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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피해자를 위한 어울림 학교 교장 인태영
인태영, 내가 그를 안지는 몇 달도 되지 않는데 나는 그와 더할 나위 없이 가까운 친구겸 동지다. 강화에서 내가 만나는 씨알들은 말이 필요 없다. 삶 자체가 씨알 덩어리다. 그는 요즘 강화에서 학교폭력 피해자 학교인 어울림 학교를 맡아 학교 소파에서 잠을 자며 학교폭력으로 골병든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홍; 강화에 와서 인교장을 만난 것은 저에게 큰 축복이에요. 전생에 무슨 선업을 쌓았는지 강화에 온 이후로 내 주위엔 온통 천사들뿐인 것 같아요. 인교장 통해 학교폭력 피해자 학교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인교장이 그런 학생들을 위해 애쓰는 것을 학교에서 직접 보며 아픈 씨알의 우는 소리를 듣고 달려가 그들을 돌보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씨알이라고 생각해서 이렇게 모시게 됬어요.
인; 과찬의 말씀이에요. 전 쭉정이 씨알이에요. 아픈 아이들 보면 벌써 6개월이 지났는데도(2013년 5월에 개교) 어떻게 할 줄을 몰라 마음만 아파하며 쩔쩔매고 있어요. 그나마 홍선생 만나 많은 위로가 되요. 아첨을 워낙 잘하시니 속는 줄 알면서도 힘이 되요(웃음)
홍; 저는 진실만 말하는 사람이니까 안심하세요(웃음). 학교폭력엔 언제부터 관심을 가지셨고 어울림학교는 어떻게 세우셨는지요
인;저는 집이 가난해서 고등학생 때 늑막염에 걸려 죽어가는데 허병섭 목사님과 이철용 장로님이 개 한마리를 잡아주셔서 그걸 먹고 살아 났어요. 그 후로 저도 목사님처럼 어렵고 힘든 사람을 위해 살고 싶었지요. 그래서 신학교에 들어갔는데 예수님이 바로 그런 분이시더라구요. 노동자를 위해 전태일 열사가 돌아가셨는데 그분이야말로 오늘날의 예수님이라고 생각하고 저도 그분처럼 살고 싶었지요. 학교폭력 피해자야말로 지극히 작은 자 중에 작은 자이며 여리고 아픈 이들이지요. 학교폭력 문제로 온 나라가 떠들석하고 피해자들 중에 자살하거나 정신질환으로 시달리는 아이들도 있는데 그들을 위한 교육 기관 하나 없다는 것을 알고 가슴이 아파 교육 전문가도 아닌데 감히 경기도 교육청에 공모해 이런 학교를 세우게 됬어요.
홍; 이 일 하시기 전에는 무얼하셨어요. 대학 시절부터 간단히 말씀해 주시지요.
인;파란만장했지요. 우리 시대가 험하기도 했지만 소위 운동권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려면 제 삶이 도움이 될거에요. 70학번인 선생님도 그러셨겠지만 79학번인 저도 시대와 고난을 같이 했어요. 형님이 시위하다 투옥되시어 대학 일학년 때 목요기도회에 참석해 함석헌 선생님을 뵙고 저도 곧바로 운동권이 됬지요.
정치적 독재가 모든 문제의 근원으로 보고 독재 철폐를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하려했어요.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통해 독재를 종식시키는 것을 하늘의 뜻으로 알고 내 한 몸 어찌되든 가난도 감옥도 두려워 하지 않고 싸웠지요. 그 땐 너무도 힘도 없고 가난했는데 무얼 믿고 그리 씩씩했는지 돌이켜 보면 그 때가 그리워요. 감리교 신학 대학 다니며 시위하다 구속되고 제적되어 29년만에 대학을 졸업했지요. 출옥 후에는 구로동 공장에 들어가 힘든 일을 하면서 노동자들을 조직, 교육하고 시위를 했구요. 5년 정도를 그렇게 지냈어요. 김치 조각이나 세우깡이랑 소주 함께 들던 노동자 동지들이 그립네요. 어떤 때는 화염병을 트럭에 가득 싣고 가서 시위를 하기도 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좀 지나쳤지만, 씨알을 지켜야할 군인들이 광주에서 씨알을 죽이는 것을 보고 그 땐 혁명만이 살 길이라고 믿었어요.
