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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 Special Featu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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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몸으로 찍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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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남아> 이정범 감독 인터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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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15 / 김혜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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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범 감독은 참 특이한 인간이다. 설경구, 조한선, 취재차 만난 건달, 심지어 제작사 싸이더스FHN 차승재 공동대표의 성대모사까지 하는 그는, <열혈남아>로 충무로 데뷔전을 치른다. 올해의 신인 감독이라 해도 좋을 섬세한 연출력 뒤엔 뜨거운 열정이 펄펄 끓고 있다.
애초엔 정말 왕가위의 <열혈남아> 리메이크를 준비했던 걸로 알고 있다. 하다가 홍콩 쪽과 돈 문제로 복잡해져 포기했다. 어쨌건 <열혈남아>와 같은 느낌의 영화를 하고 싶었던 터라 그런 세계 쪽 사람들을 취재하자 생각했다. 취재차 만난 전라도 영광 출신의 한 건달이 있었다. 그 친구가 어느 날 1시간을 늦게 왔다. “왜 늦게 왔냐?”고 물었더니 “오늘 스승의 날이어서 검도 관장님한테 조촐하게 파티 해드리고 왔어요”라는 거다. 굉장히 신선했다. 그 친구에 대한 자극으로 시나리오를 썼고 건달이라는 직업에 대해 미화는 하지 말자, 하지만 건달도 사람이라고 관객들이 인정하는 순간에 영화가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하루 동안 일어나는 두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안제이 바이다의 <재와 다이아몬드>를 떠올렸고 건달 두 남자가 어디엔가 내려가 일주일 동안 겪는 일을 다뤄보자 마음먹었다.
<파이란>, <소나티네>, 왕가위 <열혈남아> 등의 흔적이 느껴지지만, 그것이 영화에 해를 끼치는 수준은 아니다. "오빠는 머리로 영화를 찍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 어느 후배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난 괜히 좋아서 ”그래, 가슴으로 찍지?“ 그랬더니, ”아니. 몸으로 찍어“라고 했다.(웃음) 맞는 말인 것 같다. 난 한번 꽂히면 그 영화를 죽을 듯이 파는 스타일이다. 영화를 좋아하기 시작했을 때 꽂혀서 본 영화들이 있고, 그것들이 내게 체화돼 있었던 것 같다. <파이란>을 보고 나서 집에 그냥 못 들어가고 소주 두 병을 마셨던 기억이 있다. 그런 기억들이 내 몸에 배어 있으니까, 내 영화에도 배어 있겠지. 오히려 나는 좋다. 내 영화를 보고 누군가 <파이란> <오아시스> <소나티네> 같은 영화들을 떠올릴 수 있다면 내가 더 영광이다. 어떻게 하면 건달들이 어울리지 않는 공간에서 어울리지 않는 행동들을 하게 할 수 있을까 고민했고, 이야기의 절정과 카타르시스를 위해서 어머니라는 캐릭터를 가져오게 됐다.
그 어머니라는 존재를 부각시키면서 영화는 기존의 건달영화들과 차별점을 만든다. 감독이 생각했던 어머니의 비중은 어느 정도였나? 이 영화의 중심은 누가 뭐래도 재문이다. 엔딩 곡도 심수봉 노래를 쓰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그랬을 경우 영화가 더 나문희 선생님 쪽으로 가게 됐을 거라 반대했다. 영화는 재문이를 중심으로 시작해 재문이로 마무리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의 엔딩이 나오게 된 거다. 영화의 60%는 재문에게, 40%는 어머니에게 있다고 할까.
시나리오에서는 도입부터 재문의 마지막 상황을 알렸는데, 영화에선 삭제됐다. 처음부터 이야기를 그렇게 열고 가는 것이 관객을 위한 것이냐, 나를 위한 것이냐 다시 판단해야 했다. 어차피 사람들은 재문이의 결말을 예측할 거다. 차라리 계속 비극의 뉘앙스를 가져가며 압박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점심이 혼자 앉아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라는 심수봉의 ‘백만송이 장미’를 부르는 장면만 봐도 이 영화의 엔딩이 보이잖나. 가장 싫어하는 드라마투르기가 오프닝은 무조건 세게! 라는 형식인데, 일단 민재의 죽음을 먼저 본다면 재문이 왜 복수를 하려 하는지, 심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 오프닝을 바꿨다.
