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15일 연중 제32주간 수요일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11-19
1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12 그분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13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14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15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16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18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19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영광이 하느님께 영원히
기도할 때나 미사를 드릴 때에 언제나 주님의 자비를 간구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런데 기도를 다 바치고 나서 주님께서 과연 내게 자비를 베풀어 주셨는지 생각하면 주님께서 유독 내게는 자비를 베풀어 주시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이 있습니다. 주로 내가 원하는 것은 하나도 들어주시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기도는 더 잘 들어주시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외면하고 계시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것입니다. 이 욕심과 불만이 계속 나를 붙잡고 있고 내 기도는 주님께서 들어주시지 않는다는 생각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와는 전혀 다르게 다른 사람들은 내가 기도하면 하느님께서 아주 잘 들어주신다고 나에게 기도를 부탁하기도 합니다. 기도부탁을 받기도 하고 기도해 달라고 묵주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도하면서도 내가 무엇을 기도했는지 분명하게 지향을 두고 기도했는지, 기도할 때에 주님의 자비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는지, 기복기도에 빠지지 않았는지, 기도의 결과가 금방 나타나는 것만을 원하지 않았는지, 주님께서 기도를 잘 들어주실 것인지 의심 하였는지, 염경기도만 형식적으로 반복적으로 바치지 않았는지, 내 욕심에 빠져 주님을 내 방식대로 몰고 가는 기도에 열중하지 않았는지 여러 가지를 반성도 해 봅니다.
5년 전 나는 췌장암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빠져 있었습니다. 내가 자주 가는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이 혈액검사에서 췌장암 수치가 아주 급격하게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검사를 거쳐 담석이 염증을 일으켜 췌장암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불러온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근 한 달 동안 아주 두려움과 근심에 싸여 있었습니다. 노랫말에 있는 것처럼 ‘평범한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벼랑 끝에 서 봐야 알 수 있는 것’처럼 담석은 걱정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혼자 걱정 중에 있을 때 나는 정말 정성을 다하여 기도하고 있는지 반성해 봤습니다. 그리고 췌장암이 아니라고 선생님이 얘기해 주셨을 때 또한 주님께 감사기도를 드리지 않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3년 전 나는 다시 전립선 암으로 의심되어 조직검사까지 받았습니다. 다시 큰 수선은 떨지 않았으나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몇 달 동안 마음을 끓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암이 아니라고 판정을 받았을 때 다시 나는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지도 않고, 또 감사기도도 하지 않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정말 엉터리로 기도하고 산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기도문을 외우고 배울 때에 가장 친숙한 기도는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 그리고 영광송이었습니다. 영광송은 아주 짧은 기도입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이 기도를 언제나 입버릇처럼 바치고 있지만 그 내용을 음미하면서 기도하지 못하고 그 기도의 함축적이고 큰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그냥 외워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하느님께 영광을 영원히 드립니다.”라는 내용도 그냥 지나치는 기도로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 기도는 하느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최고의 기도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리는 것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나병환자 열 명을 고쳐 주시고, 감사의 인사는 외국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마리아 사람 한 명에게만 받으십니다. 예수님은 감사의 인사를 이렇게 표현하십니다.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오는 것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영광과 찬미를 어떤 방식으로 드리느냐는 것이 오늘 예수님의 말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그는 하느님의 자비를 의심 없이 믿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확신하였고, 그 확신을 가지고 예수님께 감사의 인사를 한 것이고, 그의 감사의 인사는 하느님께 영광을 드린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천형(天刑)이라고 생각하는 나병을 치유 받았고, 사제에게 깨끗해진 몸을 보여줌으로써 사회생활에서도 완전한 복귀를 인정받았고, 영혼도 완전히 치유 받은 것입니다.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 믿음의 완전한 고백이며, 감사의 완전한 찬미가 된 것입니다.
나는 어떻게 영광송을 바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입에 발린 기도가 아니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신다는 것에 의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내 믿음이 너무 얄팍하다는 생각에 마음이 머물고 있었습니다. 나병의 치유에 너무도 기쁜 나머지 펄펄 뛰어 가면서 주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지도 못한 아홉 사람 중에 내가 있음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다시 마음에 새겨집니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임금들아, 들어라. 지혜를 배워라.>
▥ 지혜서의 말씀입니다. 6,1-11
1 임금들아, 들어라. 그리고 깨달아라. 세상 끝까지 통치하는 자들아, 배워라.
2 많은 백성을 다스리고 수많은 민족을 자랑하는 자들아, 귀를 기울여라.
3 너희의 권력은 주님께서 주셨고 통치권은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주셨다.
그분께서 너희가 하는 일들을 점검하시고 너희의 계획들을 검열하신다.
4 너희가 그분 나라의 신하들이면서도 올바르게 다스리지 않고
법을 지키지 않으며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5 그분께서는 지체 없이 무서운 모습으로 너희에게 들이닥치실 것이다.
정녕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들은 엄격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6 미천한 이들은 자비로 용서를 받지만 권력자들은 엄하게 재판을 받을 것이다.
7 만물의 주님께서는 누구 앞에서도 움츠러들지 않으시고 누가 위대하다고 하여 어려워하지도 않으신다.
작거나 크거나 다 그분께서 만드셨고 모두 똑같이 생각해 주신다.
8 그러나 세력가들은 엄정하게 심리하신다.
