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열의 내연內燃
북부 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브람스Johannes Brahms(1833~1897)의 음악적 언어는 한마디로 ‘정열의 속태움’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남부 독일 본에서 태어난 베토벤의 음악어법이 ‘정열의 분출’에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들 두 독일 음악인의 대비는 매우 흥미 있는 일이다. 그것은 그들이 태어난 지역의 특성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남부 독일은 지역적으로 라틴에 가깝기 때문에 활달하고 폭발적이며 정열적이라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그래서 베토벤의 성격 자체가 무한한 충돌성과 상향성을 밖으로 뿜어내면서 자신의 고뇌를 연소시킬 수 있었다.
이에 비하면 북부 독일이 대체적으로 음습한 기후에 파묻혀 끝없는 삼림 지대를 형성한 까닭에 자연히 브람스의 내면세계는 타오르는 정열을 속으로 끌어안고 몸부림친 불연성 정열이었던 것이다. 브람스의 음악, 특히 실내악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이 점은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요건이 된다.
물론, 브람스가 남긴 4곡의 교향곡도 이러한 형식에서 크게 탈피하지는 않고 있다. 교향곡 제1번을 쓰기 위하여 무려 20년을 마음속에 회임시켰다가 세상에 내놓은 신중성은 마지막 교향곡 e단조 작품98에서 끝나고 있다. 결코 숫자상으로 많다고 할 수 없는 4곡의 교향곡들이 하나 같이 걸작으로 남게 된 것도 이러한 브람스 특유의 자세에서 비롯된 소산들이었다.
실내악으로 눈을 돌리면 이러한 브람스의 내향성은 더 한층 심화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브람스의 실내악 작곡에 기울인 정열은 평생을 두고 계속되었다. 그것은 브람스 자신이 표출해 내고자 했던 욕망의 발산이 실내악이란 형식에 더 알맞기 때문이라는 스스로의 판단에 의한 것이었다. 특히 죽음을 몇 년밖에 남기지 않았던 그의 만년에 클라리넷을 주로 하여 쓰인 4곡의 실내악은 브람스가 걸어온 실내악 인생의 결정結晶이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깊은 걸작들로 남아 있다.
수많은 여성을 사랑했으나 그중 어느 한 사람도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했던 브람스의 인생 역정도 함께 녹아 흐르고 있어서 고독한 늙은이의 심경이 참으로 담담하게 회고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죽음 6개월 전에 맛보았던 클라라 슈만에의 애틋한 임종이 결국은 그의 육신을 더 이상 붙들어 주지 못한 채 그는 1897년 4월 3일 빈에서 죽으니, 그때 나이 향년 64세였다. 바야흐로 최고의 원숙기에 접어든 나이에 죽음을 맞았다는 것은 대단한 손실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브람스가 남긴 수많은 실내악곡들은 음악사상 불멸의 작곡가로 기억하기에 족하리만큼 감동의 명편들이다. 두 곡밖에 남기지 않은 첼로 소나타 역시 브람스의 내면세계가 유감없이 펼쳐진 명곡이라 할 수 있겠다.
*첼로 소나타 제1번 E단조, 작품38
1865년 여름, 브람스는 리히텐탈Lichtental 근교의 별장에 머무르고 있는 클라라를 방문했다. 1865년이면 슈만이 엔데니히 정신병원에서 숨진 지 9년째 되는 해로서, 클라라는 망부亡夫의 상처를 어느 정도 잊고 있을 때였다. 리히텐탈의 클라라 별장에는 수많은 예술가들이 모여들어 토론과 연주를 통해 서로를 교류하면서 여름을 보내곤 했던 것인데, 당시 33세의 젊은 브람스도 그들과 함께 여름을 보내면서 처음으로 첼로 소나타를 구상했던 것이다. 여름을 리히텐탈에서 보내고 난 후 가을에 빈으로 돌아온 브람스는 서둘러 이 곡을 마무리 지었다.
브람스가 처음으로 작곡한 e단조 첼로 소나타는 피아노보다 낮은음의 저현低絃으로 울리기 때문에 중후하고 깊은 맛이 전곡을 감싸고 있다. 이것은 브람스가 도달하려고 하는 높고 아득한 세계에의 갈구와도 같은 것이다. 전곡은 3악장으로 나뉘어져 26분 정도의 소요 시간이 필요하나, 실제로 이 곡의 유현한 맛은 시공을 뛰어넘은 농밀함에 있을 것이다. 초연은 그로부터 훨씬 뒤인 1883년 9월 5일, 하우스만의 첼로와 브람스 자신의 피아노로 이루어졌다. 브람스는 이 곡을 그의 후원자인 요제프 겐스바허에게 헌정했다.
