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엄마 이야기를 어딘가에 남겨두고 싶었는데 방금 엄마랑 통화하면서 굴곡많은 그녀의 인생사가 유독 오늘 따라 잔상으로 남아서 한번 기록 해보려고 함. 이건 국민학교 졸업이었던 엄마가 60대에 꿈을 이룬 이야기임
우리 엄마 63년생이시고 지방 시골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교육에 무심한 할머니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셨는데 딱 국졸로 정규교육 마치심. 할머니는 엄마한테 밭일이나 하라고 하고 중학교 안 보내심. 교복 입은 학생들 등교하는거 부러워서 몰래 훔쳐보고 그랬다고 함. 어느 날 집에 혼자 있는데 대문 앞을 지나가던 사람이 엄마한테 왜 이 시간에 학교 안가고 여기 있냐고 물어봤는데, 운 좋게 그 청년은 갓 교대 졸업하고 발령대기 중이었던 선생님이었음. 그 선생님이 학비가 절반이었던 비인가 시골 중학교를 소개시켜주심. 그렇게 부모님 설득하고 이모가 공장 다니면서 번 돈으로 비인가 중학교 입학함. 그 중학교는 봉사 형식으로 설립된 학교라서 졸업해도 검정고시를 봤어야 하는 상황이었음. 선생님도 매번 바뀌고 판잣집에 책걸상도 어디서 주워서 얻은 열악한 환경이었다고 함. 그렇게 졸업하고 주변 환경이 열악해서 그랬던지 불량한 친구들이랑 어울려다니고 방황하다가 20살이 넘어감. 이모가 동생이라도 공부시켜야겠다고 발벗고 나서서 가발공장에서 일한 돈으로 엄마 검정고시 학원 등록해주고 뒷바라지 해주심. 그렇게 엄마는 중졸/고졸 검정고시로 마치심. (지금도 이모랑 엄마는 베프임)
졸업하면서 엄마는 이모랑 같이 살면서 26살때 문득 대학을 가고싶었다고 함. 그때 죄다 친구들은 결혼하고 늦은 나이에 무슨 대학을 가냐고 (80년대 후반 기준) 그냥 시집이나 가라고 주변에서 핀잔을 엄청 들었다고 함. 이미 엄마는 공부하기로 결심한 상태였음 벌꿀오소리마냥 님 뭔 상관? 하면서 26살에 전문대학교 위생과 들어가심 결국 위생사 자격증도 땀. 그때 당시 취업은 걍 쌉 프리패스였음.
그때 학교축제에서 지금의 우리 아빠를 만나버림 (시발) 그리고 나서 우리 인생 헬파티 시작
아빠는 당시 군대도 안간 20살짜리 애기였음. 누난 너무 예뻐하면서 엄마를 쫒아다니기 시작했고 그때 아빠도 와꾸가 꽤괜이라 엄마도 결국 폴인럽하게 됨
아빠는 당시 아무 직업도 없고 말했다시피 머리에 피도 안마른 상태였음 그치만 엄마는 집과 고향이 환멸난 나머지 아빠와 사랑의 도피를 하심...^^ 아빠 고향이 더 개깡시골이었는데 시어머니와 같이 살면서 오빠를 낳았음
오빠가 5살, 내가 1살때 아빠는 친구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그때 당시 2억이라는 빚을 지게되고 집은 완전 풍비박살남ㅋㅋㅋㅋ 압류딱지가 사방에 붙여지고 결국 싸구려 집으로 이사하게 됨.
곧이어 개비는 볼 면목이 없다고 스스로 빚 갚겠다고 애들 두고 집 나감ㅋㅋㅋㅋㅅㅂ 자업자득 제 손으로 일을 벌린 아빠한테 빚을 넘기기 위해 결국 엄마는 이혼하고, 각각 5살, 1살 자식들을 혼자 키우기 시작했음
그러던 차에 보험설계사 모집 전단지를 보게되고 보험 판매하는 일을 시작하게 됨. 아직 어렸던 나와 오빠를 차에 태우고 돌아다니면서 치열하게 돈을 버셨음. 어릴 적 기억 떠올리면 주로 엄마차 뒷자석에서 누워서 자고 혼자 바람쐬면서 놀고 있는 장면이 생각남. 그때 엄마차에서 나왔던 가요 음악들 지금도 듣고있음.
그러다가 10여년이 흐르고, 내가 초등학생때 그리고 오빠가 중학생때 엄마는 알코올 중독에 걸리심.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실적에 대한 압박감, 아빠에 대한 원망감, 의지할 곳이 어린 자녀들 밖에 없는 상황. 그 모든게 한꺼번에 밀려와서 결국 건강이 망가져서 수차례 병원에 입원하게 됨 그리고 자살시도도 하셨음 (그 후유증이 아직도 좀 남음) 나도 초딩때 하나뿐인 보호자가 그렇게 망가지니까 그 시기는 트라우마 그 자체로 남아있음. 학교 끝나고 집에 가서 엄마가 또 취해있을까봐 무서웠던 기억이 떠오름. 그냥 암흑기 그 자체였음.
