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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15 / 제목:오횡묵 밀양군수의 고성총쇄록(固城叢鎖錄):1894.1.23 載嶽山 표충사 방문 기록
77. 오횡묵(吳宖默)의 경상도(慶尙道) 고성부총쇄록(固城叢瑣錄)에 재악산(載岳山) 기록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317?svc=cafeapp
고성총쇄록(固城府叢瑣錄)
고성부사를 지낸 오횡묵(吳宖默, 1834- ?)이 지은 고성총쇄록중
1894년 1월 23일자에 재악산(載岳山) 표충사 방문 내용이 나온다
무안에서 재악산 영정사로 表忠祠를 옮기게 된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77. 오횡묵(吳宖默)의 경상도(慶尙道) 고성총쇄록(固城叢瑣錄)에 재악산(載岳山) 기록
작성자:도재국
작성시간:2015.04.02 조회수:98
댓글1
77. 오횡묵(吳宖默)의 경상도(慶尙道) 고성부총쇄록(固城叢瑣錄)에 재악산(載岳山) 기록
이 글을 만든 목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영남알프스의 주산(主山)인 재악산(載嶽山, 載岳山 : 해발1189.2미터)은 원래의 산명입니다
② 이 재악산(載嶽山, 載岳山, 사자봉 獅子峰, 제1봉)을 1925년에 일제(日帝)가 천황산(天皇山)으로 조작했습니다
③ 제1봉인 재악산(載嶽山, 载岳山 = 사자봉 獅子峰)을 위와 같이 조작하고,
④ 제2봉인 수미봉(須彌峰)은 "역사적 근거와 증거가 없는 재약산(載藥山)"으로 억지로 만들었습니다.
⑤ 본 블로그와 카페는 제1봉인 천황산(天皇山)을 재악산(載嶽山, 載岳山)으로 복원하고, 제2봉인 재약산(載藥山)을 수미봉(須彌峰)으로 변경하기 위해
⑥ 재악산(載嶽山, 載岳山) 산명(山名)의 증거를 찾아 글과 사진을 올리고, 재악산(載嶽山, 載岳山)의 정당성을 홍보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글과 사진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⑦ 재악산(載嶽山, 載岳山)을 많이 홍보해 주시기 바라오며, 많은 지도,편달,성원을 부탁드립니다
블로그 및 카페 운영자 도재국(都在國, 닉네임 레나, 소나무바다) 올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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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총쇄록(固城府叢瑣錄)
고성부사를 지낸 오횡묵(吳宖默, 1834- ?)이 지은 고성총쇄록중
1894년 1월 23일자에 재악산(載岳山) 표충사 방문 내용이 나온다
무안에서 재악산 영정사로 表忠祠를 옮기게 된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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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네이버 지식백과] 고성총쇄록(固城叢瑣錄)
(낯선 문학 가깝게 보기 : 한국고전, 2013.11, 인문과교양)에서 참고를 하고, 옮기면서 적습니다
■ 문헌상 "재약산(載藥山) 기록 없음 확인"요약서(연명부 작성용)
○ 연번 : 77
○ 정식 명칭 : 오횡묵(吳宖默)의 경상도(慶尙道) 고성부총쇄록(固城府叢瑣錄)에 재악산(載岳山) 기록
○ 요약 명칭 : 오횡묵(吳宖默)의 경상도(慶尙道) 고성부총쇄록(固城府叢瑣錄)
○ 기록(문헌) 내용 요약 :
- 지방관(요즘의 시장,군수)으로 22년간 재직한 인물임
-『고성총쇄록』은 ‘고성군의 소소하고 자잘한 사실들을 모두 기록함’의 뜻이다.
- 조선 말기에서 대한제국(大韓帝國)기를 거치면서 10여 년간 지방 목민관을 지낸
- 채원(茝園) 오횡묵(吳宖默)이 경상남도 고성군 부사(府使)로 재임하던 기간에 쓴 일기로
- 필사본 2책으로 되어 있다.