육십 항쟁으로 직선제를 쟁취하여 형식적 민주화가 된 후에는 혁명의 시대는 끝나고 정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국민운동본부의 노동자 위원회에서 사무차장으로 활동했고, 전민련, 전노협,전국연합 등의 단체들의 설립에 참여하여 활동했지요. 국회의원 보좌관도 하고, 민주당 노동특위 상임부위원장도 하고, 노무현 후보 선거 기획위원도 했어요. 그러다가 정치에 환멸을 느낀 것은 정치권의 부패를 보고서 였어요. IMF 이후 150조의 공적 자금을 투자한 후 그에 대한 실사 보고서를 작성해 올렸는데 정치권도 여야가 서로 야합을 하고 언론도 제대로 보도해 주지 않는 거에요. 그 때 이해 당사자들로부터 목숨의 위협을 느끼기까지 했지요(자세히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홍; 정치판을 떠난 후 무얼 하셨어요.
인; 변명 같지만 먹고 사는 문제를 중요하게 여겨 대우, 두산 등 회사에서 일했어요. 노동자 입장만 생각하다 회사 입장에서 일하다 보니 다소 균형잡힌 생각(이걸 변절이라고 말하는 동지들도 있었지요)을 하게 됬어요.
홍; 늘 힘들게 살다 경제적으로 좀 나아지셨겠어요. 저도 감옥에서 나와 수년간 취직도 못하고 번역이나 하며 겨우겨우 살다가 학원 강사를 하며 돈을 좀 벌어 아내에게 갖다주니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더라구요. 그 후 어떻게 됬어요.
인;짤렸지요. 사실은 평생 무슨 지사처럼 뜻을 내세우며 살다 몇 년간 돈벌이만 하다 보니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살라는 성경 말씀이 생각났어요. 그래서 인생을 정리할겸 그간 모은 돈도 있고 해서 세계일주 여행을 했지요. 2년간 41개국 150개 도시를 다니며 많은 것을 배웠어요(술 마시며 세계일주여행 뒷얘기를 몇시간 동안 재미있게 들었는데 여기서는 생략한다. 직접 한번 가보세요). 여행처럼 좋은 스승은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 학교 아이들 하고도 여기 저기 견학이나 여행을 많이 다니고 있어요. 오늘날 우리 교육의 문제는 앉은뱅이 교육 때문에 생긴거에요. 팔팔한 젊은 아이들을 공부하라고 닫힌 공간 안에 하루 열 시간 이상 앉아 있게 하니 그들이 제정신 이겠어요.
홍;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여행하느라 돈좀 썼겠어요. 여행 다녀 온 후 무얼 하셨어요?
인;원래 가진 것도 없지만 돈도 다 떨어지고 해서 충주댐 근처에 가서 시골교회를 했어요. 교인이 30명 정도 됬는데 제가 제일 젊었어요. 신학교 다닐 때 변선환 선생님께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말씀 듣고 일찍부터 종교다원주의자가 됬고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도 배워 근본주의자도 아니었고 특히 기복신앙을 싫어 했지만 가난한 노인들이 밤중에 와서 가축이 병들었는데 어찌 하냐고 해서 돼지나 소를 위해 기도한 적도 여러번 있었어요. 농사도 도와주고 할머니들과 함께 고스돕도 쳐주고 새벽 기도회도 하고 참 재미 있었어요.
