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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할렐루야 오늘도 거룩한 주의 날 성전에 나아와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성도님들의 삶과 가정과 일터 가운데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우리 앞뒤 좌우 계신 분들과 사랑의 고백, 축복의 인사 나눕시다.
주님 안에서 사랑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는 사도행전 2장에서 펼쳐놓았던 놀라운 오순절의 현장으로 함께 들어가 보려고 합니다. 여러분 그날 아침 예루살렘 성 안에는 인산인해 그 자체였습니다. 요세푸스 역사학자인데요. 요셉 푸스에 의하면 1세기 유월절이라든지 오순절 그리고 초막절 때 약 100만 명 정도가 순례객으로 모여들었다 그렇게 기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현재 우리 대구 인구가 240만 정도 됩니다. 그리고 동구가 한 34만 정도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즉 대구 인구의 약 40%, 우리 동구 인원의 약 3배 정도가 지금 동성로 한복판에 와르르 몰려든 상태 그런 정도의 느낌으로 우리가 좀 생각해 보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볼 수 있죠.
그러니 그 도시가 얼마나 북적북적 됐겠어요? 순례객들로 꽉 차서 활기가 넘치는 그러한 상황을 우리는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오순절 77절이라고도 하죠. 밀 수확을 마친 농부들이 추수 감사 예물을 가지고 성전으로 나아갑니다.
또한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과 십계명을 받은 날로 기념하는 날이잖아요. 그러니까 옹성전뿐만 아니라 골목마다 흥에 겨워 찬양과 제사의 기쁨을 가지고 지금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 북적거림 한복판에 작은 다락방 하나가 있었으니 12 제자와 마리아, 그리고 함께 모인 120명의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그들은요 갈릴리로 돌아가지도 않았고요. 주님께서 말씀하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사명지로 흩어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주님의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며 두려움 반 설렘 반 이런 복잡한 마음을 가지고 한마음으로 기도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죠.
여러분 그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분명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다.
그거 목격했습니다. 그러나 그 주님이 또 눈에 보이지 않아요. 주님께서는 다시 하나님의 그 보좌로 올라가셨고 눈에 보이는 것은 없어요. 그리고 그들은 보이지 않지만 약속하신 성령 새로운 능력을 기다려야만 했던 것이죠. 어떤 모습으로 성령이 우리에게 임할지 그 누구도 가늠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그저 약속 하신 성령이 임하실 때까지 기다리는 모습 어떻게 기다렸어요?
함께 오로지 기도하면서 한마음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 오순절 아침 온 세상이 새로운 열매를 드리면서 감사의 절기를 드리는 그때에 하나님은 새로운 준비를 시작하셨다는 여러분 77절을 통해서 율법의 돌판을 새겨 주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오순절 즉 성령 강림의 이 시간을 통해서 성령으로 마음 판에 새기는 시간을 갖게 된 것이죠.
여러분 오늘은 오순절입니다. 오순절 이 아침에 놀라운 성령의 임재 현장이었던 그때의 그 모습들을 우리가 조명하면서 성령 충만을 받고라는 주제로 주님이 약속하신 성령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성령 충만함 받은 자들이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우리도 말씀을 묵상하면서 도전받고 성령을 소망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는요. 약속하신 성령은 때가 찬 시각 임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께서 오순절 아침에 임하신 것은 우연일까요?
아니면 갑작스러운 일이었을까요?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섭리 안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때가 찬 시각 역사하신 것이죠.
여러분 사도행전 우리 2장 1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실까요?
오순절 날이 이미 이름에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여기에서 이미 이름에라는 이 표현을 생각해 보면 보통 우리는 시간이 흘렀다는 그러한 의미로 받아들이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헬라어 슈플레로스타이라는 이 단어는요. 가득 채워졌다 충만하게 되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즉 하나님의 계획이 마침내 가득 찼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가득 차서 흘러넘치는 상황. 그래서 그 순간 바로 그때에 성령께서 임하셨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이것은요. 그 한 날의 사건으로 마침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고하셨던 구속의 사건, 그 구속의 은혜의 정점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거예요.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장 4절 5절 말씀인데 우리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같이 읽어보실까요?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너희가 성령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의 말씀을 주셨던 거예요. 그런데 이 약속의 말씀은 이미 구약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하셨던 말씀이었던 것이죠. 요엘 선지자를 통해서 우리는 많이 들어봤습니다. 어떻게 예언을 했는지 우리 요엘서 2장 28절을 함께 읽어보십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너희 자녀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대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선택해서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은요. 반드시 하나님이 정하신 그때 충만한 그 시기가 되었을 그때에 역사하셨다는 거예요.
