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귀한 성도 (시 16:1~6)
1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2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3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4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그들이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5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6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이 시간에 “존귀한 성도”라는 제목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은 존귀한 사람입니다. 보물 같은 사람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이 보시기에 존귀하다면 그는 인생의 완전한 성공자입니다. 그래서 사52:13에 "보라 내 종이 - 존귀하게 되리라" 하셨고, 대상4:9에 "야베스는 - 존귀한 자라." 한 것과 같습니다. 얼마나 존귀했든지 그가 입만 벌려도 하나님께서 그의 소원을 다 들어주셨습니다.
오늘 시편 16편에 다윗도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라 말씀합니다. 얼마나 귀한 본문이면 표제어에 "다윗의 믹담"이라고 기록되어 있을까요? '믹담'은 '황금시', '보배로운 시'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씀대로 살면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마7:12에 기독교의 황금율과 같은 시입니다.
그럼 하나님 보시기에 존귀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1. 하나님을 최고의 복으로 삼는 사람입니다.
1-2절에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사람들은 돈 명예 권세 행복 이런 것을 최고의 복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만을 최고의 복으로 여겨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도 그를 최고로 여기십니다.
시73:25-26의 아삽처럼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박국도 “무화과가 없고 포도나무가 없고 외양간이 비어 있어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로다" (합3:17-18) 했습니다.
그래서 청교도 토마스 왓슨은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가진 사람은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며,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아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도 "내가 가진 것을 모두 잃어도 그리스도를 잃지 않는다면 나는 아무것도 잃은 것이 아니다." 했습니다.
재산은 잃어도 다시 벌 수 있습니다. 건강은 잃었다가 회복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잃는다면 모든 것을 잃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드온이 나라를 구한 것도 하나님이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가 나라를 지킨 것도 하나님이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세상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다윗과 같은 사람, 모세와 같은 사람, 에디슨 같은 사람, 바울과 베드로 같은 사람,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하시기를 추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하나님만을 최고의 복으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 소원의 전부여야 합니다.
2. 존귀한 성도는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3-4절에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그들이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다른 신이나 다른 우상을 숭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의 가르침도 받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만 예배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요4:23에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찾으십니다. 예배시간인데 너 뭐하고 있느냐? 기도시간인데 넌 무엇하고 있느냐? 찾으시는데 없다면 서운해 하십니다.
어떤 성도가 사업이 어려워져 주일에도 일을 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만큼은 포기하지 않겠습니다."라고 결단했습니다. 주변에서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는 예배를 우선순위에 두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업은 다시 회복되었고, 그는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하나님이 내 사업을 살려주신 것도 감사하지만, 무엇보다 예배의 자리를 지키게 하신 것이 가장 큰 은혜였습니다."
예배 잘 드리는 사람이 귀합니다. 마가요한의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셨던 것처럼 우리의 예배가 그렇게 예배 잘 드리기 위해서 애쓰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어요? 그러면 한국의 보배 세계의 보배입니다. 1995년 미국 플로리다의 펜사콜라에서 부흥의 역사가 일어날 때 온 세계 사람들이 그곳으로 몰려왔습니다. 보배이기 때문입니다.
예배만 잘 드려도, 영육 간에 복이 임하고, 세계선교가 이루어집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도 우상을 멀리하고 하나님께 예배 잘 드리니까 그렇게 높이신 것입니다. 하루 3번씩 드리는 이 예배를 우리들이 본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예배의 비전입니다. 아브라함이 가는 곳마다 예배를 드렸듯, 우리 나그네 인생에게 예배는 최고의 보배입니다.
3. 천국의 상급을 위해서 사는 사람입니다.
5-6절에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기업으로 주신 가나안 땅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가나안은 천국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상을 쌓으시기를 바랍니다.
마6:20-21에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하셨습니다. 예수 믿는 것 자체가 천국의 상이지만, 더 잘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리석은 부자와 같이 이 땅에다만 쌓으시면 안 됩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창고는 가득 채웠지만 하나님 앞에 쌓을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더 많이 모으면 더 안전할 줄 알았지만 그날 밤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찾으셨습니다. 이 모습이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모세를 보세요. 히11:24-26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이처럼 모세가 존귀했던 것도 애굽의 영광보다 하나님을 더 귀히 여기고 그가 주실 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상이 많은 사람이 존귀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마5:10-12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 기뻐하고 즐거워 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편을 쓴 당시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며 광야를 떠돌던 때로 추측됩니다. 끝없는 좌절과 고통 속에 있을 때입니다. 그러나 그는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복이요, 기업이요, 즐거움이었기 때문입니다. 다 빼앗겨도 하나님은 빼앗을 수 없습니다. 다 버려도 하나님은 버리시지않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육신을 가지고 이 땅을 살지만 그것을 이기고 다윗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산다면 그만큼 존귀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만을 우리 최고의 복을 삼고, 늘 예배하고 사모하며, 천국의 상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그리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하나님께서 가장 존귀히 여기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