○ 산(山)지명 등 : 載岳山
○ 년도(시기) : 1894년 1월 23일자에 재악산(載岳山) 표충사 방문
○ 참고사항
- 주 내용은 고성 지방의 지방행정의 전반에 걸친 내용을 소상하게 기록하고 있는데,
- 신변일기 차원이 아닌 지방 행정의 실태, 향촌 사회의 모습, 민속과 생활사 등을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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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부총쇄록(固城府叢瑣錄)
사진 제공 : 밀양 거주 박순문 변호사
22년간 지방관(부사, 군수)를 역임한 채원 오횡묵의 "1894년 갑오년 1월 사명대사 관련" 총쇄록(叢瑣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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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쇄록(叢瑣錄)의 사명대사(泗溟大師)와 재악산(載嶽山) 관련 일부 내용 ==
아래 사진의 오른쪽 첫째줄부터
追崇敎旨皆藏于寺中佣刀輿袈裟長衫鐵錚傳在祠中法孫南鵬悼師之跡徵遍告搢紳特給復號五結又命本道重修祠宇僧演初翠眠㝡心尙玄等實幹其事幷享三師伊後五世法孫太虛南鵬公每以山勢擁塞排局僻卽移載嶽山有志未果八世法孫月波堂天有呈營邑報春曺何幸闡獲乃扵己亥丁月十七日奉三師神位入此寺院宇排布一義舊制而正堂則額義衆堂堂之左右建(東)西齋東齋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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追崇敎旨皆藏于寺中
삼대 추숭한 교지가 모두 사당 안에 간직되었다
佣刀輿袈裟長衫鐵錚傳在祠中
패도와 가사장삼, 철쟁, 목발은 절 안에 보존되었다
法孫南鵬悼師之跡徵遍告搢紳
법손인 남붕이 대사의 유적이 없어짐을 슬퍼하여 두루 선비들에게 고하여
特給復號五結又命本道重修祠宇
특별히 복호 오결을 내리고 또한 본도에 명령해서 사당을 중수하니
僧演初翠眠冣心尙玄等
중 연초, 취면, 최심, 상현 등이
實幹其事幷享三師
실상 (그 일을) 주간하여 세 대사를 함께 배향하였다.
伊後五世法孫太虛南鵬
그 후 오세법손 태허 남붕이
公每以山勢擁塞排局僻
매양 산세가 옹색하고 앉은 자리가 외진 곳에 있어
卽移載嶽山有志未果
재악산으로 옮기려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고
八世法孫月波堂天有呈營邑報
팔세법손 월파당 천유가 감영과 읍에 보고하고
春曺何幸闡獲
봄에 예조에 알려 다행히 인가를 얻었다.
乃扵己亥丁月十七日奉三師神位
기해년(1839) 정월 17일에 세 대사의 신위를 받들고
入此寺院宇
이 절(靈井寺:영정사)에 들어 와(이 절에 사당을 들여와:이건하여)
배포일의구제
排布一義舊制
사당배치를 일제히 옛 제도를 따랐고
이정당칙액의중당
而正堂則額義衆堂
정당은 이름을 의중당이라 하고
당지좌우건(동)서재동재칙
堂之左右建(東)西齋東齋則
당의 좌우에 동재, 서재를 세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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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師 :
●西山大師 휴정(休靜)
●泗溟大師 유정(惟政)
●靈圭大師 기허(驥虛)
●五世法孫 : “太虛堂 南鵬” 禪師
●僧 : 演初, 翠眠, 冣心, 尙玄 等
●八世法孫 : “月波堂 天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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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숭<교지>개장우사중
追崇<敎旨>皆藏于寺中
삼대 추숭한 교지가 모두 사당 안에 간직되었다
칼, 수레, 가사장삼, 쇠징
●祠 : 구표충사
●佣 : 품팔 용 ?, 고를 총 ?
●佣(총)刀輿 :
●錚 : 쇠소리 징,
●輿 : 수레 여, 수레
용도여가사장삼철쟁전재사중
佣刀輿袈裟長衫鐵錚傳在祠中
패도와 가사장삼, 철쟁, 목발은 절 안에 보존되었다
법손남붕추사지적징편고진특
法孫南鵬悼師之跡徵遍告搢紳
법손인 남붕이 대사의 유적이 없어짐을 슬퍼하여 두루 선비들에게 고하여
●法孫 : 한 스승에게서 불법을 이어받아 대를 이은 제자들
●悼 : 슬퍼할 도, 슬프하다
●搢 : 꽂을 진, 떨치다
●徵 : 부를 징, 구하다
●遍 : 두루 편, 처음부터 끝까지 한 차례 하는 일
●特給 : 특별히 줌.