조한선이 연기하는 치국의 전라도 사투리에 독특한 느낌이 있다. 느리고 순박한 느낌인데, 그런 사투리가 영화 속 정서를 좌우한다. 한선이의 경우 중요한 설정이었다. 경구 형에겐 서울 말투를 쓰라고 했는데 나중에 본인이 스스로 사투리를 쓰고 싶다고 했고, “연설허네” 같은 대사는 본인이 알아서 사투리를 쓴 것이다. 전라도 사투리 건달을 그린 데에는 이유가 있다. 부산 조폭은 서울에 올라오지 않는다. 주변에서 그들이 뽑아 먹을 게 너무 많아서 안 올라와도 충분히 먹고 산다. 하지만 전라도는 돌아보면 벌판밖에 없다. 서울에 안 올라올 수가 없다. 그 정서가 굉장히 강하다. 전라도 건달 친구가 “부산 아들은 지들끼리 잘 놀고 먹어요. 근데 보시오. 우리는 벌판밖에 없으요" 라는 거다. 그게 너무 와 닿았다.
설경구가 연기하는 재문은 스스로 뿌리 없는 조폭, 나가리라고 한다. 그래서 쉽게 복수를 결행한다. 계보 없이 혼자 노는 건달 캐릭터는 지금까지의 한국 조폭 캐릭터들 중에서도 매우 독특하다. 민재나 재문이나 서울 애들이다. <뚝방전설>에 나오는 애들처럼 서울에서 놀다 조직에 들어간 건데, 만약 정말 서울 토박이 건달로 시작했다면 민재나 재문이가 조직에 섞이기가 그리 쉬울 것 같지 않았다. 재문이가 원래 가진 ‘똘끼’ 때문에 더 그렇고. 왕가위의 <열혈남아>에서 가져온 정서는 그런 거다. 장학우가 보여줬던 ‘똘끼’. 그런 재문을 보듬어줬던 것은 유덕화 같은 민재였는데, 민재가 죽고 재문이 정말 조직에서 장학우 같은 꼴통 취급을 받게 되는 애였으면 좋겠다고 설정했다.

그렇다면 애초 <열혈남아> 리메이크의 의도는 무엇이었나? 지금의 설정에서는 재문이가 꼬였다는 느낌에서 장학우의 느낌을 살리고 싶었던 거고, 처음 버전에서는 원래 형 유덕화와 동생 장학우의 위치를 바꿨었다. 형이 약간 ‘또라이’고, 동생이 형을 챙기는 설정이었다.
그 첫 설정을 버리고 싶지 않아 골통 재문과 순진한 치국 같은 캐릭터를 만든 건가? 그런 것도 있고, 사실은 치국이가 변하고 물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치국이는 재문이의 어린, 또 다른 모습이다. 치국이가 재문이 때문에 아파하고, 혼자 괴로워하는 모습은 재문이 누군가를 처음 찔렀을 때와 같은 모습일 거라 생각했다. 위에서 오더가 떨어지고 “난 너네 엄마도 찌를 수 있어”라는, 재문의 본심 아닌 말까지 들은 뒤엔 상처를 받고 행동을 한 거다. 후반부 치국이 혼자 울부짖는 모습을 잡았던 건, 치국이가 조직을 떠나든 안 떠나든 그 이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갖게 됐다는 표현을 하고 싶어서다.
그런 감정 전환의 타이밍이 좋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재문의 똘기로 인해 순식간에 엎어지는 태권도장 장면, 그 반대인 재문과 아이들이 투닥이다 들판에서 노는 장면, 또 시장통에서 점심의 뒤를 쫓으며 느끼는 서스펜스에서 단숨에 일상으로 돌아올 때 그 순간을 잡아내는 타이밍 감각이 노련하다. 그런 타이밍을 더 쓰지 못해 아쉽다. 근데 드라마투르기상에서 너무 날아갈 것 같아 누르고 안 쓴 부분도 많다. 경구 형은 좀 더 가볍게 가고 끝에서 돌변하는 걸 원했는데, 난 기승전결에 있어 나사를 조여야 할 부분이 있다 싶어 지금의 컷들을 선택했다. 경구 형이 많이 아쉬워 하지만 나사를 조이는 타이밍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비오는 밤, 점심이 재문의 정체를 알아차리는 결정적 장면은 굉장한 서스펜스를 담고 있다. 누아르를 배반하는 분위기에서 갑작스레 돌출한, 너무도 누아르다운 장면이라 깜작 놀랐다. 그 장면의 연출이 너무나 힘들었다. 현장에서 어떤 스탭이라도 자기 의견을 말해주길 바랐고 그걸 수용하고 싶었다. 근데 그날 그 신에서 스탭들의 의견이 봇물 터지듯 나왔다. 아니, 점심이 칼 든 재문을 발견했는데 소리를 안 지른다는 게 말이 되느냐, 칼을 다 보여줄까 반만 보여줄까 등등. 지금 생각해보면 재밌는데, 그때는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경구 형님은 “감독 요구가 너무 힘들어. 너무 헷갈려. 모르겠어.” 이러는 거다. 나도 모르겠는 거다. 과연 점심이 자기 자식을 죽이려는 재문의 모습을 봤을 때 어떻게 할 것이냐. 그런데 나문희 선생님이 오셔서 싹 다 정리가 됐다. 선생님이 “나는 못 질러. 지르면 그 놈이 들어가 대식이 찌르라고?” 이러셨다. 하긴 재문이 절대 그 순간에 도망갈 캐릭터는 아니니까.
