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ttp://cfile294.uf.daum.net/image/995439465D932434025CB2:,:위 내용을 삭제하지 마세요!! (아래 선 아래에 글을 올리세요!!)---------------------------------------
애민·애국의 기치로 전국적 언론사와 방송사를 건설하자
1. 사회 개혁의 합법칙적 발전 과정
김영삼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래 한국 사회의 주된 화두는 개혁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장장 33년 동안 진행됐지만 실질적으로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개혁한다고 했는데 역사를 되돌리려는 반동 세력이 지속적으로 나타난 데에서 확인됩니다.
김영삼 정권 이후, 한국 사회의 정권 향방을 보면 한국 사회를 개혁한다던 김대중, 노무현 정권 이후에 다름 아닌 이명박과 박근혜의 반동정권이 등장하였습니다. 하지만 박근혜의 국정 농단 행위에 분노하며 탄핵함으로써 문재인 정권을 출범시켰습니다. 그렇지만 문재인 정권은 개혁을 성공시키기는커녕 그 실패의 반동으로 윤석열 반동정권을 등장시킨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민은 또다시 윤석열의 내란 범죄를 막아내고 이재명 정권을 탄생시켰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이재명 정권 또한 개혁을 힘 있게 추진하지 못하고 실질적인 개혁의 길에서 점차 멀어져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이재명 정권 이후에 또다시 반동 세력이 권력을 잡는 현상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을까요?
그러면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그것은 지금의 시대적 흐름에 맞춰 개혁을 추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시대적 흐름은 사회 역사의 주체이자 나라의 주인인 민이 자연과 사회의 전 부분에 걸쳐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살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인간 역사의 궁극적인 흐름은 인간으로 자각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자신의 꿈과 이상을 실현하는 세상을 지향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세상에서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살자면 두 부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하나는 인간 간의 관계이고, 또 하나는 인간과 인간 외적 부분에 대한 관계입니다. 여기서 인간 간의 관계 문제는 누구나 평등하게 자유를 누리고 사는 존재라고 천명되면서 사실상 해결되었습니다. 인간 간의 관계 자체만을 놓고 보았을 때 그 이상의 해결책은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 간의 이상적 관계라고 하는 동지적 관계도 자유와 평등의 관계를 전제로 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 외적 관계에서 빈부의 격차가 극심하게 벌어지면 인간 간의 관계에서 인정되어야 하는 자유와 평등이 형해화되면서 실질적으로 누리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이를 해결하자면 인간과 인간 외적 관계 또한 올바르게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연한 게 인간은 자연적 대상물을 가공하여 물질·문화적 재부를 창출해서 그것을 누리고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어떤 사람은 그것을 맘껏 누리지만 다른 사람은 누리지 못한다면 온전한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개혁의 과정은 자유와 평등이 형식적으로 인정되는 데로부터 실질적으로 누리는 과정으로 진척되어야 하고, 그러자면 인간 외적 부분, 즉 자연적 대상물과 사회적 재부에 대해 인간이 주인의 권리를 행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이를 자신의 국가 정책으로 밀고 나가자면 주권을 확고히 행사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현시기 한국 사회 개혁의 핵심 과제이자 합법칙적 발전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김영상 정부 이래로 한국 사회를 개혁한다고 하는 제반 정권은 자유와 평등을 형식적으로 인정하는 수준이었고, 동시에 주권 또한 실질적으로 행사하지 못하고 형식적으로만 주장되는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그래서 개혁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어김없이 반동정권이 등장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2. 사회적 의제를 결정하는 언론
그렇다면 개혁의 합법칙적 발전 과정에 맞게 진행되어야 할 것인데, 왜 그렇게 되지 못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언론의 중요성이 제기됩니다.
언론의 중대성이 제기되는 이유는 언론이 사회 속에서 수행하는 역할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언론이 사회적 의제를 설정하는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입니다.
사회에는 수많은 문제가 있고, 그 과정에서 여러 사건이 발생합니다. 여기서 모든 걸 다 보도하면 좋겠지만 여러 제약으로 인해 그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중요성에 비추어 보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보도한다고 하더라도 어떤 각도에서 보도하냐에 따라 그 파장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사건이라도 보도하지 않거나 편향된 시각에서 보도하면 사회도 그 방향으로 영향을 받게 됩니다.
