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발견
김성문
불은 유용하게 쓰인다. 빛을 내어 어둠을 밝혀 준다. 열이 있어 따뜻함을 준다. 음식을 익혀 먹을 수 있도록 한다. 야밤중에 잠이 깨였다. 암흑이다. 더듬거리며 겨우 전등 스위치를 찾았다. 대낮처럼 밝다. 갑자기 누가 어떻게 불을 발견했는지 궁금했다.
전해오는 이야기로, 아주아주 먼 옛날 유인원(類人猿)인 ‘호모 에렉투스’가 갑자기 하늘을 가르는 번갯불을 보고는 엄청난 것이 나타났다고 겁에 질려 동굴로 황급히 숨었다. 물론 그 당시는 번갯불인지 몰랐다는 생각이 든다. 그 번갯불은 산불을 일으켰고, 호모 에렉투스는 무서워서 산불이 끝날 때까지 동굴에서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산불이 어느 정도 꺼지자, 동굴 속 호기심 많은 한 꼬마가 불이 난 숲 근처로 살금살금 갔다. 그곳은 동굴보다 따뜻했다. 그때 어디선가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겼다. 가까이 가 보니 멧돼지가 불에 타서 통구이가 되어 있었다.
꼬마는 얼른 멧돼지 뒷다리를 뜯어 한입 베어 물었다. 피비린내 나는 생고기보다는 아주 부드럽고 맛있었다. 꼬마는 잠시 후 나무토막에 타다남은 불씨를 들고 동굴에 나타났다. 동굴 속에 있던 호모 에렉투스들은 모두 무서워하다가 따뜻한 기운을 느끼고, 불 근처로 모여 몸을 녹였다. 조금 후 밤이 되어 산짐승 소리가 났지만, 불을 본 산짐승들은 동굴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호모 에렉투스들은 불의 소중함을 알고 당번을 정해서 불을 지켰다는 이야기가 있다.
인류는 구석기 시대부터 불을 사용했다. 그 흔적이 구석기 시대 유적지에서 숯이나 재의 흔적으로 증명이 된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신이 감추어 둔 불을 훔쳐다가 인간에게 주었다고 묘사하고 있으나 신화다. 원시인들은 화산, 산불, 낙뢰 등으로 불을 우연히 얻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인간이 불을 사용함으로써 또 한 번 진화한 것으로 본다.
불의 발견 기록이 남아 있는 사서가 있다. 『환단고기』, 「신시본기」에 보면, 2024년부터 약 5,921년 전에 배달의 초대 환웅 천황은 음식을 익혀 먹는 불씨가 없어 걱정했다. 그 당시 농업을 주관한 고시례(高矢禮)가 어느 날 깊은 산에 들어갔다가 황량하게 말라버린 나무줄기와 가지가 얽혀있는 것을 보고 깊이 생각에 잠겼다. 갑자기 거센 바람이 불어오는데 나뭇가지가 서로 부딪쳐 불꽃을 일으켰다. 그 불꽃은 잠깐씩 일어나더니 금방 꺼졌다. 이에 고시례는 “이것이다! 이것이다! 이것이 불을 얻는 방법이다.” 라고 했다.
하루는 고시례가 오래된 홰나무 가지를 집으로 가지고 와서 나뭇가지를 마찰하여 불을 일으켰지만 불편했다. 다음날 나무가 우거진 숲속으로 가서 깊이 생각하던 중 줄무늬 호랑이가 갑자기 나타나는 바람에 돌을 던졌으나 빗나가 바위 귀퉁이를 맞고 불이 번쩍 일어났다. 이에 기뻐하며 돌을 부딪쳐서 불을 얻었다. 그 돌은 차돌로 부싯돌이라 한다.
부싯돌은 석영의 일종이다. 몸이 아주 단단하고, 백색, 회색, 갈색, 흑색 등 여러 가지 빛깔이 있다. 투명 또는 불투명하기도 하다. 불을 일으키는 도구는 부싯돌과 부시, 부싯깃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시는 부싯돌을 쳐서 불을 일으키는 작은 돌이다. 나중에는 손가락 길이 정도의 쇳조각으로 쳐서 불을 일으켰다. 부싯깃은 마른 나뭇잎이나 칡잎을 곱게 비벼서 만든 것으로 부싯돌에서 발생하는 불을 처음으로 옮겨붙이는 데 사용한다.