내가 중학생이 되자 엄마가 갑자기 정신차리심. 그렇게 의지했던 술을 스스로 미련없이 끊고 (지금도 절대 안드심) 스트레스 많았던 보험회사를 퇴사하고 노래방과 카페를 야심차게 인수하심 그리고 망했음
다시 집을 팔아서 조개구이집을 차리심 망했음
그렇게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 나라에서 주는 임대아파트로 이사하게 됐고, 엄마는 갑자기 다시 공부하기로 마음먹으심 (왜인지는 정확히 모름) 40대 중반이 되어서 엄마는 알바하면서 지방대학교 사회복지과 야간을 다니셨고 (수급자라 거의 공짜였음) 나는 학교에서 주는 장학금 받으면서 다니고 오빠는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나라에서 주는 기초수급에 의지해서 살아갔음.
그렇게 엄마는 사회복지과를 졸업하고 나는 19살때 취업을 함. 대학갈 돈이 없었음ㅋㅋㅋ 운좋게 대기업 화학회사에 입사해서 소녀가장이 되어서 큰 돈 들어갈 일은 내가 냄ㅋ 오빠는 다행히 엄마 머리 닮았는지 공부에 재능이 있어서 공군사관학교 들어가서 파일럿 됨. 그때 가난해도 행복했음 엄마가 술도 안먹고 나는 돈벌고 오빠도 나름 잘 풀리고 평화가 찾아오기 시작했음. 어느 날 엄마 아는 교수님이 사단법인 사회복지시설에 이력서 넣어보라고 추천해주셨음. 당시 이력서 보고 이혼녀에다가 두 자식들도 딸려있고 나이도 많아서 적응하기도 어려울거라고 모두가 반대했는데 관장님이 왠지 잘할 것 같다고(?) 뽑고싶다고 촉으로 밀어 붙이셨음. 엄마는 우여곡절 끝에 산재 담당 복지사로 일을 시작하게 되심. 이때부터 운이 시작된 것 같음.
처음엔 나이가 많은 엄마를 반대하고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았음. 엄마는 자존심 다 내려놓고 특유의 인싸 능력으로 사람들을 감음; 복지관 안에 있던 파벌 통일하고 와중에 일도 기깔나게 하셔서 결국 00쌤 없으면 복지관 안돌아간다는 평가를 받고 모두에게 인정을 받게 됨. 그렇게 입사 후 3년, 쟁쟁한 젊은 친구들을 제끼고 마침 공석이었던 장애인 자립 담당자 자리가 엄마에게 넘어가게 됨.
엄마는 그 시설을 00교실로 이름짓고 장애인 친구들을 모집함. 전 담당자는 딱 10명을 모았지만 엄마가 담당하게 되고 시스템 개편을 하자마자 수용가능한 최대 정원수까지 모으게 됨. 게다가 주변 회사들 그리고 인맥들을 끌어와서 기부금이자 투자도 정기적으로 하게끔 시킴. 매년 전국 단위로 사단법인에서 주는 상은 엄마에게 돌아감. 맨날 연말되면 어디서 상받고 오셨음. 엄마는 그렇게 50대 나이로 계약직 쩌리에서 계장으로, 계장에서 대리로 고속 승진하게 됨 (평균 근속년수가 10년이상인 고이다 못해 썩은물들 많은 곳임 20년 다닌 사람도 대리 달고있음) 그렇게 엄마는 커리어를 다지고 또 대학에 편입하게 됨 (대학 콜렉터)
이번엔 광주대 야간대학교를 가서 행정 관련 전공 2개를 복수 전공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심. 어느 날 우연히 복지관 바로 옆에 있는 도서관에서 식당이랑 카페 운영할 사업주를 모집하는 공고를 보고, 직원들끼리 복지관 사업조달 자금을 위해서 사업주 공모 넣어보자고 얘기가 나왔음. 복지관 이름으로 넣으니 당첨이 안될리가 없었음. 공모 당첨 완.