●復號 五結 :
●紳 : 큰 띠 신, 예복을 갖추어 메는 큰 띠
특급복호오결우명본도중수사우
特給復號五結又命本道重修祠宇
특별히 복호 오결을 내리고 또한 본도에 명령해서 사당을 중수하니
승연초취면최심상현등
僧演初翠眠㝡心尙玄等
중 연초, 취면, 최심, 상현 등이
실간기사병향삼사
實幹其事幷享三師
실상 (그 일을) 주간하여 세 대사를 함께 배향하였다.
●實 : 열매 실, 결실을 맺다, 가득차다
●幹 : 줄기 간, 몸, 줄기, 기둥
●伊 ; 어조사 이, 저, 그, 이
●幷 : 함께
이후오세법손태허남붕
伊後五世法孫太虛南鵬
그 후 오세법손 태허 남붕이
●伊 : 오조사 이
공매이산세옹색배국피
公每以山勢擁塞排局僻
매양 산세가 옹색하고 앉은 자리가 외진 곳에 있어
●公 : 공변될 공, 숨김없이 드러내다
●每 : 매양 매, 늘, 언제나
●擁 : 안을 옹, 안다, 소유하다
●僻 : 궁벽할 벽
●排 : 밀칠 배, 배척하다, 밀치다
즉이재악산유지미과
卽移載嶽山有志未果
재악산으로 옮기려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고
팔세법손월파당천유정영읍보
八世法孫月波堂天有呈營邑報
팔세손 월파당 천유가 감영과 읍에 보고하고
●有志 :
- 어떤 일에 뜻이 있거나 관심(關心)이 있음
- 지탱하여 나가거나 이어 가다
●未果 : 성과가 없다
●呈營 : 조선 시대, 각 도의 관찰사가 있는 감영에 직접 소장을 내던 일
●呈 : 드릴 정, 윗 사람에게 바치다
춘조하행천획
春曺何幸闡獲
봄에 예조에 알려 다행히 인가를 얻었다.
●曺 : 예조
●何 : 어찌 하, 어찌, 무엇, 얼마
●幸 : 다행 행, 다행이
●闡 : 밣힐 천, 열 천, 닫힌 것을 열다
●乃 : 이에 내, 이레
●扵 : 어조사 어
●獲 : 얻을 획, 손에 넣다, 일이나 때의 마땅함을 얻다
●入 : 원문에 여덟 팔로 보이나, 들 입으로 봄
●院宇 : 사당(표충사당)
내어기해정월십칠일봉삼사신위
乃扵己亥丁月十七日奉三師神位
(이에), 기해년(1839) 정월 17일에 세 대사의 신위를 받들고
2015년 기준하여, 지금부터 176년 전(1839년)에 표충사로 이건, 表忠寺 명칭 사용
●乃 : 이에 내,
입차사원우
入此寺院宇
이 절에 들어 와(이 절에 사당을 들여와:이건하여)
배포일의구제
排布一義舊制
사당배치를 일제히 옛 제도를 따랐고
이정당칙액의중당
而正堂則額義衆堂
정당은 이름을 의중당이라 하고
당지좌우건(동)서재동재칙
堂之左右建(東)西齋東齋則
당의 좌우에 동재, 서재를 세우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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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 표충사당 관련하여, 교지(敎旨)를 내린 내용, 사명대사 유품에 관한 내용
- 사우(祠宇)를 중수토록 경상도(관찰사)에 지시를 내린 내용,
- 五世法孫 : “太虛堂 南鵬” 禪師
- 僧 : 演初, 翠眠, 冣心, 尙玄 等
- 八世法孫 : “月波堂 天有” 등이 관여하여 상부에 보고를 하여 (지원을 받아)
- 재악산(載嶽山) 영정사(靈井寺)에 (사명대사를 모시는) 표충사당을 옮겨와,
- 기해년(1839년) 5월 17일에 [서산(西山), 사명(泗溟), 기허(騎虛)] 삼대사(三大師 )의 신위(神位)를
- 영정사(靈井寺)에 모시게 된 내용 등을 기록하고 있다
고성총쇄록(固城叢瑣錄) 간기(刊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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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총쇄록(固城叢瑣錄)
<요약>
『고성총쇄록』은 ‘고성군의 소소하고 자잘한 사실들을 모두 기록함’의 뜻이다. 조선 말기에서 대한제국(大韓帝國)기를 거치면서 10여 년간 지방 목민관을 지낸 채원(茝園) 오횡묵(吳宖默)이 경상남도 고성군 부사(府使)로 재임하던 기간에 쓴 일기로 필사본 2책으로 되어 있다.