우리는 불을 발견한 고시례의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어느 시점부터인가 익힌 음식을 조금 떼어서 허공에 던지면서 ‘고시례’라 한 후에 나누어 먹었다. 나는 어릴 때 어머니가 음식을 조금 떼어서 주위로 던지면서 “고씨네!”라 하고는 음식을 먹도록 했다. 이상했다. 웬 고 씨에게 음식을 먼저 맛보이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 당시는 어머니께 물어보지도 않았다. 으레 음식은 고 씨에게 먼저 맛보게 던지는 줄로만 알았다. 음식을 조금 떼어 던지는 풍습은 지역에 따라 말(言)이 조금씩 다르다. 주로 ‘고시레, 고시래, 고수레, 고씨네’로 말하나 제주에서는 ‘걸명’이라 한다. 이것은 농사짓고 음식을 익혀 먹는 법을 가르쳐 준 ‘고시례’의 은혜를 잊지 못하여 형성된 풍습이 전해진 듯하다.
한편으로는, 옛날에 고시씨(高矢氏)가 사람들에게 불을 얻는 방법과 농사를 짓고 수확하는 방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래서 후대에 와서 고시씨의 고마움에 음식 등을 먹을 때 '고씨네'라 했다고 한다. 『환단고기』에서는 ‘고시씨’와 ‘고시례’는 동일 인물이라 한다. ‘고시례’라고 말할 때는 더불어 사는 마음이 깃들어 있다. 현재는 단절되어 더 전승되지 않는다.
불은 우리 생활에 아주 유용하게 쓰이고 있으나, 잘못 사용하면 큰 피해를 낼 수 있다. 내가 아주 어릴 때 성냥불이 신기해서 친구와 뒷동산 무덤 앞에서 놀다가 가지고 있던 성냥으로 호기심에 성냥불을 켜게 되었다. 그만 불씨가 마른 잔디에 붙어 갑자기 번져 나갔다. 어찌할 바를 몰라 가슴이 두근두근했는데 주위에 있는 무덤 2기만 태우고 불이 꺼졌다. 때마침 주위는 밭이라 더 불길이 번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 후로는 성냥만 보면 겁이 났다. 불은 우리 생활에 이로움도 많지만, 잘못 취급하면 큰 화재로 번져 인명과 재산을 송두리째 빼앗아 버리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
한편, 고대 사람들은 불이 살아있는 생명체로 보고 숭배했다고 한다. 우리는 불을 살아있는 생명체로 보았기에 불의 씨앗이 꺼지지 않게 소중하게 다루었다. 또한 타오르는 불꽃은 영원함을 상징한다고 한다. 1996년 미국 워싱턴DC ‘알링턴 국립묘지’ 에 갔다. 케네디 대통령의 묘소에는 꺼지지 않는 불꽃이 영원히 타오르게 해 두었다. 그 불꽃을 보는 순간 케네디 대통령의 리더십이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 마르스 광장에도 전쟁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영원한 불꽃이 타 오르고 있다. 아마도 그들의 희생정신이 후배들에게 영원하기를 염원한 듯하다.
불이 발견되고는 연료로 사용하기 위해 나무나 동물의 마른 배설물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신석기 시대부터 석유를 사용했다는 연구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석유가 화염을 지속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후로는 많은 사람이 공장에서 석유를 사용한 것이 1차 산업혁명을 일으켰다. 로마인들은 100년경에 가정에서 기름 램프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석유는 20세기에 대량 생산 기술을 개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불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
야밤중에 켠 전등이 뿌려주는 불빛은 욕심이 없고 찬란하다. 오늘도 불빛은 나의 삶에 희망을 주고 있다.
첫댓글 귀한 정보들을 재미있게 알기쉽게 해 줘서 고마워요.
잘 읽었습니다~~ (이병재)
이 더운데 읽어 주시고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곧 가을이 옵니다~
인류 문명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한 불!
불의 발견이 정말 오래 되었네요.
불도 잘 쓰면 유용하고 자칫하면 모든 걸 잃게 만드는 무서운 것. 화마가 덮친 곳은 처참하더라구요.
고씨네의 유래도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오태숙)
불이 없는 세상의 인류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합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