여러분 구약에 있던 사건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노아의 홍수 사건, 하나님의 때죠. 이스라엘이 출애굽 사건 여러분 그것도 하나님께서 정한 때에 그들을 400년 동안 있게 하시고 그 후에 이끌어내셨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그 역시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이 땅에 보내주셨다. 그래서 여러분 모든 것이 때가 차며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원리를 갈라디아서 4장 4절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같이 읽어봅시다.
때가 참에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여러분 하나님은요 결코 서두르지도 않고 늦지도 않으신 분이시라는 거예요. 언제나 완벽한 타이밍 정말로 때가 찬 그 시각에 하나님은 계획하신 것을 드러내십니다. 마찬가지로 성령도 그때 갑자기 임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계획을 수정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역사하셨다는 것이죠.
오순절의 절기는 과거에 시내산에서 율법이 주어진 날이자 하나님께서 새 언약을 시작한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은 바로 약속하신 성령이 그들에게 동일하게 임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시계에 맞춰서 정확하게 완벽하게 임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주에 우리가 나누었던 것처럼 우리의 삶에도 때로는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내 시간과 하나님의 시간을 같다라고 생각하시면 아니 되옵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우리가 기억하고 하나님의 때를 기대하면서 기다리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죠.
그러한 기다림 가운데 뭐 해야 됩니까?
기도하는 가운데 역사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라고 느껴질 때에도 내가 기도하고 강구했는데 응답이 없다고 느껴질 때에도 기다려야 하는 것이죠.
왜요?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시고 때가 찬 시각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그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때가 찬 시각 역사하시는 그 은혜 오순절 아침에 임하셨던 하나님은 정말로 완벽한 시간에 계획대로 흘러갔다.
여러분 그렇다면 주님 다시 오시는 재림의 시간은 어떨까요?
여러분 재림도 우리는 기다려야 하는 시간입니다. 우리에게 약속하신 말씀이죠. 언제인지 우리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오신다. 이것은 우리가 부정할 수가 없는 사건이죠. 그리고 그 주님은 때가 찬 시각 분명히 임할 것인데 그때까지 우리는 기다리는 자로 그 하나님의 계획의 신실하심을 믿고 하루하루 승리하며 살아가는 자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죠.
저와 여러분들이 그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세상의 염려와 풍파로 낙심하지 마시고, 또한 내 삶의 문제로 인해 지치거나 소망을 잃지 마시고 다시 오시겠다는 그 약속을 붙잡고 오늘도 기다리고 내일도 기다리고 할렐루야 그 기다림 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을 기대하고 소망하면서 우리의 삶 가운데 영적 전쟁에서 날마다 승리하는 성도님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두 번째는 성령님이요. 오늘 본문에 보니까 바람 같은 소리로 임했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에서 제자들이 처음 경험한 것이 무엇이었냐면 바로 소리였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성령께서 처음에 자신을 드러내신 방식이 이러했다는 것이죠.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였다. 사도행전 2장 2절 말씀 같이 읽어보실까요?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여러분 이 바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신적 소리인 것입니다. 여러분 히브리어로 루아흐 라는 단어인데 바람이라는 의미와 동시에 영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 루아흐라는 단어 늘 바람처럼 우리 곁에 숨 쉬는 새 생명인 것이죠. 여러분 우리 창세기의 말씀을 기억하자면 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다. 루아흐를 불어넣으셨다는 거 생명을 불어넣으셨다는 것이죠. 따라서 성령의 숨결, 이 성령의 숨결은 바로 다름 아닌 하나님의 숨결이라는 것입니다. 죽은 뼈도 살릴 수 있는 생명의 기운이며 절망 속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는 그러한 생기 그것이 성령의. 그래서 여러분 에스겔 선지자가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환상을 보지 않습니까?
그 환상에서도 하나님의 생기가 마른 뼈에 들어가 살리는 은혜를 보게 한 것이죠. 우리 에스겔서 37장 말씀 한번 읽어보실까요? 시작
또 내가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태어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라.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감에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할렐루야 여러분 성령님은 죽은 영을 살리는 하나님의 숨결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우리 안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메마른 심령에 다시금 소생케 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는 거예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사랑의 숨결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들이 생명을 얻고 생명력 있는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 바람 이것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고 새롭게 하고 생명력 있게 한다는 그러한 의미가 있다. 생명을 여러분 꼭 기억하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성령은요. 불의 혀처럼 임했다. 그렇게 말씀하죠. 각 사람에게 불의 혀처럼 임했다.
급하고 강한 바람이 와서 우리를 살렸어요. 그다음에 나타난 것은 불의 혀라는 것이죠. 우리 2장 3절 말씀 읽어보실까요?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여러분 불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잖아요. 출애굽기 3장에 봐도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고 있던 이 모세가 불에 붙어 있는 떨기나무를 보고 깜짝 놀라잖아요. 그리고 그곳을 향해 갑니다. 가서 보니까 불타고 있지만 사라지지 않는 그 모습을 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죠. 이 불은 꺼지지 않는 하나님의 거룩한 불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불은요. 정결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모세는 불에 타고 있는 떨기나무 앞에서 자신의 신을 벗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내 신을 벗으라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리고 그 벗음과 동시에 자기의 부정함을 고백하는 시간들이 있었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불 가운데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된 거죠. 나를 정화시키고 그 불 안에서 하나님의 음성 너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될지에 대한 사명을 받는 자리였다는 거예요.
