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587년 경, 이스라엘 백성이 바빌론으로 유배를 가게 되고,
유배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47년만에 다시 돌아왔는데, 이들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이 이렇게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것은
하느님께 충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자각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하시딤’이라는 단체를 조직해서,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쇄신하고자 하였다.
어제 강론에서 설명 드렸듯이, 하시딤에서는 엣세네, 사두가이,
바리사이가 갈라져 나왔는데, 엣세네는 오늘날로 치면,
사람들이 살지 않는 무인도나 광야로 가서 면벽수행하고,
엄격한 일상생활을 하는 수도 단체와 비슷했다.
사두가이들은 하시딤에서 권력욕이 비교적 강한 사람들과
고위직 성직자 가문들로 이루어진 조직이었다.
바리사이는 하시딤이라는 단체에서 갈라져 나온 평신도 그룹이었다.
엣세네는 마치 머리 깎고 중이 되어 산에 들어간다는 말처럼, 현실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현실을 떠나서 살고자 했던 사람들이었다.
사두가이들은 사독의 사람들이라는 뜻을 가진 말로, 솔로몬 시대의 제사장이었던
사독의 후예였고, 오늘날로 치면, 보수적이고 현실주의적인 상류계급이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봉직했던 사람들 가운데, 고위직 성직자 대부분이
사두가이들에 해당한다.
이들은 종교 문제에 있어서 지극히 보수적이었고,
부를 축적했으며, 지극히 오만했다.
그 뿐만 아니라, 예수 시대에는 로마 통치자들과 타협해서, 식민지 상황의
왕국에서 매국노, 친 로마 세력을 형성했다.
예전 일제 시대에 일본의 앞잡이가 되었던 친일파 가운데
일본으로부터 작위를 받았던 사람들,
일제 시대에 고위직에 있었던 사람들에 해당한다.
엣세네와 사두가이와 달리 바리사이들은 하시딤에서 가장 경건한 사람들,
현실에 살면서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고매함을 추구하던 사람들,
바로 예수 시대의 딸깍발이가 바로 바리사이들이었다.
오늘 복음에서는 613개 조항으로 이루어진 그 율법에서
아주 중요한 조항이었던 십일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예수시대에는 유대교 신도가 되면 반드시 지켜야 할 율법의 조항이 613개나 되었다.
그 613개 조항들 중에서 « 해서는 안 된다 »는 금지명령이 365개이고,
« 해야 한다 »는 명령이 248개였다.
십일조는 소출을 냈을 때에, 그 소출의 10분의 1을
하느님께 바쳐야 한다는 율법 조항이다.
직접적으로 하느님께 바치는 것이 아니라, 사제가문이었던 레위들에게 바치면,
레위들은 자기가 받은 것의 10분의 1을 제사장에게 바쳤다.
얼핏 구약성경을 보면, 십일조는 마치 레위들을 위한 것처럼 보인다.
민수기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
« 레위인은 땅을 나누어 받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지파들이
그들을 위하여 십일조를 내었고 레위인은 그 중에서 다시 십일조를 떼어
야훼께 바쳐야 했다 »
(민수 18, 20-32).
그러나 십일조는 레위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신명기에 이런 말이 나온다 :
« 너희는 삼 년마다 한 번씩 그 해에 난 소출의 십일조를 다 내놓아
성 안에 저장하여 두었다가 너희가 사는 성 안에 있는 레위인, 떠돌이,
고아, 과부들이 와서 배불리 먹게 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복을 내리실 것이다 »
(신명 14, 28-29; 26,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