재문이 방안 대식과 점심의 대화를 듣고 있는 것도 그렇지만 숨은 재문의 눈을 공포스러울 만큼 클로즈업 한 컷이 나올 줄은 몰랐다. 컨벤션 한 컷들을 예상치 못한 순간에 사용한다. 그것 말고도 연출하고 싶었던 것들과 조금 거리가 있는 컷들이 군데군데 있다. 내겐 의견을 많이 수렴하는 과정에서 나온 일종의 오류였다고 할까. 나쁜 감독이 되고 싶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때는 내게 그리 도움이 된 것 같지는 않다. 서스펜스를 느꼈다면 심신을 부딪히면서 가장 힘들게 찍어 그런 느낌을 받는 것 같다. 물론 촬영과 조명은 굉장히 공을 들였다. 분위기가 전환되는 시점이니까.
캐릭터 자체도 복합적인 성격이고, 상황도 복합적인 아이러니를 띠고 있다.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도 그래서 복잡하다. 단순함을 파괴하려는 욕망이 굉장히 강해 보인다. 사람이 항상 한 가지 모습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고 항상 진실만을 얘기하는 것도 아니다. 최대한 그런 사람 본연의 모습에 가깝게 그려내자는 생각이 있었다. 또 생각해보면 살아가면서 정말 화를 내야 할 순간에 제대로 화를 내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 순간엔 하하하 웃지만 돌아서 가다보면 개새끼! 하는 경우가 많다.(웃음) 그런 기분을 우리보다 서슴없이 팍팍 터뜨리는 사람들이 있다. “아유, 괜찮아유, 먹어유.” 이러다가 “지금 뭐라고 했시유?”라면서 눈이 확 돌변하는 애들이 있다.(웃음) 어쩌면 그것이 굉장히 솔직한 모습이기도 한 거다. 그런 모습을 재문에게서 많이 드러내고 싶었다. 상황의 아이러니는 다분히 의도했다. 처음에 비밀을 간직한 건 경구 형이었는데, 나중에 그 비밀이 나문희 선생님 쪽으로 넘어가고, 다시 또 경구 형에게로 가게 된다. 그 전이의 과정이 재미있어 의도하긴 했다.
대부분 건달영화들의 배경이 네온사인 가득한 도심이거나 음습한 뒷골목인데 반해 <열혈남아>는 너른 허허벌판, 겨울 평야, 질퍽하고 스산한 벌을 무대로 삼는다. 보통 누아르라고 하면 어둡고 콘트라스트가 강하다. 누아르 자체가 검은색이란 의미이기도 하니까. '화이트 누아르‘가 좀 말이 안 되긴 하지만 그런 느낌을 가져가고 싶었다. 그래서 전혀 살인이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초등학교 교실에서 살인이 일어나고 뒷마당에서 칼부림이 일어나는 느낌을 살리려 했다. 그리고 백주 대낮에 영화의 엔딩을 정한 것도 어두운 밤의 엔딩은 많이 봐왔기 때문에 피하고 싶었다. 로케이션은 벌교뿐 아니라 강경, 전주, 군산에서 많이 찍었다. 점심의 국밥집은 강경에서 찾았고 사람이 나가고 버려진 집을 세팅했다. 그리고 그 동네엔 높은 건물이 없었다. 슬레이트 지붕의 오래된 느낌도 좋았다. 그리고 정경을 담았을 때 가게 너머로 하늘이 보인다는 것도 너무 좋았다.
