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희의 ‘사랑의 문재’
며칠 전 찾아왔던 상민이는 4년 전 졸업하고 나서 이제껏 화실에 나가서 만화를 습작하느라 고정된 직업이 없다. 유머 감각이 뛰어나서 늘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학교 성적도 좋아서 원하기만 하면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었을텐데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상민이는 굳이 만화가의 길을 택했다. 아직 만화가로 정식 데뷔하지 못해서 생활이 너무나 옹색했고, 여전히 주위 사람들은 제대로 된 직장을 얻어서 남들처럼 살라고 한단다. 하지만 정작 상민이 자신은 지금의 생활이 더 좋다며 웃는데, 아닌게 아니라 얼굴이 무척 밝았다.
졸업할 때 논문을 16세기 영국의 작가이자 정치가, 위대한 인문주의자였던 토머스 모어
(1478-1535)의 정치공상소설 ‘유토피아(1516)’에 대해 썼다는 상민이가 재미있는 말을 꺼냈다. 즉 모어가 헨리 8세의 이혼을 반대하다가 종교 반역자로 몰려 단두대에서 처형되기 직전 머리를 받침대 위에 올려놓고 했다는 말이다.“내 수염이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슈. 그건 죄가 없으니---.”
“멋있잖아요. 선생님 죽을 때까지 유머 감각을 잃지 않는 것 말이에요.” 상민이는 말하고 나서 곧 덧붙였다. “그런데 말이죠. 우리나라 정치인은 유머 감각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우리 정치인들의 이미지는 어쩐지 엄숙하고 경직되고 웃어봤자 계산적인 입술 근육의 움직임처럼 보일 뿐, 무언가 긴장에서 우러나오는 밝고 환한 표정은 별로 보지 못한 것 같다. 사실 유명한 정치가들 – 영국의 벤자민 디즈라엘리나 윈스턴 처칠, 미국의 존 F 케네디, 등은 – 그들의 탁월한 정치적 수완뿐만 아니라 유머 감각으로도 유명하다. 한번은 처칠을 끔찍이도 싫어하던 여성 국회의원 레이디 에스터가 한껏 화가 나서 처칠에게 ‘당신이 내 남편이었다면 당신 커피에 독을 탓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처칠은 느긋하게 대답했다. ”내가 당신 남편이었다면 서슴치 않고 그걸 마셨을 것입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유머 감각이란 우습거나 재미있는 것을 감지하고 즐기고 표현하는 능력이라꼬 정의되어 있다. 그러나 유머 감각은 그보다 좀 더 넓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누군가 무슨 일을 할 때 상황의 정곡을 찔러 유머 감각을 발휘하여 대처한다는 것은 그의 날카로운 상활 판단력과 자신의 의견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신의 의견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전제로 한다. 이는 또한 근시안적 판단을 유보하고 한 발자국 물러서서 좀 더 객관적으로 상황을 관찰할 수 있는 여유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신의 믿음에 대한 확신, 그리고 그 누구 앞에서도 떳떳하고 당당할 수 있는 정직함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닥터 지바고‘나 ’아라비아의 로렌스, ‘미션’ 등의 각본을 쓴 로버트 볼트는 토머스 모어의 생애를 그림 ‘사 계절의 사나이’라는 각본으로 1966년도 아카데미 상을 받은 받은 있는데, 그 중의 한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모어가 사형선고를 받자 주변의 친척들과 친구들이 다른 사람들처럼 왕과 타협해서 목숨만을 건지라고 설득에 나셨다. 그 중의 한 친구가 ‘제발 이성적으로 행동하라’고 하자 모어가 답했다.
”그렇지만 이건 이성의 문재가 아니라 사랑의 문제이지 않나.“
지금 상민이처럼 ‘사랑의 문제’를 쫓아 삶의 행로를 결정하는 학생들을 본다. 조건 좋은 혼처를 두고 경제적 능력이 없는 장애인과 결혼한다든가. 공부를 썩 잘해서 유학을 다녀와서 교수가 되었으면 하는데 갑자기 사제가 되겠다고 수도회에 입회하는 등, 이리 저리 손익을 따져가며 ’이성의 문제‘에만 급급해서 살아온 나로서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아직도 젊은 우리 학생들은 한다.
목숨까지 바쳐 자신의 신앙과 사랑의 문제를 끝까지 고수한 토머스 모어는 이제 성인으로 추앙 받는다. 그러나 나는 연구실을 나가는 상민이의 뒷 모습을 보며 지금이라도 만화가의 꿈을 접고 월급 많이 주는 회사에 취직하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미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니차람 이성의 문제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이 세상에서 용기 있는 우리 학생들의 꿈과 사랑을 지켜 줄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