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기독교의 儀式
기독교도 시간이 흐르면서 독자적인 의식 체계를 갖추어 나갔다.
초기에는 기독교를 유대교의 종교개혁으로 나타난 유대교의 분파라고 생각했으므로 유대교 집회 장소인 시나고그에서 의례를 치루었다.
사도 바울 시대에는 전통적인 유대교의 의식(시나고그는 유대교의 교회로 그곳에서 의례를 베풀었다.)을 본 받았다. 경전의 낭송, 기도, 설교, 그리고 찬송가를 불렀다. 그러나 유대교와는 다른 기독교인만의 의식도 있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모여서 저녁식사를 하는 것이다. 이것은 희생된 예수의 몸과 피를 기념하는 최후의 만찬을 되새기는 행사였다.
기독교 조직이 점차 커지면서 공동 식사는 불가능해졌다. 주의 만찬은 일요일 예배 때 맨 마지막에 시행했다. 이것은 세례를 받은 사람만이 참석할 수 있다.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교리 문답을 공부하고,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그리고 난 후에 세례를 받았다.
기독교도 시간이 흐르면서 체계화되어 가서 1세기 말이 되면 공동체는 한 명의 주교와 장로, 집사로 구성된 장로회가 교회를 운영했다.
주교와 장로는 설교와 강연도 맡았다.
미사 의례 때의 빵과 포도주는 고대사회의 제사의례를 마치고 음식은 나누어 먹는 제사 관습이다. 의례에 포함된 하나의 과정이었다. 우리도 제사를 지내고 난 뒤에 음복을 한다.
기독교만의 특별한 의례가 아니다. 그러나 예수가 설교에서 내 살이요, 피다. 라고 한 말이 로마 사회에 식인 풍습이라는 오해를 불러와서, 박해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