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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이구설(誡以口舌)
(남을) 시비하거나 헐뜯는 말을 경계하라.
誡 : 경계할 계(言/7)
以 : 써 이(人/3)
口 : 입 구(口/0)
舌 : 혀 설(舌/0)
1. 춤추는 혀와 그 위험성
길거리에 보면 정치인들의 현수막이 난무한다. 같은 사건을 두고 어느 쪽은 나라를 말아먹은 일처럼 날 선 비판을 하고, 어느 쪽은 나라를 살리는 일처럼 옹호한다. 서로 상대 정당의 입장을 비방하며 자기 정당의 입장을 옹호하기에 여념이 없다. 정치가 다 그런 것이다고 하지만 때로는 해도 너무할 정도다.
그뿐 아니다. 일반 국민 또한 편을 갈라 서로 삿대질을 한다. 시위 현장에서 험악한 말들로 삿대질을 하며, SNS, 유튜버 등을 통하여 서로 삿대질을 한다. 누가 먼저 시비를 거느냐의 문제는 따지기가 어렵다. 어떤 이들은 SNS, 유튜버 등을 통해 남에게 시비를 걸고 그런 일을 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우리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축복처럼 여겨 왔다. 그리고 그것을 무한히 발전시켜 왔다. 어쩌면 우리가 요구한 민주주의는 말하고 행동할 자유의 쟁취를 위한 기나긴 투쟁이었으며, 그 투쟁을 통해 획득한 진기한 보물이었다. 자본주의 또한 인간의 본원인 욕망 충족을 향한 무한한 노력과 투쟁으로 이룩하고 발전시켜 온 것이었다. 그러면서 한없는 자유와 욕망을 키워왔다. 그런데 한편에선 인류가 쟁취하여 온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발달을 통해 획득하고 키워온 그 욕망과 자유가 흉기로 변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모든 사람은 ‘말할 자유와 알 권리’라는 이름으로 온갖 것을 말할 자유라는 무대 위에 올려놓는다. 이제 상당한 말들의 무대는 온갖 잡다한 춤을 추는 광란의 무대가 되었다. 언론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진실이 왜곡된 온갖 거짓 정보들이 난무한다. 국민의 알 권리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정보와 사건이 진실을 외면하고 정제되지 않은 채 무대 위에 올려져 춤을 춘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광란의 춤을 보며 때로는 동조하고 때로는 분노하고 심지어 감정 이입까지 하여 그 광란의 춤을 다른 무대로 옮겨 공연한다.
심지어는 어떤 사람들은 그 말들을 가지고 스스로 무대 위에 올라가 공연하는 희극배우가 된다. 그리고 즐긴다. 관객들은 그 광란의 춤을 퍼 나르고 다른 무대 위에서 공연하면서 그 말들의 진실 여부와 그것이 사람들에게 미칠 영향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에 흥미를 느끼느냐 아니냐, 그것이 내 구미에 맞느냐 아니냐에만 집중한다. 그 과정에서 말은 만신창이가 되고 수많은 사람의 인권은 그 말에 의해 난도질을 당한다,
오늘날 엄청나게 발달한 SNS, 유튜버 등의 무대에서 공연되고 유포되는 말들은 정말 가관이다. 상당한 것들이 사실(fact)보다는 흥미와 팬덤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러한 행위는 돈과 권력이라는 욕망에 기반을 두고 있다. 돈벌이와 권력획득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선 말의 진실성이나 건강성은 상관하지 않는다. 다만 누가 얼마나 많이 그 공연을 봐주느냐와 누가 얼마나 많이 그 공연에 공감해 주느냐에만 집중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자기의 독자들을 확증편견의 세계로 이끌고 거기에 빠져든 독자들은 점점 확증편견의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 의식의 고착상태에서 진실의 세계를 외면하고 살아간다. 오직 자기가 믿는 것,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자기의 흥미와 구미에 맞는 것만 요구하게 된다.
이렇게 말을 춤추게 하는 선봉에 서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바로 정치인들이다. 그들은 겉으로는 국민을 위한다고 외쳐대지만 실제로는 각자의 정치적 이익과 정당의 이익을 위해 국가와 대중에게 진실의 언어로 다가가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내 편을 더 잘 만들고 상대편을 경멸하게 하느냐에 집중한다.