홍;씨알사상이 바로 그런거에요. 잘난척 안하고 그저 함께 하는거지요. 저도 여기 와서 어찌하든 저는 없고 같이 살려고 하는데 아직도 먹물이 덜 빠져 가끔 잘난척을 하지요. 저는 지난 2년간 심도학사에 가서 여러 경전과 종교를 배웠는데 종교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인;동국대 불교대학원에 가서 3년간 선학을 배운 후 느낀게 많았어요. 선불교는 시에요. 시 한편 속에 우주와 인생이 다 있지요. 구구한 설명이 필요 없어요. 기독교는 말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물론 그래도 저는 기독교인이고 그래서 여전히 말이 많지만(웃음, 동감). 지난번 홍선생이 심도학사에서 한 씨알사상 강의를 들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는데 종교란 결국 我相에 빠지지 않고, 씨알사상으로 말하면 껍질을 벗고 맨사람, 알사람으로 살자는 것 아니겠어요. 유영모 선생님 말씀 대로 하자면 ‘없이 있는 나’로 살자는거지요.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작은 내가 죽어 하느님 마음으로 거듭나는 거지요. ‘얼나’란 말 참 좋아요. 심도학사 길희성 선생님의 말로 하자면 초종교적 영성이지요.
홍;씨알사상 전문가 해도 되겠어요. 다음번 씨알강의는 인교장이 하세요(웃음). 종교 얘기 더 하고 싶은데 학교 얘기 듣는게 더 관심이 있어 이만 할께요. 어울림학교엔 주로 어떤 학생들이 오나요?
인;폭력이란 무서운거에요. 어떤 아이는 일진 아이들 15명에게 집단으로 폭행 당해 우울증이 생겨 여기 왔어요. 어떤 아이는 키가 작다고 툭툭치고 다니며 놀리고 집안이 가난해 돈을 뺏으려해도 돈이 없으니 ‘너는 돈도 없냐’며 괴롭혀 여기 왔어요. 어떤 아이는 심한 왕따를 당해 두 번이나 자해를 했고, 어떤 아이는 못생겼다고 놀리며 아이들이 자기를 다 싫어한다고 스트레스로 원형 탈모증에 걸려 여기 왔어요. 어떤 아이는 일학년에서는 자기도 힘께나 쓰는데 3학년에게 맞아 여기 왔어요.------.
홍;저도 고문 받을 때 캄캄한 지하실에 끌려가 두둘겨 맞던 기억이 나네요. 입학 할 때 그 아이들의 상태는 어떤가요?
인; 대체로 마음이 닫혀 있어 말이 적고 표정이 어둡고 불안해 하고 잘 울어요.
홍; 교육은 어떻게 해요?
인;학생들이 들어오면 무얼 가르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여기는 절대 안전하고 자유로운 곳이며 안심해도 좋다는 것을 느끼도록 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지요. 여기서는 저나 선생님들이 하라 하지말라와 같은 명령조의 말을 가능한한 삼가고 아이들의 말을 경청하고 존중하지요. 자기가 존중받고 있다는 것을 알면 선생님들을 신뢰하고 말문을 열기 시작해요.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받아들이고 존중해준다는 확신이 들면 아이들은 선생님들을 신뢰하고 친해져요. 일단 말문이 열리면 시끄러울 정도로 수다스럽고 웃기도 잘 해요. 여기 와서 웃음을 되찾는 아이들을 보면 그처럼 큰 보람이 없어요. 어려선지(모두 중학생들임) 상처가 빨리 치유되는 것 같아요. 물론 여기는 온실 같아 자기들을 세심히 돌봐주고 자유롭게 해서 아이들이 행복해 하는데 다시 이전 학교로 돌아가 지내야 할 학생들을 생각하면 걱정이 되요.
홍;우리 교육의 문제는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할 일이 거의 없고 정해진 것을 수동적으로 따라야 하는데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억압적인 제도는 큰틀에서 보면 폭력 같아요. 심하게 말하면 공부하기 싫은 학생을 억지로 공부시키는 것도 폭력 아닌가요? 수학이 싫어 수학 시간에 잠만 자는 아이를 억지로 깨우고 야단치는 것은 정당한 일인가요? 수학 공부 안하거나 못한다고 인생이 망할가요? 자유로운 어울림학교 얘기를 들으니 갑자기 우리 교육이 걱정이 돼서 오버했나봐요. 그래도 학교인데 뭔가 제재도 하고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요?
