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호노인종합복지관 장수식당과 노래교실
몸무게가 20 키로나 줄어 있었다.
키 175 몸무게 73키로 적당한 몸무게가 53 키로가 되어 있었다.
정신병원에 입소하기 위해 몸무게를 재면서 나도 놀랐다.
손으로 엉덩이를 만져 보니 살이 잡히지 않을 정도였다.
아내가 죽고 나는 할 줄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라면도 끓여 보지 않았고, 아내가 해준 식사를 꼬박꼬박 받아먹기만 했다.
심지어 세탁기가 어디 있는 줄도 몰랐다.
뒷베란다에 김치 냉장고와 같이 있는 것을 아내가 죽고 나서야 알았다.
마냥 굶었다. 배가 고프면 막걸리를 먹었다. 술이 취해 라면을 끓이다가 냄비를 뒤집어서 화상을 입었다.
일주일이 되지 않아 병원에 입원을 했다.
퇴원했다가 다시 입원을 했을 때는 알콜 중환자실이 었다.
일반 병실로 와서는 정신과 치료 약을 같이 먹었다.
퇴원 했다가 다시 알콜 중환자실로 들어 갔고, 이번에는 중환자실을 나와서 정신병원으로 들어갔다.
세월이 흐르면서 차츰 아내를 잊어가면서 정신적으로 안정이 되어갔다.
정신과 약은 여전히 먹었다.
원룸에 선배가 묵호노인회관 가면 밥을 준다고 해서, 그렇지 않아도 밥 먹는 것이 고욕이었는데 다음 날 즉시 묵호노인회관 장수 식당에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몸이 놀랄만하게 좋아지기 시작했다. 두 달 만에 예전 몸무게로 돌아왔다.
장수 식당의 메뉴는 노인들을 위한 영양분을 골고루 배려하고, 매번 반찬 종류가 바뀌었다.
밥 종류도 흑미 기장 레탈콩 검은콩 보리 등 일반 가정에서는 불가능 할 정도의 메뉴였다.
장수식당이 내 몸을 회복시켰다면
노래 교실은 나의 정신을 건강하게 만들었다.
우울증 약도 한 달만에 끊었다.
30 년 만에 부르는 노래가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기를 쓰고 따라 불렀다.
일주일에 두 번하는 노래 교실은 나에게는 천국이었다.
노래교실 선생님은 지극정성으로 노인들을 대했고 무척이나 명랑하고 성실하고 밝은 분이었다.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무작정 나가서 아무 노래나 불렀는데 이제는 습관이 되어서 매번 나가게 되었다.
묵호노인종합복지관 장수식당과 노래교실은 나의 정신과 육체를 건강하게 해 주었고, 앞으로의 내 삶의 커다란 에너지가 되었다.
‘장수식당’ 이라는 이름대로 혹시 장수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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