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지키고자 외세와 맞섰던 오롯한 역사의 길
발간일 2022.08.22 (월) 15:21
강화나들길 2코스 호국돈대길, 갑곶돈대~ 초지진 17㎞ 걸어보자
여행자들을 위한 길이 20개나 나 있는 섬이다. 강화도에 가면 각 코스별로 특색이 담긴 도보 여행길이 펼쳐진다. 강화나들길은 섬 속의 섬길, 들녘길이나 나루터와 포구, 외세의 침략을 막아내기 위한 돈대와 역사 이야기, 자연 속의 생태 환경, 갯벌이나 해가 지는 마을길 까지 다양하다. 이 길을 따라 걸으며 이 땅의 아름다움을 흠뻑 맛볼 수 있는 것은 덤이다.
▲ 강화는 역사 속의 시간을 간직한 모습으로 현재를 맞고 있는 중이다. 사진은 초지진 전경.
▲ 강화나들길을 따라가노라면 어디서든 길잡이가 되어주는 리본을 만난다.
강화 나들길 2코스 호국돈대길
그 옛날 이 땅의 관문이자 방패가 되어 외세와 맞섰던 곳이 강화도다. 역사적으로 참 고단했던 섬이다. 지금도 무수히 남아있는 국방 유물인 돈대가 역사적 사실을 말해준다. 돈대는 외세의 침입을 막아내는 최전방 해안 기지였다. 강화나들길 2코스 호국돈대길은 갑곶돈대에서 시작해서 용진진, 용당돈대, 화도돈대, 오두돈대, 광성보, 덕진진, 초지진에 이른다. 총 17km 거리다. 서울을 빠져나와 초지대교를 건너면 초지진이 바로 나타난다. 강화대교로 건널 경우엔 갑곶돈대가 먼저 위치해 있으니 코스는 각자의 상황에 맞추면 된다.
▲ 초지 돈대 성곽에 서면 초지대교와 바다, 주변의 내륙이 한눈에 들어온다.
초지진과 덕진진 이야기
초지진(草芝鎭)은 17세기 조선에 설치된 방어진이다. 이곳은 해상으로부터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구축한 요새다. 강화도는 병인양요, 신미양요, 운요호 사건까지 겪어낸 곳이다. 몇 년 전 TV 예능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란 프로그램에서 프랑스 친구들의 여행이 나온 적이 있다. 그때의 여행지가 강화도였다. 안내하는 한국 거주 프랑스인 로빈이 강화도를 택한 이유를 말하던 걸 기억한다. "프랑스와 관련된 역사적 의미도 담겨 있어". 그리고 그들 일행이 읽었던 안내문은 병인박해와 병인양요 이야기였다.
▲ 돈대는 외세의 침략을 온 몸으로 받아낸 강화 땅의 중요한 유물이다.
고종 때 흥선대원군이 천주교를 금지하며 프랑스 신부와 조선인 천주교 신자 수천 명을 처형했다. 이때 가까스로 살아남은 프랑스 선교사 리델이 중국으로 도망쳐 이 소식을 프랑스군에 알렸다. 이에 프랑스 함대 사령관인 로즈는 7척의 함선과 천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와 강화도를 침략했다. 당시 신식 무기와 조선보다 전력이 강했지만 조선인 군대를 이끈 양헌수는 몰래 강화도로 건너가 정족산성에 진을 치고 공격해 오는 프랑스군을 물리쳤다. 이에 전의를 잃은 프랑스군은 철수하고 지금도 이들을 기리는 승전비가 있고 어떠한 외국선박도 통과할 수 없다는 흥선대원군의 경고비가 세워져 있다. - TV자막 내용
프랑스 친구들은 "전혀 몰랐다, 우린 배운 적이 없으니까"라며 새롭게 알게 된 사실에 놀라워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말했다. "우리가 졌으니까 은폐한 거지, 프랑스답다" 하면서 그들끼리 웃더라는 이야기.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역사도 알고서 보면 다양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 격전 중 날아온 포탄 파편의 상처를 지닌 채 의연히 그 자리를 지키는 소나무
초지 돈대 안에 들기 전에 만나는 노거수 한 그루, 400년 역사를 품은 소나무와 포탄 맞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담벼락은 초지 돈대의 역사이기도 하다. 대포가 전시되어 있는 돈대 내부는 사방이 훤히 뚫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을 수 있다. 신대륙 열도의 적군들이 이 쪽을 향해 포를 쏘았을 저 건너편 바다엔 염하가 흐르고 있다.
▲ 덕진진 남장포대는 한강 하류로 접근할 수 있는 중요한 길목에 위치해 있다.
