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혹유저오(或有牴啎)
문장이나 일이 서로 어긋나고 모순되는 것들이 있다는 뜻으로, 반고가 사기에 대하여 폄하한 말을 설명하며 한 말이다. 모든 문장은 남이 보면 서로 모순되고 어긋난 것들이 있게 마련이다고 한데서 유래하였다.
或 : 혹시 혹(戈/4)
有 : 있을 유(⺝/2)
牴 : 닿을 저(牜/5)
啎 : 만날 오(口/8)
사마천의 사기집해(史記集解)를 쓴 송나라 사람 배인이 그 서문에 한서(漢書)를 편찬한 반고(班固)가 사기에 대하여 폄하한 말을 설명하며 한 말이다. 반고가 ‘사기의 문장이 생략된 것이 많고 간혹 서로 모순되는 것들도 많다’고 하며 비판한 것에 대하여 ‘사기야말로 오랜 세월의 역사적 사건을 잘 정리하여 기록한 것’이라는 취지로 ‘모든 문장은 남이 보면 서로 모순되고 어긋난 것들이 있게 마련이다’고 한데서 유래하였다.
1. 남의 눈에 티끌은 잘 보인다
속담에 “남의 눈의 티끌은 보여도 내 눈의 들보는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자기는 한 문장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이 타인의 문장을 보고 문장이 서투르느니 문장이 볼품없느니 하며 이리저리 평가도 하고 비난도 한다.
장기판이 벌어졌다. 장기를 두는 사람은 장기 5단과 6단이다. 그 광경을 보고 있는 사람은 장기 5급 정도의 하수다. 그런데 그 5급 장기 하수가 5단과 6단의 장기 두는 모습을 보고 속 터져 하며 5단을 향해 그 수도 못 보고 뭐 하느냐고 비난한다. 옆에서 보니 남의 허점이 잘 보이기 마련이다. 섣불리 비난해서는 안 되지만 그 5급의 훈수꾼은 참지 못한다.
축구 경기가 벌어졌다. 그런데 경기가 잘 풀리지 않는 모양이다. 자기가 응원하는 팀의 선수가 엉뚱한 실수를 하거나 의도대로 경기를 풀어내지 못한다. 이를 본 응원군은 소리를 친다. ‘이 병신...’ 그런데 사실은 막상 그 당사자는 축구를 하지 못하고 즐기기만 한다.
정치인들이 상대 당을 연일 비난 비판한다. 특히 야당은 사사건건 대통령을 비판하고 비난한다. 그런데 그들이 집권당이었을 때도 그들은 비판받고 비난받았다. 관망자, 비판자의 눈에는 잘 보이지만 막상 당사자가 되면 잘 보이지 않고 허점이 드러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뒷모습을 스스로 보지 못한다. 그처럼 자기의 허물도 스스로 보기 힘든다. 눈이 앞으로 있기에 그런가 보다. 이런 것을 보면 인간의 속성 자체가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래서 남을 비방하고 평가하는 일보다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그런데 이런 일들은 역사상 오래되었다. 불세출의 명작인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를 두고도 후세 많은 사람이 이러쿵저러쿵 비판하고 평가해 왔다. 그러나 사기(史記)는 이제까지 고대의 어느 역사책보다 중국사를 체계적으로 잘 정리한 책으로 평가한다. 중국 후한(後漢) 때의 역사가 반고가 한서(漢書)를 지으면서 사마천의 사기(史記)를 여러 각도에서 평가했다. 반고의 눈에도 사마천의 사기(史記)의 티끌은 많이 보였나 보다.
2. 혹유저오(或有牴啎)의 유래와 의미
중국 고대의 송나라 사람 '배인'은 사마천의 '사기' 해설서인 '사기집해(史記集解)'를 썼다. 배인은 하동(河東) 사람으로 송나라에서 중랑외병참군(中郎外兵參軍)을 지냈으며 그 아버지 배송지는 태중대부(太中大夫)를 지냈다.
배인은 사기집해(史記集解) 서(序)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반고가 말했다. ... 그(사마천)는 진(秦)나라와 한(漢)나라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하였다. 그러나 경(經)에서 채집하고 전(傳)에서 습득함에 이르러서는 여러 일가(국가 또는 학파)의 일들을 분산시켜서 소략한 것이 많고 간혹 서로 모순되는 것도 있다(其言秦漢詳矣 至於采經摭傳 分散數家之事 甚多疏略 或有牴啎).”
이 말은 '사기'는 전한(前漢)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서술했지만, 경(經)과 전(傳)에서 인용한 것들은 소략하고 서로 모순되는 것들이 많다는 뜻이다. 혹유저오(或有牴啎)는 여기서 유래되었다.
