 쿠키와 초콜릿 만들기나 천연 염색 같은 프로그램을 체험하며 가을날의 서정을 만끽한다.
<당일 여행 코스>
건봉사→통일전망대→DMZ박물관→화진포→김하인아트홀
<1박 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 통일전망대→DMZ박물관→대진등대→화진포
둘째 날 / 건봉사→고성왕곡마을→김하인아트홀→청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