그런 과정에서 국민의 화합과 안정을 깨뜨린다. 특히 편향된 정치색이 짙은 사람들은 매우 열정적으로 그 말들의 춤에 동참하고 심지어는 정치인보다 더 공연의 주연이 되어 그들의 편에 선다. 그리고 때로 그들은 그 말들을 지키는 투사가 된다.
그러한 돈과 권력에 대한 정제되지 않은 욕망과 책임이 결여된 무한한 자유의 누림, 그리고 국민의 알 권리의 충족이라는 이름으로 공연되는 광란의 무대에서 춤을 추는 말들에는 자기를 향한 것들이 없다. 모두 타인을 향한 것들이며 타인에 관한 것들이다.
왜 사람들은 자기가 아닌 타인에게 그토록 관심을 가질까? 그것도 타인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타인의 추함과 타인을 향한 칭찬이 아니라 타인을 향한 비난에 집중할까?
'사촌이 땅 사면 배 아프다'는 속담은 인간의 질투적인 욕망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그것이 오늘의 한국 현실에 딱 들어맞는 것 같기도 하여 씁쓸하다. 그렇게 무대 올려져 광란으로 공연되는 타인을 향한 말들은 당사자뿐 아니라 불특정 타인에게 엄청난 인격적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왜 사람들은 타인의 사생활 엿보기를 그토록 좋아하는가? 특히 연예인이나 주목받는 사람들의 사생활은 이제 자기들만의 비밀 공간의 울타리에 가두어 둘 수 없다. 많은 사람이 몰래 의도적으로 그 비밀 공간의 문을 비집고 들어가 취재하여 무대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수없이 공연하면서 관객들의 반응을 구한다. 그리고 때로는 관객들을 동원하여 그에 대한 비난의 그룹을 형성한다.
그것이 도덕적 자기 성찰을 향한 날카로운 지적이 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일방적인 들추어내기와 비난이다. 그렇게 올려진 말들은 그 당사자가 처한 상황과 진실을 왜곡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그 과정에서 어떤 연예인은 엄청난 피해를 당하고 심지어는 목숨까지 버린다. 그런데 그것을 무대에 올리는 사람들은 그에 대한 큰 죄책감이나 반성이 별로 없다, 날이 갈수록 그러한 일들은 점점 심해진다.
어떤 정치인은 상대 당과 상대편 지도자를 헐뜯는 것을 주업으로 삼는 것 같다. 헐뜯는 그 말들에는 비수가 숨겨져 있다. 그러나 그 비수는 무딘 칼일 경우가 많다. 그 말들이 진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날 때 허탈하지만 그 말을 한 당사자는 ‘아니면 말고’라는 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흘려버린다.
그리고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의 자유를 강력하게 내세운다. 그런데 우리가 추구하는 그 언론의 자유에도 진실을 왜곡한 타인에 대한 비방과 헐뜯는 것도 포함된 것일까? 민주주의 사회에서 현상적으로는 포함된다고 할 수 있지만, 윤리적 측면에선 전혀 용납될 수 없는 것들 아닌가?
옛날에는 말을 잘못하면 그 말에 대한 강한 책임이 그 당사자에게 주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는 목숨까지 잃었다. 그러나 요즈음은 언론의 지유와 알 권리의 충족이라는 이름으로 그 잘못된 말에 대한 당사자의 책임을 묻는 경우가 드물며 묻기도 어렵다. 설령 묻는다고 해도 이미 그 말로 인해 피해당한 당사자는 상처를 입을 대로 입은 상태이다. 그에 비해 책임은 정말 미미한 세상이 되었다.
입과 혀의 기능 중에 밥을 먹음으로 에너지를 획득하는 도구적 기능보다 더 무서운 기능인 말을 하는 기능이다. 말들의 무대에는 입과 혀를 통해 공연된다. 그 입과 혀가 어떻게 춤을 추느냐에 따라 그 말의 진실과 거짓, 순수함과 폭력성이 드러난다. 그래서 예로부터 선각자들은 입과 혀의 놀림을 주의하라고 경고하였다. 그러니 성경에도 죽고 사는 것이 혀끝에 달렸으니, 혀를 잘 놀려야 잘 먹을 수 있다.(잠언 18장 21절)고 하지 않았던가? 따라서 계이구설(誡以口舌) 즉 남을 헐뜯거나 시비하는 말을 경계하여야 한다.
