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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푸아뉴기니의 쿠루병에 걸린 아이/
사람고기 맛
사람 고기의 맛에 대한 역사적 기록과 증언들은 다양하며 일치하지는 않지만, 주로
돼지고기나 송아지 고기와 비슷하다는 묘사가 많다.
돼지고기 (Pork) 유사설:
독일의 식인범 아르민 마이베스는 인육이,
"돼지고기와 비슷하지만 좀 더 쓰고 강한 맛"이 나며, "꽤 맛있다"
고 묘사했다.
폴리네시아의 식인 풍습 관련 기록에서도 인육을 '긴 돼지(long pig)'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아 돼지고기와 비슷하게 여겨졌음을 시사합니다.
송아지 고기 (Veal) 유사설:
미국의 언론인이자 탐험가인 윌리엄 시브룩은 서아프리카에서 얻은 인육 덩어리를 요리해 먹은 후,
"잘 자란 송아지 고기와 매우 흡사해서 일반적인 미각으로는 구별할 수 없을 정도"
라고 상세히 기술했다.
그는 인육이 부드럽고 특별히 강한 특징적인 맛은 없다고 언급했다.
기타:
다른 증언들에서는 소고기, 양고기, 심지어 닭고기와 비슷하다는 묘사도 있다.
결론적으로, 인육의 맛에 대한 설명은 개인의 경험과 조리 방식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으며,
돼지고기나 송아지 고기에 가장 자주 비유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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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루병(Kuru)은 파푸아뉴기니 포레족의 장례 의식 중 사망한 친척의 뇌를 먹던 식인 풍습으로 인해 전염된 치명적인 질환이다.
감염된 뇌의 변성 프리온 단백질이 뇌 세포를 파괴하여, 근육 마비, 보행 장애, 경련을 일으키며 결국 사망에 이르는 불치병이다.
쿠루병과 인육 섭취의 연관성
원인:
사망한 사람(특히 쿠루병 환자)의 뇌나 장기를 섭취함으로써 전염되었다.
전파 경로:
포레족은 사망자의 영혼이 함께한다는 믿음으로 시신을 나누어 먹는 장례 관습이 있었는데, 특히 여성과 어린이가 뇌 조직을 섭취하여 감염률이 높았다.
병의 특성:
프리온은 뇌를 스펀지처럼 구멍 뚫리게 만들어 운동 협응 능력 상실과 떨림을 유발한다.
증상:
'웃는 죽음'으로 불릴 만큼 얼굴 근육 마비로 인한 경련 증상이 나타나며, 잠복기는 수년에서 수십 년에 이른다.
결과:
1950년대 후반 식인 풍습이 금지되면서 현재는 거의 사라졌으나, 인간끼리의 식인이 병을 유발한 대표적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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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현종 시기(1670~1671) 소빙기 기상이변으로 발생한 경신대기근은 100만 명 이상이 사망한 조선 역사상 가장 참혹한 재난 중 하나다.
극심한 식량 부족으로 인륜이 붕괴하여, 부모가 자식을 잡아먹거나 길거리에 시체가 즐비해 인육을 먹는 식인(食人) 사건들이 실록 기록 등에 나타날 정도로 참혹했다.
배경:
17세기 후반 전 지구적 소빙기로 인한 강추위, 가뭄, 홍수, 전염병이 겹치며 농업 생산력이 완전히 붕괴되었다.
참상:
사망자가 100만 명 내외로 추정되며,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보다 더 큰 충격을 주었다.
식인(食人) 기록:
부모가 자식을 잡아먹거나, 사람의 고기를 먹는 등 인륜이 무너지는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결과:
굶주림과 전염병으로 인해 사회 구조가 마비되었고, 인구의 4분의 1이 사망하여 18세기 서민 의식 변화(사설시조 유행 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조선 시대 경신대기근(1670~1671년, 현종 11~12년)은 17세기 소빙하기와 맞물려 발생한 전대미문의 자연재해로, 식량 부족으로 인해 극심한 굶주림을 겪은 백성들 사이에서 인육(人肉)을 먹는 식인(食人) 행위가 실제로 보고된 비극적인 사건이다.
당시 경신년(1670년)과 신해년(1671년)의 참혹했던 식인 기록과 상황은 다음과 같다.
1. 경신대기근과 식인 기록
실록의 기록:
《조선왕조실록》 등 당대 기록에는 굶주림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인육을 먹었다는 기록이 여럿 존재하며, 부모가 자식을 잡아먹거나, 시체를 뜯어먹는 끔찍한 일들이 연이어 발생했다.
사망자 규모:
경신대기근으로 인해 약 100만 명에서 최대 140만 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당시 조선 전체 인구의 10~15%에 달하는 수치다.
상황의 심각성: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였음에도 불구하고, 노인들은,
"전쟁도 이보다는 낫다"
고 탄식할 정도로 참혹한 상황이었다.
2. 식인 행위가 발생한 배경
복합적 자연재해:
지진, 가뭄, 폭설, 우박, 메뚜기 떼, 전염병, 구역질 등 모든 재앙이 2년 동안 연달아 발생하여 농작물이 전멸했다.
생존을 위한 극한 상황:
먹을 것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굶어 죽은 사람의 시신을 삶아 먹는 등 생존을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식인 행위가 일어났다.
사회적 붕괴:
굶주림에 못 이겨 어린아이를 버리거나, 무덤을 파서 옷을 훔치고 시신을 훼손하는 등 도덕과 사회 질서가 무너진 생지옥이었다.
3. 당시 조정의 대응
진휼소 설치:
조정은 진휼소(진제장)를 설치하여 죽을 나누어 주는 등 구호에 힘썼으나, 굶주린 백성이 너무 많아 역부족이었다.
피해 상황:
한양까지 전염병이 퍼지고 고위 관료들조차 굶어 죽을 정도로 참상이 심각하여, 인육을 먹은 행위에 대해 엄격한 처벌을 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경신대기근은 조선 역사상 가장 참혹한 기근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로 인해 대동법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등 조선 후기 세태에 큰 영향을 미쳤다. -펌글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