9 그러니 군주들아,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을 듣고 지혜를 배워 탈선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10 거룩한 것을 거룩하게 지키는 이들은 거룩한 사람이 되고 거룩한 것을 익힌 이들은 변호를 받을 것이다.
11 그러므로 너희가 나의 말을 갈망하고 갈구하면 가르침을 얻을 것이다.
축일11월 15일 성 알베르토(대) (Albert the Great)
신분 : 주교, 교회학자
활동 연도 : 1200-1280년
같은 이름 : 알버트, 알베르또, 알베르뚜스, 알베르투스, 앨버트
성 알베르투스(Albertus, 또는 알베르토)는 독일 남부 슈바벤(Schwaben) 지방에 있는 도나우 강가의 작은 도시인 라우잉겐(Lauingen)에서 그 지방 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1223년 이탈리아의 파도바(Padova) 대학에서 법률을 전공하던 그는 당시 도미니코회 총장이었던 복자 작센의 요르단(Jordan, 2월 13일)을 통해 성소를 깨닫고 가족의 온갖 반대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도미니코회에 입회했다. 쾰른(Koln)에서 수련 기간을 보내고 신학을 전공한 성 알베르투스는 1220년대 말 힐데스하임(Hildesheim)을 비롯하여 프라이부르크(Freiburg), 레겐스부르크(Regensburg) 그리고 스트라스부르(Strasbourg)의 도미니코회 수도원에서 신학을 강의했다. 쾰른으로 돌아올 즈음 그의 지식과 강의에 대한 명성은 날로 치솟고 있었다.
1243년 혹은 1244년에 파리 대학에서 교수 자격을 획득한 그는 1245년부터 파리 대학의 교수로 강의하였다. 이 시기 그의 제자로는 훗날 위대한 신학자가 된 성 토마스 데 아퀴노(Thomas de Aquino, 1월 28일)가 있었다. 그는 성 토마스의 천재성을 일찍 알아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토마스는 지적으로 나의 좋은 동료이자 친구이다.” 이말 그대로 성 토마스 데 아퀴노는 1274년 선종할 때까지 그와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동료로 지냈다. 여러 수도회 대학과 파리 대학에서 성경과 신학을 강의하던 그는 1248년 도미니코회가 쾰른에 ‘수도회 대학’(Studium Generale)을 설립할 때 초대학장으로 임명되었다. 여기서 그는 신학뿐만 아니라 철학으로 강의 영역을 넓혀갔다. 철학과 교수로서 그는 전공자들을 위한 각종 주해서를 학생과 교수에게 제공하는 등 왕성한 학문 활동을 전개했고, 동시에 “아리스토텔레스 전집”(Corpus Aristotelicum)의 강의와 체계적 주석에도 큰 공을 들였다.
1254년에 성 알베르투스는 독일 관구의 관구장으로 임명되어 로마에 갔는데, 그곳에서 생타무르(Saint-Amour)의 빌리암(William)의 공격에 대항해 탁발 수도회를 옹호하는데 진력하였다. 빌리암은 그 후 교황 알렉산데르 4세(Alexander IV)에 의해 단죄되었다. 그는 로마에 머무는 동안 교황의 신학 고문으로서 봉사했다. 성 알베르투스는 1257년 관구장직을 사임하고 학업에 전념하다가 1259년 타렌타시아의 베드로(Petrus)와 성 토마스 데 아퀴노와 더불어 도미니코회의 새로운 교과 과정을 작성하였다. 1260년 그의 소망에 반해 레겐스부르크의 주교로 임명되었으나 2년 만에 사임하고 쾰른으로 돌아와 제자들을 가르치며 저술 활동에 전념했다. 그는 1274년의 리옹(Lyon) 공의회에서 크게 활약했는데, 특히 로마와 그리스 교회의 일치에 공헌하였다.
그는 또한 1277년 파리의 스테파누스 탕피엘 주교와 그 대학의 신학자들에게 대항하여 성 토마스 데 아퀴노와 그의 입장을 옹호한 사건으로도 유명하다.
1280년 11월 15일 쾰른의 도미니코회 수도원에서 선종한 성 알베르투스는 현재 쾰른의 성 안드레아 성당 지하 묘지에 안치되어 있다. 살아생전 성 알베르투스는 소위 만물 박사로 통한 듯하다. 그의 저서에는 성경과 신학은 물론 설교학, 논리학, 형이상학, 윤리학, 물리학까지 두루 섭렵한 논문들이 많이 있고, 관심 분야 또한 천문학, 화학, 생물학, 동물학, 지리학, 지질학 그리고 식물학까지 확대되었다. 그러나 그는 특히 인간 이성의 자율성과 감각-경험으로 얻는 지식의 유효성 및 조직 신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가치 확립 등에서 더욱 돋보였다. 그의 제자인 성 토마스 데 아퀴노는 이런 종합을 완성한 신학자이다. 이렇듯 당시 모든 학문을 섭렵한 그는 ‘보편적 박사’(Doctor universalis)라고 불렸으며, 그의 학문 영역이 방대하다 하여 이름 앞에 ‘위대한’ 또는 ‘큰’(大)이라는 뜻의 ‘마뉴스’(Magnus)라는 칭호가 붙여졌다. 성 대 알베르투스는 1622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5세(Gregorius XV)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931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교회 학자 칭호와 더불어 성인품에 올랐다. 그는 특히 자연 과학자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오늘 축일을 맞은 알베르토(대) (Albert the Great)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