혹유저오(或有牴啎)에서 혹유(或有)는 간혹 있다는 뜻이다. 이에 대하여 당나라 현종 때 사마정(司馬貞)이 지은 '사기색은(史記索隱)'에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저오(牴啎)에서 저(牴)는 저촉되다, 범하다는 뜻이다. 오(啎)는 기울어져서 서로 저촉되는 것을 말한다. 세로로 부딪치는 것과 가로로 부딪치는 것들을 모두 저(牴)라 하고 비스듬히 부딪치는 것과 아래로 부딪치는 것은 모두 오(啎)라 한다. 그래서 저오(牴啎)는 들쭉날쭉하여 서로 어긋난 것을 말한다.
이것과 저것 두 문장이 한 가(家: 국가 또는 학파)에서 나왔지만, 서로 어긋난 것을 일컫는다. 이 말은 이쪽 저쪽 사방으로 어긋난 것과 무리함이 많다는 뜻이다. 결국 허점투성이라는 것이다. 반고는 불세출의 명작이라는 '사기'를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사마천이 '사기'를 쓸 때와 반고가 '한서'를 쓸 때의 시대상황과 관점이 달랐다. 사마천은 공자의 유학이라는 학문적 관점과 정치적 입장에 얽매이지 않고 특히 중립적인 입장에서 중국 화화족의 역사를 체계화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궁형에 처한 한무제(漢武帝)까지 황제를 보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평가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후한의 반고는 한서라는 사기보다 상당히 짧은 기간의 역사를 서술하면서 철저하게 공자의 유교적인 덕치의 입장에서 서술하였으며 한나라 역사에 한정하였으므로 상당히 자세하게 서술하였다. 따라서 반고의 사기에 대한 평가는 관점과 시대 상황의 차이일 뿐 문장의 차이는 아니었을 것이다.
3. 혹유저오(或有牴啎)의 교훈
어떤 일이 건 인간이 하는 일은 완벽은 있을 수 없다. 보는 사람의 입장과 관점에 따라 허점이 보이게 마련이다. 따라서 남의 글이나 남이 한 일을 함부로 비판하는 일은 삼가야 한다. 그러나 비평가들은 그것을 업으로 하며 살아간다.
탈무드에도 이르기를 “자기가 이웃 사람의 입장에 서지 않는 한 이웃 사람을 비판하지 말라”고 하였다. 타인을 비판하는데 항상 주의하라는 말이다. 사람은 스스로 자기의 잘못을 인지하였더라도 타인이 그 잘못을 들추어 내면서 비판하면 분노하게 마련이다. 그것은 자존심 때문이며 비판은 타인의 자존감을 침해하는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섣부른 비판은 서로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심지어는 싸움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요즈음 인터넷 댓글에 보면 선한 댓글보다 악한 댓글 비난성 댓글이 더 판을 친다. 남을 칭찬하는 데는 인색하고 남을 비판하고 비난하는 데는 익숙한 것이 인간인가 보다. 그러나 시몬느 보부아르의 말대로 “비평은 쉽고 창작은 매우 어렵다.” 비평 이전에 창작자의 고통을 생각해보라는 말이다. 좋은 댓글을 달아주는 것도 하나의 미덕이며 아량일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카카오톡이 거의 생활화된 시대를 산다. 많은 사람이 단톡방에 초대되고 단톡방을 통해 소통한다. 그런데 어떤 이는 그 단톡방에 자주 글을 올리고 정보를 퍼 나른다. 반면에 어떤 이는 침묵한다. 또 어떤 이는 그것이 귀찮다고 투덜대거나 나가버린다. 어느 쪽이 더 인간적이며 아량이 있는 행위일까? 나에게 맞지 않는다고 무조건 비난하거나 투덜대는 행위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사회성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 아닐까?