초지진에서 약 2.8km 북쪽으로 위치한 덕진진(德津鎭). 문루인 공조루(拱潮樓)가 웅장하다. 신미양요 때 미국 함대와 포격전을 벌였을 나지막한 남장 포대가 쭈욱 이어진다. 문루와 돈대 사이로 걷다 보면 숲과 해변을 동시에 맞는다. 특히 흥선대원군이 세운 경고비(警告碑)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해문방수타국선진물과(海門防守他國船愼勿過)’. ‘바다의 문을 막고 지켜서 다른 나라의 배가 지나가지 못하도록 하라.’ 산책하기 좋은 덕진진에서 강화 해협을 지켜내려 했던 역사의 한 순간을 격어보는 듯해 숙연함을 느끼게 한다.
광성보 지나 강화외성과 오두돈대
신미양요 당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광성보(廣城堡)의 성문에서는 강화해협의 뒤로 김포지역도 보인다. 서울을 방어하는 중요한 위치다. 강화 땅에선 그 모든 것들이 연결되어 있다. 이제는 조용하고 평화롭기만 한 풍경들이다.
바다를 옆으로 두고 지나다 보면 오두돈대 버스 정류장이 나온다. 길가에 개망초와 노란 금계국이 뒤섞여 피어난 버스 정류장 옆으로 강화 외성(江華 外城) 일부가 바다를 향해 있다. 오두돈대 주변의 강화외성은 동쪽 해안 방어를 위해 23km에 걸쳐 축조된 성이다. 당시의 흔적도 남아있지만 개축과 보수를 거친 때문인지 말끔하다. 반면 성곽을 따라 둘러싼 느티나무들은 수백 년의 연륜이 뚝뚝 묻어난다. 바닷물이 빠져나간 갯벌 위로 한 척이 한가롭게 떠 있다.
▲ 숲길 따라 오두돈대 안에 들면 온 세상이 고요하다. 그 옛날 치열했던 현장에서 숲멍, 바다멍~
오두돈대는 강화외성 앞 갯벌장어집 마당 옆으로 조성된 산길을 오르면 숨은 듯 숲에 파묻혀 있었다. 지름 32m의 완전히 동그란 원형이다. 온통 숲으로 둘러싸인 자그마한 역사적 공간 안에 서니 옛 선인들을 향한 경외로움의 무게가 달라진다. 오래전 누군가는 목숨 걸고 지킨 나라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적막한 돈대에 서서 내다보는 만조 상태의 강화 바다의 급한 물길 따라 우리네 역사도 흘러 흘러간다.
용진진, 용당돈대, 화도돈대는 1km~2km 정도씩의 거리 안에서 바로바로 나타나는 트레킹 코스다. 호국돈대길은 해안가나 접경지역에 쌓은 관측 방어시설이다. 전운이 감도는 엄중한 시간 속에서 나라를 지켜내야 한다는 긴장감이 서린 곳이었다. 숙연한 우리의 아픈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길이 아름다워서 도리어 마음을 다잡게 된다.
▲ 돈대는 주로 해안방어 중심이어서 성벽 길 따라 걸으며 바라보는 풍경은 두말할 것 없다.
갑곶돈대
길옆으로 갑곶돈대 표지판이 서 있다. 갑곶돈대 주변은 현재 공원처럼 꾸며져 있다. 전쟁박물관과 강화 비석군 67기, 천연기념물 탱자나무도 한 몫한다. 봄이면 꽃놀이를 와도 좋을 만큼 꽃동산을 이루는 곳, 나들길 순례자들이 거치는 명소이기도 하다. 갑곶돈대 안에 전시된 대포가 강화해협을 지키던 요새임을 보여준다. 병인양요때 강화도에 상륙한 프랑스군이 격렬한 전쟁을 치른 곳이 여기다. 이때 프랑스군은 정족산성 대패 후 약탈한 수많은 문화재를 챙겨 퇴각했다. 돈대 아래로 흐르는 염하의 물줄기는 그 역사를 모두 지켜보았을 터. 이제 점차 더위가 걷히고 바야흐로 걷기 좋은 계절이 온다.
▲ 주로 아는 사람만 찾아온다는 돈대비빔국수집. 남다른 영업 종료 시간 오후 4시. 토요일 5시. 수요일 휴무.
제주도에 고기국수가 있다면 강화엔 고기 비빔국수 있다네!
제주도에 고기 국수가 있다면 초지진 부근에 고기가 얹힌 비빔국수가 있다. 부부가 개발한 이 집의 시그니처 메뉴인 ‘돈대비빔국수’는 100% 생과일과 채소로 만들어진 소스가 비법이다. 국수 한 그릇으로 든든한 한 끼가 해결된다. 꽃사진 작가이기도한 쥔장의 카메라와 사진들이 실내를 채웠다.
글·사진 이현숙 i-View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