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松 건강칼럼 (492)... 봄 햇차 한잔을...
박명윤(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봄, 그리고 햇차 페스티벌
조선 후기의 실학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술을 좋아하는 민족은 망(亡)하고, 차를 좋아하는 민족은 흥(興)한다”고 말했다. 정약용의 후견인은 조선 제22대 왕 정조(正祖, 재위 1776-1800)였으나 1800년에 정조가 갑자기 승하(昇遐)하면서 고난이 시작되었다. 1801년 신유사화(辛酉士禍)로 18년 동안의 유배생활이 시작되었다. 57세 때 유배에서 풀려나 고향인 마현으로 돌아와 75세의 나이로 별세할 때까지 실학사상(實學思想)을 집대성하였다.
‘올해도 햇차 한잔을 올립니다’ 첫물차를 정갈한 석간수(石間水)로 우려 초당(草堂)에 모신 다산(茶山) 선생의 영정(影幀) 앞에 올려 천신제(薦新祭)을 지내면서 드리는 축문(祝文)이다.
차(茶)를 벗해 호를 다산(茶山)으로 삼고 전남 강진에서 18년간 유배생활을 하면서 정약용은 자신의 학문을 더욱 연마해 육경사서(六經四書) 연구를 비롯해 일표이서(一表二書: 經世遺表ㆍ牧民心書ㆍ欽欽新書) 등 모두 500여 편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우리나라 문화 인물로는 처음으로 정약용 선생이 유네스코(UNESCO) ‘2012년 세계문화인물’로 선정됐다.
다산이 귀양에서 풀려 고향으로 돌아갈 즈음엔 18명의 제자가 있었다. 제자들은 스승이 떠나면 헤어질 것을 염려해 우리나라 최초의 차회(茶會)라고 할 수 있는 ‘다신계절목(茶信契節目)’이란 문서를 남겼다. 다산이 유배지에서 제자들과 덖어 마신 찻잎을 공급한 수령 200년이 넘는 야생 차나무가 있으며, 다신계(茶信契)의 신의를 지키려는 듯 봄이면 작설(雀舌) 잎을 피워낸다.
‘다신계절목’의 덕목(德目)은 다산의 철학이 담긴 신의(信義)이다. 다신계는 모두 8조항이며, 3조항에는 “곡우(穀雨)에 엽차를 따서 1근을 만들고, 입하(立夏)에 늦차를 따서 떡차 2근을 만든다. 이 엽차 1근과 떡차 2근을 시와 편지 등과 함께 경기도 양주군 마석에 있는 스승의 댁에 보낸다.”라고 써있다.
다산의 막내 제자 윤종진의 후손으로 강진군수를 지낸 윤동환 씨는 다신계의 덕목을 지금도 실천하고 있다. 즉, 첫차를 우려 초당의 다산 선생 영정에 올리고 다산 선생 종가(宗家)에도 차를 보내고 있다. 윤동환 씨는 다산의 학문적 뿌리를 알리는 일을 자신의 소명으로 생각하고 ‘다산초당’을 찾는 사람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다산의 학문적 뿌리를 알리는 ‘다산학당’과 다산의 차(茶) 정신을 전하기 위해 ‘다신계문화원’ 현판도 걸었다.
차(茶)는 보통 봄에 많이 나오며, 봄철에 막 나온 차를 ‘햇차’라고 한다. 곡우(穀雨, 4월 20일) 전후에 따는 잎으로 만든 녹차(綠茶, green tea)를 우전차(雨前茶)라 부르며 최상품(最上品)으로 친다. ‘첫물차’인 우전차 수확 후 약 1개월 후 처음 찻잎을 딴 곳에서 돋아난 여린 잎을 두 번째로 따고(두물차), 다시 1개월 지나서 세 번째로(세물차), 그리고 8월 하순에 네 번째로 잎(네물차ㆍ끝물차)을 딴다. 찻잎을 따는 시기가 늦을수록 품질은 떨어진다.
좋은 차를 선택하려면 찻잎의 외형, 향(香), 색 등을 잘 살펴야 한다. 녹차는 겉모양이 가늘고 광택이 있으며 잘 말린 것이 좋다. 잎차 중 연황색을 띄는 묵은 잎이 섞여 있지 않은지 살피며, 손으로 쥐었을 때 단단하고 무거운 느낌이 드는 것이 상품(上品)에 속한다. 차는 온도가 높거나 습기가 많은 곳에 보관하면 차의 주성분인 폴리페놀(polyphenol)과 엽록소(葉綠素)가 산화되므로 주의하여야 한다.
