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주체와 객체가 서로 없이는 있을 수 없다면 그것들은 어떤 방식으로 서로에게 속하는 것일까요? 그것들이 서로 분리될 수 없다면 그것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지만 그 연결하는 것 안에서 주체와 객체는 분리되어 있고, 주체는 자신이 가리키는 객체를 향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연결하는 것을 아우름이라고 부릅니다.1 아우름은 주체와 객체로 이루어진 전체이고, 그것 자체는 주체도 객체도 아닙니다.
주관-객관-분열[주체와 객체 간의 분열]은 우리 의식의 근본 구조입니다. 이 구조 안에서 비로소 뚜렷해지는 것은 아우름의 무한한 내용입니다. 모든 존재자는 주관-객관-분열을 아우르는 것 안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우름 자체를 대상으로 생각할 수 없습니다.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아우름이 객관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우름을 생각하려면 우리가 대상을 가리키면서 마주할 때 토대로 삼는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객관도 주관도 아닌 다른 토대를 찾아 나섭니다.
그런 토대에 이르기 위해 우리가 수행하는 일은 근본에 대한 철학적 작업이라고 불립니다. 이런 작업은 과학적 연구를 위한 방법이 아닙니다. 작업을 수행할 때 우리 내부에서는 어떤 변화가 일어납니다. 작업이 개념의 언어로 전해준 것은 실마리에 불과합니다. 이 실마리는 어떤 존재자를 알기 위해 사용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실마리를 통해서 근본적 존재가 드러나는 방식들이 우리에게 뚜렷해집니다/
가령 다음과 같이 뚜렷해집니다. 근본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객관이나 주관이 아니라, 즉 대상이나 자아가 아니라 아우름입니다. 아우름은 주관과 객관으로 분열되며 스스로를 드러냅니다. 이때 그 분열 가운데 나타나는 것은 모두 현상입니다. 우리에 대해 있는 것은 현상입니다. 현상은 아우름이 주관-객관-분열을 통해서 뚜렷해진 것입니다. 우리가 감각하는 것은 감성적으로 실재하는 방식으로 공간과 시간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생각될 수 있는 형태로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감각하거나 생각하는 것은 그 자체로 있는 것이 아니라 주관-객관-분열 가운데 자아에 대해 있습니다.
그 대답은 이렇습니다. 세계는 가상이 아니라 실재하는 것이지만 이것은 현상입니다.3 현상으로서의 세계는 아우름이라는 실체가 지탱하고 있습니다. 아우름 자체는 세계 어디에도 실재하지 않습니다. 즉 탐구할 수 있는 대상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