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외 외 1편
이향지
다리 한쪽을 다치니 신발 한쪽이 남는다
곧추설 때마다 쏟아지듯 아픈
뜬 발을 앉히려고
남는 신을 변기 옆에 갖다 두었다
하루에 몇 차례 뒤꿈치를 살짝 대이는 것만으로도
신발들은 묵묵히 열외를 견딘다
심장보다 발을 높이 들어 올리고
목발 둘과 나란히 드러누워 있으니
창밖의 새는 더 높이 더 가볍게 날고
자동차들은 더 빨리 더 큰 소리로 달린다
내 등 아래서 네 발을 힘껏 구부려
넓적한 등을 빌려주는 침대
부스스한 코끝에 아카시아꽃 향기를 달고
가장 길고 높은 잠을
자고 또 자는 한때
누운 몸 둘레에서 쑥쑥 자라나는 잔디
오토 컨베이어벨트
가로세로 포개진 칸칸마다 암탉들이 고고거린다
철망 속의 미혼모들
태어났다는 말에는 태어나게 하겠다는 무언이 얽혀 있다
교미한 적 없는 암탉들이 낳은 달걀은 생명인가 식자재인가 오토 품품인가
집란 회로에 무정란 한 알씩 꼬박꼬박 떨어뜨려 주는 양계장 암탉은 천치인가 천사인가 AI 노예인가
입으로는 쉴 새 없이 물과 사료를 취하고 산도로는 알을 밀어내는 오토 컨베이어벨트
실수로도 병아리 한 마리 걸어 나오지 않는 무정한 무정란 컨베이어벨트
날개 달린 원금은 철망에 감금시켜 놓고 갓 낳은 이자만 집어 가는 오토 번베이어벨트
달걀은 암탉의 자식뻘인데 허기 채우기에만 급급한 닭대가리들
금욕주의자들의 지구에 메마른 산란이 계속되고 있다
논물에 풀어놓은 숫개구리들의 합창만 귀 따갑게 흰 구름 휘젓는다
―『야생』, 파란시선,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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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지_1942년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났다. 1989년 《월간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괄호 속의 귀뚜라미』 『구절리 바람 소리』 『물이 가는 길과 바람이 가는 길』 『내 눈앞의 전선』
『햇살 통조림』 『야생』, 에세이집 『산아, 산아』 『북한 쪽 백두대간, 지도 위에서 걷는다』를 썼다.
현대시작품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