2. 계이구설(誡以口舌) - 구화지문(口禍之門) 설참신도(舌斬身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옛날 선각자들은 하나같이 말을 조심할 것을 당부하였다. 그중에서도 말에 대하여 가장 직설적이며 적나라하게 언급한 사람이 바로 풍도(風道)다.
풍도는 처세의 달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당나라 말기부터 벼슬살이를 한 사람이다. 그리고 당나라가 망하고 오대십국(五代十國)에 이르기까지 다섯 왕조를 거치면서 여덟 개의 성을 가진 열한 명의 임금을 섬겼다. 그는 후당(後唐), 후진(後晉), 후한(後漢), 후주(後周)에 이르기까지 여러 왕조가 바뀌어도 재상의 자리를 포함한 요직을 두루 겪었다. 그리고 73세까지 장수를 누렸다. 천명을 누린 것이다. 그 풍도가 여러 요직을 거치면서 장수하게 된 비결에는 바로 입과 혀를 경계하며 살았다는 것이다. 그 풍도는 이런 설시(舌詩)를 남겼다.
구시화지문(口是禍之門)
입은 재앙을 불러드리는 문이요
설시참신도(舌是斬身刀)
혀는 몸을 베어버리는 칼이로다
폐구심장설(閉口深藏舌)
입을 닫고 혀를 잘 감추면
안신처처뢰(安身處處牢)
가는 것마다 몸이 편안하리라
- 풍도(風道) 설시(舌詩) -
전당시(全唐詩)에 전하는 이 풍도의 시는 오늘날 전문보다는 구화지문(口禍之門) 설참신도(舌斬身刀)라는 사자성어로 널리 알려져 있다. 풍도는 말을 함에 있어서 매사에 신중하였다고 한다. 그것은 윗사람인 왕에게만 아니라, 주변 동료들이나 아랫사람에게도 그랬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집안 식구들은 물론 집안 노비들에게까지 말을 매우 신중했다고 한다. 그리고 노비들에 이르기까지 늘 입과 혀를 함부로 놀리지 말 것이며, 한마디 말을 할 때는 항상 다시 생각해 보고 신중하게 할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대부분 관직에 오래 있다 보면 말 한마디로 왕의 미움을 사거나 말 한마디로 탄핵을 받는 경우가 많다.
유명한 사기의 집대성자 사마천도 간언 하나 잘못하여 궁형에 처해져 사경을 헤매다가 겨우 살아나 불구의 몸으로 필생의 과제인 사기를 집필했다. 그러나 풍도는 매사에 신중한 결과 그 치열했던 격변기에도 다른 사람의 탄핵이나 비난을 받지 않고 오랫동안 관직의 요직을 두루 경험할 수 있었으며 천명을 누릴 수 있었다.
3. 말과 글귀 하나에 신중한 삶이 필요한 이유
세상에는 말 한마디 때문에 삶을 망친 사람이 무수히 많다. 남이 장군은 시 한 구절 때문에 목숨을 잃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남이장군을 노리던 한명회의 앞잡이 간신 유자광은 남이 장군의 시 한 구절의 글자 하나를 악용하여 남이 장군을 반역으로 몰고 갔으며, 결국 남이는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었다. 남이 장군은 기개는 대단했으나 말과 글에 신중함은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이 장군의 그 시를 보자.
白頭山石磨刀盡(백두산석마도진)
백두산의 돌은 칼을 갈아서 없애고
豆滿江水飮馬無(두만강수음마무)
두만강의 물은 말에게 먹여 없애 버리리라
男兒二十未平國(남아이십미평국)
남자로 태어나 나이 이십에 천하를 평정하지 못하면
後世誰稱大丈夫(후세수칭대장부)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하겠는가?
- 남이(南怡) -
장수의 결의와 기개가 넘친다. 장수는 칼을 벼리고 말을 달려 종횡무진 전장을 누빌 때 그 기상이 크게 드러난다. 야인들이 북방을 괴롭히고 그것을 평정한 장수의 기개가 넘친다. 지나칠 정도로 적나라하게 야망을 드러냈다. 이 대목은 천하를 호령하는 자가 되겠다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다. 이 정제되지 않은 야망의 표현이 자신을 죽음으로 옭아매게 되는 도구가 되었다.