*첼로 소나타 제2번 F장조, 작품99
첫 번째 첼로 소나타 E단조를 쓴 지 21년 만인 브람스의 나이 53세 때의 작품이다. 브람스의 창작열이 가장 원숙기에 접어들고 있을 때 작곡된 제2번은 제1번에 비해 규모가 훨씬 깊어졌고 세련되어 있다. 1886년 여름 브람스는 알프스 산록이 병풍처럼 둘러선 툰 지방으로 피서를 가 있었다. 50대에 들어서면서 브람스가 심혈을 쏟아 작곡에 열중했던 실내악곡들의 결정結晶은 모두가 깊이를 더한 심오함으로 짜여 있어서 하나 같이 가작佳作으로 남아 있다.
툰에는 비트만V.Widmann이란 친구가 있었다. 그는 시인이면서 첼로를 잘하는 음악광이기도 했다. 자연히 애호가들끼리 모여 실내악 연주를 하면서 여름을 보내곤 했는데, 브람스도 그들의 일원이 되어 1888년 여름까지 그곳에 머무르면서 제2번 F장조 소나타를 작곡한 것이다.
이 작품 외에도 브람스는 툰에서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 피아노 3중주 E단조를 작곡했는데, 이들 작품 속에 흐르는 공통된 특징은 밝고 너그러운 악상으로 충만해 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툰에서의 브람스는 행복했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1번이 3악장으로 구성되었던 데 비하여 2번은 4악장으로 확대되었고, 첼로의 용법도 훨씬 다양하게 구사됨으로써 거의 전 음역을 커버하고 있다.
여기에는 끓어오르는 정열도 있다. 그러나 그 정열은 안으로 안으로 삭여 드는 외로운 중년의 정열이다. 바야흐로 만년의 고적함을 예비하기 위한 스스로의 몸부림 같은 것, 그것이 바로 제2번 F장조 소나타다.
*로스트로포비치와 제르킨
카잘스가 가고 없는 지금 로스트로포비치야말로 가장 뛰어난 첼리스트로 부동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워싱턴 국립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있으면서 다이내믹하고 정제된 음을 창출해 내는 그의 거장성은 지금 최고의 원숙기에 접어들어 백화난만의 경지에 이르고 있다.
로스트로포비치는 한마디로 경이로운 존재라 할 수 있다. 그가 뿜어내는 첼로의 선율은 대규모 교향악단의 울림에 맞먹는 힘과 장력에 넘치며, 그 속에 간직한 열정은 아무리 조용한 칸타빌레라고 할지라도 결코 싸늘하게 식어버리지 않는다. 오직 로스트로포비치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달관의 경지로부터 우러나오는 힘, 그것이 바로 그를 우리 시대의 ‘마에스트로’라고 부르게 하는 요체라고 할 수 있겠다.
루돌프 제르킨은 금년 나이 84세. 그와 동갑인 클라우디오 아라우, 한 살 아래인 호로비츠와 함께 가장 고령의 피아니스트로서 아직도 연주와 레코딩을 쉬지 않는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제르킨 음악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정통 독일음악이다. 팽팽한 긴장감, 터질 듯이 솟구쳐 오르는 정열 속에 유연히 흐르는 서정성으로 베토벤, 브람스를 연주할 때의 제르킨은 아무도 따르지 못할 위엄을 발산한다. 따라서 제르킨이 가장 장기로 하는 곡들이 브람스의 피아노 작품들인데, 여기서는 로스트로포비치의 첼로를 보좌해 줌으로써 전면에 드러나지 않은 또 하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브람스의 실내악곡 중에서도 피아노가 주가 된 작품에는 제르킨이 독주자로 참여하기는 하지만, 현악기를 받쳐주는 소나타에서 그 이름을 찾아보기란 그리 쉽지 않다. 만년에 들어선 제르킨과 원숙기에 접어든 로스트로포비치의 음악적 교감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독일 그라모폰 1983년 음반 <Brahms: The Cello Sonatas>
첼로: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Mstislav Rostropovich
피아노: 루돌프 제르킨Rudolf Serkin
1983 Polydor International GmbH. Hamburg
(성음成音-필립스와 기술 제휴- ‘한국판’ 해설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