인;물론이지요. 그러나 여기 오는 학생들의 특성상 안심교육에 우선을 두고 있어 가능한한 자유를 주지요. 일주일에 한번씩 선생님들이나 교장인 저나 학생들이 모두 평등한 한표를 행사하는 학교회의가 있는데 무슨 안건이든 건의든 자유롭게 하라 했더니 어떤 학생이 수업 끝나면 담배 한 개피식 피울 수 있는 자유를 달라는거에요. 이제 중학생들인데 그런 제의를 해서 너무 놀랐어요. 뭐든 투표로 하겠다고 약속을 했으니 안된다고 할 수도 없어 투표에 붙였는데 부결되긴 했지만 예상 외로 찬성표가 많아 놀랐어요. 가결됬으면 사표 낼뻔 했어요. 이 일을 게기로 뭐든 제안하라는 것에서는 한발 물러났어요.
홍;학교폭력 피해자 학교에 대해 처음 들어보는 사람들을 위해 학교 소개 좀 해주세요.
인; 학교폭력 피해자 학교는 우리나라에서는 어울림학교가 처음이에요. 저희는 경기도교육청에 속해 있고 학교는 강화도에 있어요. 학교폭력 피해자 중학생들을 받아 일년간 위탁교육을 하고, 도중에라도 나아지면 본래 학교로 보내지요. 학생들은 전원 학교에서 기숙하고, 학비 기숙사비 식비 여행비 견학비 등은 모두 무료고 정원은 30명이에요. 위탁교육기관이라 선생님들은 교원자격증은 있지만 비정규직이에요.
홍; 교육 프로그램 소개 좀 해주시지요.
인;학생이 입학하면 정신과 의사의 정밀진단을 받지요. 그리고 선생님들의 세심한 관찰을 통해 아이들을 파악하는 것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이에요. 그리고 불안감을 느끼는 아이들이 많아 아우토겐 프로그램이라는 이완훈련을 통해 스트레스와 긴장을 완화하는 훈련을 해요. 그리고 선생과 학생, 부모와 자녀, 친구간, 이성간의 갈등을 해결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갈등코칭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어요. 그리고 자신을 알고 이웃과의 공감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공감훈련을 하고요. 인간관계를 잘 할 수 있도록 생활예절 교육도 하지요. 여기오면 학생들이 다 인사를 잘하고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현하는 말을 잘하게 되지요. 이상의 훈련은 전문가들이 담당해요.
홍; 말씀 들으니 이런 교육을 하면 아이들이 편안해 지겠어요. 저도 교장선생님 덕분에 여기서 학생들에게 일주일에 두 시간씩 영어 인성 교육을 하는데 영어공부는 인성교육과 관련된 단어나 문장을 중심으로 자기를 사랑하고 이웃과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가르쳐 보니 아이들의 반응이 좋은 것 같아요. 아이들이 절 보면 멀리서도 달려와 반갑게 인사를 해요(자기자랑하는 것이 제 취미에요). 교과교육이나 체험활동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세요.
인; 홍선생 인기가 좋아 교장 자리 뺐기겠어요(웃음--서로 칭찬해 주니 이런 걸 짜고치는 고뭐라 하지요). 교과교육은 교육과정에 정해져 있는 것이라 하는데 여기 오는 아이들의 성적이 약간 낮아 아이들의 흥미 수준에 맞게 재미있게 하려고 애쓰지요. 아이들이 듣지 않는데 선생 혼자 떠들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건 아이들 고문하는 거지요.
