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젯밤에 나 스스로와 화해를 했다. 그 전날 충격적인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 꿈은 나에게 경고를 하고 있었다. 심리분석을 하면서, 내 꿈에는 처음에는 30대 중후반의 남자가, 그 후로 점점 늙은 노인네가 나오기 시작하더니 어느순간 선생님이 의식화가 머지 않았다는 말을 할 무렵엔 그런 케케묵은 노인네는 더이상 잘 나오지 않았다. 대신 아주 어린 10대~20대 초반의 남자 연예인들이 막 나오기 시작했다. 남자라는 등장인물만을 가지고 딱 이거다라고 말하기에는 내가 꿈의 상징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알 수는 없지만, 여지껏 상담하면서 귓동냥으로 들은 내용으로 미루어 짐작했을 때 전날의 꿈은 나에게 빨간불의 워닝을 주고 있었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렇게 케케묵은 노인네가 내 짝으로 다시 나온 건. 이외수나 배철수랑 비슷한, 특히 이외수와 비슷한 몰골의 노인네가(꿈에서는 그보다 더욱 늙은 사람이었고 퀘퀘한 모습이었다.) 나왔는데, 꿈속에서 나랑 그는 결혼했다가 이혼한 사이였다. 그가 갑자기 다시 나타나서 나더러 드라마를 같이 찍잔다. 이런 미친놈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몸은 그의 뜻에 따라지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러다 장면이 바뀌어 나는 내 친구랑 영화를 보러 갔는데, 커플석쪽에 자리하게 되었다. 나는 내 친구가 앉은 커플석에 앉은게 아니라 그 옆 커플석에 앉았다. 내 옆에는 그 노인네가 앉을 것 같아서였다. 친구는 뭔가 못마땅한 듯한 느낌이었지만 말로 표현은 하지 않았다. 나는 주머니에서 리모콘을 꺼냈다. 그 영화관에서 먹힐거라 생각 안했는데 버튼을 눌렀더니 영화가 빨리감기가 되어버렸다. 당황한 나는 다른 버튼들을 빨리 이것저것 눌러봤지만 일시정지? 혹은 꺼짐이었나? 암튼 그런 버튼을 눌러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그냥 리모콘 주인이 나라는걸 숨기기 위해 주머니에 다시 넣고 숨겨버렸다. 근데 친구가 내 손을 끌어당기더니 리모콘을 꺼내 재생 버튼을 눌러줬다. 영화는 그래서 다시 다행히 정상재생이 되었다. 그러는 사이 그 노인네가 회색정장차림으로 내 옆에 와 앉았다. 어깨에 뽕이 이따만큼 높고 당당했다. 꼴배기 싫었다. 그는 다시 소환되었다는 게 뭔가 귀찮은 듯도 했지만 그와 반대로 젠체도 했다. 그러고 있는데 한 여자 피디가 와서(30-40대? 뭔가 커리어적으로 연륜이 있는듯한) 나를 보며 '이번에 이분이랑 같이 드라마 한 편만 찍어요. 딱 한 편만 찍어, 응?'했다. 나를 달래는 듯 강요하는 듯 했지만 나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기만 할 뿐 바로 답이 나오지 않았다. 어쩔줄 모르는 내가 답을 하지 않고 바라만 보자 그녀는 그냥 대답하지 않는 게 yes라고 생각했는지 다시 준비하러 영화관을 나갔다. 나는 옆에 있는 친구에게 '머리로는 yes인데, 가슴은 이상하게 no다.'하고 말했다. 노인네는 '어휴~'하면서 내가 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에 불쾌감을 표시했다. 그리고는 영화 스크린으로 시선이 옮겨갔는데, 그 노인네가 다른 젊은 남자와 수음을 하는 모습이었다. 젊은 남자는 얼마간 그를 상대하더니 뒤를 돌아 그자리를 떴다. 그러자 노인네는 갑자기 혼자서 수음을 하기 시작했다. 흥분한 모습의 노인네는 갑자기 두명이 되더니 네명이 되었다. 모두 뒷모습이었다. 그러다 끝이 났다.
