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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진도초등학교 총동문회 원문보기 글쓴이: 56이세진
아, 가을인가! – 속리산(오송폭포,문장대,천왕봉,법주사)
1. 문장대에서 바라본 관음봉
(…) 산마루에 올라서자 백석정(白石亭)이 눈에 들어왔다. 정자가 하늘을 찌를 듯 우뚝하게 서 있었으니 참으로
문장대(文藏臺)의 진면목이었다.
이에 갓과 옷을 벗어젖히고는 구부러지고 잘린 바위틈을 밟고서 위로 올라갔다. 다 올라가자 바위 면이 둥글고 평평
하여 마치 큰 왕골자리를 깔아 놓은 듯하였으니 바로 중대(中臺)였다. 중대 위에는 또 창처럼 뾰족하게 깎인 큰 바위
하나 있었으니 이것이 상대(上臺)였다. 이 상대 위에는 천연적으로 이루어진 큰 웅덩이가 있는데, 여름에 장마가 지
면 이 구덩이에 물이 넘쳐흘러서 세 물줄기로 나뉘어 흐른다. 즉 북쪽 모서리로 넘쳐흐르는 것은 용화(龍華)로 들어
가서 괴강(槐江)의 근원이 되고, 동쪽 모서리로 넘쳐흐르는 것은 용유(龍游)로 들어가서 낙강(洛江)의 근원이 되며,
서쪽 모서리로 넘쳐흐르는 것은 석문동(石門洞)으로 들어가서 금강(錦江)의 근원이 된다.
―― 지암 이동항(遲庵 李東沆, 1736~1804), 「유속리산기(遊俗離山記)」(유몽인, 최익현 외 지음, 전송열, 허경진
엮고 옮김, 『조선선비의 산수기행』, 돌베개, 2016)
▶ 산행일시 : 2024년 9월 28일(토), 흐림, 바람 세게 붐
▶ 산행코스 : 화북탐방지원센터,오송폭포,쉴바위,문장대,문수봉,청법대,신선대,입석대,비로봉,천왕봉,배석대,
상환석문,상환암,세심정,법주사,속리산터미널
▶ 산행거리 : 도상 15.3km
▶ 산행시간 : 7시간 3분(09 : 45 ~ 16 : 48)
▶ 교 통 편 : 반더룽산악회(23명) 버스로 가고 옴
▶ 구간별 시간
07 : 00 – 양재역 12번 출구 50m 서초구청 마을버스 정류장 앞
08 : 14 – 금왕휴게소( ~ 08 : 35)
09 : 45 – 화북탐방지원센터, 산행시작
09 : 57 – 오송폭포
10 : 28 – 쉴바위
11 : 04 – 주릉 사거리, 문장대 0.2km, 화북주차장 3.1km
11 : 13 – 문장대(文藏臺, 1,032m)
11 : 20 – 주릉 사거리, 휴식( ~ 11 : 30)
11 : 50 – 청법대(聽法臺)
12 : 11 – 신선대휴게소, 신선대(1,016m), 휴식( ~ 12 : 19)
12 : 53 – 석문
13 : 04 – 비로봉(1,032m)
13 : 10 – 천왕석문
13 : 21 – 삼거리, 법주사 5.1km, 천왕봉 0.6km
13 : 40 – 천왕봉(天王峰, △1,058m), 휴식( ~ 13 : 55)
14 : 12 – 다시 삼거리
14 : 27 – 배석대(拜石坮)
14 : 46 – 상환석문
15 : 00 – 상환암(上歡庵), 산신각
15 : 26 - 세심정
16 : 03 – 법주사
16 : 48 – 속리산터미널 주차장, 휴식( ~ 16 : 57)
18 : 45 – 죽전휴게소( ~ 18 : 55)
19 : 12 - 양재역
2. 속리산 지도(1/50,000)
▶ 문장대(文藏臺, 1,032m)
문장대를 오르는 가장 가까운 들머리는 화북탐방지원센터로 문장대까지 3.3km이다. 오송폭포를 들르면 3.5km이
다. 산행대장님은 대개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데 느린 걸음이라도 2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법주사에서는
6.0km이고, 날머리인 속리산터미널에서 법주사까지만 해도 2.2km나 된다. 눌재에서 백두대간 길로 문장대를 오르
는 것은 5.9km나 될뿐더러 군데군데 험준한 바윗길이 도사리고 있어 웬만한 산꾼이 아니면 가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화북탐방지원센터는 사시사철 경향각지에서 많은 등산객들이 모여든다. 오늘도 그렇다. 아스팔트 포장한
대로를 좁다 하고 줄지어 간다. 무리지어 가는 단체등산객들을 추월하다 계속 이어지는 행렬이 질리기 일쑤다. 그들
휴식하는 틈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 오송폭포가 탐방지원센터에서 12분 걸음이다. 등로에서 0.1km 벗어나 있다.
