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 꽃대를 꺾는 어머니
나는 요즘 수선화(水仙花) 때문에 조금은 속상하다. 어머니가 또 수선화 꽃대를 자르고, 부엌칼로 잎 줄기를 썰어서 멍석 위에 널고, 봄볕에 말리기 시작하셨다. 하루에도 몇 차례나 꽃대를 자르고 잎사귀를 말리셨다.
"그거 왜 꺾었어요?"
"내가 먹으려고."
"그거 독이 있어요."
"아녀. 왜 무릇이 독이 있어? 예전부터 내가 먹었던 거야."
"아니어요. 수선화예요. 무릇은 다른 거예요. 무릇은 8 ~ 9월에 꽃 피워요. 내가 무릇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여 드릴 게요."
"싫다. 내게는 무릇이여."
수선화 알뿌리를 무릇이라고 착각하는 어머니. 사물에 대한 분별력과 판단력이 흐려지고, 기억력조차 감퇴해서 내가 설명을 해도, 거듭해서 주의를 드려도 어머니한테는 씨알머리도 안 먹히는 잔소리이었다. 설혹 이해를 하셨다 해도 금세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는 엉뚱한 일을 반복하셨다.
"어머니. 예쁜 사람이 있으면,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한번 먹여봐요. 나는 아니고요."
"나한테는 예쁜 사람이 없다."
자신의 잘못된 인식과 착각을 인정하지 않으셨다.
내가 키우는 수선화는 맨땅의 추위 때문인지, 요즘 늦게서야 노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포기 나누기를 하지 않은 곳에서는 노란 꽃이 무더기로 피었고, 포기 나누기를 한 곳에서는 이제야 네댓 개의 꽃대가 뾰족이 올랐다. 바깥마당 화단, 은행나무 아래, 길섶, 마을 안길 등 내가 수시로 알뿌리(인경 鱗莖)를 심은 곳에서는 앙증맞게 꽃대가 올라왔다.
수선화는 봄에는 그럴듯하게 꽃을 피우며, 꽃송이 모양새가 크고 예쁘다. 그러나 알뿌리에는 독성물질이 있어서 일반인들은 식용하지 않는다. 전문가라야 알뿌리를 법제(法製)하여 한약재로 사용하거나 식용할 수 있다. 나는 수선화 잎새와 꽃대를 먹어본 적이 없고, 실험으로 음복한 사실이 없으므로 수선화과(水仙花科)의 알뿌리에 겁을 낸다.
나는 지칠 법한데도 올봄에도 두어 차례 포기 나누기를 했다. 무더기로 꽃 피는 것도 멋이 있지만 풀이 덜 나도록 길섶에 심는 것도 하나의 슬기와 지혜이다. 이들 식물의 알뿌리는 서로 엉겨 붙어서 다른 잡초가 끼어들 수가 없도록 꽉 쩐다. 친환경 야생식물이 조금씩 늘어나는 재미로도 나는 들풀 산풀의 포기 나누기를 지속한다. 울 안팎과 길가 주변에 심은 수선화. 천 개도 훨씬 넘는 꽃이 피기를 바란다. 먹을거리보다는 들여다보는 즐거움이 훨씬 더 크니까.
어머니한테는 보는 즐거움보다는 먹어야 한다는 게 더욱 절실한가 보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 2월 19일(음력 섣달그믐)에 태어나서 가난했던 옛 시절의 증인이 되는 어머니이다. 고향 고뿌래* 마을에서는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어머니한테는 먹을거리를 장만해서 갈무리하고, 보존하는 게 습관이 되었나 보다. 각종 푸성귀를 뜯어다 말려서 먹거리를 장만해야 한다는 인식이 머릿속에 깊게 새겨졌다고 본다. 독성이 있는 수선화 꽃대조차도 모조리 꺾으려고 하셨다. 여름철에 피는 원추리 꽃대도 해마다 수난을 당하던 터였다.
재작년인가? 시골집 안팎 구석과 창고 안에 쌓아둔 포대(包袋)자루와 가마니 몇 개. 푸성귀 이파리와 줄기대 말린 것을 모조리 꺼내서 어머니 몰래 위밭에 내버렸다. 늙은 어머니한테는 묵나물이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풀더미였다. 하도 오랫동안 건조가 안 되어서 곰팡이만 잔뜩 슬고, 묵고 삭아서 건드리기만 해도 부수러져 떨어지는 풀더미를 때때로 쏟아 버려야 했다. 이런 작업도 때로는 고충이며 고역이었다.
모든 것이 아쉽다. 어머니의 기억력 감퇴가 더디 진전되었으면 싶다. 하나뿐인 아들이 야생식물을 좋아해서 재미로 키우는 것을 간접적으로 방해하지 않았으면 싶다. 어머니가 정신이 퍼뜩 들어서, 먹지도 못하는 먹을거리를 자꾸만 장만하지 않았으면 싶다. 사리분별이 또렷했던 어머니의 새댁시절 만큼은 아니어도 노년기의 기억력이 조금이라도 되살아났으면 싶다.
2011. 4. 10. 일요일.
* 곶뿌래 : 충남 보령시 웅천읍 구룡리 화망(花望)
* 수선화 : 알뿌리는 생즙 내어 부스럼을 치료, 꽃은 향유(香油)를 만들어 풍을 제거, 발열·백일해·천식·구토에 이용(약용)
* 무릇 : 알뿌리는 삶아 졸이거나 데쳐서 먹고, 어린 잎줄기는 데쳐서 우려내어 초고추장이나 된장에 무쳐 먹음(구황작물 救荒作物)
사진은 인터넷으로 검색.
용서해 주실 게다.
독자의 식별을 위해서 사진을 활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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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보문학> '2024년 2월호'에 올릴 산문일기를 고르다가 위 제목의 글을 보았기에 글 다듬고, 사진을 겻들인다.
내 시골집을 에워싼 텃밭 세 자리, 위밭 아랫밭 사이로 마을 안길을 냈기에 밭 두둑 근처에는 나무와 야생식물을 잔뜩 심었다.
길 가다가 들여다볼 수 있도록.
많은 종류의 화목과 화초류를 구해다가 심곤 했는데 .. 아쉽게도 함께 살던 어머니가 만95살에 저너머 세상으로 여행 떠나셨기에 나는 혼자서 시골집에서 살기가 뭐해서 그참 서울로 올라와서 지금껏 산다.
텃밭 세 자리에 있던 과일나무 묘목, 꽃나무 묘목들은 제멋대로 웃자라서 하늘을 가리고, 키 작은 야생화들은 저절로 도태되어 사라졌고, 대신에 억센 잡초만 가득 찼다.
위 '무릇'은 작은 알뿌리 식물이다. 잎줄기와 알뿌리를 삶고 데치고, 물속에 오랫동안 담가서 독기를 빼내면 훌륭한 먹을거리가 된다. 엿처럼 고와서 맛있게 먹고....
<한국국보문학> 월간지에 내는 글..
나는 '고향 이야기, 어머니 이야기' 위주로 글을 낸다.
나한테는 아주 소중한 고향이며, 한 분뿐인 어머니이기에.
이런 글을 올리면서 옛 고향을 그리워하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린다.
2024. 1. 9. 화요일.
오늘 아침에는 흰눈이 내렸다.
내 고향 함석집은 어찌 되었을까? 다소 외져서, 나무로 둘러싸인 함석집 지붕과 마당에도 흰눈이 잔뜩 내려서 싸였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