꿈의 정확한 내용을 모두 내가 이해할 순 없지만, 그동안 들은 귓동냥으로 생각했을 때 우선 그 케케묵은 노인네가 쉰내 풀풀 풍기면서 다시 내 꿈에 나타났다는 건, 내가 그 케케묵고 쉰내가 날 정도로 효력이 다한 부성을 잠깐이나마 그리워했다는 것일게다. 그토록 내 스스로 일어서기를 원하고 갈구했는데, 그 언니와의 자리에서 의식화를 실패한 이후, 정말 몸까지 아플 정도로 많이 힘들었다. 치료자가 나를 포기하거나 치료를 중단할 것만 같은 불안감에 잠도 자지 못했고, 나 스스로에 대해 굉장히 자책을 많이했다. 쇼핑몰같이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내가 제일 작은 것 같아 기가빨리는 피곤감에 몇 분 있지도 못할 정도로...그러던 도중에 이런 꿈을 꾼 것이다. 꿈을 꾸기 전날 나는 아빠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했다. 아빠는 항상 나를 사랑했는데 내가 아빠를 오해했다고, 내가 나쁜애라고 생각하면서 많이 울었다. 그러니 이런 꿈을 꿨나보다.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젠장할'이었다. 그토록 노력했고 그토록 힘들었는데, 이제야 조금 나 스스로 균형을 잡을수 있으려나 했는데 여기서 좌절하다니. 처음에는 이젠 다 끝났구만. 난 또 의존하고 말거야...하는 생각에 자책도 많이 하고 걱정을 했다. 하지만, 꿈은 내 무의식을 보여주는 거지만 경고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고 어디서 본 게 생각났다. 나는 여기서 굴하지 않기로 했다. 꿈이 나에게 더이상 넘어오면 넌 정말 예전으로 돌아가고 말거야 하는 경고를 생생하게 보여준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서 어제, 나는 자기 전에 스스로에게 사과했다.
지난날의 너의 아픔 모두를, 그런 생생했던 감정들을 모두 무시하려고 해서 미안해. 진실이야 어찌 되었든, 네가 느낀 모든것들은 다 사실이야. 환경이나 현상이 어찌 되었든, 너의 감정은 100% 진실해. 그게 오해이든 실제이든, 네가 가슴으로 느끼는, 너에게 올라오는 모든 감정들은 지금 실지로 일어나고 있는 사실이니까. 그게 얼마나 유치하든, 그게 얼마나 바보같든 그건 너의 진실이야. 옳고 그르고를 따지지 않을게. 그냥 내가 네 편이 되어줄게. 그동안 얼마나 쓸쓸하고 고독했니. 네가 결핍된 부분이 있어서 그게 현실적으로는 맞지 않을 수 있는 감정이라고 해도,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줄게. 너는 너에게서 올라오는 모든 감정을 누릴 자격이 있어. 너의 행동, 너의 감정 모두 제어하려고 하지 않을게. 실수를 하게 되더라도, 너를 탓하지는 않을게. 그건 너라는 존재가 잘못된 게 아니라, 그저 좀더 적절한 행동 혹은 말의 표현을 배우면 되는 일들이니까. 아직은 좀 어색하지만, 그래도 나 너를 믿어볼게. 다른건 몰라도 너의 감정은 그 어떤것도 억압하려 하지 않을게.....
그리고 나는 그동안 취하지 못했던 숙면을 했다. 꿈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이상하게도, 그냥 난 혼잣말을 했을 뿐인데 두근두근하던 내 가슴이 진정되어갔다. 편한 마음으로 잠든 것 같다. 앞으로 당분간은 하룻동안 있었던 '감정이 올라오는'사건들을 정리하면서 몇분간 나 스스로와 대화하고 격려하고 위로해주는 시간을 가져볼까 한다. 이게 그냥 잠깐의 효과라고 해도, 숙면을 취하게 도와주고 또 내 스스로가 나를 토닥이면서 혹시 어쩌면 내가 어린 시절 받고싶었던, 무섭고 불안했을 때 누군가 날 다독여주고 괜찮다고 말해주기를 바랬던 그런 작업을 하면서 내 안의 어린아이가 안심하고, 좀더 자기 자신에 대해 관대해지고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지난 2주정도의 기간동안 나는 나를 너무 박대했다. 어릴때 어떤 일이 있었던건지 정확히 다 알수는 없지만, 아마도 자아가 성숙지 않았을 시절 남들이 나에게 대하는 태도를 내가 나에게 그대로 적용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 엄마, 아빠는 날 사랑하는 것 같긴 하지만, 글쎄, 나에게는 왜 그게 사랑으로는 느껴지지 않는걸까. 그냥 난 그들의 소유물, 또는 그들의 자존감을 높여주기 위한 어떤 도구정도? 이렇게밖에 생각이 들질 않는다. 겉으로 보면 난 후레자식이겠지만, 차라리 대놓고 날 미워하면 그게 더 속편하겠다. 원없이 모든걸 들어주고, 원없이 모든걸 다 지원해주는데, 그건 정말 겉으로의 사랑이지, 내 감정을 읽어주고 내 감정을 받아주고 들어주는, 뭐 그런걸 겪어보지 못했달까.