당연히 들른다. 오송폭포는 계곡 막다른 절벽이다. 장폭이고 미폭이다. 마치 비단자락을 길게 걸쳐놓은 것 같다.
가까이 다가가 물보라를 맞는다.
오송폭포 안내문이다.
“높이 15m에 5단으로 층을 이룬 것이 특징인데 예전에 소나무 5그루가 있어 오송(五松)폭포라 불렸고 폭포 주변에
오송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안타깝게도 지금은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천연림과 기이한 암석 사이로 흐르는 오송폭포는 가뭄 때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
등로로 뒤돌아 와서 문장대를 향한다. 아스팔트 포장한 대로는 성불사(0.2km)로 가고 문장대 가는 길은 비포장
돌길이지만 널찍하다. 계류 잴잴거리는 완만한 숲속 길이다. 줄지어 오른다. 벌써 문장대를 올랐다가 내려오는 사람
들과 자주 마주친다. 일출이 멋지던가요? 물었다. 아쉽게도 일출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다행이다. 배 아플 뻔했다고
하자 웃는다. 간혹 트인 하늘에는 먹구름이 부산하다.
산행 시작한 지 30분이 지났다. 계곡을 벗어나(나중에 다시 만난다)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진다. 비로소 산을 가는 것
같다. 등산객들은 많이 줄었다. 쉴바위다. 쉼바위가 아니다. 모처럼 전망이 트이는 널찍한 암반이다. 칠형제봉 암봉
연봉이 가깝다. 금강골을 오른다. 계곡을 다리로 건너갔다 건너오기를 반복한다. 등로 살짝 벗어난 처마바위도 경점
이다. 칠형제봉이 내 눈높이다. 계류는 끈질기게 이어진다. 데크계단 오르면서 계류를 벗어난다. 그리고 주릉이다.
주릉 사거리는 쉼터다. 여러 개의 탁자에는 빈자리가 없다. 문장대 0.2km. 내쳐간다. 큼직한 문장대 표지석 앞에는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섰다. 헬기장 지나고 데크계단 오르면서 사방 조망이 트인다. 바람이 세게 분다.
모자가 날려갈 것 같다. 모자를 벗는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하지만 첩첩 산 조망은 가리지 않았다. 삼파수 물웅
덩이에는 물이 가득하다. 난간 따라 돌며 사방을 둘러본다. 청허자 채수(淸虛子 蔡壽, 1449~1515)가 본 그대로다.
그의 시 「유 속리산 기행 증 욱상인(遊俗離山記行贈旭上人)」의 일부다. 원문보다 번역이 더 현장감이 있다.
