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홍의 이야기
내가 해킹을 시작한 건 12살 때, 명령 프롬포트를 이용하면서부터다.
드라마나 영화 같은 거에서 나오기나 하는, 검은 화면에 흰 글자 쳐넣기 같은 게 너무나도 멋져서 시작하였다.
그래서 그걸로 다른 사람의 아이피를 따오거나 다른 사람의 컴퓨터를 강제로 종료시키기도 해 보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나는 서서히 도스의 개념과 네트워크 및 아이피의 개념, 그리고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패킷의 개념까지 알게 되었다.
패킷이란, 원래는 '소포, 선물상자'등을 뜻하는 용어이지만 데이터 통신계에서는 네트워크를 통해 전달하기 쉽도록 만든 데이터의 단위이다. 즉, 당신이 인터넷을 탐험할 수록 패킷은 당신의 발자국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패킷을 잘만 사용하면 네트워크 해킹에도 사용될 수 있다. 일단 특정 네트워크 아이피에다가 명령 프롬포트로 핑공격(패킷을 무작위로 보내는 공격이다. 컴퓨터가 약 50가 있고, 이들이 동시에 핑공격을 한다면, 그 네트워크는 디도스 공격을 받는 것보다 더욱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다.)을 한다. 그러면 소포상자가 네트워크로 통하는 성벽에 가득가득 쌓이게 된다. 그래서 다른 컴퓨터들까지 동원하면 그 성벽 앞에 소포상자가 산을 이루게 되고, 결국 성문은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열리게 된다. 그러면 그 소포상자들이 쏟아져 내릴 때에 코드를 심으면 된다. 그렇게 되면 그 컴퓨터는 나의 사랑스러운 좀비가 된다.
나는 이 원리를 겨우 14살때 모두 다 깨우쳤다. 나는 명령 프롬프트를 더욱더 극대화시킨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어 본 적도 있고, 배치 파일들로 다른 친구들의 컴퓨터 네트워킹을 다운시킨 적도 있었다( 덕분에 그 애들은 게임 네트워크가 모두 끊어져 다시 연결을 해야만 했다.).
패킷을 이해하고 나니 이제는 본격적인 해킹이 하고 싶어졌다. 난 이미 스크립트 키디(Script Kiddy-초짜 해커)를 한참 넘어서서 엑스퍼트(Expert-전문 해커) 단계까지 와 있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코드 만들기였다.
코드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인터넷에는 불법으로 만든 패킷파일, 배치파일, 코드들도 있지만 그것은 너무 단순하고 유치하다. 기껏 해 봤자 네트워킹 다운, 프로그램 파괴이지만, 나는 프롬포트 하나만으로 아이피를 따내고, 컴퓨터를 전원도 켜지지 않게 할 수 있었다.
코드를 만드는 것의 기초는 배치파일이다. 이것도 프롬포트로 수행된다. 메모장에 여러가지 명령문을 쳐 넣고 끝에다가 '.bat'을 붙이는 것. 그러나 이것들은 너무나 약하다. 단지 하나의 '바로가기'정도로만 역할이 할당되지 않는다. 나는 패킷을 따로따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무더기로 보내는 방법을 생각했다. 엄청난 양의 '소포'를 투석기에 장착시키는 것처럼. 그러면 마치 공성포에 성벽이 무너지는 것처럼 상대의 네트워크를 모조리 섬멸시킬 수 있다(패킷은 소포뿐만 아니라 레이저 총의 역할도 한다.).
그렇게 탄생한 이른바 "글래디에이터 코드"는 굉장했다. 시험삼아 이웃집의 네트워크(거기에는 아주 싸가지 없고 게임이나 쳐 하는 애가 있다.)에 적용시켰더니 네트워크가 거의 무너지다시피 했다. 덕분에 그놈은 게임을 한달동안 못 하게 되었다. 나는 그런 글래디에이터를 30가지가 넘는 종류로 발전시켰다.
근데 돌이켜 보니 나는 무언가를 '파괴'하는데만 코드를 집중시키고 있었다. 장난용, 보복용으로 설계된 나의 사랑스런 50가지의 코드는 어차피 열심히 만들어 봐야 쓸데없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마비용'코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제일 대표적으로는 내가 한달동안 열심히 만든 "암페타민"이 있다. 이건 원래 가루마약의 한 종류인데, 매우 세다고 한다.