왕명을 받은 남이 장군이 북방 정세를 시찰하러 말을 달려 떠났다. 또 다른 임무를 띠고 유자광도 북방으로 향했다. 유자광도 왕명을 받아 갔지만, 사실 한명회가 보낸 인물이었다. 유자광은 남이의 뒤를 은밀히 따랐다. 그리고 남이의 이 기개 넘치는 시를 수집했다.
뒷날 유자광은 남이 장군을 역적모의로 제거하는데 위 시의 男兒二十未平國(남아이십미평국)을 男兒二十未得國(남아이십미득국)으로 한 글자를 바꾸었다. 이것은 엄청난 의미의 전환이었다. ‘男兒二十未平國(남아이십미평국) 즉 남자로 태어나서 20대에 천하는 평정하지 못하면’과 ‘男兒二十未平國(남아이십미평국) 남자로 태어나서 20대에 천하는 얻지 못하면’의 의미는 하늘과 땅 차이다.
앞의 것은 장수로서 업적을 세워 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뒤의 것은 천하를 얻는 것이니 곧 왕위찬탈이 된다. 그러니 역모의 죄를 씌우기가 얼마나 좋았을까? 이 한구절의 왜곡은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남이 장군은 기개는 넘쳤지만 총명하고 지혜롭지 못하였던 것 같다. 노자(老子)에 이르기를 ‘총명하고 지혜 있고 슬기로운 자는 자기 몸을 지키는 데에 어리석은 듯이 한다(聰明慧智 守之如愚)’고 하였다. 지나치게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면 타인의 질투를 받음은 물론 타인의 인격을 침해하므로 그로부터 공격을 받을 수도 있다.
칼보다 혀가 더 날카로울 때가 있다(플루타르크 영웅전). 발은 잘 못 디뎌도 금방 자세를 가다듬을 수 있다. 그러나 혀를 잘못 놀리면 돌이킬 수 없을지 모른다(B. 프랭클린/가난한 리처드의 冊曆). 얌전한 혀는 인간의 최상의 보배이며, 또 적당히 말하는 혀는 최대의 기쁨이다(헤시오도스/일과 나날).
아무리 말할 자유가 민주주의 사회의 특권이라 하지만 말에 신중을 기할 수 있어야 자신을 지키고 타인을 함부로 해지지 않게 된다. 거짓과 비방의 말이 춤추는 세상에서 계이구설(誡以口舌)할 일이다. 말이 광란의 춤을 추는 세상, 풍도의 시에서 말하는 구화지문(口禍之門) 설참신도(舌斬身刀)를 새겨볼 일이다.
▶️ 誡(경계할 계)는 형성문자로 诫(계)는 간체자, 戒(계), 诫(계), 䛺(계)는 동자이다. 뜻을 나타내는 말씀 언(言: 말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戒(계)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誡(경계할 계)는 ①경계하다(警戒--) ②고하다(告--) ③분부하다(分付--), 명령하다(命令--) ④훈계하다(訓戒--) ⑤경고(警告), 경계(警戒) ⑥교령(敎令: 임금의 명령) ⑦계율(戒律: 불자佛者가 지켜야 할 규범)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종교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조건을 계명(誡命), 훈계하고 격려함을 계면(誡勉), 잘 타일러서 심신을 가다듬게 함을 계려(誡礪), 지나친 욕심을 가지지 말도록 타이름을 계영(誡盈), 가르치며 훈계함 또는 덕성과 인격 등을 함양함을 교계(敎誡), 계명을 지킴을 수계(守誡), 여자의 생활 및 처신 등에 관한 계율을 여계(女誡), 타일러 훈계함을 고계(告誡), 넌지시 말하여 훈계함을 풍계(諷誡), 타일러 주의 시킴을 경계(儆誡),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계함을 권계(勸誡), 나무람과 경계함이 있는가 염려하며 몸을 살펴야 함을 이르는 말을 성궁기계(省躬譏誡) 등에 쓰인다.