저희가 힘쓰는 것은 체험 학습이에요. 아이들에게 가능한한 교실밖에 나가 햇빛을 많이 쬐게 하지요. 다행히 강화는 바다,산, 들판이 모두 있어 자연도 좋고 문화재도 많고 각종 체험시설도 많아 교육하기에 최고지요. 그 동안 마니산에도 오르고, 강화 나들길도 걷고, 자전거도 타고, 남취당 한옥펜션에 가서 한옥 체험도 하고, 경전공부하고 명상하는 심도학사에 들려 길희성박사님 강의도 듣고, 전등사에 가서 구경하고 스님 말씀도 듣고, 강화 미술관도 견학하고, 말타기도 하고, 애견센터에 가서 동물 친구되기 체험도 하고, 제주도에 가서 올레길도 걷고(이거 다 공짜로 해주는거에요), 노인복지시설에 가서 노인들 목욕시키고 이야기 동무도 하고, 웨딩드레스 입고 성인되기 체험도 하고, 연극,영화,공연도 보러 가고, 텃밭 가꾸기도 하고--- 아이들이 해볼 수 있는 일은 다 해보게 했어요. 이러니 다 나은 아이들도 여기가 천국이라 하면서 본래 학교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해서 문제에요. 부모들도 와서 자기 아이가 너무 행복해 하는걸 보니 여기서 계속 있게 해달라고 야단이에요.
홍; 저라도 학교 다니는 아이가 있으면 이리로 보내겠어요. 게다가 다 무료니 얼마나 좋아요. 폭력의 문제는 심각한 것이라서 학교 폭력 피해자들에게 나라에서 이 정도 해주는 것은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해요. 이런 학교가 전국적으로 더 많이 생겨야 겠어요. 인교장이 학교폭력 피해자 학교로는 최초의 교장이시니 책임이 크시겠어요.
인;좋은 점만 보셔서 그렇지 피해자 학생들의 상태는 심각해서 잠시라도 마음을 놓을 수 없어요. 저도 6개월간 거의 집에도 못가고 여기 쇼파에서 잠을 자며 아이들을 돌보고 있어요. 제 아이에게도 이렇게 해본적이 없어요.
어떤 이들은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 하면서 맞을만한 짓을 했기 때문에 맞은거라면서 가해자들을 두둔하는듯한 발언을 하는데 이것처럼 무책임한 주장은 없어요. 물론 따지고 보면 가해자가 그렇게 된 것도 그의 가정이나 학교, 사회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지만 그렇다고 피해자를 비난하는듯한 주장은 크게 잘못된거에요. 피해자의 상처가 얼마나 큰지 알면 그런 소리를 못할거에요.
이제 우리 사회는 이런 사회적인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데서 벗어나 나라가 나서서 공적으로 해결해야 해요. 우리 교육을 개선해 보고자 대안학교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는데 저는 공교육이 이런 요구를 수용하여 학교를 다양화하고 혁신시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학교폭력 가해자를 위한 학교도 피해자를 위한 학교도 더 많이 생겨야 하고 학교폭력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소도 더 많은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홍;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학교폭력 문제는 우리 교육의 가장 아픈 치부지요. 교육은 인격을 세우자는 것이고, 인격은 상호존중과 자율성에서 나오는 것인데 그걸 하자는 학교에서 폭력이 발생한다는 것은 학교가 망해간다는 징조라고 봐야 해요. 심하게 말하면 아이들의 혼을 움직일만한 진정한 스승이 사라져간다는 슬픈 증거지요. 이런 일에 앞장서서 우리 교육의 곪은 상처를 핥아주고 계신 인교장께 씨알의 이름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주시지요.
인;누군가 해야할 일을 하고 있을뿐인데 너무 제 개인에게 초점을 맞춰 얘기를 하는 것 같아 불편한 마음을 숨길 수 없어요. 하지만 학교폭력 문제는 정말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해요. 자기 자식을 학교에 보냈는데 폭력을 당해 학교에 가기 싫어하고 우울증에 걸리고 심지어 자해나 자살을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나는 그걸 자기탓으로 아는 책임의식을 느끼는 부모가 있고 교사가 있고 교장이 있고 장학사가 있고 교육부 공무원이 있고, 정치인이 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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