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홑벌이가정의 만0~2세 자녀에 대한 어린이집 보육료 지원을 하루 6시간으로 제한하는 ‘맞춤형 보육정책’을 세워 2016년 7월 1일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4월 25일 정부의 시행방향에 대한 자료 배포를 시작으로 정책 시행을 위한 과정을 밟고 있는데, 정부가 제안하는 맞춤형 보육정책에 대해 공동육아 회원들은 많은 우려를 표명한다.
(사)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은 맞춤형 보육정책의 내용 파악과 더불어 각 조합의 현황을 살피면서 대응방향을 논의해왔다. 5월 23일 이사회-운영위원회 연석회의는 국가 책임 보육, 인권보육, 보편적 보육, 젠더적 관점이라는 공동육아의 기본 입장에서 볼 때, 맞춤형 보육정책은 국가 보육 정책의 올바른 방향을 저해하는 요소가 많으므로 여러 단체들과 연대하여 이 정책을 폐기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결정을 내렸다.
1. 맞춤형 보육은 국가 책임 보육의 방향을 후퇴시키는 정책이다.
18세까지는 가정만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아이를 책임지고 키울 수 있는 사회 환경을 조성해야 하며, 복지란 재정 상황이 아니라 수요자의 필요와 욕구가 어떠한가에 따라 방향을 정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미래 세대를 키우는 육아와 보육정책에 재정을 우선적으로 배정해 추진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누리과정 지원금도, 맞춤형 보육정책도 국가 재정의 어려움을 가정에 떠넘기는 정책이라는 우려가 크다. 이미 한국사회는 보편적 복지를 실현할 수 있는 수준에 와 있다. 소득 수준이나 취업 여부에 따른 선별적 복지 단계를 넘어 보편적 복지로 모든 아이와 부모가 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2. 맞춤형 보육은 부모의 존재조건에 따라 차별하는 선별 정책이다.
맞춤형 보육정책은 영아들은 가정에서 안정적으로 애착을 형성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공동육아도 이에 동의한다. 그런데 이 정책은 맞벌이와 홑벌이라는 부모 조건으로 구분하기 때문에 모든 아이들이 보편적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맞벌이든 홑벌이든 가정에서 애착을 형성할 수 있는 사회구조를 만들어가는 것이 병행되어야만 해결방향을 잡을 수 있다.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 맞춤형 보육이 실행된다면 맞벌이 부모에게는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다는 죄책감을, 홑벌이 부모에게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오래 맡기면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는 죄책감을 갖게 할 것이다.
2015년 맞춤형 보육 시범사업에서도 전체의 80%가 종일반을 선택했고 그 중에서 임신 등의 사유로 전업주부들도 종일반을 이용하였다는 결과가 있다. 이렇게 대다수의 사람들이 종일반을 선택하는 상황에서는 굳이 종일반과 맞춤반을 구별할 근거가 없다. 현재도 홑벌이건 맞벌이건 각 가정의 사정에 따라서 선택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취업모와 미취업모를 기준으로 지원금을 차등화하는 것은 무의미한 차별이며, 아이들을 돈을 기준으로 취급하는 발상일 뿐이다.
더 이상 부모들을 분리시켜 대립하게 해서는 안 된다. 취업 여부로 부모를 구분하고 그들이 서로 이해관계를 따지게 만드는 대립과 불신의 분위기는 사회를 분열시키고 만다. 서로 도우며 양육할 수 있는 보편적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 정부는 장시간 노동시간의 축소, 부모 모두가 누리는 육아휴직제나 유급 육아휴직제도의 확대, 보편적 아동수당 도입 등을 통해 직업생활의 안정성을 높이고 육아에 관한 불이익을 겪지 않고 양육할 수 있는 가족친화적 제도와 정책을 우선 추진하여야 한다.
3. 맞춤형 보육은 보육정책 기조의 개악이다.
몇 년 동안 복지부는 표준보육비용과 보육시간, 교사의 근무시간, 교사 대 아동 비율 등 보육의 질과 관련된 내용을 검토해왔고, 보육계에서도 꾸준히 대안을 제시해왔다. 모두가 합의한 보육정책의 방향은 보육의 질을 높여 가정과 같은 양육 환경을 만들고, 가정에서 길러주기 어려운 사회성과 놀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보편적 보육의 틀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맞춤형 보육은 보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방향이 아니라 현재의 문제 상황을 그대로 두면서 보육비용만을 줄이는 정책일 뿐이다. 정부는 표준보육비용을 현실에 맞게 인상하고, 안정적인 보육시간을 보장하면서 교사들의 근무시간을 줄이고, 교사 대 아동 비율을 낮추도록 정책 개선의 방향을 돌려야 한다.
4. 맞춤형 보육은 ‘종일반’ 아이들을 소외시킬 것이다.
맞춤형 보육의 취지 중 하나는 맞벌이 부모가 안심하고 종일 아이를 맡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있다고 하지만 맞춤형 보육으로는 현재의 상황을 개선하기 어렵다.
정부는 종일반과 맞춤반을 구분해서 운영하면 종일반 아이들을 안정적으로 보육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대형어린이집은 몰라도 가정어린이집을 비롯한 중소형 어린이집은 맞춤반을 별도로 구성하기 어려우므로 뒤에 남는 아이들의 상황을 개선하기는 어렵다.