去去入香冥 한 걸음, 한 걸음 아득한 공중에 드니
雲深一洞幽 구름 깊어 한 골이 그윽도 하고
葉落千峯冷 잎이 져서 천 봉우리 싸늘도 한데
諸山羅脚底 발밑에 늘어선 여러 산들이
渺渺如畦町 아득히 밭이랑이 깔린 듯하고
側身南望海 몸을 돌려 남쪽으로 보이는 바다
蜃氣極溟涬 신기루가 멀리 넘실거렸네
府見三韓地 굽어 삼한 땅을 내려다보니
正如在深穽 깊디깊은 마치 함정에나 있는 듯
一片蠻觸角 한 조각 만촉 달팽이 뿔에
擾擾幾爭鼎 떠들썩 몇 번이나 왕조를 다툰고
飄飄氣凌虛 너훌너훌 하늘 위로 몸이 솟는 듯
日月可倒影 해와 달의 그림자를 거꾸러칠 듯
半世落人間 반생을 인간에 유락해 온 나
何用事骨鯁 골경을 일삼아 그 무엇하리
不如伴白雲 어즈버, 흰 구름과 짝을 지어서
泉石窮遊聘 천석에나 마음껏 놀려네
주) ‘一片蠻觸角(한 조각 만촉 달팽이 뿔에)’는 달팽이 두 뿔에 만(蠻)이란 나라와 촉(觸)이란 나라가 있어,
서로 싸워서 송장을 백만이나 내었다. 《장자》
ⓒ 한국고전번역원 | 양주동 (역) | 1969
3. 차창 밖 아침노을
4. 오송폭포, 등로에서 0.1km 떨어져 있다
5. 쉴바위(‘쉼바위’가 아니다)에서 바라본 칠형제봉(?)
6. 앞은 백악산 능선, 맨 뒤 가운데 왼쪽은 대야산(?)
7. 중간 오른쪽은 시루봉
8. 앞 가운데는 백악산
9. 속리주릉, 맨 오른쪽 뒤가 천왕봉
10. 뒤쪽 암봉이 칠형제봉
11. 속리주릉, 상학봉, 묘봉, 두루봉
12. 관음봉
13. 멀리 가운데 분지가 속리산터미널 근처 상가지역, 오른쪽 중간이 수정봉
▶ 천왕봉(天王峰, △1,058m)
문장대 정상에는 바람이 워낙 거세게 몰아쳐 오른 모든 사람들은 얼른 사방 둘러보고 곧바로 내려간다. 나도 그런
다. 서둘러 내린 사거리 갈림길 쉼터에서 바람 피해 휴식한다. 배낭 벗어놓은 첫 휴식이다.
지암 이동항이 오른 “바위 면이 둥글고 평평하여 마치 큰 왕골자리를 깔아 놓은 듯하였으니 바로 중대(中臺)였
다.”의 중대가 쉼터 옆 여기려니 나도 오른다. 여기도 조망이 훤히 트인다. 나는 속리산의 천봉(千峰) 중 관음봉을
제일로 친다. 좌우로 균형 잡힌 아름다운 모습이다.
이정표에 굳이 ‘신선대화장실 1.1km’라고 표시한 이유를 알 것 같다. 그곳까지 얼마 되지 않는 불과 30분 거리이니
아무데나 방뇨 또는 배변하지 마시라는 뜻이리라. 그러기도 할 것이 등로 벗어나면 울창한 산죽 숲이거나 바위 절벽
이다. 문수봉은 알아보지 못한 채 대깍 넘어버리고 만다. 흐릿하지만 인적이 난 봉봉은 배낭 벗어놓고 들른다. 청법
대가 오르기 고약하다. 가파른 슬랩을 풀뿌리 움켜쥐며 오르고 산죽 숲 뚫어 정상에 선다.
청법(聽法)은 바람소리뿐이다. 조망은 키 큰 나무숲에 가렸다. 지나가는 등산객들이 내려오는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도 괴춤 여미는 시늉하면 금방 그 눈길이 부드럽게 변한다. 잠깐씩 몇 번 오르내리다가 길게 오르면 신선대휴게소
다. 국립공원은 음주산행을 단속한다면서 이곳 휴게소에는 당귀 신선주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술과 즉석에서 부친
감자전과 도토리전을 팔고 있다. 소주가 5,000원이다. 싼 셈이다.
신선대휴게소에는 부슬비가 내린다. 그늘막이 비를 가리기도 한다. 그래도 바로 옆 암반에 올라가면 칠형제봉 연봉
이 병풍처럼 보인다. 신선대휴게소에서 천왕봉 쪽으로 0.2km 가면 오른쪽으로 경업대(0.4km) 지나 법주사
(5.1km)로 가는 ┣자 갈림길이다. 아직껏 가보지 못한 경업대를 들를까 말까 몇 번이나 망설이다 그냥 간다. 내렸다
가 다시 오르고 왕복 0.8km이면 너무 멀다. 등로 옆 신선대 암봉은 들른다. 일대 경점이다.