일반적으로 다산을 실학자(實學者)로만 생각하지만, 한의학(韓醫學)에도 상당한 조예가 있었다. 시인 조지훈의 부친이자 우리나라 동의학의 기틀을 마련한 조헌영이 1935년에 쓴 글에 ‘다산은 조선 최고의 한의학자’라고 평가했다. 다산은 ‘음식이 곧 약’이라는 약식동원(藥食同源)을 주장했다. 다산이 백성의 건강을 위한 산야초 비방책은 무궁무진하다.
차(茶)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음료로서 중국에서는 5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중국에서 차를 처음 발견한 것은 전설상의 제왕 신농씨이다. 신농씨가 직접 산과 들에서 나는 여러 식물을 먹어 보면서 식용(食用)이 가능한 것을 가려내던 중 독초(毒草)에 중독이 되었는데 마침 떨어진 찻잎을 먹고 해독(解毒)이 되었다고 한다. 차는 처음에는 약제로 사용되었으며, 780년 경 당(唐)나라 육우(陸羽)의 다경(茶經)에서부터 기호음료로 자리를 잡았다.
예부터 차는 장수(長壽)음료로 알려져 108세를 맞는 해를 차수(茶壽)라 하였다. 차는 정신을 맑게 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물질 중 가장 고상하고 아름다운 공양물(供養物)로 이용되었다. 또한 차는 투명하고 맑은 덕성(德性)을 지닌 것이 군자와 같다고 하여 사대부(士大夫) 사이에서는 차를 가까이 하는 것이 고상한 취미로 인식되었다.
중국 당(唐)나라 다경(茶經)에는 ‘정신을 맑게 하려면 차를 마신다’는 구절이 있다. 우리나라 조선(朝鮮)시대 다부(茶賦)에는 녹차의 다섯 가지 공(功)과 여섯 가지 덕(德)에 관한 설명이 있다. 즉 다섯 가지 ‘공’은 (1)책을 볼 때 갈증을 없애준다, (2)울분을 풀어준다, (3)손님과 주인의 정(情)을 화합하게 한다, (4)뱃속 기생충으로 인한 고통을 없앤다, (5)술을 깨게 한다 등이다. 한편 여섯 가지 ‘덕’은 (1)오래 살게 한다, (2)병을 낫게 한다, (3)기운을 맑게 한다, (4)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5)신선(神仙)과 같게 한다, (6)예의를 갖추게 한다 등이다.
녹차의 떫은맛은 카테킨(catechin)이라 불리는 탄닌의 일종으로 차 성분의 8-15%를 차지하며 찻잔 한 잔에 녹아 나오는 카테킨의 양은 70-120mg이다. 카테킨은 항암(抗癌) 효과와 혈관 건강을 지키는 기능을 하며, 감기 바이러스의 활동을 약화시키므로 감기예방에 도움이 된다. 일본 고베대학 후쿠다 교수는 연구를 통해 카테킨 성분이 다이옥신의 독성을 줄이고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차에는 비타민류가 풍부히 함유되어 있다. 비타민 C는 레몬의 5-7배 정도, 카로틴은 당근의 10배 가까이 함유되어 있으며 비타민 B군, 비타민 E, 비타민 P 등도 들어 있다. 비타민 C는 피로회복에 도움을 주며, 흡연(吸煙)시 파괴되는 비타민 C를 보충해준다. 비타민 B와 C는 수용성(水溶性)이므로 침출액이 녹아 나오지만, 비타민 A 전구체(카로틴)와 E는 지용성(脂溶性)이므로 차를 마신 후 남은 찻잎을 기름과 함께 먹으면 좋다.
식이섬유(食餌纖維)가 평균 12% 함유되어 있어 대장암(大腸癌) 예방에 효과가 있다. 차 한 잔에 15-100mg의 카페인(이 들어 있으며 피로회복, 각성(覺醒)효과, 대뇌자극, 강심작용, 이뇨(利尿)작용 등에 효능이 있다. 녹차의 카페인은 카테킨, 테아닌과 결합되어 있어서 섭취 후 2-3시간이면 배설된다. 충치 예방에 도움이 되는 불소(弗素), 여러 가지 약효가 있는 사포닌,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하는 미네랄 등이 차에 함유되어 있다.
차에는 사포닌(saponin)이 약 0.1% 함유되어 있으며, 미네랄 중 칼륨이 풍부하다. 미네랄은 혈액의 알칼리성을 유지하기 위해 중요한 영양소이다. 녹차는 자외선에 의한 피부 손상을 막아 주며 모공(毛孔)을 줄이고 주름을 펴주므로 녹차를 우린 물에 세수를 하면 좋다. 또한 녹차를 마시고 운동하면 지방이 에너지원으로 먼저 사용되므로 효과적으로 체지방을 줄일 수 있다.
