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사진]치매 어머니랑 올기쌀 만들기

[기 자영]

나락을 베었다. 하루는 나 혼자. 또 하루는 진성이랑 지영이가 함께 베었다.

콤바인이 잘 들어 가게 논 가장자리로 두 세 포기씩 주욱 베었는데 이 나락을 세 단 집으로

가져왔다.

나락을 보고 어머니는 바로 알아 차렸다.

"올기쌀 해 묵을락꾜?"

"네. 어머니. 올기쌀 해 먹어요."

어머니의 강의가 시작되었다.

푹 삶아서 바싹 말리지 말고 '꼬꼬부리' 하게 말려서 디딜방아에 가서 푹푹 찧으면

졸깃졸깃 한 게 맛 있다고 하셨다.

올기쌀의 개념 설명과 나락 채취 시기는 물론 삶는 방식과 말리는 정도까지.

더 나아가 맛 까지 감칠맛 나게 설명을 하시는 데

나는 이 올기쌀 가지고 적어도 4-5일은 어머니랑 놀 수 있겠다 싶어 그야말로

땡 잡았구나 싶었다.

그러나....

어찌 예상이나 했으랴.... 그노무 '디딜방아'가 걸림돌이 될 줄이야....

어머님이 날 좋을 때 딱 하루 말린 나락단을 훑고 계신다.

삶을 나락을 가마솥에 쪄서 알미늄 샤시 망에 깔아 말리고 있다.

곡식 말리는 망은 고물상에 가면 이런 녹슬지 않는 알미늄 샤시 방충망들이 많이 있다.

천원정도 주거나 신문뭉치 몇 개 가져 가면 얻어 올 수 있다.

올기쌀을 처음 삶아 보는 나는 나락이 툭툭 터지고 하얀 쌀이 비쳐 나온 것을 보고

큰 일 났구나 싶었다.

어머니한테 야단 맞을 각오를 하고 보여 드렸드니

"오찌 이리 잘 삶았노? 해 봤나?" 하셨다.

나는 어깨가 으쓱했다. 이래야 디딜방아 가면 껍질이 잘 까진다고 하셨다.

어느 정도 말려야 찧기 좋은지 어머니에게 틈틈이 검수(?)를 받았다.

손가락을 사악 부벼 보시면서 좀 더 말리라고 하면 나는 다시 갖다 늘었다.

자식이라고 봐 주고 그러지 않는다 원칙적인 우리 검수관께서는 일일이 점검하시고

책임 질 수 있을 때 '합격' 장을 주신다.

드디어 어머니로부터 합격 통지를 받고 나는 절구에 넣어 찧기 시작했다.

이 절구통은 우리 마을 이전 이장님네 가서 빌려 왔다.

동네에 절구가 있는 집이 몇 안되서 여러집을 뒤졌었다.

나락을 훑는 홀태가 있는 집도 단 한 군데도 없어 손으로 훑으야 했다. 골동품 가게에서

언젠가 몇 만원에 파는 것을 본적이 있는데 요즘도 있는지 모르겠다.

쿵쿵 절구질을 하는데 방에서 어머니가 나오셨다.

"어머니 좀 있다가 잘 찧었는지 한번 봐 주세요 네?"

어머니가 나를 불렀다.

"은조네 집 뒤에 디딜방아 내가 맡아 놨는데 그라고 있노?

딴 사람이 먼저 가는고마. 어서 가아!"

"네?
"우리 디딜방아는 뒤에 굴밤나무가 기우뚱해서 겁나서 쿵쿵 못 찧고

내가 어제 아들 보내서 은조네 기풍띠기 한테 가서 디딜방아 쓰냐고 했더니

비어 있다고 얼렁 와서 쓰라고 했다카이~"

"아들 누구요? 나는 안 가봤는데요?"

이 말이 화근이 되었다.

어머니가 버럭 화를 내셨다.

"또 씨운다. 내가 가 봤다카이! 언제까지 절구에서 그 많은 걸 다 찧을락꼬????"

어머님을 겨우 수습하고 내가 챙이질을 했다.

어머님도 현실(!)을 받아 들이시는지 챙이를 가져 오라고 했다.

내가 기다리던 것이다.

우리 어머니 고수급 챙이질은 세상이 다 안다.

나는 절구질을 하고 어머님은 챙이질을 시작하셨다.

내가 하는 절구질이 딸릴 지경이었다.

한 바가지 넣고 채 다 찧지 않았는데

"아직 안 됐냐?" 하신다.

유쾌하신 어머니. 올기쌀을 휘휘 저으며 챙이질 하신다.

사부작 사부작 하시는 챙이질이 원로(!) 답다.

나락 껍질만 솔솔 잘 나간다.

나는 퍽퍽 챙이질을 하는데 어머님은 소리도 안 난다.

부채질 하듯이 사부작 사부작....

팔이 아프고 허리가 아파 나는 손을 바꿔 가며 찧었다.

절구 언저리를 짚고 찧는다.