하여, 이 코드는 그야말로 엄청나다. 이 코드를 패킷과 함께 넣는 순간, 본체 속의 CPU로 통하는 모든 정보들을 차단한다. 말 그대로 컴퓨터를 뇌사상태로 만든다고 보면 된다. 단지 바로가기 하나만 넣었을 뿐인데, 컴퓨터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 생각보다 컴퓨터 자체는 매우 멍청하다. 만지는 사람에 따라 다를 뿐이지.
내 운명을 송두리째 바꿀 전화는 암페타민 발명 직후에 걸려 왔다.
구준은 병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학생이 화재의 원인을 알 수도 있기 때문에 밤 2시까지 수술실 앞에서 기다렸다.
이미 학생의 부모는 맞은편에서 울고 있었다.
의사가 수술실 문을 열고 나왔다. 모두가 벌떡 일어났다.
"아이는.....괜찮습니까?"
"우리아이........어떻게 된 건 아니죠?"
동시에 물었다.
의사가 천천히 대답했다.
"환자는 다행히 살았습니다. 그러나 다리에 붙어 있는 살들이 몽땅 태워졌기 때문에 회복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보호자 분들이 잘 돌봐 주세요."
환자의 가족은 눈물을 흘렸다.
"자, 이제 갑시다."
"흐음......경위님, 감사합니다...."
구준은 가족들과 함께 휴게실로 갔다.
"아이고, 내가 조금만 일찍 왔더라도...."
구준은 일단 위로부터 했다.
"띠리리리링~"
구준의 전화가 울렸다. 구준은 속히 받아들고 복도로 나갔다.
"여보세요?"
"아... 송 경위 빨리 이쪽으로 와야겠어. 지금 그 사고난 환자, 보통 학생이 아니야."
"네..? 아... 저 지금 그 병원에 있는데요?"
"아니, 일단 빨리 와! 지금 환자 프로필이랑 관련파일 뽑아냈단 말이야. 자네가 좀 매칭이랑 조사 같은 걸 좀 해 줘야지."
"네. 빨리 가겠습니다."
구준은 환자 가족에게 인사를 하고는 나갔다.
서에 도착해 조사실로 들어갔다. 이미 공 경장은 파일을 확인중이었다.
"아, 왔군. 빨리 이거나 좀 봐봐."
"뭔데요?"
"프로필인데, 잘 봐. 2011년 국제고 입학, 어학연수는 무려 5번이나 갔고, 학교에서도 전교 1등 자리를 절대 놓지 않고 있었다는구만. 지금은 방학할 때니까 아마 게임 같은 걸 하고 있었겠지. 그런데 이거, 혈연관계 내역 좀 봐봐. 아버지는 성화그룹 사장, 어머니는 그 덕분에 호화롭게 백화점 운영. 장난 아니지?"
"근데 잠깐만요. 현장수사 결과는 나왔어요?"
"응. 일단 네가 전기합선이라고 둘러대서 다행이야. 일단 수사해 보니 폭발의 위치는 본체랬지? 바로 그거였어. 자네가 지금까지 조사하던 그 화재는 모두 본체 폭발로 일어난 거야."
공 경장이 자랑스레 말했다.
"그렇다면 박 사장이 안면에 화상을 입은 건 뭐죠?"
"그때에 박 사장은 노트북을 이용하고 있었어. 노트북은 그 자체에 본체가 장착되어 있으니, 폭발과 동시에 모니터까지 날아갔겠지?"
"그러면서 그 안에 있는 모든 사용자 기록들도 싹 없애고?"
"그래, 그거야!"
"세상에, 엄청나네요. 어떻게 본체를 폭파시킬 생각을 다 하고..."
"아마도 범인은 폭발로 환자를 다치게 하면서 부모를 협박하거나, 뭐 그럴 속셈일 수도 있겠네요."
"그래. 그런데 범인은 어떻게 본체를 폭파시킨 걸까? 폭탄을 설치한 것도 아니고. 현장수사에서 폭탄 파편 따위는 나오지 않았거든."
"그거 참 미스테리네요...."
구준은 창밖을 바라보며 혼잣말하듯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