비로봉 근처였다. 등로 오른쪽에 희미한 인적이 보이기에 목책 넘고 산죽 숲 뚫어 암봉에 오르려고 했으나 잡목과
절벽에 막혔다. 이참에 아름드리 참나무 아래 시비(施肥)하였다. 혼자 생각에 이런 데는 노루궁뎅이버섯이 있을 법
도 한데 어째 조용하다 하면서 위쪽을 쳐다보니 바로 머리 위에 노루궁뎅이버섯이 그 궁뎅이를 바짝 내밀고 있는 게
아닌가. 시비 곧 거름을 준다는 것은 수목에게는 좋은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런 선물 주는 게 아닐까 하여 냉큼
거두었다.
그런데 이게 약이 아니라 실은 독이었다. 새삼 물욕이 생긴다. 울퉁불퉁한 돌길 등로를 가면서 노루궁뎅이버섯이 또
있을까 하고 눈을 들어 좌우 사면의 참나무를 훑어보며 가니 발밑 돌부리에 채어 엎어지지 않을 도리가 있겠는가.
그런 다음에야 마음을 비운다. 천왕석문 지나고 ┣자 갈림길이다. 오른쪽은 법주사 5.1km, 직진은 천왕봉 0.6km이
다. 천왕봉을 올랐다가 여기로 뒤돌아 와야 한다. 천왕봉 가는 길은 완만한 오르막길이다.
돌투성이인 등로는 좁고 오가는 등산객들이 많아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등로 옆 전망대는 꼬박 들른다. 천왕봉
정상은 발 디딜 데 없이 사람들이 북적이니 여기가 조망하기 더 낫다고 한다. 그랬다. 천왕봉 정상은 표지석과 함께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몇 겹 줄섰다. 나는 정상을 약간 벗어난 도화리(2.7km), 형제봉(7.1km) 가는 길로
내려서니 서너 평 공터로 조망이 훤히 트인 명당이 나온다. 벤치도 한 개 있다. 나 혼자 차지한다.
벤치에 앉아 늦은 점심밥 먹는다. 밥맛을 모른다. 한 술 뜨고 구병산 연봉 바라보고, 또 한 술 뜨고 봉황산 견훤산
대궐터산을 살핀다. 남산 도장산에 이르러서는 빈 숟가락이다.
작년 10월에 광인 님과 함께 태실(태봉, 549.9m)에서 797.4m봉과 922.9m봉을 넘어 천왕봉을 올랐었다. 이번에는
그리로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으나, 한편 생각하니 그 길은 비지정등로일 뿐더러 오르내리기 까다로운
슬랩지대 여러 곳을 지나야 하고, 등로 또한 불분명한 데도 있다. 나 혼자서는 겁난다.
14. 맨 왼쪽 뒤는 구병산
15. 신선대휴게소에서 바라본 칠형제봉
16. 멀리 가운데가 문장대, 그 왼쪽은 관음봉
17. 관음봉
18. 거름 주고 선물로 받은 노루궁뎅이버섯
19. 중간 가운데 왼쪽이 수정봉
20. 중간 왼쪽은 시루봉
21. 가운데는 도장산, 오른쪽은 대궐터산
22. 중간 왼쪽은 시루봉
23. 앞은 속리산 주릉 비로봉과 그 주변
▶ 상환암(上歡庵), 법주사(法住寺), 속리산터미널 주차장
온 길 뒤돌아 내린다. 줄달음한다. 금방 법주사 갈림길이다. 처음 가는 길이다. 처음 가는 길은 언제나 설렌다. 저 산
모롱이 돌면 어떤 경치가 펼쳐질까 어서 가서 보고 싶어진다. 데크계단 길게 내리고 상고암 갈림길 지나 등로 바로
옆에 조망이 트일 바위지대가 있다. 들른다. 너른 암반에 ‘拜石坮’라고 새겼다. 그 앞에 커다란 바위가 덩그러니 있
다. 배석대이다. 사연인즉 이렇다.
