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동도에서] 정병경.
ㅡ낭만 스켓치ㅡ
광나루사생회에서 강화군 교동喬桐 섬으로 스켓치 가는 날인데 불청객 소나기도 따라나선다. 강화도 주위는 크고 작은 섬들이 서로 마주하고 있어 바닷바람의 완충 역할을 하는 형제섬이다. 섬으로 이어지는 다리가 놓여져 접근성이 좋아 가끔 강화도를 찾는 편이다.
교동도는 강화도의 북서쪽에 자리한 섬이다. 여의도의 16배인 46.3km²로 전국 순위 15위에 해당하는 큰섬이다. 경작지 비중이 면적의66%에 해당되어 농산물을 자급자족하고 일부는 외지로 반출할 정도여서 어촌이 아닌 농촌으로 불릴정도이다.
민통선에 묶여있을 때는 출입하기가 번거로웠다. 북한과 마주하고 있어 다리를 건널 때 신분 확인 후 통과하는 절차를 거친다. 신분증 없이 자유롭게 다닐 날을 기대한다. 2014년 교동대교가 놓여지면서 통행이 편리해 시간이 멈춘 섬에서 벗어났다.
스켓치 장소로 택한 교동도는 역사가 깃든 섬이다. 조선 제 10대 왕을 지낸 연산군이 64일 동안 위리안치된 유배지이기도 하다. 왕의 얼굴에 상처를 입힌 폐비 윤씨와 성종 사이에서 출생한 장남인 연산군은 폭군이란 대명사가 따라다닌다. 광해군과 안평대군, 임해군, 능창대군 등의 유배생활 시절과 달리 평온하고 아늑한 낭만적인 섬으로 바뀌었다. 고려 중엽부터 조선 말기에 이르도록 유배지로 악명 높은 섬이다.
쑥부쟁이와 야생화들로 예쁘게 꾸민 화개정원은 스켓치 장소로 제격이다. 저녁 노을이 환상적이어서 방문객들을 유혹하는 섬이다. 기회가 되면 교동향교와 읍성, 낙조와 갯벌 체험을 기대한다.
화개정원은 가을 축제 행사로 입장료가 무료이다. 연산군의 체취 서린 초가집 아래쪽 광장 무대에서 노랫가락이 빗속을 가른다. 유명 연예인들의 열창에 흥이 난 관중속에서 열기가 솟는다.
폭군 연산군의 치세 때 무오ㆍ갑자사화로 많은 이들의 피눈물을 흘리게 한 왕이다. 당시의 일대기가 초가집 벽면에 빽빽히 기록되어 있다. 폐비가 된 어머니 윤씨의 약사발이 발단이다. 박종화 소설가의 '금삼의 피'에서 오래 전에 읽은 기억을 회상해본다. 1504년 3월부터 7개월간 벌어진 갑자사화 때 사형과 부관참시된 영혼은 과연 편안히 눈을 감았을까.
우이동 묘지에 누워있는 연산군은 무슨 생각에 잠겨있는지 궁금하다. 박원종ㆍ성희안 일파가 폭군을 폐위시키지 않았다면 그의 독재와 학정은 12년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줄기차게 쏟아지는 빗줄기가 무고하게 사라진 인물들의 눈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ㅡ전망대로ㅡ
화개산華蓋山(260m) 전망대가 금년 5월에 개장했다. 일행인 전용한, 정순이 작가와 교동 주차장에서 반시간 가까이 가파른 산길을 걸었다. 전망대까지 설치한 모노레일은 나무늘보 걸음이다.
저어새 부리 형상을 닮은 전망대 스카이워크는 통유리 바닥이어서 강심장도 멈칫한다. 교동도를 내려다보니 난정 저수지를 비롯한 평야지대가 펼쳐진다. 임진강과 예성강이 바다와 합류하는 지점이다. 점심 때 먹은 밥맛이 일품인 이유를 발견한다. 토질이 좋아 유명해진 교동쌀로 지은 밥이다.
보문사가 있는 석모도는 바로 앞 남쪽 방향이다. 지척인 교동도와 다리가 이어지면 이웃 섬 주민과 자주 소통하며 지낼 수 있을 것이다.
대룡시장에 들어서니 반세기 전 저잣거리 모습이 연상된다. 난전難廛이다. 쌀강정과 꽈배기 등 먹거리가 입맛을 당긴다. 황해도 연백의 실향민들이 연백장날의 모습으로 꾸민 시장이다.
2km전방이 북한 연백군이다. 전쟁이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머물던 실향민의 제2 고향이 된 것이다. 1965년 1만 2천여 명이 넘게 거주했다고 한다. 전쟁 당시 연백 군민만 5만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실향민들이 망향제를 올리는 섬으로도 알려졌다.
추억이 그리울땐 대룡시장을 그리면 된다. 이발관, 다방 등 옛 상점 간판들을 보니 어린 시절에 거리에서 보던 느낌이 회상된다.
교동에서의 스켓치는 지난해와 달리 해마다 달라질 것이다. 옛것이 점점 사라지고 첨단의 도시로 발전할 계기이다. 3천명에 못미치는 인구가 미래를 지향하는 고장으로 거듭날 예감이 든다. 다시 발걸음 하고싶은 섬에서 사라진 인물을 스켓치하며 명품 낙조를 뒤로하고 돌아선다.
2023.10.14.
첫댓글 옛스러운 교동도의 풍경이 참 정겹습니다....
정선생님 잘 읽고 가네요 가을이 떨어지고 떨어지는때 건강하세요 ^^
임화숙 선생님!
변변치 않은 글을 매번 잘 읽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오색 단풍 만끽하시고,
항상 건강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