▶️ 以(써 이)는 ❶회의문자이나 상형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사람이 연장을 사용하여 밭을 갈 수 있다는 데서 ~로써, 까닭을 뜻한다. 상형문자일 경우는 쟁기의 모양을 본뜬 것이다. ❷회의문자로 以자는 '~로써'나 '~에 따라'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以자는 人(사람 인)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사람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以자의 갑골문을 보면 마치 수저와 같은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을 두고 밭을 가는 도구이거나 또는 탯줄을 뜻하는 것으로 추측하고는 있지만, 아직 명확한 해석은 없다. 다만 무엇을 그렸던 것인지의 유래와는 관계없이 '~로써'나 '~에 따라', '~부터'라는 뜻으로만 쓰이고 있다. 그래서 以(이)는 ①~써, ~로, ~를 가지고, ~를 근거(根據)로 ②~에 따라, ~에 의해서, ~대로 ③~때문에, ~까닭에, ~로 인하여 ④~부터 ⑤~하여, ~함으로써, ~하기 위하여 ⑥~을 ~로 하다 ⑦~에게 ~을 주다 ⑧~라 여기다 ⑨말다 ⑩거느리다 ⑪닮다 ⑫이유(理由), 까닭 ⑬시간, 장소, 방향, 수량의 한계(限界)를 나타냄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일정한 때로부터 그 뒤를 이후(以後), 위치나 차례로 보아 어느 기준보다 위를 이상(以上), 오래 전이나 그 전을 이전(以前), 일정한 한도의 아래를 이하(以下), 그 뒤로나 그러한 뒤로를 이래(以來), 어떤 범위 밖을 이외(以外), 일정한 범위의 안을 이내(以內), 어떤 한계로부터의 남쪽을 이남(以南), 어떤 한계로부터 동쪽을 이동(以東), ~이어야 또는 ~이야를 이사(以沙), 그 동안이나 이전을 이왕(以往), 까닭으로 일이 생기게 된 원인이나 조건을 소이(所以), ~으로 또는 ~으로써를 을이(乙以), 어떠한 목적으로나 어찌할 소용으로를 조이(條以), ~할 양으로나 ~모양으로를 양이(樣以), 석가와 가섭이 마음으로 마음에 전한다는 뜻으로 말로써 설명할 수 없는 심오한 뜻은 마음으로 깨닫는 수밖에 없다는 말 또는 마음과 마음이 통하고, 말을 하지 않아도 의사가 전달됨을 이르는 말을 이심전심(以心傳心), 계란으로 바위를 친다는 뜻으로 약한 것으로 강한 것을 당해 내려는 어리석은 짓을 일컫는 말을 이란투석(以卵投石), 대롱을 통해 하늘을 봄이란 뜻으로 우물안 개구리를 일컫는 말을 이관규천(以管窺天), 귀중한 구슬로 새를 쏜다는 뜻으로 작은 것을 얻으려다 큰 것을 손해 보게 됨을 이르는 말을 이주탄작(以珠彈雀), 독으로써 독을 친다는 뜻으로 악을 누르는 데 다른 악을 이용함을 이르는 말을 이독공독(以毒攻毒), 열은 열로써 다스린다는 뜻으로 힘에는 힘으로 또는 강한 것에는 강한 것으로 상대함을 이르는 말을 이열치열(以熱治熱), 옛것을 오늘의 거울로 삼는다는 뜻으로 옛 성현의 말씀을 거울로 삼아 행동함을 이르는 말을 이고위감(以古爲鑑), 새우로 잉어를 낚는다는 뜻으로 적은 밑천을 들여 큰 이익을 얻음을 일컫는 말을 이하조리(以蝦釣鯉), 손가락을 가지고 바다의 깊이를 잰다는 뜻으로 양을 헤아릴 줄 모르는 어리석음을 이르는 말을 이지측해(以指測海),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는 뜻으로 사람이 살아가는 데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이식위천(以食爲天), 사슴을 말이라고 우겨댄다는 뜻으로 윗사람을 기만하고 권세를 휘두름을 이르는 말을 이록위마(以鹿爲馬), 하나로써 백을 경계하게 한다는 뜻으로 한 명을 벌하여 백 명을 경계하게 함을 이르는 말을 이일경백(以一警百), 털만으로 말의 좋고 나쁨을 가린다는 뜻으로 겉만 알고 깊은 속은 모름을 이르는 말을 이모상마(以毛相馬), 남의 성공과 실패를 거울삼아 자신을 경계함을 이르는 말을 이인위감(以人爲鑑), 백성을 생각하기를 하늘같이 여긴다는 뜻으로 백성을 소중히 여겨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으로 삼음을 일컫는 말을 이민위천(以民爲天), 피로써 피를 씻으면 더욱 더러워진다는 뜻으로 나쁜 일을 다스리려다 더욱 악을 범함을 이르는 말을 이혈세혈(以血洗血), 양으로 소와 바꾼다는 뜻으로 작은 것을 가지고 큰 것 대신으로 쓰는 일을 이르는 말을 이양역우(以羊易牛), 과거의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미래를 미루어 짐작한다는 말을 이왕찰래(以往察來), 불로써 불을 구한다는 뜻으로 폐해를 구해 준다는 것이 도리어 폐해를 조장함을 이르는 말을 이화구화(以火救火) 등에 쓰인다.