또한 이 하나님의 불은요 이사야 선지자의 경험과도 맞닿아 있는 것을 우리는 잘 알 수 있습니다. 이사야 6장에 보면 하나님의 보좌를 환상으로 보게 됩니다. 그 앞에서 여러분 이사야는 자신의 입이 부정하다 그렇게 고백하게 되죠. 우리 이사야 6장 6절 7절 같이 한번 읽어보실까요?
그때에 그 수랍 중에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재단에서 집은 바 핀 수술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내 입에 닿았으니 내 악이 제하여졌고 내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이처럼 하나님의 불은요. 입술을 깨끗케 하는 죄를 사하시는 그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정결의 은혜가 담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의 불은 우리의 입술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태우시고 다시 한 번 담대한 담력을 허락하시는 놀라운 불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본문을 자세히 보시면 아시겠지만 성령의 바람은요 온 집 안에 가득했습니다.
이 둘러싸며 이 안에 가득 임했다. 그런데 성령의 불은 어떻게 임했다고요?
각 사람에게 한 사람 한 사람 여기에 있는 각 사람에게 임했다는 것이죠. 따라서 이 불은 각 사람에게 구별하시는 은혜가 있었다. 즉 각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을 통해서 일하시는 은총이 있었다는 것이죠. 그것을 우리는 사명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우리는 모세처럼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저는 자격이 없습니다고 말하고 있지는 않은데요.
또는 이사야처럼 하나님 내가 부정하는 자라 저는 어렵습니다. 제 입술이 너무나 부정해요. 그러면서 주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바라고 소망하는 것은 저와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 성령의 불이 임하는 은총이 있어서 우리 각 사람에게 있는 죄악과 두려움과 아픔들이 다 씻김 받고 치유받고 회복되는 놀라운 은혜가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그리고 그 안에 하나님께서 비교해 주신 사명을 붙잡는 거 이제 네 번째로 가보실까요?
네 번째는요. 성령님은 새로운 언어를 주셨다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성령님은 제자들에게 다른 언어를 줬다.
오늘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2장 4절 말씀 같이 읽어보실까요?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여러분 다른 언어 우리는 이것을 방언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좀 이 부분을 좀 깊이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단지 언어의 바 이것을 위한 성령의 일하심인가라는 것이죠. 언어의 바김이 맞습니다. 이후에 보면 각자 몰려왔던 그 사람들의 각자 자기들의 방언 자기들의 말로 들었기 때문에 맞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말이 바뀌는 사건으로만 우리가 인식할 것이 아니라 이것은 성령을 통해서 세계의 모든 나라와 민족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은혜의 장을 열어놓으신 하나님의 선택이라는 것이죠. 따라서 이것은 언어의 변화로만 인식할 것이 아니라 복음의 지경을 여시는 하나님의 역사였다.
할렐루야 그것으로 인해서 복음이 예루살렘으로 시작해서 땅 끝까지 이르는 그 역사의 물줄기를 타게 된 것이죠. 따라서 여러분 이 복음의 지경이 넓어지는 하나님의 역사가 성령의 임하심 충만함 가운데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이 땅 가운데 막혀져 있던 장벽들을 허시는 작업을 하셨다는 것이죠. 실제 성령께서 바람과 불로 임하신 그날 성령 충만함으로 인해서 모든 장벽이 허물어진 것입니다.
더 이상 언어로 인한 장벽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주님의 마음으로 서로를 돌아보고 서로가 말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죠.
여러분 그렇잖아요. 여러분 원래 성경을 우리가 보시면 하나님께서 흐트신 사건이 있어 창세기 11장에 보면 바벨탑을 썼습니다.
우리가 좀 더 올라가 좀 더 올라 하나님께 억압하는 것 그리고 우리가 이 지면에서 흩어짐을 변하시 여러분 그들이 그렇게 막 쌓아올렸던 이유가 무엇인지 아시죠?
노아의 홍수 사건을 통해서 야 큰 충격 아닌 충격을 듣고 들어 우리가 이렇게 있다가 또 홍수가 오면 안 되지 점점점점 이렇게 역정을 받아 그렇게 인간이 살풍기를 만들었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좋게 보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흩으시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게 무엇이었습니까?
