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치만 된 초고입니다.
마음의 열병 (눅 4:38-39)
38. 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사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을 앓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예수께 구하니 39. 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이 시간에 “마음의 열병”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열병은 오늘날에도 무섭지만 세균에 대한 관념이 없던 옛날에는 참으로 두려운 병이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열병에 걸린 베드로의 장모가 예수님께 고침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성경 기자는 “그들에게 수종드니라”(39절)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아니라 제자들까지도 포함한 말씀입니다.
수제자 베드로의 장모 정도라면, 그리고 병들어 고침을 받았다면 대접하며 수종 드는 건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당시 랍비는 존경받는 직분이었고, 더구나 사위의 스승이신 예수님이 집에 오셨다면 당연히 수종 들어야 마땅하지 않을까요? 그런데에도 수종 들었다고 기록한 것은 그의 육신의 열병을 통하여 또 다른 무엇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육신의 열병과 함께 마음의 열병이 단단히 들어 있었습니다. 삼십 대 나이로 부양가족이 있는데 그 성실하던 사위가 직장 사표내고 이상한 소문만 무성한 갈릴리 예수 학교에 입학했으니 마음의 열병이 안 생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예수 때문에 혹은 그를 믿는 우리 때문에 열병을 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불신자나 타종교인들 혹은 예수 믿다가 무슨 일로 실망한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그들이 돌아와 예수 그리스도께 수종들게 할 수 있을까요?
1. 내가 참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먼저 내가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38절에 “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사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을 앓고 있는지라” 시몬이라 한 것을 보니까 베드로가 제자가 된 지 초창기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당시 예수님의 사역의 초창기에, 사람들이 예수님이 누구신지도 모를 때이고, 예수님의 형제들까지도 예수님이 미쳤다고 잡으러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 성실하던 사위가 어느 날 갑자기 배와 그물과 아버지까지 다 버리고 예수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은 베드로가 아니라 시몬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난감한 것입니다. 이처럼 아직도 우리가 예수를 닮지 못한 어린 제자로 산다면 우리 때문에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딤후3:5-7에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저희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갸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어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룰 수 없느니라” 항상 배워도 결단하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믿은 지가 언제인데 세상에 속해서 산다면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겠습니까? 전도는 우리에게 달렸습니다. 우리가 교회 문을 열기도 하고 닫기도 합니다. 우리 때문에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기도 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기도 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못하면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그리고 너희가 사랑하면 제자인 줄 알리라 하셨습니다.
2. 그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38-39절에“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예수께 구하니” 아픈 당사자인 장모가 구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의 장모는 아직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몰랐습니다. 방금 전의 회당 예배도 참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자들도 예수님 사역 초기에는 누구신지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거의 대부분은 알지 못해서 오는 결과입니다. 그때 주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눅23:34에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대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들을 향해 기도하셨습니다.그러므로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도 처음부터 예수를 안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딤전2:1-2에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그러면서 딤전2:4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했습니다.
그들 스스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해야 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기도의 빚을 갚아야 합니다. 우리도 누군가의 눈물의 기도의 결실이었기 때문입니다.
3. 예수의 사랑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38-39절에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예수께 구하니 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가까이해서는 안 될 병입니다. 열병은 심한 전염성이 있습니다. 이처럼 믿음에 실망한 사람들의 곁에 가면 나도 병이 듭니다. 인터넷의 잘못된 댓글 하나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이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고후6:14에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처럼 사랑으로 다가갈 수는 있습니다. 베드로의 장모가 예수를 가까이 만나보니 우러를 수밖에 없는 위대한 인품이며, 아버지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고, 육신의 병까지도 순식간에 고치시는 것을 보니 사기꾼이 아니더라는 말입니다. 그 순간 사위에 대한 모든 시름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기쁨으로 수종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열병을 꾸짖으셨는데 그것은 그 배후의 악령을 향한 것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한편으로는 이웃을 사랑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탄을 대적하면 사탄이 꼼짝 못하고 떠납니다. 지금 사탄이 모든 분야에 얼마나 깊이 들었든지 우리나라가 말만 민주주의지 점점 더 사회주의화되고 기독교 박해국가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포털 방송 신문 등 매스컴들이 형평에 맞지 않게 박해에 앞장서고 국회마저 그럴듯한 명분으로 온갖 반도덕적 반기독교적인 법들을 생산해 내고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우리 기독교의 사회공헌도는 어느 종교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대단합니다. 그럼에도 소수의 잘못이라도 발견하면 그것을 확대 재생산하여 전도길을 막습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그 배후의 악령을 꾸짖고 더 모범을 보이고 더 사랑해야 합니다. 더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우리가 기독교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예수 믿는 사람들만은 존경하고 본받고 싶다. 그리고 우리도 예수 믿고 그렇게 행복하게 살고 싶다.’ 그러한 말이 나올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렘31:34에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하나님을 아는 시대가 온다고 말씀합니다. 성령의 시대입니다. 성령 받으면 예수를 나의 구주,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확실하게 부릅니다. 좋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낙심하지 말고 더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어,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의 배후의 악령을 물리치며 성령과 사랑으로 그들에게 예수를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