진성이도 참여 시킬까 했지만 이 금싸라기 같은 나락이 절구 밖으로 튕겨 나갈까봐

좀 더 힘을 키워서 오라고 했다.

진성이는 아령을 가지고 힘을 키우고 있다.

진성이가 내 근육을 보고 부러워 한 적이 있다.

팔뚝에 힘이 오르기를 바라는 아령 운동.

어머니가 내게 주시는 올기쌀을 진성이에게 줬다. 처음 보는 올기쌀.

올기쌀이라는 말도 처음 듣는다고 했다. 한참 설명했다. 우리말은 말 속에 의미가 다

들어 있다는 것도 말해 주었다.

한 입에 탁 털어 넣어 팍팍 씹어야 맛있다고 하니

진성이가 고개를 팍!!! 젖혀 한 입에 털어 넣고 있다.

드디어 완성되었다. 1차 완성이다. 살짝 더 말려 한 번 더 찧어서 챙이로 까불어 내면

올기쌀이 완성된다.

그러나...

완성이 아니었다. 새로운 문제가 있었다.

어머님은 잊지 않고 있었다. 당신의 기억과 당신의 주장과 당신의

판단력에 대한 확신을...

내가 느긋해 있는 사이 어머님은 전혀 다른 계획을 착착 준비하고 계셨던 것이다.

나 한테 얘기도 않고 틀니를 빼서 휴지로 닦고 계셨다.

목도리도 하고 선물 받은 이쁜 털모자까지 쓰고

틀니는 꼭 물에 닦아야 한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서 잘 하시는데

휴지에 닦는 거 보면 뭔가를

나를 제쳐 놓고 추진하시려는 게 분명하다.

그리고 준비 내용을 보면 제법 멀리 출장을 가시려는 것이다.

"이십원 있나?" 하고 소리치셨다.

나는 이십원하고 3백원을 갖다 드렸다.

버스타고 가는데 10원.

돌아 오는 버스 값 10원

100원은 국밥 한 그릇 사 드시라 했더니

"너도 같이 한 그릇 해야지?" 해서

100원이 추가되고

찐빵 한 접시 사 먹자고 해서 또 100원이 추가되어 300원이 된 것이다.

진성이는 10원짜리 버스 이야기에 눈이 휘둥그레 졌다가 웃다가 했다.

어머니가 하라는 대로 올기쌀을 보자기에 똘똘 싸 드리고 바퀴의자에 태워 가자는 대로

갈 수 밖에 없었다.

이미 해는 떨어지고 밥하고 불 때야하는데 어머님은

은조네 집 기풍띠기한테 다 말해 놨다고 어둡기 전에 빨리 가자고 서두르셨다.

감감했다.

어디로 가야하나.

마무리는 어떻게 하나

마무리가 잘 될까 등등....

감감했다.

일단

"삽짝으로 안 나가고 뭐하노?" 해서 골목 밖으로 나왔다.

아랫집 한동띠기 할머니가 들깨를 베고 있었다.

잘 됐다 싶어 한동할머니를 길게 불렀다.

분위기 좀 바꿔 보려고 했지만 허사였다.

"저 할마이 또 사람 속일라. 가자. 어서 가자"하셨다.

뒤 늦은 줄 알면서도

"어머니. 한동할머니가 그러는데요. 지난번 비에 디딜방아가 다 떠내려 가고 없대요."

"또 나므 얘기 듣는다. 남 얘기 들을 거 머 있어!! 어서 가자."

나는 다시 바퀴의자를 밀고 올라갔다.

방법은 단 하나.

분위기를 내가 장악하는 것이다.

자꾸 어머니 주관에 끌려 다니면 안된다.

어머니 주장과 판단이 부시 되지 않도록 하면서도

내가 상황을 주도 하는 것.

이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버스 정류장이라고 내가 말하고 어머니랑 버스를 기다리기로 했다.

한참 기다렸다.

어머니가 먼저 말 하셨다.

"버스가 끊어졌나보다 여태까지 안 오는 거 보믄."

나는 능청을 떨었다.

"버스가 옛날에는 다녔는데요. 요즘은 사람들 너도나도 자가용타고 다니니까 버스가 없어졌나?

어머니 그래도 더 기다려봐요. 여기까지 왔는데."

어머니는 점점 마음을 돌리기 시작했다.

집에 가자고 하셨다.

어둑발 지는 시간도 한 몫 했지만

원래 있지도 않았지만

'없어진 노선버스'가 모든 책임을 뒤집어 썼다.

우리는 가볍게 집으로 돌아 올 수 있었다.

마루에는 내가 드린 10월짜리 동전 두개와 100원짜리 은전 세 개가 뒹굴고 있었다.

이것을 보시더니

어머니는 완전하게 마음을 접으셨다.

"에이. 버스 와도 못 갈뻔 했네 뭐. 차비도 안 갖고 갔구만."

[신의칙]

아름다운 님들~ 아름다우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