원래 영화의 배경이 여름이었는데, 촬영은 결국 겨울에 했다. 그래서 꽃무늬 셔츠가 원래 반팔이었다가 겨울로 바뀌면서 긴팔이 돼버렸다. 사실은 영화가 더 끈적끈적해야 하기에 여름이어야 맞다. 경구 형도 원래 여름의 느낌이 좋아 출연하겠다고 한 거였는데 그분의 일정 때문에 기다리다 영화가 겨울에 들어가 어쩔 수 없었다.(웃음) 원래 재문이 다방처녀 미령이를 만나는 것도 방안에서 야한 비디오를 보면서 뒹굴다 만나는 게 아니라 옥상에서 선탠을 하다 만나는 거였다. 둘이 어디서 구했는지 옥상에 파라솔을 펼쳐 놓고 누워 있다 킁킁 거리면서 “어, 어디서 고추 말리나 보다”라는 대사도 하고. 그런 부분이 참 아쉽다. 겨울의 스산함도 나름의 장점이 있지만 영화의 맥락을 관통하는 것은 어떤 끈적끈적한, 카뮈의 <이방인>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영화 속에 등장하는 두 번의 지진이 인상적이다. 첫 번째는 국밥집에서 밥을 먹는 재문이 지나가는 차 소리에 깜짝 놀란 것이고, 두 번째는 그가 혼자만 느끼는 지진인데. 시나리오에는 있지만 영화에선 삭제됐는데, 라디오에서 오늘 0.8리히터 이하의 지진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감지할 수 없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걸 영화에서 지운 이유는, 그게 꼭 지진이 아니더라도 어쩌면 재문이 느끼는 현기증이었다고 하더라도, 그가 마지막에 혼자만이 느끼는 것이라는 사실이 중요한 거지 그 실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앞서 몸으로 찍는다는 얘기를 했지만 대사가 굉장히 날것, 생짜의 느낌이다. 발로 뛴 취재의 힘인가? 대사를 쓰다보면, 정서를 전달하지 못하거나 인물 캐릭터를 설명하지 못하는 대사는 내가 못 견딘다. 취재는 그래서 꼭 필요한 것 같다. 경구 형이 나문희 선생님과 벌에 갔을 때 나오는 대사는 실제 헌팅 가서 아주머니들에게 들은 것이고, 기억력이 좋지 않으니까 역시 몸으로 흉내 내며 따라하다 밤에 숙소에 와서 막 적어놓았다.(웃음) “벌 끼고 사는 동네에선 남자들이 상전이야”라는 대사도 그렇게 얻었다. 경구 형이 농담 따먹는 대사들은 내가 친구들과 놀면서 하는 얘기랑 비슷하다.(웃음)
영화 속에서 재문은 에로영화도 보고 <미래소년 코난>도 본다. 감독의 나이를 짐작하게 하면서 재문의 복합적인 캐릭터도 한눈에 보인다. <미래소년 코난>은 내가 너무 좋아해서 넣었다. 그 시절 추억에 대한 오마주다. 그런데 확실히 이런 건 있다. 문득 깨닫는 거지. ‘뭐야, 재문이 이 병신이 에로영화에다 <미래소년 코난>까지 빌려봤네?’라고 생각했을 때 이 인물에게 느껴지는 골 때리는 결이 있잖나.(웃음)
설경구나 나문희 같은 대선배들은 소위 '센' 사람들이다. 그들의 연기를 마음껏 끌어내기엔 어려운 부분도 있었을 듯한데. 경구 형님께는 최대한 솔직하게 다가가려고 했다. 경구 형님은 복합적인 사람이고 굉장히 똑똑한 사람이다. 웬만한 연출자도 당하기 힘들다. 원래 연극 연출을 전공했었고, 심지어는 경구 형이 논문으로 제출했던 연극 연출 리포트가 지금도 한양대학교 후배들한텐 교재로 쓰이고 있다. 최근 상업적인 이유 때문에 경구 형이 소진된 부분이 있었는데, 내 똘기와 형님의 똘기가 만나 재밌게 작업한 것 같다. 나문희 선생님은 현장에 오셨을 때 캐릭터 분석을 완전히 끝내놓으신 상태셨다. 다만 드라마에서 감정을 내지르는 연기를 많이 하셨기 때문에 조금만 대사를 드려도 벌써 눈물이 글썽하셨다. 계속 "우시면 안 돼요, 참으세요"라고 말씀드렸고 그것 때문에 힘드셨을 거다. 경구 형이 '영화는 사람을 알아가는 작업'이라고 인터뷰했던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사실 무대인사나 촬영 때도 떨린 적은 없다. 오히려 가장 떨렸을 때는 경구 형이 출연하겠다고 알려왔을 때였다. ‘어, 뭐야…. 나 정말 데뷔하는 거야?’ 이런 생각하면서 정말 떨렸다.(웃음)
기대하지 않았던 조한선의 치국은 예상을 뛰어넘게 효과적이었다. 재문이가 계속 엔진을 과열해 달려가고 있으면 치국이는 계속 찬물을 끼얹는 캐릭터가 되게 하고 싶었다. 한선이의 경우는 머리로 뭔가 이 친구에게서 뽑아먹으려 하면 절대 안 되는 친구다. 가능성이 많았는데 다들 외모적인 것만 뽑아먹었던 거다. 다가가면 얼마든지 자기를 보여줄 수 있고 얼굴도 삶의 질곡을 보여줄 수 있는 풍부한 감정을 지녔다. 참, 편집된 치국이 대사 중에 이런 게 있다. “철들고 나서부터 몸 부닥치는 스포츠가 싫었습니다.” 그건 내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온 대사다. 태권도를 굉장히 오랫동안 했었기 때문에 지금도 몸 부딪치는 스포츠가 싫다. 농구를 제일 싫어하는 이유가 그래서다. 그리고 축구도 그렇고. 야구를 제일 좋아하는 게 서로 떨어져서 하기 때문이다.
