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Z31DdnANKdk?si=bDZgKDbdCy6Dvwoj
마르티누 피아노 협주곡 2번(Piano Concerto No.2)
마르티누의 2번 협주곡은 실제 피아노와 오케트라를 위한 첫번째 작품으로 1934년에 작곡 하였다. 1번은 1925년에 앙상블과 오케스트라를 위해 작곡되었다.
이곡은 원래 Germaine Leroux에게 헌정되었으나 Firkusny(3번을 헌정받음)에 의해 1935년에 초연되었다.2번은 답답하지 않으면서 날아가는 듯한 들떠있는 작품이다. 부드러운 흐름과 액티브한 오케스트라의 조직이 프로코피에프와 뿔랑을 연상시킨다. John Ireland concerto의 밝음 역시 연상된다. 2악장은 갈망하는 케릭터와 갸날픈 조직의 접근을 결합해놓았다.
피아노 협주곡 2번은 마르티누의 우상 - 드뷔시와 라벨- 의 에너제틱하고 활력 넘치는 외관을 가지고 시작한다. (2악장)Poco Andante의 은방울이 구르는듯한 우아함이 스트라빈스키의 Concerto for piano and woodwind에서 발견되는 솔로와 오케스트라의 네오 클래식한 자동 피아노의 또각거림과 같은 기관총의 급류로 이어진다. 이것은 마르티누가 체코 민족의 갈망을 담은 모티프를 담은 말라버린 기공을 열었기때문에 가능했다.
마르티누 (Martinu, Bohuslav, 1890.12.8~1959.8.28 체코슬로바키아)
20세기 초의 체코 작곡가 보후슬라프 마르티누 (1890∼1959)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구두 직공이자 교회 종지기였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남달리 소리에 민감했던 그는 아버지가 예배 시간을 알리기 위하여 종을 칠 때면 유심히 귀기울였음은 물론 단조로운 소리를 좀더 음악적으로 낼 수 없을까 하는 궁리를 하기도 했다. 그만큼 어린 마르티누는 탐구심이 강했다.
1906년 프라하의 음악원에서 바이올린을 배우고, 졸업 후 1913∼1923년 체코필하모니에서 바이올린 연주자로서 일하였다. 이와 더불어 마르티누는 조국의 위대한 국민주의 작곡가 스메타나와 드보르작, 선배인 야나첵보다 더 뛰어난 음악가가 되려고 어릴 때부터 독학을 하다시피 음악 공부를 열심히 했다.
10세에는 <현악 4중주곡>을 쓸 만큼 일찍이 천재성을 나타냈는데 작곡의 속도가 무척 빨라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조국에서 음악 수업을 마치고 파리에 잠깐 들른다던 것이 17년 동안이나 머물게 되면서 루셀을 비롯한 프랑스 여러 작곡가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파리가 독일 나치군에 점령되자, 마르티누는 박해를 받을 것이 두려워 아내와 함께 빈 손으로 파리에서 탈출, 미국을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에서 활약하면서 교향곡을 비롯한 여러 양식의 음악 작품을 3백60여 곡이나 만들었다. 그는 톨스토이의 《인생이란 무엇인가》란 작품을 오페라로 쓰는가 하면, 미국 최초의 비행사 린드버그가 대서양을 처음 비행기로 횡단한 것을 소재로 하여 <대소동>이란 관현악곡을 쓰기도 하였다.
작풍은 대개 신고전주의적이었으나 체코의 민족음악이나 재즈의 영향도 느끼게 하였다. 1941년 나치스를 피하여 미국으로 이주, 프린스턴대학과 마네스음악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전후 1946년에는 프라하음악원 교수로서 일시 귀국하였으나 재차 미국으로 돌아가 1952년 미국국적을 취득하였다. 1957년에는 은퇴하여 스위스의 프라테룬에서 생활을 하였다.
주요작품에는 오페라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1953) 등이 있으며, 이 밖에도 교향곡·교향곡·피아노협주곡·바이올린협주곡·첼로협주곡 등의 많은 작품을 남겼다
https://youtu.be/br4cZoWE514?si=K0YIXqjVpPoyaJ_C
글출처: 하늘바람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