주 내용은 고성 지방의 지방행정의 전반에 걸친 내용을 소상하게 기록하고 있는데, 신변일기 차원이 아닌 지방 행정의 실태, 향촌 사회의 모습, 민속과 생활사 등을 기록하고 있다.
조선 후기에 경상남도 고성(固城: 현 경상남도 고성군) 부사를 지냈던 채원 오횡묵 이 부사로 재임하던 기간(1893년, 1월 ~ 1894년 11월)에 쓴 일기로 필사본 2책으로 되어 있다.
●정병하가 밀양부사 직을 유지한 채 중앙으로 파견되고, 오횡묵 고성군수가 밀양부사 직을 겸직할 때, 載嶽山 표충사를 방문하면서 적은 내용이 위 고성총쇄록에 기록되어 있다.
※(註)도재국 :
오횡묵이 비록 밀양군수를 겸직했지만, 지방관으로서 밀양군수를 하면서 載嶽山으로 기록한 것은 국가와 백성이 공식적으로 載嶽山 라는 것을 증명한다.
●오횡묵은 시대적으로는 조선후기에 출생했지만, 載嶽山 표충사를 방문한 1894.1.3은 시대적으로 "대한민국 근대"로 분류되므로, "載嶽山 受難史 개념도"의 연표에는 "대한민국 근대"로 분류했다.
●밀양군수 정병하 생애 :
○1881년 : 신사유람단 일원 일본 오사카 파견
○1883년 :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 사관 임영
○1894년 갑오개혁 참여
○1895년 을미개혁 참여
○1896년 : 아관파천 시, 고종황제는 정병하를 역적으로 분류, 경무청 앞에서 김홍집과 함께 순검에게 참살 또는 길거리에서 군중에게돌에 맞아 죽었음.
●위 내용 출처 https://namu.wiki/w/%EC%A0%95%EB%B3%91%ED%95%98
제목 ‘고성총쇄록’이란 ‘고성의 소소하고 자잘한 사실들을 모두 기록함’의 뜻이다. 오횡묵이 지방관으로 재직하면서 겪었던 지방행정의 전반에 대한 소상한 내용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맨 처음 지방 관리를 시작한 곳은 강원도 정선으로, 정선군수(旌善郡守, 현 강원도 정선군. 1887.3 ~ : 『정선총쇄록』),
●자인현감(慈仁縣監, 현 경산남도 경산군 자인면. 1888.8 ~ : 『자인총쇄록』),
●함안군수(咸安郡守, 현 경상남도 함안군, 1889.4 ~ : 『함안총쇄록』),
●고성부사(固城府使, 현 경상남도 고성군, 1893.2 ~ 1894.10, 『고성총쇄록』),
●지도군수(智島郡守, 현 전라남도 신안군 지도면, 1896.1 ~ : 『지도총쇄록』),
●여수군수(麗水郡守, 현 전라남도 여수시, 1897.5 ~ ), 진보군수(眞寶郡守, 현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1898.8 ~ ),
●익산군수(益山郡守, 현 전라북도 익산시, 1900.2 ~ ),
●평택군수(平澤郡守, 현 경기도 평택시, 1901.7 ~ ) 등을 엮임하고
●1905년 7월 70세가 넘은 고령으로 관직에서 물러난다.
이외에도 저술가로서의 역량을 발휘한 저작은 전국 읍지의 대강과 세계 각국의 지리, 국세 등을 간략하게 엮은 지리서인 『여재촬요(輿載撮要)』 열 권을 써서 개화기의 지리교과서의 효시로 평가받기도 하며, 시문집인 『채원시초(茝園詩抄)』를 남기고 있다.
『고성총쇄록』은
앞서 밝힌 바대로, 작가 오횡묵이 고성 부사로 재임하면서 겪은 소소한 기록을 일기체로 쓴 글이다.
