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 풀벌레
고양시 덕양구와 일산구 사이 대장동
화정역에서 대곡역 지나 백석역으로 가는 동안
지상에서 아름다운 자연 마을을 보여주는 곳
들어갈 때 택시 타고
이장네오리고기에서 배를 채우는데
“유심이 인식되지 않습니다. SIM카드 삽입하세요.”
아, 신경질이 나는구나
껐다 켰다 껐다 켰다
지난번에는 됐는데
“유심이 인식되지 않습니다. SIM카드 삽입하세요.”
아, 신경질이 팍팍 나는구나
껐다 켰다 껐다 켰다 껐다 켰다
소주나 한 잔 더 들이켜고
핸드폰을 꺼버린다
멀리 아파트 불빛들이 쏟아지는 하늘녘
초록물고기 막둥이 한석규가 제댓날 걷던 교외선
이녁까지 비춰오는 밤빛에 의지해 걸으려는데
철로와 침목 위를 수북하게 덮어가는 풀들
인도 하나 없는 차도를 따라 대곡역으로 걷고 또 걷는다
어느덧 가로등도 이어지지 않고
덤프트럭 주차장 같은 어두컴컴한
그 사라지는 듯한 길
아, 이때인 것 같다
가을밤 풀벌레 소리가 들려온다
에너지로 만든 낮들이 들어올 틈이 없는 곳
에너지로 굴러가는 소음들이 막혀 있는 곳
아, 이제야 가을이 귓속으로 온몸으로
나를 채우는구나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신경질로 끈 이 순간이
가을로 가는 느낌을 만드는구나
그렇지만 핸드폰 먹통이 영원하다면
조금 더 가도 대곡역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두려운 가을에서 꽁꽁 언 겨울을 상상하며
온몸에 공포를 씌우겠구나
지구는 뜨거워지고
핸드폰은 뇌의 뉴런이 되어 있고
그래서 써야겠고
안 쓰면 가을이 채워지고
쓰면 지구는 뜨거워지고
가을밤 풀벌레
깊은 어둠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옴 샨티 샨티 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