엄마 아빠는 나에게 잘해준다. 그런데 사랑해주진 않은 것 같다.
내가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면, 이렇게까지 사랑받기 위해서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을거니까.
나는 아까 엄마와의 대화에서 알수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내가 생각없이 던진 말에 엄마가 발끈 한것이다. '너는 엄마 말을 믿질 않잖아~'하면서 말도 안되는 희한한 근거를 막 갖다 붙인다. 감자만두 여덟개가 날 배부르게 할 줄 몰랐다는 말에, 감자만두 하나가 일반만두 세개분량이란다. 난 그래서 그냥 '에이 뭘 또 무슨 세개씩이야. 두개정도는 되겠다'했다. 정말 그냥 아무생각 없이, 그냥 떠오른 내 생각대로 던졌다. 그러자 엄마가 엄청 발끈했다. '넌 엄마가 말을하면 믿지를 않아. 재봤어 세개 분량인거~! xx아줌마가 지난번에 작은 저울로 재봤다니까.'하는거다. 그때부터 내 가슴은 또 뛰기 시작했다. 뭔지 모르겠는데 엄청 불안해졌다. 아마도 '아, 내가 또 엄마 심기를 건드렸나봐'하는 공포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근데 뭘 또 재봤다는건가. 실제로 재봤을수도 있겠지만 나한테는 엄마 말이 맞다는 걸 나에게 증명하기 위한 무리수 정도로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엄마는 가끔 자기 말에 누군가 반박을 하면 자신의 의견이 아닌 다른 사람의 말을 끌어다가 '그랬다고 했어~'기법을 쓴다. 자신의 의견을 내세울 자신이 없거나 자신의 의견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아니, 뭐 믿고 안믿고가 아니라 그냥 난 내 생각을 얘기한거야~!'하고 말았지만 가슴은 심하게 뛰기 시작했고, 목소리가 떨릴 지경까지 심하게 뛰었다. 그리고는 엄마랑 생리통 얘기를 하는데, 내가 자궁에 혹이나 용종같은게 있으면 생리통이 심하대~이러면서 얘기를 하는데 엄마는 자꾸 내 얘기를 부정한다. '생리통 있다고 무슨 혹이 있어.' 그래서 나는 '아니~생리통 있는 사람이 모두 혹이 있다는게 아니라, 혹 있는 사람은 생리통이 있을수밖에 없대.'했다. 그랬는데 자꾸만 아니란다. 자꾸 부정한다. 아 너무 짜증났다. 계속 내 얘기는 아니고 이러이러한거라며 엄마 주장만 펼친다. 아..............미치겠다. 뭐 별다른 근거도 없이 그냥 아니란다. 네 의견은 아닌거고 내 의견만 맞는거고. 아 이제는 불안한 가슴이 화로 번진다. 두근댐이 심해지고 화가 난다. 좀 얘기를 들었을 때 타당한 말이면 그래? 하면서 받아주기도 하고 그런거지. 무조건 넌 아니고 나는 맞댄다. 그리고 뭐 모르는게 없다. 뭐 모르면 큰일나나? 아.......자기 말이 맞다는 걸 꼭 증명해야만 울엄마는 기가 사나보다.
울아빠는 나와 비교해서 자신의 우월감을 자꾸 으시대고 싶어 하는 것 같고. 내가 뭐라도 좀 '이런 거 아니야?'하면서 내가 생각한 거에 대해 이야기하면 울엄마는 꼭 '그래, 너 잘났어요.'한다. 사람들이 잘난 건 자신들의 열등함을 반증하기때문에 싫어하긴 하지만, 내가 그냥 내 생각 얘기한건데 뭐 그래 잘날게 있나 싶다. 이거는 겸손병인건가? 아.....모르겠다.
아무튼, 얼토당토않는 고집을 부려가면서 자기 의견만을 내세우려고 할 때가 가끔 있는데 그럴때마다 엄마가 내 엄마지만 정말 밉고 싫고 화나고 짜증난다.
