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상블라주*
ㅡ죽은 맛 죽을 맛
김재환
아침에 일어나
빽빽거리는 알람을 가장 먼저 죽이는 너
뱃속에서 신호가 왔다
변기에 앉아 어제를 잠시 떠올린다
쌀 시금치 아보카도 감자 풋고추 오이 대파 김 당근 우유 배추 방울토마토 열무 돌나물 커피 빵 돼지고기 상추 마늘 물 참치…… 누에고치 양털 뱀 거위 물소 악어 송아지……
하루 동안 네가 먹고 입으며 살해한 이름들이 이렇게 많았구나
그러나 사는 동안 저들 중 누구도
(대체 언제까지 나를 이렇게 죽일 참이냐고)
너도 한번 죽어보라고 물어뜯지 않는 그들
길을 걷다 거울을 보면 너 대신 걷고 있는 그들
너의 몸에서
네가 죽이고 삼킨 수많은 색깔이
에일리언처럼 왈칵왈칵 쏟아질 것만 같은 밤
아픈 무릎에서, 반쯤 삐져나온 상추를 뜯어낸다
귀를 후비다 풋고추 반 토막을 달팽이관에서 꺼낸다
내일은 너의 왼팔에서 덜 씹힌 마늘 반쪽 불쑥 만져지겠다
퇴근길 전철, 너의 구두 속에도
밑창 대신 소화 덜된 배춧잎이 두 장 고여 있다
그러니까 너는
거리에 전시 중인, 최신형
이동식 공동묘지야
내 말 맞지?
* 아상블라주(Assemblage) - ‘모으기' '집합' '조립'을 뜻하는 미술용어로 평면회화에 삼차원성을 부여하는 기법.
웹진 『시인광장』 2024년 7월호 발표
김재환 시인
2022년 《시산맥》으로등단, 시집 『각시붓꽃』 출간. 제1회 시산맥기후환경문학상 신인상, 제33회 성호문학상 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