城狐社鼠(성호사서)
城 성 성 狐 여우 호 社 토지의신 사 鼠 쥐 서
성벽에 사는 여우와 사당에 사는 쥐
중국 속담에 "한 사람이 득도하면 그가 기르던 개와 닭도 하늘에 오른다."라는 재미있는 말이 있다.
한나라 왕충 (王充)이 쓴 《논형》에 나오는 이 계견승천(鷄犬升天)은 한 사람이 권세를 얻으면, 그와 관련된 모든 사람이 덕을 보고 권세를 누린다는 말이다.
가령 한 집안에서 누군가가 출세하면 집안사람 모두가 그 덕을 보고, 지지하던 정치인이 권력을 얻으면 그 덕으로 한자리 넘볼 수도 있다.
이것은 일견 당연해 보이지만, 문제는 닭과 개가 승천한다는 데 있다.
근본적으로 자질이 부족하고 능력이 열등한 사람이 연줄 하나에 의지해 권력이나 재물을 누리려 들면, 왕왕 문제가 발생한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권력이 부패하고 재물이 낭비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춘추시대 제나라 경공(景公)이 재상 안자(晏子)에게 물었다.
"한 나라를 다스릴 때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인가?"
안자가 마치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가장 두려운 것은 사당 안에 사는 쥐들입니다.
여러 사람이 공을 들여 좋은 목재와 화려한 도료로 사당 한 채를 잘 지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당에 쥐들이 숨어들었습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연기를 피워 잡자니 잘못하면 불이 나 사당을 태울 위험이 있습니다.
물을 써서 잡자니 칠한 도료가 다 벗겨질 수 있습니다.
결국 내버려 두면 쥐들은 대낮에도 설치고 다니며 온갖 난리를 칩니다.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임금 주변의 간신배들이 사당의 쥐와 같습니다.
그들은 임금의 눈과 귀를 가로막고 백성을 능멸합니다.
그들을 잡아 족치지 않으면 결국 나라를 훼손할 테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늘 임금 뒤에 숨어 비호를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나라를 다스릴 때 가장 두려운 것은 이 사당의 쥐들입니다."
동진 시대 대장군 왕돈(王敦)은 황제의 최측근 유외(劉隗)의 전횡에 불만이 많았다.
그는 부하 사곤(謝鯤)과 상의했다.
"유외는 온갖 악행을 일삼아 나라에 위해를 끼치는 인물이니, 마땅히 제거해야 할 터인데 무슨 방도가 없겠소?"
사곤이 골똘히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불가능합니다.
유외는 분명 처치해야 할 간신배이지만, 그는 성벽에 살고 있는 여우와 같은 존재입니다.
여우를 잡자고 성벽을 허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유외를 잡자면 그를 보호하는 성벽인 황제를 무너뜨려야 할 터인데,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이 두 가지 이야기에서 비롯된 成語가 '성벽에 사는 여우와 사당에 사는 쥐' 라는 뜻의 '성호사서'다.
이는 권력의 비호를 받으며 온갖 악행을 일삼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성벽이 높고 두터울수록 깃드는 여우가 많아지듯, 사당이 화려하고 재물이 많을수록 숨어드는 쥐가 많아지듯 높은 권력 주변에는 권력의 비호를 받으며 자신의 사리만 챙기고 조직에 위해를 끼치는 사람이 많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나라를 경영하고 조직을 관리할 때는 의당 깊이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경계해야 한다.
쥐를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중국에 전해오는 옛날이야기가 하나 있다.
<중산국 고양이>
조나라에 쥐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한 집이 있었다.
그 집주인은 중산국으로 가서 고양이 한 마리를 사 왔다.
중산국 고양이는 쥐를 잘 잡기로 천하에 이름이 났기 때문이다.
과연 이 고양이는 명성 그대로 보이는 족족 쥐를 잡았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이 고양이가 쥐 말고, 닭도 무척이나 좋아했다.
고양이를 들여온 지 한 달이 지나자 쥐가 사라진 동시에, 집에서 기르던 닭들도 모두 자취를 감추었다.
그 집 아들이 왜 고양이를 내쫓지 않느냐고 항의하자, 집주인이 말했다.
"우리 집 문제는 쥐가 많다는 것이지, 닭이 없는 게 아니다.
쥐가 들끓어 양식을 먹어 치우고 옷을 못 쓰게 만들고, 담에 구멍을 내고 가구를 다 물어뜯어 식구들이 굶주리고 추위에 떤다면, 닭이 없는 것보다 훨씬 고통스러울 것이다.
닭이 없어 닭고기를 먹지 못하는 것이 굶주리고 추위에 떠는 것보다 훨씬 낫다.
그러니 어찌 고양이를 내쫓을 수 있겠느냐?"
어떤 난관을 돌파할 때는 어느 정도 희생과 대가를 각오해야 한다.
눈앞에 보이는 희생이 무서워 우물쭈물하다가는 쥐들 때문에 살림이 다 결딴날 수도 있다.
이것은 ‘음식을 먹다가 목이 막혀 죽을 뻔했다고, 아예 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뜻의 인열폐식 (因噎廢食)처럼 어리석은 모습이다.
여러분이 애써 쌓아 올린 성벽과 사당에 살고 있는 여우와 쥐는 없는가?
이 여우와 쥐를 내쫓기 위해 성벽을 일부 허물거나 사당의 멋진 도료를 벗겨내야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