왜 태권도를 했고, 왜 싫어하게 됐고, 왜 그만두게 됐나? 아버지가 복싱을 하셨다. 그래서 복싱을 배웠는데, 일주일 동안 벽 잡고 풋 워크만 시키는 거다. 너무 재미가 없어 태권도를 하게 됐다. 난 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애들에게 돈 뺐는 것을 죄악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지금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그러면서도 또 문학적인 욕심은 있어 가지고 문예부에 들었다. 1학년 때 하늘같은 문예부 선배 엉덩이 딱 때리면서 “어이 선배, 오랜만이에요” 이랬다. 그때 그 형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웃음) 그런 식으로 고등학교 시절을 살다가 어느 날 대학로에서 복싱하는 녀석을 만나 엄청 깨졌다. 그 후 변하게 됐다. 굉장히 못되게 살았구나 깨달았다. 그 다음부터 운동에 대한 매력이 확 떨어지면서 재수 끝에 대학에 가 영문학을 전공하게 됐고 그 후에 영상원에 입학했다.
듣고 보니 '똘기 있게' 살았을 것 같다. 많이 고분고분해졌다. 예전 친구들이 지금 날 보면 굉장히 놀랄 거다. 영화를 한다고 하면 믿지도 않을 거고, “포르노 찍냐 새끼야?” 이럴 확률이 매우 높다.(웃음) 나는 내 영화가 확 울고 나서 잊히는 영화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열혈남아>의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상황을 만든 건 완전히 울거나 완전히 웃으면 금세 잊히기 때문이다. 또 세상사는 게 그렇잖나. 뭔가 거절하고 싶어도 끈덕지게 잡고 있는 게 세상살이고 인간관계라는 건데, 내가 올바르게 세상을 담았다고 한다면 그것이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애매한 상황이었을 것 같았다. 경구 형이 무대인사에서 “이 영화 보시고 어머니께 전화 한 통 넣으세요”라고 한 말도 내 바람 중 하나다.
2005년 겨울에 촬영했다 이제 개봉한다. 마음고생도 있었겠다. <거룩한 계보>에 밀려 개봉이 11월이 됐다고 해서 속상했다. 그 후 라이브 톤에서 <거룩한 계보> 장진 감독을 만났는데 "어떻게, 11월로 밀리셨던데요?“ 그러기에 ”<거룩한 계보> 때문에 그렇잖아요!“ 그랬다.(웃음) 나중에 농담이라고, 소주나 한잔 하자고 했지만. 회사에 누가 되지 않을 정도만 관객들이 봐주셨으면 좋겠다. 제대로 했고, 많이 배웠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좋다. 다음 영화? 강력반 강철중 같은 형사와 보아 같은 아이돌 스타의 러브 스토리다. 거기에 액션 신이 들어간다. 둘은 전혀 애잔하지 않다. 사근사근한 연애는 도저히 못 찍을 것 같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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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독과의 인터뷰가 있으니 영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네요 ^^ 중간 중간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정리되는기분... ^^
저는 <열혈남아>가 <거룩한 계보>보다는 별 두 개 정도 더 좋았었는데, <거룩한 계보>에 밀려 개봉날짜가 밀렸다면 감독님은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요?
영화끝나고 엄마한테 전화를 해야하는데.. 되려 전화가 왔죠... 영화를 보면서.. 결국에 이런게 흘러가겠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해서.. 보는 내내 "냉~~~"한 기분이었는뎅.. 관람하기 전에.. 읽어보고 갈걸 그랬어요.. 놓친 부분이 많다 라는 아쉬움이 많이 남네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