이른 하원이 공식화되면 종일반 아이들은 자신들만 남게 될 때 소외감을 더 느끼고 부모의 갈등과 괴로움은 커져, 본래의 정책이 전제했던 영아들의 애착문제가 구조적으로 악화될 수 있다. 또한 어린이집들이 아이들을 일찍 하원시키는 관행은 맞춤형 보육정책의 종일반일 경우라도 그다지 개선되리라고 보지 않는다.
맞춤형 보육을 실시할 경우 중소규모 어린이집은 보육료 수입이 줄어 재정이 악화될 것이다. 운영비 부족을 이유로 제일 먼저 인건비를 줄이려고 할 것이고, 맞춤반 아이들이 하원한 후 반일제 교사를 채용해 남은 아이들을 한꺼번에 돌보는 방식으로 전환할 것이다. 아이들에게 안정적인 보육환경을 제공하지 못하게 되어 결국 보육의 질을 떨어뜨리는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맞춤형 보육이 실시되면, 종일반과 맞춤반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못한 어린이집의 교사들은 6시간, 7시간, 종일반 등 세 번의 하원을 반복하며 살게 된다. 세 번의 하원과 등하원시간을 기록하는 보육 행정 작업, 다음날의 교육계획 준비 등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보육 공백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고, 실질적으로 보육 업무는 늘어날 것이다. 그간 추진해왔던 교사 근무시간 및 업무 축소와 교사 대 아동비율 낮추기 등 전반적인 보육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무산되어 버린다.
6. 맞춤형 보육정책은 ‘돈’으로 여성들의 삶을 왜곡시킨다.
맞춤형 보육은 여성들을 취업모와 미취업모로 나눈다. 그러나 여성을 비롯한 대다수 사람들의 취업상태는 불안정하며 취업과 비취업의 경계도 명확하지 않다. 또한 지역사회에서의 자원 활동, 어린이집에서의 부모참여 등 사회공헌활동을 하거나 경력단절을 해소하기 위해 취업 준비를 하거나 가정폭력 피해여성의 지원 등과 같이 다양한 돌봄의 필요상황이 발생한다. 이런 경우들은 모두 ‘증빙’이 어렵다. 민감한 개인 사정을 모두 증빙해야만 인정받는다면 다양한 피해 사례가 나올 수밖에 없다.
또한 맞춤형 보육정책은 육아나 가사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대한 고려나 휴식의 필요성 등을 인정하지 않는 발상이다. 돈을 버느냐 벌지 않느냐라는 기준으로 사회적 역할 정도를 평가하는 비젠더적 고정관념을 확산하는 정책이다.
[맞춤형 보육에 대한 공동육아의 입장]
정부는 보육정책 목표를 종일반 아이들과 부모의 불안과 소외감을 해소하고, 영아들의 가정양육을 확산하고, 부모들이 자신의 존재조건에 맞게 ‘맞춤’해서 보육할 수 있도록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맞춤형 보육정책은 이를 실현시키기보다 기존 현실을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뻔히 실패가 예상되는 맞춤형 보육정책을 폐기하는 정책적 결단을 해야 한다. 나아가 정부는 보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제반 정책에 집중하여 조속한 실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정부에 요구한다.
우리는 정부의 보편적 국가 책임 보육 정책 후퇴, 맞벌이 가정과 홑벌이 가정으로 나누어 차별하는 정책을 반대한다. 정부는 보육의 질을 악화시키는 맞춤형 보육정책을 폐기하라.
정부는 누구에게나 차별 없는 국가 책임 보육, 보육교사의 노동조건 개선, 교사 대 아동비율 감소, 표준보육비용의 현실화를 추진하라.
[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회원들에게 요청합니다 ]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은 맞춤형 보육정책의 폐기에 동의하는 보육/시민사회단체들과 연대하여 이 정책의 폐기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만약 7월부터 맞춤형 보육이 실행될 경우, 회원 어린이집들은 우리의 방향에 걸맞게 충분한 논의를 거쳐 서로를 살리는 합의와 활동을 해나갈 것을 제안합니다.
공동육아는 20여 년의 경험 속에서 협동조합 운영과 어린이집 부모 참여를 활성화하고, 어린이집을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이 과정에서 공동육아 부모들의 기여가 매우 컸음을 확인했습니다. 어린이집 내에서도 미취업 부모들의 적극적인 부모참여활동 덕에 취업부모들은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 가정이 어떤 조건을 가지고 있던 각자의 처지에서 최선을 다해 서로 돕고 살아왔습니다.
공동육아 사람들은 정부 보육정책의 공백이나 모순이 있을 때에도 당면하는 문제를 함께 지혜롭게 풀었습니다. 각 가정의 경제력이나 연령별 격차를 조절하기 위한 보육료제도(차등보육료나 균등보육료)나 품앗이기금 등 각종 기부금 제도를 만들어 경제적 조건이나 장애아 보육을 해결했습니다. 맨 처음 정부의 선택적 지원금(영아반 지원금과 교사 처우개선비 등)이 생겼을 때에도 그 혜택을 고루 나누기 위한 방안을 찾았던 경험도 있습니다.
이렇듯 공동육아는 육아의 사회적 책임과 공동체성에 입각하여 조합과 어린이집을 운영해왔습니다. 공동육아 정신에 따라 맞춤형 보육정책 시행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재정적 어려움을 전체가 함께 책임질 수 있는 상황과 환경을 만드는 데 지혜를 모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