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왕산 자락 대전사 앞 석탑에서 ’슬픈 모나리자‘라고 명명한 그 불상을 만난 것은 2010년 무렵이었다. 석탑을 보던 내 눈에 섬광처럼 무언가가 스치고 지나갔고, 카메라로 확대하자 이런 모습의 불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때 나는 유한준이 석농石農 김광국金光國의 수장품에 써주었던 글이 떠올랐다. “앎이란 형기刑器와 법도法度를 차치하고, 먼저 심오한 이치와 그 가운데 숨어있는 아득한 조화에 통달하는 것이다” 유홍준 선생은 그 말을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건 전과 같지 않느니”라고 풀어서 말했는데, 나는 그때 그 순간에 그 불상을 ’슬픈 모나리자‘라고 명명했다. 그래서 서울로 강연을 가는 길에 미션(mission)을 주고서 그 불상을 찾는 사람에게 오천 원과 책 한 권을 주겠다고 말했는데, 아쉽게도 그 누구도 그 불상을 찾지 못했다. 최숙희, 김명희 도반이 찾은 불상도 아름다웠지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기억하며 사랑하는 미소가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의 미소>다. ‘“네 영혼은 지상의 아름다움을 통하지 않고서는 천국에 이르는 계단을 찾을 수가 없다.”르네상스를 열었던 미켈란젤로의 말인데, 그런 의미에서 <모나리자 미소> 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미켈란젤로가 추구한 ‘천국의 계단‘을 상상하면서 어느 누구도 모방할 수 없고, 찬탄할 수밖에 없는 오묘한 <모나리자>의 미소를 그린 것은 아닐까? “네가 세상을 보고 미소를 지으면 세상은 너를 보고 함박웃음을 짓고, 네가 세상을 보고 찡그리면 세상은 너에게 화를 낼 것이다.” <정글북>의 작가 러디야드 키플링의 말을 떠올리면서 바라보는 대전사의 불상은 깨지고 마모되어 그 본래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알듯 모를듯한 미소와 슬픔이 서린 모습으로 천년의 세월을 비바람 눈보라 맞으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 가끔씩 내 마음을 슬픔과 기쁨으로 가는 길로 인도해준다. 이렇게 투박한 돌에다가 아름다운 부처, 슬픈 모나리자’를 새긴 석공은 누구였으며, 어느 때 이렇게 상처를 입게 되었을까? 가만히, 가만히 바라보는 내 마음의 ‘슬픈 모나리자,’ 조선 여인네의 다소곳하고 수줍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나리자. 지금도 어둠 속에서 그 아름다움을 밤을 노래하는 온갖 사물들과 나누고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