더욱이 개혁은 저절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서로의 이해관계의 다툼 속에서 치열한 사상, 이론적 투쟁을 동반합니다. 여기서 개혁의 정당성을 확보하면서 압도적 우위를 점해야 반개혁 세력의 방해 책동을 극복하고 개혁을 힘 있게 밀고 나갈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언론인과 방송인이라고 한다면 역사의식과 시대 인식, 소명감이 투철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시대 흐름에 맞게 사회적 의제를 설정하고 보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한국의 언론과 방송은 그렇지 못합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일제 식민 시기의 반민족적 친일 행위를 범했던 부분을 반성함으로써 스스로 자정 노력을 기울여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일제 식민 시기라는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고, 또 그런 상황 속에서 민족적 자부심을 세우기 위해 일정 부분 노력했다는 사실을 폄훼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설사 그런 부분이 있다손 치더라도 반민족적인 친일 매국 행각을 벌인 행위에 대해서만큼은 사죄해야 합니다. 그래야 지난날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고 새롭게 태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으니, 그 친일 매국적 사실을 숨기기 위해 거짓을 주장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결국 일제 식민 시기에 일제와 부화뇌동했듯이 군사독재 시절에는 그들과 결탁하여 박정희와 전두환을 영웅화, 우상화하였습니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이후 군사독재 세력이 맥을 추지 못하고 민주화와 개혁의 길이 열렸을 때에는 자유와 평등을 실질적으로 누리는 방향으로 개혁이 이뤄지도록 사회적 의제를 설정하고 향도해야 하건만, 도리어 반개혁 세력과 한통속이 되어 자유와 평등을 형식적으로 인정하는 선에 그치게 하거나, 역사를 되돌리려는 반동세력의 요구를 대변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친일 매국 행위를 저질렀던 원죄로 인해 주권이 부당하게 제약당해도 미국과 동맹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명분 아래 눈을 감거나, 아예 주권 회복의 길을 방해하고 나왔습니다. 그 때문에 한국 사회를 실질적으로 개혁하기 위해서는 언론개혁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로 제기되는 것입니다.
언론개혁이 현시기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핵심적 과제로 제기되는 이유는 지금껏 개혁이 진행되어 온 과정을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개혁이 이뤄지자면 먼저 지금껏 폭압을 자행해 온 핵심 세력을 단죄해야 합니다. 흔히 법을 제정한 다음에 그들을 처벌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역사는 항상 대부분 거꾸로 진행되었습니다. 먼저 횡포한 짓거리를 저지른 자들을 체포한 다음, 그 처벌에 맞게 법을 제정했다는 것입니다. 당연한 게 그들을 체포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들의 방해 책동으로 올바른 법을 제정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1995년 5·18 민주화 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도 전두환과 노태우를 불법 비자금이라는 비리 행위로 체포한 다음에 제정되었습니다.
법의 성패는 처벌 대상의 범위와 기준을 얼마나 분명히 세우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처벌 대상을 폭넓고 철저하게 규정하면 법도 체계와 명확성을 갖춥니다. 반대로 몇몇 실세만 처벌하는 수준으로 머물면 법은 모호해지고, 그 빈틈을 타 반개혁 세력은 반격에 나섭니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광주민주항쟁을 계속 부정하고 나오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실제로 전두환 일당이 광주 시민을 학살한 행위를 따져볼 때 한국 군대에 대해 작전 지휘권을 행사하는 미국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고, 또 미국의 요구에 따라 전두환 일당이 움직였다면 이것은 매국노 짓거리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사회 개혁을 지속해 가자면 올바로 법을 제정해 범죄자들을 철저히 처벌하기 위한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요구하게 됩니다. 하지만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이 똑바로 진행되자면 시대 흐름에 맞게 사회 의제를 바로 설정하고 올바로 보도하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게 대두됩니다. 여기서 언론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 또한 맹탕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개혁의 실패를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벗어나자면 언론개혁을 정면으로 내걸고 진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야만 지금껏 개혁의 실패 과정을 바로잡아 실질적인 개혁의 길로 나아갈 수 있고, 그럼으로써 역사를 되돌려는 반동세력이 권력을 잡는 역사의 퇴행 또한 막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3. 언론개혁의 핵심 고리는 전국적인 언론사와 방송사 건설
언론개혁을 제대로 수행해야만 실질적인 개혁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은 한국에서 주된 위치에 있는 전국적인 언론사와 방송사가 어떻게 보도하고 있는가의 모습을 보면 명확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금 제1당과 제2당은 서로 간의 권력 다툼을 벌이며 싸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언론인이 제 역할을 다하려고 한다면 이들의 다툼이 한국 사회를 개혁하는 데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분석해서 보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그 의미를 파악해서 고칠 수 있는 길을 모색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고 그저 그들의 권력 다툼을 기계적으로 중계하듯 보도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면 자기 패거리들의 권력 장악을 위해서는 사회에서 지켜야 할 법적, 도덕적 양심도 지키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것입니까?