“608년(신라 진평왕 30년)에 왕비 마야부인과 공주 덕만(德曼, 뒤에 선덕여왕)이 왕자 법승(法昇)을 데리고 속리산
에 와서 국운의 번창과 왕실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였다고 한다. 덕만과 법승 남매는 매일 아침마다 이 암반에서
국왕이요, 아버지인 진평왕이 계신 경주 쪽을 향하여 절을 올렸는데 옆에 서 있던 우람한 바위가 덕만공주가 절을
하는 것을 보고 고개를 넙죽 숙인 후 다시 고개를 들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 이후로 이 바위를 배석대라고 부르게 되
었다고 한다.”
배석대 암반은 두 개다. 그 사이 움푹한 산죽 숲에서 앳된 아가씨 한 분이 엎드렸다가 일어난다. 나는 그 아가씨가
뒷일을 본 것이려니 하고 눈을 돌려 애써 못 본 척했다. 그리고 탁 트인 전경을 감상하였다. 그 아가씨가 뒷일을 본
데를 지나 옆의 암반에 가기가 쑥스러워 그냥 가려고 하자 그 아가씨가 나더러 저쪽 암반으로 가서도 사진을 찍지
않으시냐고 한다. 내가 오해하였다. 그 아가씨는 그쪽 암반에서 내려 머뭇거리다 이쪽으로 오는 중이었다. 그쪽
암반을 오르내리기가 조심스럽다.
그쪽 암반이 좀 더 높아 전경이 더 훤히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다. 덕만 공주가 경주를 향해 절을 했다면 응당 전경
이 트인 남서쪽일 것 같은데(배석대도 그 방향이다), 백두대간 산릉이 가린 남동쪽을 향해 절을 했다니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남서쪽은 전주 방향이다.
이번에는 그 아가씨가 하산 길에 어디 알탕할 데가 있을까요? 하고 묻는다. 나는 당돌한 아가씨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데가 없지는 않겠지만 오늘 같은 날씨에는 추워서 알탕하기 어렵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발만 담그려는 데도 그럴까요?
탁족하는 데는 많을 겁니다.
알탕은 물에 풍덩 빠지는 건 가요?
그렇지요. 그것도 알몸으로. 그래서 알탕이라고 하지요.
다시 숲속 길을 내린다. 데크계단과 돌길을 번갈아 내린다. 웅장한 석문을 지난다. 상환석문이다. 상환석문 지나자
마자 목책 두른 쉼터가 있다. 목책 너머에 희미한 인적이 보인다. 아마 전망대가 있어 그리로 가는 인적일 것. 따라
가본다. 소나무 숲길을 20m쯤 가니 완만한 대슬랩과 널찍한 암반이 나온다. 이곳도 배석대 못지않은 경점이다.
쉼터로 뒤돌아 와서 잘난 등로로 내린다. 쭉쭉 내린다.
24. 앞은 청화산, 멀리 가운데는 희양산
25. 가운데 왼쪽은 시루봉, 맨 오른쪽은 대궐터산
26. 앞 왼쪽은 형제봉, 뒤는 구병산
27. 구병산
29. 중간 왼쪽이 도장산
30. 가운데가 도장산, 그 뒤 왼쪽은 연엽산(?)
31. 천왕봉에서 북쪽 조망
32. 배석대에서 조망. 앞 오른쪽이 수정봉
33. 멀리 가운데 왼쪽은 노음산(?)
내리막 등로 왼쪽에 허름한 돌길 오르막이 보인다. 저기도 전망대일까 하고 오른다. 돌길 언덕 너머에 절집이 있다.
상환암(上歡庵)이다. 내가 들르고 싶었던 암자다. 암자 왼쪽 계곡 건너에 노송과 어우러진 수직의 높다란 암벽이 특
히 절경이다. 스님이 요사채에서 나오더니 뒤돌아가려는 나에게 저 위쪽 산신각에 올라가면 경치가 더 트이니 올라
가보시지 않으시려오, 하고 권하며 오르는 길을 알려준다. 가파른 대슬랩에 난간 두른 계단을 놓았다.