그런데 여기서. 엄마가 기분이 상한것처럼 보였을 때 느낀 나의 불안감은 뭐였을까. 정말 심했다. 심장이 터질것같았다. 오늘은 뭐랄까, 나랑 화해하고 의식적으로도 자꾸 나 스스로에게 제제를 가하지 않기로 끊임없이 노력했기 때문인지 평온하고 심지어는 기분까지 좋기도 한 하루였는데. 그렇게 심장이 뛸 때 들었던 생각은...음....'아, 내가 또 잘못 말한건가?, 아, 내가 또 엄마 기분을 상하게 한 건가?, 아, 내가 그렇게 말해서는 안되는 거였나?'등등...뭔가 또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해서 내가 나쁜아이라는 생각이 그냥 반사적으로 들었던 것 같다. 내가 나쁜 짓을 했다는 생각을 하니까 심장이 막 뛰는 것 같다. 왜, 나쁜 짓을 하면 심장이 뛰지 않나. 내 의견 그냥 얘기한건데 그게 나쁜 짓이라니. 남의 기분을 상하게 했기 때문에? 하지만 난 의도적이지 않았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어도 남의 기분은 상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건 그사람의 몫이라고 했다. 같은 이야기를 들어도 기분 나빠하는 사람이 있고 괜찮은 사람이 있는것처럼. 엄마는 그런 이야기가 기분이 나쁜 모양이다. 자신의 말에 반박하거나 하는? 그런 태도가.
상담가서 선생님이랑 이런 것에 대해 얘기를 좀 나눠보고싶다. 내가 올바르게 생각하고 있는건가. (이것조차도 올바라야한다는 병인가?하도 습관적으로 이뤄지는것들이 많아가지고...ㅠ_ㅠ)
음...나쁜짓을 했다는 생각이 내 심장을 뛰게 만든다. 그런것도 같다.
나에게 떠오르는 생각을 그냥 얘기한 게 나쁜짓이라면 사람들을 만나는게 참 힘들겠다. 눈치를 봐야하니까 말이다. 난 지금껏 이렇게 살아온거다. 엄마 아빠 기분 망치고 싶은 어린아이가 이세상에 어딨겠어. 엄마는 작은거에 발끈하고 아빠는 내가 본인에게 감정표현하는 것(부정적인)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 같고, 본인의 통제하에 있지 않으면 불안을 느끼니까 나의 행동을 많이 자제시켰을 것이다. 나는 근데 본인의 통제하에 있기에는 성격이 수더분한편은 못되어서 힘으로 눌렀을거다. 다신 사랑을 안줄듯이 행동하고.ㅎㅎ
나는 아빠의 틀, 아빠의 통제를 벗어나는 것=아빠의 기분을 망치는 것, 아빠를 슬프게 만드는 것=아빠에게 버림받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것이 나에게 있어서는 '나쁜짓'이라고 규정한건 아닐까.
엄마의 예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머리로 아는 것은 가슴으로 쉽사리 전달되지 않는다. 감정으로 느껴야 무의식이 해소되니까...
그렇다고 해도 의식적으로 나와 대화하는 시간을 갖고, 나의 하루를 돌이켜봐주고, 그 안에서 일어났던 인상적인 감정들에 대해 나 스스로와 얘기하고 괜찮다고 도닥여주고 그런 감정을 느끼는 건 정상이라고, 넌 꽤 좋은 아이라고 용기를 주고 힘을 주겠다.
뭔가 잘못 생각한 게 있다고 해도 그 생각 자체를 나무라지 않고, 그렇게 생각했구나. 그렇게 느꼈구나. 네 입장에서는 그럴수도 있었겠다. 그냥 이렇게 알아주련다.
무의식의 의식화? 이게 언제쯤 이뤄질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여러 방면으로 핀치에 몰려있는 나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것이 우선인 것 같다. 너무 빨리 모든걸 해내려고 하지 않고, 나에게 조금 더 여유를 주고, 내가 내 스스로와 먼저 친해지고 편을 들어줄 수 있게 되다보면 저건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사람은 자기의 그릇에 담길 정도의 일만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하니까. 내가 그토록 보기 두려워하는 무의식의 의식화작업이 이루어지려면, 내 그릇을 견고하고 여유있게 해두어야 될 것 같다. 그릇이 견고하고 여유있게 되면, 의식화도 두려움을 무릅쓰고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너무 재촉하지 않으련다.
천천히.
나는 너를 응원한다.
포기만 하지 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