근데 당첨되고 나니 이제는 코로나가 터짐; 도서관이 문을 닫게 되자 투자했던 직원들이 단체로 발 뺌. 당첨 포기하려던 차에 엄마는 묘하게 이거 잡아야겠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함. 결국 모든 직원들이 발 뺀 프로젝트에 본인 혼자 들어감. (직원들 발뺀 자금은 내가 빌려드림)
코로나 시기 때 정부가 소상공인 지원금을 뿌려줌 어머니 그걸로 매출 박살난 도서관 카페, 식당 살려냄 (문대통령님 감사..) 다행히 도서관 식당, 카페 자체가 계약비용, 알바비만 들어가고 나머지는 딱히 돈 들어가는 게 없었음 수도세/전기세X, 월세X
코로나 시기가 지나고 점차 도서관이 활성화 되자, 카페랑 식당도 대박나기 시작함. 월 순수익 1000만원 달성함 (엄마 월급도 포함^^;) 겸사겸사 엄마가 담당하고 있던 장애인 친구들도 바리스타로 양성시킨 후 직원으로 뽑아서 본인이 좋아하는 복지도 실현하심ㅋㅋ 그 친구들 아직도 잘 다니고있음
그러다가 생활이 점차 여유로워졌고 전세에서 자가로 이사하게 됨.
그렇게 4년이 지나고 학부생에서 이젠 장애인 자립 관련 상부상조하는 사이가 된 교수님이 지방대 학과장을 엄마에게 소개시켜줌. 그 교수님이 엄마보고 겸임 교수 자리를 제안함 (실무 위주) 엄마 조금 부담스러워하다가 결국 수락하고 이력서 넣음. 합격함. 곧 강의 나가심.
오늘 학과장님 만나서 설명 듣고 본인 꿈을 이룬다는 생각에 너무 가슴이 터질 것 같다는 엄마의 말을 듣고 이렇게 글을 씀. 길고 긴 인고의 시간 끝에 엄마가 본인 꿈을 이뤘는데, 본인의 배움에 대한 욕심과 의지만으로 완전 밑바닥에서 여기까지 올라왔다는게 딸인 나도 믿겨지지가 않음 그게 제일 엄마를 존경하는 이유임.
이제는 환갑이 넘으셨는데 엄마 퇴근하고 와서 늦게까지 공부하시는것 같음. 어제는 순공 5시간 찍으심 카페도 식당도 교실운영도 주중/주말 단 하루도 못쉬면서 매일 공부중이심. 올해 복지관 정년 퇴임이신데, 이참에 대학원가서 석박따서 이론부터 실무까지 제대로 가르치시겠다고 대학원 지원 넣으셨음 이게 끝이 아닌게 놀라움.
나는 대기업 화학회사 8년 다니다가 때려치고 원래 꿈이었던 영화/드라마 바닥에 들어간지 어언 4년째임ㅋㅋ아무 연고도 없이 저예산 영화 영수증 만지는 일부터 시작했고 이젠 작품수도 좀 쌓여서(그중에 대박난 작품도 있음) 엄마 믿고 막 살고 있음.
뭐 할때 늦은 나이라는건 없는 것 같음. 절대 현실에 무너지지마셈 아니면 아닌거지 들어갈 문이 없으면 창문으로라도 가면 됨. 당장 눈 앞이 깜깜해도 사람이 언젠가 빛나게 되는 순간이 옴. 여기 산증인이 있음
요즘 인생에 회의감 느끼고있었는데 이 글 보니까 눈물난다..어머님 정말 대단하시고 존경스러워 그리고 가족 전부 각자 잘 버티면서 꿈 이루고있는게 제일 부럽고.. 여시 글 덕분에 동기부여 얻어가 공유해줘서 고마워 요즘 정말 어떻게해야할지 몰랐거든 결국 차곡차곡 내가 쌓아온 모든 역경이 나를 만드는걸 알면서도 자꾸 무너졌는데 진짜 큰 힘 받아가
어머니 진짜 대단.. 끝가지 포기하지않고 건강하셔서 다 이뤄내셨음 좋겠다
와 막막했던 차에 너무 멋진글보고 자극받고가욥
멋있으시다ㅠㅜㅜㅜ
진짜 공지해줘요ㅠㅠ 삶의 희망같은 글이다. 덕분에 힘난다. 인생은 정말 무궁무진하단걸 알려줘서 고마워!! (글쓴여시에게도 스크랩한 여시에게도)
why am I crying ㅠ 진짜 멋지다
와 눈물나… 어머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너무 멋지심
글쓴이도 어머님도 너무 멋있으시다. 글 정독하며 나도 용기얻구가!
일 때려칠까말까 연어하다가 나온 글이네.... 멋지시다
진짜 멋지다 본 받아야지
멋짐이 100% 아니 1000%
요즘 인생에 회의감 느끼고있었는데 이 글 보니까 눈물난다..어머님 정말 대단하시고 존경스러워
그리고 가족 전부 각자 잘 버티면서 꿈 이루고있는게 제일 부럽고.. 여시 글 덕분에 동기부여 얻어가 공유해줘서 고마워
요즘 정말 어떻게해야할지 몰랐거든
결국 차곡차곡 내가 쌓아온 모든 역경이 나를 만드는걸 알면서도 자꾸 무너졌는데 진짜 큰 힘 받아가
지금 할 수 있는걸 하자 라는 생각이 든다 글 써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