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鄭浩承)-입산
너를 향해 서서히 걸어갔다
너는 산으로 들어가버렸다
너를 향해 급히 달려갔다
너는 더 깊은 산으로 들어가버렸다
나는 한참 길가에 앉아
배가 고픈 줄도 모르고
시들어가는 민들레 꽃잎을 들여다보다가
천천히 나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길은 끝이 없었다
지상을 뗘나는 새들의 눈물이 길을 적셨다
나는 그 눈물을 따라가다가
네가 들어간 산의 골짜기가 되었다
눈 녹은 물로
언젠가 네가 산을 내려올 때
낮은 곳으로 흘러갈
너의 깊은 골짜기가 되었다
*정호승(鄭浩承, 1950. 1. 3.~ 경남 하동 출생) 시인은 정제된 서정으로 비극적 현실 세계에 대한 자각, 사랑, 외로움을 노래하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고, 특히 사회의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 슬프고도 따뜻한 시각으로 사회의 그늘진 면을 표현하여 더욱 사랑받았습니다.
*시인의 대표작으로는 “사랑” “봄길” “정서진” “슬픔이 기쁨에게”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새벽기도” “연어” “갈대” “수선화에게” “끝끝내” “가난한 사람에게” “까닭” “봄눈”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바닥에 대하여” “산산조각” “종소리” “풍경 달다”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등이 있습니다.
*위 시는 정호승 시인의 시집 제목인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에 수록되어 있는데, 위 시집의 초판은 1998. 12. 23. 인쇄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