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과 은총-시몬 베유
전후 프랑스와 영국의 사회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던 시몬 베유의 저작 중 하나로 1943년 처음으로 출간된 이래 오늘날까지도 독서계의 ‘베유 효과’를 이어온 대표작이다. 이 책은 생전에 그녀가 남긴 노트를 사상적 동지이자 벗인 귀스타브 티봉(1903~2001)이 발췌하여 엮은 것으로 인간 조건에 대한 시몬 베유 특유의 철학적 사유와 종교적 통찰이 단상의 형식으로 드러나 있다.
글을 쓰는 데 기교를 부리지 않고 유행에도 철저히 무관심했던 시몬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두는 문제들의 핵심을 거침없이 파헤쳤다. 이 책에서 시몬은 세상의 모든 것이 중력이라는 필연성의 영향 아래 놓여 있으며 초자연의 빛인 은총을 통해서만 구원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은총이란 지성과 신앙이 더 이상 분리되지 않게 해 주는 초자연의 빛이다. 이 책을 통해 특정 종교인으로서 신앙심을 고백한 글이라기보다는 인간의 근본적 삶의 조건에 대한 탐구와 그 극복을 위한 철학적 사유의 기록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시몬 베유(Simone Weil)
시몬 베유(1909~1943)는 프랑스 철학자로 파리의 유대계 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났다.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교수자격시험에 합격하여 고등학교 철학교사로 부임했다. 이때부터 베유는 『프롤레타리아 혁명』 등의 잡지에 글을 쓰기 시작하고, 지역 노동자 파업과 광부 노동조합 등을 지원하며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한다. 1934년에는 학교를 휴직하고 직접 노동 현장에 뛰어들어 파리 알스톰 전기 회사, 앵드르의 제련소, 파리 근교의 르노 자동차 공장 등에서 일한다. 이 시기 공장에서의 일과를 일지 형식으로 기록한 「공장 일기」 는 사후에 다른 글들과 함께 『노동의 조건』으로 출간된다.
1936년 에스파냐 내전이 일어나자 바르셀로나로 가서 무정부주의자들의 부대에 합류한다. 하지만 한 달 반 만에 사고를 당해 때 이른 귀국을 하는데, 이때의 경험은 짧지만 그녀의 인생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1942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망명길에 올랐으나, 프랑스 레지스탕스에 가담하기 위해 홀로 런던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건강상의 문제와 유대인 신분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후방에서 투쟁을 지원해야 했다. 1943년 영국 애슈퍼드의 요양원에서 영양실조 및 결핵 후유증으로 생을 마감했다.
베유의 글은 사후에 책으로 묶여 나오면서 점차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귀스타브 티봉이 베유의 아포리즘적인 글 가운데 선별해 출간한 『중력과 은총』은 강력한 지지 혹은 비판이라는 상반된 반응을 이끌어내며 숱한 화제를 낳았다. 그 밖의 저서로 『뿌리내림』 『노동의 조건』 『신을 기다리며』 『억압과 자유』 등이 있다.
“창조는 사랑의 행위이며 영원하다. 매순간 우리의 존재는 곧 우리에 대한 신의 사랑이다. 그러나 신은 오직 자기 자신을 사랑할 뿐이다.”
“아무런 위안이 없는 불행을 겪어야 한다. 위안이 있어서는 안 된다. 어떠한 위안도 나타나면 안 된다. 그럴 때 비로소 형용할 길 없는 위안이 위로부터 내려온다.”
“선행을 한 후에(혹은 예술작품을 만든 후에) 느끼는 자기만족은 고급의 에너지가 격하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른손은 왼손이 하는 일을 몰라야 한다.”
“우리가 신에 다가갈 수 있게 하지 못하는 학문은 가치가 없다. 그렇지만 어떤 학문이 우리를 신에 다가가게, 하지만 잘못 다가가게 한다면, 즉 상상의 신에게 다가가게 한다면, 그것은 더 나쁜 일이다.”
“우상숭배는 인간이 절대적인 선을 갈망하면서도 초자연적인 주의력이 없거나 주의력이 발휘되길 기다리는 인내심이 없기 때문에 생겨난다.”
“정열 속에는 언제나 경이로운 점이 있다. 도박을 하는 사람은 성자들처럼 밤을 새우고 단식을 하며, 때로는 예지력을 갖기도 한다. 도박꾼이 도박을 사랑하듯 신을 사랑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신과 초자연은 형체 없이 우주 안에 숨어 있다. 그렇게 영혼 속에 이름 없이 숨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상상적인 것에다 신과 초자연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인간이 모든 것을 잃어버린 이 시대보다 더 나은 시대에 태어날 수는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