산신각을 아주 좁은 터에 세웠다. 조망이 시원스레 트인다. 김장호(金長好)는 유독 이 상환암 정경을 사랑했다.
김장호가 그의 저서 『韓國名山記』(평화출판사, 1993) ‘속리산’에서 묘사한 상환암 부분이다.
“나는 유독 상환암 아래 위 정경을 사랑한다. 암자이름부터 마음을 갈앉혀주는 것이다. 심장의 박동이 고양되어서는
가닿을 수 없는 경지, 오히려 마음이 갈앉아서 비로소 거기에 오를 수 있는 법열경, 깨친 자의 내면의 기쁨이 환하게
피어나는 그 이름 상환(上歡)은, 어쩌면 올림포스산상의 제신(諸神)의 것, 아니더라도 그만한 불빛이 그 이름에
내비치어 깜깜한 내 나그네 길을 희미하게나마 밝혀주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상환암 아래 계곡에서 청아한 물소리가 법문처럼 들린다. 나중에야 그 물소리의 정체가 은폭동폭포다는 것을 알았
다. 상환암을 내려 계곡에 다다랐어도 울창한 수풀을 헤치고 그 물소리의 현장을 찾아가기에 너무 멀었다. 그래도
은폭동폭포를 보지 않고 내려온 게 아쉽고 또 아쉽다. 다음은 우암 송시열이 읊었다는 시 「은폭동(隱瀑洞)」이다.
실제로 이랬다.
洋洋爾水性 도도하게 흐르게 망정인 것이 물인데
何事石中鳴 어찌자고 여기서는 바위 뒤에서 물소리만 울리는가
恐濯世人足 때 묻은 세간 인간들이 여기서 행여 발 씻을까 두려워서
藏源但有聲 흐름을 감추고서 소리만 내는구나
(김장호의 위 책에서)
산신각을 내려와 원통보전 앞에서 스님과 합장하여 맞인사한다. 원통보전의 주련이 갑자기 내 등을 내려치는 죽비
(竹篦)다. 천수경(千手經)에 나오는 구절이라고 한다.
罪無自性從心起 죄는 본래 실체가 없어 마음 따라 일어난 것
心若滅時罪亦亡 마음이 없어지면 죄업 또한 사라지네
罪亡心滅兩俱空 죄도 업도 없어지고 마음 함께 비워야
是則名爲眞懺悔 이것을 이름하여 진실한 참회라네
태실 갈림길 지나고 얼마 안 가 세심정휴게소다. 휴게소 앞 계류 암반에는 탁족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제부터 등로
는 아스팔트 포장한 대로고, 대로 옆의 데크로드는 ‘세조길’이다. 세조길을 가다가 세조길이 계류 건너 산자락을
오르락내리락하기에 세조길을 벗어나 대로로 간다. 걷고 있어도 걷고 싶은 아름다운 숲속길이다. 달천 상수도수원
지 지나면 법주사다. 법주사도 들른다. 우선 커다란 돌확에 넘치는 감로수 한 바가지 떠서 목 축인다.
법주사에서 어정대다가는 산행마감시간에 늦는다. 법주사에서 속리산터미널 주차장까지 2km가 넘는다. 그 길에도
생태탐방로, 조각공원, 소나무 숲, 인공폭포 등 볼거리가 많다. 그 길의 절반은 먹자동네인데 산행마감시간이 촉박
하여 음식점마다 풍기는 구수한 파전과 동동주 냄새에 침만 흘린다.
34. 아래 동네는 속리산 법주사 입구 상가지역, 멀리는 서대산
35. 오른쪽이 수정봉
36. 상환암 산신각 오르는 길옆에 핀 구절초
37. 산신각 전경. 뒤쪽 가운데는 수정봉
38. 세심정 앞 계류
39. 법주사 가는 길
41. 꽃무릇. 법주사 지나 생태탐방로에서
42. 조각공원 옆 소나무 숲
43. 상가지역 산자락 인공폭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