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홍수개의 흉악한 공격 대상이 될 옹기장수 아내를 잘 방어해 보살피고 그 다음은 어떻게 그 흉악한 남편 홍수개의 버릇을 효과적으로 공격해 개과천선(改過遷善)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인가? 그것을 고민해야했다.
그러나 집안에만 갇혀 살아온 정씨부인에게 남편 홍수개의 못된 버릇을 고칠 특별한 그 누구의 원군(援軍)이 따로 있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남편의 일인데 여기저기 그 포악한 흉허물을 까발려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은 누워서 침 뱉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누구 말도 듣지 않고 오직 자기 욕망대로 휘두르며 살아온 홍수개에게는 일가친척의 웃어른을 동원한 여타의 방법이나 타이름은 오히려 역효과만 날 것이라는 것을 정씨부인은 잘 알고 있었다. 만약 그렇게 했다면 홍수개는 당신이 뭔데 남의 일에 간섭을 하느냐고 악다구니를 쓸 것이었고 정씨부인을 향해 온갖 타박과 심지어는 폭력까지도 서슴지 않을 것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정씨부인의 머릿속에 순간 시아버지 홍진사의 말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아들 홍수개의 망나니짓에 결국 마음의 병을 얻어 자리에 누워버린 홍진사는 며느리에게 그것을 몹시 미안해했다.
“내가 자식을 잘못 길러 너를 고생시키는구나. 미안하다. 아가야!”
밥상을 들고 가거나 탕약을 끓여 들고 가면 홍진사는 며느리에게 늘 그렇게 말했다. 정씨부인은 며느리로서 시아버지 홍진사에게 지극한 효성을 다했던 것이다.
그렇게 세 철을 꼬박 병석에 누워있던 홍진사가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깊어진 어느 날 며느리 정씨부인이 탕약을 들고 가자 그날따라 자리에 일어나 앉아 지필묵을 꺼내놓고 붓을 들고 글씨를 쓰려하고 있었다.
“아니 아버님! 편찮으신데 자리에 누워있지 않고요?”
정씨부인이 말했다.
“어 어흠! 내 너에게 긴히 이를 말이 있어 그렇다. 내가 저런 자식을 얻은 것도 다 나의 과보(果報)가 아니겠느냐! 젊어 철없을 적 뉘 집에 핀 예쁜 꽃에 현혹되어 잘못 꺾은 죄가 결국 이런 결과를 낳았지 않느냐 싶다. 수신제가(修身齊家)하여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하라고 닦을 수(修)자를 써서 수개라고 지었건만 어만 것만 닦고 다니니 참으로 그것도 내 욕심이었다. 수준이 낮은 일반속인들이야 재(財-돈), 색(色-여자), 명(名-명예), 식(食-밥), 수(壽-수명)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더냐! 이런 욕심만 많은 자가 용케 재주가 좋아 세상에 나가 시험에 합격해 자리에 앉으면 제 지위나 높이고 백성들이나 핍박해 살상하고 부정부패로 세상이 지극히 혼탁해지는 법이다.
사람은 모름지기 안분자족(安分自足)하는 마음으로 안빈낙도(安貧樂道)를 수양하며 초야에 묻혀 욕심 없이 살아가는 그런 경지가 있다는 것을 내 요즘에야 겨우 깨달아 알았구나! 세상에 나가 뜻을 펼치는 것보다도 그런 경지가 더 어렵고 힘든 것이었어! 그러기에 공자가 제자들 중 세상일에 유능한 자공(子貢)보다도 욕심 없이 자신을 수양하며 초야에 묻혀 살줄 알았던 안회(顔回)를 더 높이 산 것이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