국민의힘의 내분 싸움을 보면, 먼저 장동혁 당권파는 윤석열의 내란 범죄를 비호 두둔한 세력입니다. 그러니 이들은 헌법적 질서를 부정하는 세력이기에 단호히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국민의힘에서 진정 나라를 걱정하고 사회 개혁을 바란다고 한다면 이들 세력이 법적 처벌을 받게 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장동혁 당권파에 반대하는 세력은 그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윤석열을 비호 두둔하는 주장으로는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는 명분으로 자신들이 당권을 장악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같은 당에 소속해서 움직이다 보니 윤석열의 내란 범죄를 옹호 비호하는 세력을 철저히 청산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장동혁 당권파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나라와 민족은 안중에 두지 않고 자기 패거리들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형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더불어민주당의 내분 싸움 또한 오십보백보입니다. 중요한 차이는 개혁을 명분으로 내걸고 진행함으로써 더욱 교활한 모습을 띤다는 것입니다.
먼저 이재명 대통령은 내란 세력을 반대하는 통합을 내세웁니다. 이것은 내란 세력을 고립시킨다는 측면에서 일정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려면 내란 범죄를 옹호하고 비호하는 세력을 청산하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내란 세력의 실체는 미국의 요구만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매국노들에 다름 아닙니다. 그렇다면 통합의 기준을 점차 외세와 매국노를 반대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아울러 현시기 개혁의 핵심적 과제인 빈부격차 해소와 주권 회복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재명 대통령은 통합한다면서 빈부격차 해소와 주권 회복을 방기하였습니다. 도리어 미국의 요구에 굴복해 진영 논리에 휩쓸리면서 미국에 투자하는 웃지 못할 행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한국의 국부를 한국에 투자해도 모자라는 판에 이렇게 미국에 투자한다면 어떻게 한국 사회의 핵심 과제인 빈부격차 해소와 주권 회복의 길이 열리겠습니까? 이것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미래를 바라보고 실질적인 통합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정권의 안정만을 추구하는 형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에 반해 정청래파는 개혁 세력의 선명성을 강조합니다. 그렇다면 개혁을 철저히 시행하기 위해 내란 세력을 고립시키기 위한 통합을 반대할 게 아니라 그것을 확대하면서 실질적으로 내란 세력을 청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이재명 정권의 통합 수준을 외세와 매국노를 반대하는 방향으로 끌어올리라고 요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정청래파는 선명성만 내세울 뿐 도리어 내란 세력을 고립시키고 법적 처벌을 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검찰개혁만 주구장창 외쳤을 뿐 조희대를 탄핵하지도 않았고,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보안법도 폐지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개혁하자면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런 문제를 외면하고서 도대체 무엇을 개혁하겠다는 말입니까? 이것이야말로 실질적으로 개혁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개혁의 선명성만 강조해 자기 패거리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명분으로 이용하는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한마디로 이재명 대통령이나 정청래파는 개혁의 핵심적 과제인 빈부격차 해소와 주권 회복에는 서로 눈감고 단지 곁가지 싸움만 하면서 자신들의 권력 지분을 유지하려는 다툼만 벌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국의 제1당과 제2당에서 벌어지는 권력 다툼의 내막이라고 한다면 이들에게 기대를 걸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한국의 대표적 위치에 있는 전국적인 언론사와 방송사에서 이를 제대로 분석해 보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한국에서 언론개혁이 얼마나 절박한지를 말해줍니다. 한마디로 역사의식과 시대 인식, 소명감이 투철한 제대로 된 언론인이 절실히 요청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언론개혁을 해야겠는데, 당사자인 언론이 나서지 않으면 어떻게 하냐는 것입니다. 지금껏 한국의 역사 과정에서 보았던 것처럼 언론이 기득권 세력과 한통속이 되어 움직인다면 제대로 된 언론개혁이 가능하겠느냐는 것입니다. 더욱이 지금은 공영방송만 있는 게 아니라 케이블 종합 뉴스 채널의 확대로 언론과 방송 지형이 기득권 세력에게 매우 유리하게 형성된 상황에서 스스로의 자정 노력만으로 원만히 진행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결국 목마른 자가 샘을 파듯 한국 사회의 개혁을 바라는 세력은 자신의 힘으로 언론사와 방송사를 세워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사회적 의제를 옳게 설정해서 커다란 영향력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전국적 규모의 언론사와 방송사를 구축해야만 합니다. 이를 세워내지 못하면 지금껏 개혁의 과정이 뒤틀렸던 것처럼 또다시 실패의 과정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 사회의 개혁을 실질적으로 성공시키기 위한 언론개혁의 핵심 고리는 자체의 전국적인 언론사와 방송사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4. 어떻게 전국적인 언론사와 방송사를 건설할 것인가?