잘못은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모든 사람은 잘못이 있다. 중요한 것은 잘못은 지적하되 사람은 존중하여야 한다. 잘못에 대하여 아름다운 충고나 격려를 해줄 수 있는 사회가 더 아름다운 사회로 가는 길이 아닐까? 매사에 비난과 비판이 일상화되어 있는 오늘날 정보화 세상에서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세상 모든 일은 혹유저오(或有牴啎)의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 或(혹 혹, 나라 역)은 ❶회의문자로 惑(혹)과 통자(通字)이다. 무기(戈)를 들고 백성(口)과 영토(一)를 지키면서 '혹시'하며 적의 침입을 의심한다는 데서 '혹', '혹시'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或자는 '혹시'나 '만일'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或자는 戈(창 과)자와 口(입 구)자, 一(한 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戈자는 고대의 창을 그린 것으로 '창'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여기에 口자가 더해진 或자는 창을 들고 성(城)을 지킨다는 뜻이다. 口자를 성벽으로 표현한 것이다. 금문에서는 여기에 두 개의 획이 더해지게 되었는데, 이것은 경계선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或자는 이렇게 성을 경계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나라'를 뜻했었지만, 혹시 모를 적의 침입을 대비한다는 의미가 확대되면서 '혹시'나 '만약'이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여기에 囗(에운담 위)자를 더한 國자가 '나라'를 뜻하고 있다. 그래서 或(혹, 역)은 ①혹(或), 혹은(或-: 그렇지 아니하면), 혹시(或是: 그러할 리는 없지만 만일에) ②또 ③어떤 경우(境遇)에는 ④어떤 이 ⑤어떤 것 ⑥있다, 존재하다(存在--) ⑦괴이(怪異)쩍어하다 ⑧의심하다(疑心--) ⑨미혹하다(迷惑--)(=惑) 그리고 ⓐ나라(=域)(역)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만일에 또는 가다가 더러 또는 행여를 일컫는 말을 혹시(或是), 어쩌다가나 가끔이나 이따금이나 간간이를 일컫는 말을 간혹(間或), 어떠한 사람을 혹자(或者), 혹시나 설혹을 혹여(或如), 만일에나 가다가 더러나 행여나를 일컫는 말을 혹야(或也), 어떤 이가 말하는 바 혹은 이르기를 일컫는 말을 혹왈(或曰), 어떠한 사람이 말하는 바를 일컫는 말을 혹운(或云), 어쩌다가나 어떠한 때에를 일컫는 말을 혹시(或時), 간간이 어쩌다가를 일컫는 말을 혹간(或間), 어떠한 사람이 말하는 바를 일컫는 말을 혹위(或謂), 있을지도 모르는 뜻밖의 경우를 일컫는 말로 약혹(若或)이나 여혹(如或), 어떠한 사람의 말이나 학설을 일컫는 말을 혹설(或說), 가정해서 말하여를 일컫는 말을 억혹(抑或), 점이나 예언 따위가 혹은 맞고 혹은 안맞음 또는 던지거나 쏜 것이 맞기도 하고 안 맞기도 함을 이르는 말을 혹중혹부중(或中或不中), 옳다 하기도 하고 그르다 하기도 하여 어떤 일이 질정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혹가혹불가(或可或不可), 옳기도 하고 그르기도 하여 옳고 그른 것이 질정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혹시혹비(或是或非), 혹은 앉기도 하고 혹은 서기도 함을 이르는 말을 혹좌혹립(或坐或立),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어쩌다가 사리에 맞는 말도 있음을 이르는 말을 다언혹중(多言或中), 혹시 그럴 수도 있으므로 괴이할 것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용혹무괴(容或無怪) 등에 쓰인다.
▶️ 有(있을 유)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달월(月; 초승달)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𠂇(우; 又의 변형)로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有자는 '있다, '존재하다', '가지고 있다', '소유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有자는 又(또 우)자와 月(육달 월)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여기에 쓰인 月자는 肉(고기 육)자가 변형된 것이다. 有자의 금문을 보면 마치 손으로 고기를 쥐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내가 고기(肉)를 소유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有자는 값비싼 고기를 손에 쥔 모습으로 그려져 '소유하다', '존재하다'라는 뜻을 표현한 글자이다. 그래서 有(유)는 (1)있는 것. 존재하는 것 (2)자기의 것으로 하는 것. 소유 (3)또의 뜻 (4)미(迷)로서의 존재. 십이 인연(十二因緣)의 하나 (5)존재(存在) (6)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있다 ②존재하다 ③가지다, 소지하다 ④독차지하다 ⑤많다, 넉넉하다 ⑥친하게 지내다 ⑦알다 ⑧소유(所有) ⑨자재(資財), 소유물(所有物) ⑩경역(境域: 경계 안의 지역) ⑪어조사 ⑫혹, 또 ⑬어떤 ⑭12인연(因緣)의 하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있을 재(在), 있을 존(存)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망할 망(亡), 폐할 폐(廢), 꺼질 멸(滅), 패할 패(敗), 죽을 사(死), 죽일 살(殺), 없을 무(無), 빌 공(空), 빌 허(虛)이다. 