▶️ 口(입 구)는 ❶상형문자로 입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그러나 다른 글자의 부분으로 포함되어 있는 口(구)꼴의 자형(字形)은 입의 뜻인 경우 뿐만은 아니다. 品(품)과 같이 물품을 나타내거나 各(각)과 같이 장소를 나타내기도 하고, 石(석)과 같이 돌을 나타내기도 한다. ❷상형문자로 口자는 '입'이나 '입구', '구멍'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口자는 사람의 입 모양을 본떠 그린 것이기 때문에 '입'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갑골문에 나온 口자를 보면 ㅂ자 모양을 하고 있어 위아래의 구분이 있었다. 그러나 해서에서부터는 네모난 모습으로 바뀌면서 더는 상하를 구분하지 않게 되었다. 口자는 입을 그린 것이니만큼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대부분이 '입'이나 '소리'와 관련된 의미를 전달하게 된다. 하지만 때로는 '출입구'나 '구멍'과 같이 단순히 모양자로 응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口(구)는 어떤 명사(名詞) 뒤에 붙어 (1)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의 뜻 (2)작은 구멍, 구멍이 나 있는 곳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입 ②어귀, 사람이 드나들게 만든 곳 ③인구(人口) ④주둥이, 부리, 아가리 ⑤입구(入口), 항구(港口), 관문(關門) 따위 ⑥구멍, 구멍이 난 곳 ⑦자루, 칼 등을 세는 단위 ⑧말하다, 입 밖에 내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에는 연설이 끝이나 시위 행진 때 외치는 간결한 문구를 구호(口號), 구설을 듣게 되는 운수를 구설수(口舌數), 변명할 재료를 구실(口實), 음식을 대하거나 맛을 보았을 때 느끼게 되는 먹고 싶은 충동을 구미(口味), 말로써 베풀어 아룀을 구술(口述), 마주 대해 입으로 하는 말을 구두(口頭), 흥정을 붙여 주고받는 돈을 구문(口文), 보통 회화로 쓰는 말을 구어(口語), 글을 읽을 때 다른 말을 아니하고 책에 집중하는 일을 구도(口到), 말로 전함을 구전(口傳), 입과 입술을 구순(口脣), 단체 행동의 동작을 일제히 하도록 부르는 호령을 구령(口令), 사람의 수효를 구수(口數), 집안 식구나 집안의 사람 수효를 가구(家口), 한 나라 또는 일정지역에 사는 사람의 총수를 인구(人口), 입을 다물어서 봉함을 함구(緘口), 배가 안전하게 드나들고 하는 항구(港口), 들어가는 어귀를 입구(入口),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아니함을 금구(噤口), 나가는 곳을 출구(出口), 강물이 큰 강이나 호수 또는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어귀를 하구(河口), 한 집안에서 같이 살면서 끼니를 함께 먹는 사람을 식구(食口), 입으로는 달콤함을 말하나 뱃속에는 칼을 감추고 있다는 뜻으로 겉으로는 친절하나 마음속은 음흉한 것을 이르는 말을 구밀복검(口蜜腹劍), 입에서 아직 젖내가 난다는 뜻으로 말과 하는 짓이 아직 유치함을 일컫는 말을 구상유취(口尙乳臭),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 된다는 뜻으로 말조심을 하라고 경계하여 이르는 말을 구화지문(口禍之門), 입이 급히 흐르는 물과 같다는 뜻으로 거침없이 말을 잘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구약현하(口若懸河), 말과 마음으로 전하여 가르침을 일컫는 말을 구전심수(口傳心授), 입과 귀의 간격이 가깝다는 뜻으로 남에게서 들은 내용을 이해하기도 전에 남에게 옮김 곧 자기의 몸에 붙지 않은 학문을 이르는 말을 구이사촌(口耳四寸), 입이 관문과 같다는 뜻으로 입을 함부로 놀려서는 안 됨을 이르는 말을 구자관야(口者關也), 살아 나갈 걱정 곧 먹고 살 근심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구복지루(口腹之累), 말로는 옳다 하면서 마음으로는 그르게 여김을 일컫는 말을 구시심비(口是心非), 남에게 들은 것을 그대로 남에게 전할 정도밖에 되지 않는 천박한 학문을 이르는 말을 구이지학(口耳之學), 그 입에 오르면 온전한 사람이 없음이라는 뜻으로 누구에게나 결점만을 들추어 좋게 말하지 아니한다를 이르는 말을 구무완인(口無完人), 입으로 말하고 손으로 그린다는 뜻으로 열과 정성을 다하여 교육한다를 이르는 말을 구강지화(口講指畫) 등에 쓰인다.