전국적인 언론사와 방송사를 세우는 목적은 한국 사회의 개혁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전국적인 언론사와 방송사를 세우는 것 자체를 목표로 설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 이유는 지난날 대안 언론으로서 국민 주주로 한겨레신문을 창간했으나 지금에 와서 사실상 기득권화되어 한국 사회의 개혁에 별반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현실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사상, 이론적 기초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
한국 사회 개혁의 사상, 이론적 기초는 애민·애국입니다. 그래서 전국적인 언론사와 방송사를 지향하는 세력은 애민·애국의 기치를 확고히 견지해야 합니다. 애민·애국의 기치는 민이 사회·역사의 주체이자 나라의 주인이라는 데에 근거하고 있으며, 애민이 나라와 민족 단위에서 애국으로 발현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애민·애국은 한국 사회의 핵심적 개혁 과제인 빈부격차 해소와 주권 회복을 담보합니다. 빈부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도 외세와 매국노를 반대해야 하고, 주권을 회복하기 위해서도 외세와 매국노를 응징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빈부격차 해소와 주권 회복을 실현하는 데 있어서 주체는 민이고, 그 대상은 외세와 매국노로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애민·애국의 기치에 의해 외세와 매국노를 반대하는 것만큼은 철저히 견지해야 합니다. 이를 저버리는 것을 결코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리되면 일치된 지점을 담보할 수 없기에 단합을 이룩할 수 없고, 끝내 분열하여 붕괴되거나 한국의 사회 개혁에 별반 도움이 되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새롭게 세워지는 전국적인 언론사와 방송사는 애민·애국의 연대·연합체 조직 건설에 복무해야 합니다. 전국적인 언론사와 방송사를 세우려는 것은 앞서 말했듯이 개혁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개혁의 성공적 담보는 주체를 확고히 세우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 주체는 광범위한 세력을 포괄한 애민·애국의 연대·연합체일 수밖에 없습니다. 애민·애국의 연대·연합체가 확고히 구축된다면 그 힘으로 반개혁 세력의 방해 책동을 극복하고 개혁을 성공시킬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새롭게 건설되는 전국적인 언론사와 방송사는 애민·애국의 연대·연합체 조직 건설을 다그치고 확대 강화하는 데에 복무해야 합니다.
또한 전국적인 언론사와 방송사를 세우려고 하는 세력은 외세와 매국노를 반대하는 일치 지점을 견지하는 전제조건하에서는 서로 간의 차이를 입체적으로 존중하여 서로 실현될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 상호 간의 목표가 모순되거나 혼란되지 않고 통일적인 전망성을 가지고 풀어가도록 해야 합니다.
일치된 지점을 모두가 확고히 견지해야 하지만, 이 부분만 가지고서는 서로 간의 단합을 공고히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서로 지향하는 바가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 일치된 지점을 견지하는 조건에서는 그 목표가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지 상대방의 주장을 무시하거나 가로막아 버린다면 굳건한 단합이 이뤄질 수 없습니다. 그 때문에 입체적으로 서로 존중하여 모순되거나 혼란됨이 없이 통일적인 전망성을 세워 풀어가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 가지 기본 원칙을 견지하면서 전국적인 언론사와 방송사를 세우기 위해 노력한다면 해결되지 못할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더욱이 참다운 사회 개혁을 바라는 세력들의 언론 활동은 독립언론과 유튜브 방송 등 수많은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로 보건대 전국적인 언론사와 방송사를 구축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하기보다는 분산된 모습이 현실적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역량을 어떻게 하나로 모아내느냐가 문제일 것입니다. 무조건 하나로 통폐합시키려고 하면 성사되기도 힘들 뿐만이 아니라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를 슬기롭게 풀어가기 위해서는 각자의 영역에서 언론과 방송 활동을 이어가면서도 전국 단위의 언론사와 방송사를 세우기 위한 깊이 있는 논의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에서 각자의 언론·방송을 지속하면서 점차 전국적 결집을 준비해 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전국 단위의 언론·방송의 거점이 마련되면, 그곳을 찾는 사람 누구나 애민·애국의 기치 아래 사회 개혁을 추진해 가는 세력이 무엇을 요구하고 있으며, 어떻게 풀어가려고 하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게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궁극적으로 전국적인 언론사와 방송사를 구축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과정이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를 실질적으로 개혁하자면 애민·애국의 연대·연합체 조직을 건설하여야 하고, 그러자면 필연코 이를 추동하는 전국적인 언론사와 방송사의 건설이 요구되니만큼 기필코 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민의 집체적인 지혜와 힘은 무궁무진합니다. 민을 믿고 진행해 나간다면 이 문제 또한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2026. 7. 27.
우리겨레연구소(준) 소장 정호일

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