용례로는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음을 유명(有名), 효력이나 효과가 있음을 유효(有效), 이익이 있음이나 이로움을 유리(有利), 소용이 됨이나 이용할 데가 있음을 유용(有用), 해가 있음을 유해(有害), 이롭거나 이익이 있음을 유익(有益), 세력이 있음을 유력(有力), 죄가 있음을 유죄(有罪), 재능이 있음을 유능(有能), 느끼는 바가 있음을 유감(有感), 관계가 있음을 유관(有關), 있음과 없음을 유무(有無), 여럿 중에 특히 두드러짐을 유표(有表), 간직하고 있음을 보유(保有), 가지고 있음을 소유(所有), 본디부터 있음을 고유(固有), 공동으로 소유함을 공유(共有), 준비가 있으면 근심이 없다는 뜻으로 미리 준비가 되어 있으면 우환을 당하지 아니함 또는 뒷걱정이 없다는 뜻의 말을 유비무환(有備無患), 입은 있으나 말이 없다는 뜻으로 변명할 말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유구무언(有口無言), 있는지 없는지 흐리멍덩한 모양이나 흐지부지한 모양을 일컫는 말을 유야무야(有耶無耶), 형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라는 뜻으로 천지간에 있는 모든 물체를 일컫는 말을 유상무상(有象無象), 이름만 있고 실상은 없음을 일컫는 말을 유명무실(有名無實), 머리는 있어도 꼬리가 없다는 뜻으로 일이 흐지부지 끝나 버림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유두무미(有頭無尾), 다리가 있는 서재라는 뜻으로 박식한 사람을 이르는 말을 유각서주(有脚書廚), 만물은 조물주가 만드는 것이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님을 일컫는 말을 유생불생(有生不生), 다리가 있는 양춘이라는 뜻으로 널리 은혜를 베푸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유각양춘(有脚陽春), 뜻이 있어 마침내 이루다라는 뜻으로 이루고자 하는 뜻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성공한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을 유지경성(有志竟成), 벗이 있어 먼 데서 찾아온다는 뜻으로 뜻을 같이하는 친구가 먼 데서 찾아오는 기쁨을 이르는 말을 유붕원래(有朋遠來), 시작할 때부터 끝을 맺을 때까지 변함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유시유종(有始有終), 무슨 일이든 운수가 있어야 됨을 이르는 말을 유수존언(有數存焉), 있어도 없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있으나 마나 함을 이르는 말을 유불여무(有不如無), 말하면 실지로 행한다는 뜻으로 말한 것은 반드시 실행함 또는 각별히 말을 내 세우고 일을 행함을 이르는 말을 유언실행(有言實行), 끝을 잘 맺는 아름다움이라는 뜻으로 시작한 일을 끝까지 잘하여 결과가 좋음을 이르는 말을 유종지미(有終之美), 입은 있으되 말을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정이 거북하거나 따분하여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유구불언(有口不言), 행동이나 사물에 처음과 끝이 분명함 또는 앞뒤의 조리가 맞음을 일컫는 말을 유두유미(有頭有尾),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서로 융통함을 이르는 말을 유무상통(有無相通), 장차 큰 일을 할 수 있는 재능 또는 그 사람을 일컫는 말을 유위지재(有爲之才), 끝까지 일을 잘 처리하여 일의 결과가 훌륭함을 이르는 말을 유종완미(有終完美),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은 그대로 있지 않고 인연에 의하여 변해 가는 것이라는 말로 세상사의 덧없음을 이르는 말을 유위전변(有爲轉變), 가기에 잎을 더한다는 뜻으로 이야기에 꼬리와 지느러미를 달아서 일부러 과장함을 이르는 말을 유지첨엽(有枝添葉), 가르침에는 차별이 없다는 뜻으로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배움의 문이 개방되어 있음을 이르는 말을 유교무류(有敎無類) 등에 쓰인다.
▶️ 牴(부딪힐 저/숫양 저)는 형성문자로 羝(숫양 저), 觝(닿을 저, 칠 지)와 동자이다. 뜻을 나타내는 소 우(牛(=牜: 소)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氐(저)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牴(부딪힐 저/숫양 저)는 ①부딪히다, 닿다 ②만나다 ③대략(大略) ④숫양(-羊: 양의 수컷)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서로 어긋나 거슬림 또는 서로 용납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저오(牴牾), 문장이나 일이 서로 어긋나고 모순되는 것들이 있다는 뜻으로 반고가 사기에 대하여 폄하하여 이르는 말을 혹유저오(或有牴啎) 등에 쓰인다.
▶️ 啎(만날 오/거스를 오)는 형성문자로 悟(깨달을 오), 牾(거스를 오)는 동자이다. 午(오)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吾(오)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午(오)는 절굿공이 모양의 신체(身體) 상형(象形)이다. 그래서 啎(만날 오/거스를 오)는 ①만나다 ②거스르다 ③거역하다(拒逆--: 윗사람의 뜻이나 지시 따위를 따르지 않고 거스르다) ④깨닫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문장이나 일이 서로 어긋나고 모순되는 것들이 있다는 뜻으로 반고가 사기에 대하여 폄하하여 이르는 말을 혹유저오(或有牴啎)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