그러나 단순한 지방 관료로서의 신변 일기를 뛰어넘어 19세기 후반의 지방 행정의 실태뿐만 아니라, 그런 과정에서 작가 느낀 소회(所懷)를 2~3일 간격으로 시문을 써서 무려 438편의 시가 내재되어 있어 문학적인 가치도 높으며, 향촌 사회의 생생한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어, 민속이나 생활사 등 다양한 측면에서 연구 자료를 제공해주는 소중한 글이다.
더욱이 격변기를 살아간 지방 목민관들에게는 귀감이 될 수 있는 글로 현대 사회에서도 가치를 지니기에 충분하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고성총쇄록(固城叢瑣錄) (낯선 문학 가깝게 보기 : 한국고전, 2013.11, 인문과교양)
●(註)도재국:
●정병하의 밀양군수 직위를 대신한(겸직, 겸관) 오횡묵
밀양군수로 재직할 때 정병하는 좋은 일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관아 앞에 선정비도 남겼습니다
●그러나 분에 넘치는 권력은 정병하를 만고역적으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밀양군수 정병하는 일본인 자객이 명성황후를 시해하기 전에, 밀양군수의 직위를 유지한 채 중앙으로 발탁되었으며, 명성황후 시해 당시 일본인 편을 들어 뒤에 벌을 받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정병하가 중앙에 근무할 때 오횡묵이 밀양군수를 겸직했으며
이 때 오횡묵이 총쇄록을 지었습니다
●만고역적이 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정병하 밀양군수의 송덕비가 밀양관이 앞에 서 있습니다
●정병하의 송덕비(서쪽 맨 끝 위치) 우측 모서리가 성난 백성의 도끼에 맞아 부서져 있습니다
●우리는 밀양관아 앞에서 해마다 만세운동을 재현하기 전에 친일 만고역적의 공과를 알아야 합니다.
●이런 비극의 역사 인물의 행적도 모르고, 관아 앞에서 만세운동을 하면 안됩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학살, 고문한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식민통치의 前 단계의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깊숙하게 관련된 만고역적 정병하.
●오횡묵이 정병하를 대신해서 밀양군수를 겸관할 때 載嶽山 표충사를 둘러보면서 쓴 그의 총쇄록.
●정병하의 행적은 밀양문화원에서 발행한 밀양지명고의 산내면 편, 용전리 조(條)에도 간단하게 언급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자고로, 일반적으로 권력이 넘칠 때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살펴보고, 도우고, 또 위정자라면, 백성을 더욱 돌보는데 힘을 쏟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公私의 일에 젊음과 패기와 권력과 힘과 富가 넘치고, 하늘을 찌를 듯이 충천할 때 머리를 숙여야 합니다.
1. 한자 원문
追崇敎旨, 皆藏于祠中. 佩刀與袈裟、長衫、鐵鉢, 傳在寺中. 法孫南鵬、悼師之跡微, 遍告搢紳, 特給復戶五結, 又命本道重修祠宇. 僧演、初畢, 眤宲、心尙玄等, 實幹其事. 幷享三師, 伸後五世法孫太虛、鵬公, 每以山勢擁塞, 排局僻露, 即移於載嶽山齋則...
2. 한글 번역
(사명대사를) 추숭(追崇)한다는 교지(敎旨)는 모두 사당(祠堂) 안에 보관되어 있다.
그가 차던 칼과 가사(袈裟), 장삼(長衫), 철발(鐵鉢) 등도 절(표충사) 속에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법손(法孫)인 남鵬(남붕)이 스승을 추모하는 흔적이 희미해지는 것을 안타까워하여, 여러 고관대작(搢紳)들에게 두루 알리니 특별히 복호(復戶, 세금을 면제해 주는 토지나 가구) 5결(結)을 내려주었고, 또 본도(경상도)에 명하여 사당을 중수하게 하였다.
승려인 演(연), 初畢(초필), 眤宲(닐실), 心尙(심상), 玄(현) 등이 실제로 그 일을 주관하여 일해 냈다.
삼사(三師, 서산·사명·기허대사)를 함께 제향(祭享)하게 된 지 5세(世) 뒤의 법손인 태허(太虛)와 붕공(鵬公)이, 매번 산세가 옹색하게 막혀 있고 사당의 국세(배치)가 치우치고 겉으로 너무 드러나 있다고 여겨, 곧 재악산(載嶽山)의 재(齋, 영정각/사당 영역)로 이건(移建)하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