언어를 쓰는 것이 그 사건 속에서 하나 되지 못한 분열 그리고 흩어짐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성령의 임재는 흩어졌던 언어를 하나로 통합시키는 하나님의 역사가 묻어나게 된 것이죠. 따라서 여러분 이 성령의 충만함은 그동안에 막혀 있던 장벽을 허는 하나님의 역사예요.
조금만 더 확대해서 생각해 보실까요? 그러면 언어의 장벽만 해놓으신 걸까요?
그렇지 않다는 거죠. 그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마음의 장벽까지 하셨다는 것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지식인과 지식이 없는 자들에게 부관 자와 가난한 자의 벽을 그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품으셨다는 그렇기 때문에 성령 충만은 결국 예수님을 닮는 삶이라 우리는 이렇게 이야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4절은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보실까요?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하시고
여기 막힌 담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되었다는 그런 의미죠. 예수님은 자신의 육체를 통해서 이 밤을 허무셔서 화평케 하셨고 단절되었던 우리를 하나님과 연결시켜 주었다.
그리고 그 화평은 하나님과의 나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 모든 것들을 허무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그 가운데 임하게 되었다는 것이죠. 그러니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모든 장벽을 허시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오직 한 길을 이 땅 가운데 풀어놓으셨는데 그 성령의 역사가 그 길을 우리가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길이 되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여러분 우리는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있는 막혀져 있는 담을 헐고 하나가 되는 그 길에 함께 나아가야 하는 것이지, 우리 안에 미움 다툼도 있고 시기도 있고 원망도 있고 살아가면서 어찌나 그렇게 우리의 마음 가운데 안 좋은 것들이 많은 지 그러나 성령 충만함을 겪게 되면 미움도 사라지고 시기도 사라지고 다툼도 사라지고 왜요?
성령께서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시는 화평의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때문이라는 것이죠. 여러분 어느 교회 집사님께서 오랫동안 미워하던 이유 때문에 도저히 안 되겠다. 이사 가 버려 이사나 가야지 이런 마음을 먹고 살았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교회에서 기도합니다. 하나님 성령 충만을 주시옵소서 성령 충만을 나에게 드리는 사랑해 주십시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 그런 갈망할 때가 있잖아요. 내가 지치고 힘들 때에도 또 기분이 좋을 때도 하나님 그래도 갈망하는 게 있잖아요. 성령 충만 그래 내가 믿음의 사람인데 성령 충만 받아서 이분이 간절하게 기도한 거예요.
그리고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는데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용서하라고 그래 용서하라 그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깨달은 것이죠. 내가 저 사람을 너무 미워했구나 그래서 회개하고 지금 그분과 함께 교회에 함께 하 즐거움이 있다는 그런 간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성령 충만은 우리의 마음 가운데 잘못된 생각과 마음들을 치료하시고 회복시키시고 결국과 하나님의 은혜로 탈케 하신다는 것이죠. 그러니 여러분 성령 충만을 종교적 감정 이런 것으로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성경을 배워서 아는 지식으로도 알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성령 충만함은 실제 관계의 변화, 삶의 모든 영역의 벽을 허무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으로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 결단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성령님 저에게도 충만함으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굳어져 있는 마음이 성령의 능력으로 부드러운 마음이 되게 하시고, 우리 가운데 있던 벽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허물어지는 은총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닮아서 사는 삶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나를 따라오라 하셨던 제자들에게 원하셨던 것은 나 같은 삶을 살았다오. 그게 곧 복음이라는 거예요.
저와 여러분들이 오늘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내주시겠다 약속하셨던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성령의 역사와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 내 안에 풍성하게 느껴지는 은총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혹시 내 마음 가운데 지금 어떤 벽이 있습니까?
오늘 이 시간 기도하시고 그 벽을 허무는 큰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결론입니다. 성령께서 바람처럼 불어올 때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불 같은 성령이 임할 때 우리는 정결해짐과 동시에 하나님의 사명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할 때 주님의 성품을 가지고 세상 가운데 화평하는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순절에 임했던 성령의 역사. 오늘 우리 성령 강림 주일로 드립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먼저는 성령의 바람이 내게 임하셔서 하나님 내 영이 삽니다. 성령의 바람으로 내가 삽니다. 먼저 내가 살아야 될 거 아니에요 그래야 영향력을 발휘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성령의 불이 임하셔서 나의 더러운 찌꺼기들을 다 제거해 주시고 내 안에 담대한 마음을 주시고 주님의 마음을 품게 하셔서 더불어 성령의 기름이 더 활활 타오르게 하셔서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해 주십시오. 그 감당하는 모습은 주님의 마음, 화평의 마음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장벽이 허물어지고 언어가 하나 되듯이 우리의 마음이 하나 되고 아버지의 마음으로 하나 되는 놀라운 은혜가 나의 삶의 현장 가운데 임하게 하셔서 나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내가 선 자리에 향기롭게 나타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기도가 저와 여러분들의 기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