주의 사항은 식사 직후 진한 녹차를 마시면 음식의 단백질, 철 등의 체내 흡수를 방해하여 소화불량이나 영양불량을 일으킬 수 있다. 탄닌이 철분의 체내 흡수를 방해하므로 철이 함유된 빈혈(貧血)약을 복용할 때는 60분 정도 간격을 두고 차를 마시는 것이 좋다. 카페인의 각성 작용이 불면증(不眠症)을 악화시킬 수 있으며 심계항진, 두통, 이명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중국의 차는 당송(唐宋)시대 불교의 성행으로 승려들이 불교를 전할 때 차의 음용과 제조방법에 대한 지식을 함께 전파하면서 차를 마시는 풍습이 급속도로 퍼지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신라 흥덕왕 3년(823년) 왕명에 의하여 대렴(大廉)이 당나라에서 가져온 차 종자를 지리산 계곡에 심었으며, 그 지역 사찰을 중심으로 전파되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729년 4월 쇼무천황이 승려(僧侶) 100명에게 차를 대접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상 고려는 차가 가장 융성했던 시기였다. 왕이 손수 말차(抹茶)를 제조할 만큼 왕실과 사찰에서 차를 중시하고 즐겨 마셨다. 고려의 승려들은 차가 일상화되어 식사 후 선방(禪房)에서 차를 마셨고, 항상 차를 가까이 하였다. 선비들 사이에서는 신라 시대 이상으로 다인(茶人)이란 칭호를 큰 명예로 여겼다.
우리나라의 주요 녹차 산지는 제주도, 전라남도 보성군, 경상남도 하동군 등이다. 제주도 오설록(Osulloc) 차밭은 중국 황산, 일본 후지산과 더불어 세계 3대 녹차(綠茶) 산지로 손꼽히며, 하동군 야생차(野生茶)밭은 세계 3대 야생차밭 중 한 곳으로 꼽힐 만큼 뛰어난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제주 오설록 차밭은 약 100만평(330만㎡) 규모이며, 5월 5일부터 8일까지 ‘제10회 오설록 햇차 페스티벌’을 개최한다. 오설록 햇차 페스티벌은 우리나라의 차문화를 발전시키고 진정한 쉼의 가치를 전하고자 매년 개최되는 행사다. 올해는 ‘오감(五感)으로 만나는 차의 진정한 쉼’을 주제로 제주의 푸르른 차밭에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할 예정이다.
주요 프로그램으로 서광차밭에서 싱그러운 유기농 햇차를 직접 채엽하고 차를 만드는 과정인 덖음을 경험해보는 ‘햇차 만들기 체험’, 차밭의 풍경을 담은 도안에 자신만의 컬러를 입히는 ‘햇차 컬러링’, 다양한 블렌딩 티의 향을 디퓨저로 만드는 ‘햇차 디퓨져 체험’, 서광차밭 주위로 구성된 미니 올레길 중간 중간 포토존이 마련된 ‘햇차 올레길’ 등으로 구성된다.
우리나라 최대의 차 주산지인 전라남도 보성군에서는 5월 4일부터 8일까지 5일간 ‘제42회 보성다향대축제’가 개최된다. 보성다향대축제는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차 축제이며,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5년연속 유망축제이다. 올해 축제는 한국차문화공원과 보성차밭 일원에서 ‘신이 내린 최고의 선물 보성녹차’라는 주제와 ‘녹차야 함께 놀자’라는 부제로 차관련 행사가 풍성하게 열린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편백나무로 만든 부스로 제작 설치하여 행사장 곳곳에서 녹차향(綠茶香)과 편백향(扁柏香)을 맡을 수 있도록 했다. 보성의 역사, 문화, 관광자원 등을 활용하여 다신제, 한국명차선정대회, 세계차맛 콘테스트, 이순신 호국다례제, 전국학생차예절경연대회, 고대 황실차 특별전 등 풍성하고 화려한 프로그램이 열린다. 또한 축제를 대표하는 녹차국수, 녹차빵, 녹차초콜릿 등 먹거리 판매 등 오감만족의 축제장을 준비하고 있다.
21세기 ‘문화의 세기’에 우리가 세계에 내 놓을 수 있는 전통문화 중 으뜸이 차문화(茶文化)이다. 우리의 차문화 속에 함유된 정신 그 자체가 우리가 추구하는 인문학의 중요한 분야이다. 자랑스러운 우리의 차문화의 기반을 더욱 넓혀 한 잔의 차로 ‘문화를 마신다’는 슬로건으로 세계의 문을 두드려야 하겠다.
글/ 靑松 朴明潤(서울대학교 保健學博士會 고문, 대한보건협회 자문위원, 아시아記者協會 The AsiaN 논설위원) <청송건강칼럼(492). 2016.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