▶️ 舌(혀 설)은 ❶상형문자이나 형성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입으로 내민 혀의 모양을 형상화하여 혀의 뜻을 나타낸다. 또는 음(音)을 나타내는 干(간; 내미는 일, 실)과 口(구)의 합자(合字)이다. ❷상형문자로 舌자는 '혀'나 '말'을 뜻하는 글자이다. 舌자는 동물의 혓바닥을 본떠 그린 것이다. 갑골문에 나온 舌자를 보면 길게 뻗은 혓바닥 주위로 침이 튄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뱀이나 도마뱀의 혓바닥을 그린 것이다. 사람보다는 파충류 혀가 인상이 강하기에 동물의 혀를 그려 '혓바닥'을 표현한 것이다. 舌자는 본래 '혓바닥'을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였지만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실제로는 '말'과 관련된 뜻으로 쓰이는 편이다. 게다가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도 주로 모양자로만 활용되고 있다. 그래서 舌(설)은 혀의 뜻으로 ①혀 ②말, 언어(言語) ③과녁의 부분(部分)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말다툼이나 입씨름을 설전(舌戰)말로 옳고 그름을 가리는 다툼을 설론(舌論), 혀가 굳어서 뻣뻣함을 설강(舌强), 혀를 움직여서 내는 자음을 설음(舌音), 남을 해하려는 뜻이 담긴 말을 칼에 비유해서 일컫는 말을 설검(舌劍), 칼과 같은 혀라는 뜻에서 날카로운 말을 설도(舌刀), 말을 잘못한 때문에 받게 되는 해를 설화(舌禍), 서슬이 선 말로 날카롭고 매서운 변설을 설봉(舌鋒), 혀를 이루고 그 주질이 되는 근육을 설근(舌筋), 혀의 상태를 보아서 병이 있고 없음을 진단하는 일을 설진(舌診), 악독하게 혀를 놀려 남을 해치는 말을 독설(毒舌), 입담 좋게 말을 잘 하는 재주를 언설(言舌), 붓과 혀 곧 글로 씀과 말로 말함을 이르는 말을 필설(筆舌), 나쁘게 욕하는 말을 악설(惡舌), 시비하고 비방하는 말을 구설(口舌), 쓸데없는 말을 자꾸 지껄임을 농설(弄舌), 재치 있게 하는 교묘한 말을 교설(巧舌)말이 많음이나 수다스러움을 장설(長舌), 입담 좋게 말을 잘 하는 재주를 변설(辯舌), 혀를 가두어 둔다는 뜻으로 말을 하지 아니함을 수설(囚舌), 말로 이러쿵 저러쿵 다투는 일을 각설(角舌), 혀 아래나 밑에 도끼 들었다를 이르는 말을 설저유부(舌疽有斧), 혀가 칼보다 날카롭다는 뜻으로 논봉論鋒의 날카로움을 이르는 말을 설망어검(舌芒於劍), 혀가 꼬부라지고 불알이 오그라진다는 뜻으로 병세가 몹시 위급하다를 이르는 말을 설권낭축(舌卷囊縮),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라는 뜻으로 항상 말조심을 해야한다를 이르는 말을 설참신도(舌斬身刀)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