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하루 전날, 누나가 두 딸과 함께 저희 집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사흘 전에 내려와서 뒤늦게 내려올 자형을 기다리는 것이었죠. 그날 정오가 넘어 지친 기색이 역력한 자형이 도착했고, 점심을 먹은 뒤누나의 시댁이 있는 남해군 창선면으로 가야했습니다. 저는 그날 오전에 대구에서 아내와 함께 진주에 간 것이라 피곤했지만, 처음으로 누나 가족을 시댁까지 태워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짐이 많았고, 자형과 누나는 적잖이 지쳐 있어보였으며, 저는 집에 있어봐야 낮잠 자는 것 외에는 딱히 할 일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본래는 삼천포항으로 가서 카페리 호를 타고 곧장 창선면으로 건너가서 마을버스나 택시를 타고 '공룡발자국'이라는 간판을 따라서 가면 된다는데, 추석 전날이라 삼천포항이 붐빌 것 같아 그냥 남해고속도를 달려 남해대교를 건너고 한참을 우회하여 갔습니다. 대학 1학년 때 가본 뒤로는 처음이니 벌써 십년이 넘은 남해 행이었습니다. 그러나 놀란 것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남해의 풍광은 거의 변한 게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제주도나 거제도, 흑산도등만 해도 수십 년 세월에 적당히 닳아서 휘황찬란한 모텔이며 무수한 아파트 군락, 수많은 슈퍼마켓 등이 관광객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남해에서는 드문드문 여행객을 위한 별로 눈에 띄지도 않는 모텔 몇과 남해 읍에 들어서면 뵈는 한 두 동의 아파트를 제외하고는 창선면으로 달리는 길에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비교적 잘 닦아놓은 도로와 남도의 낯설음을 풍기는 이정표들, 야트막한 산과 멀리 보이는 작은 바다의 속살, 가을을 뒤흔들고 서 있는 코스모스들과 단아한 들풀들.
누나의 시댁은 남해 본섬에서 창선면으로 연결된 다리를 건너고 서도 한참을 들어가야 했습니다. 매우 가파른 언덕길에 접어들자 비포장도로가 시작되었고 길은 꼬불꼬불 이어졌습니다. 한 작은 바닷가에 낮은 산을 배경으로, 무화과나무와 유자나무, 밤나무 들을 등에 업고 낡은 지붕에 허름한 블록들로 담을 두른 집이 누나의 시댁이었습니다. 이십여 년을 서울에서 생활한 자형은 고향집에 도착하자마자 기운이 나는지 이곳저곳을 다니며 처남을 위해 무화과 열매를 땄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비교적 빠르고 편했습니다. 창선면의 부두로 가니 카페리가 30분마다 다녔고, 차를 탄 채로 불과 15분여 만에 삼천포항 부두에 닿아 3번 국도를 타고 진주로 곧장 돌아올 수 있었지요.
남해에 십여 년 만에 가서 차를 몰고 달리는 동안 내내 이성복의 '남해금산'이라는 시가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제게는 아직도 전혀 개발의 흔적이 뵈지 않는 남해의 풍경이 너무나 고마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다시 가보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 남해대교 南海大橋
한국 최초의 현수교(懸垂橋)로 길이 660 m, 너비 12 m, 높이 52 m . 1968년 5월에 착공하여1973년 6월 22일 준공되었다. 이로써 남해도가 육지와 연결되어, 한려해상국립공원(閑麗海上國立公園) 지역과 남해도 전체의 개발에 이바지했다. 남해 노량해협은 통영 ·여수를 잇는 해상교통의 요지이며, 이충무공의 전적지인 동시에 전사한 곳으로, 충무공을 추모하는 충렬사(忠烈祠)가 있는 곳이다.
* 금산 錦山
높이 681m. 원래는 신라의 원효(元曉)가 이 산에 보광사(普光寺)라는 절을 세웠던 데서 보광산이라 하였는데, 고려 후기 이성계(李成桂)가 이 산에서 100일기도 끝에 조선왕조를 개국한 그 영험에 보답하는 뜻으로 산 전체를 비단으로 덮었다 해서 금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산에는 조선의 태조(太祖)가 기도했다는 이씨기단(李氏祈壇)을 비롯하여, 삼사기단(三師祈壇) ·쌍룡문(雙龍門) ·문장암(文章岩) ·사자암(獅子岩) ·촉대봉(燭臺峰) ·향로봉(香爐峰) ·음성굴(音聲窟) 등 천태만상의 기암괴석과 울창한 숲, 그리고 눈 아래로 보이는 바다와의 절묘한 조화는 명산으로서 손색이 없다.
남해 금산은 1974년 12월 28일 경상남도기념물 제18호로 지정되었다.
* 창선면 昌善面
경남 남해군 동부에 있는 면.
위치 : 경남 남해군 동부
인구 : 8,611(1999)
면적 : 54.26㎢
주요문화재 : 금산봉수, 당항리지석묘, 금오산성, 대방산봉수대, 창선성, 구암사지
면적 54.26km2. 인구 8,611(1999). 16개리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은 통영시 ·사천시, 북쪽은 사천시, 남쪽은 삼동면(三東面), 서쪽은 설천면(雪川面) 등과 바다건너 접경한다. 해안선이 19km로 한국 11위의 도서이며, 태방산(台芳山:468m) ·속금산(束錦山:358m) 등의 작은 산과 창선천과 부윤천(富潤川) 등이 있다.
면적의 24%가 농경지이고 벼 ·보리 등 주곡작물을 생산하며 농업인구가 전체의 80%에 이른다. 수산물로서는 굴의 생산이 많다. 도로는 있으나 버스는 없고, 객선(客船)으로 삼천포항과 연결된다.
=> 요즘(20002. 9)은 버스도 다니며, 창선면과 삼천포항 사이에 다리가 완공예정이다.
【문화재】 금산봉수(錦山烽燧), 당항리지석묘(堂項里支石墓), 금오산성(金鰲山城), 대방산봉수대(臺方山烽燧臺), 창선성(昌善城), 구암사지(龜岩寺址), 국사봉사당(國祀峰祠堂) 등이 있다.
남해금산/이성복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편지1/이성복
처음 당신을 사랑할 때는 내가 무진무진 깊은 광맥 같은 것이었나 생각해봅니다 날이 갈수록 당신 사랑이 어려워지고 어느새 나는 남해 금산 높은 곳에 와 있습니다 낙엽이 지고 사람들이 죽어가는 일이야 내게 참 멀리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