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까치봉·장군봉·부봉·정상까지
- 총길이 12.5㎞ 5시간 소요 코스
- 산청군 577m·진주시 548m
- 두 지자체 각기다른 정상석
- 돌담·제단·소나무 운치 장군봉
- 용 승천 전설 서린 부봉 거쳐
- 정상 도달하면 숲이 시야 가려
- 솔숲 걸어 도리천쉼터서 마감
입양을 가거나 새어머니를 맞아들인다면 법적 어머니는 달라질 수 있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낳아 준 어머니는 변치 않을 터이다. 무슨 뚱단지 같은 소리냐고 핀잔할지도 모르겠지만, 최근 산행에서 이와 유사한 일을 겪어 하는 말이다. 정상이 두 곳인 산을 다녀왔다. 해발 고도가 같은 봉우리가 두 개가 아니라 엄연히 봉우리들의 높낮이가 다른데도 정상이 두 곳이다. 경남 진주시 명석·집현·미천면과 산청군 생비량·신안면에 걸쳐 있는 집현산(集賢山)이 그곳이다.
| |
| 집현산에서 두번째로 높은 장군봉. 수백년 된 듯한 낙락장송 아래 돌담을 둥그랗게 쌓은 제단이 설치돼 있다. |
집현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는 해발 577m로 산청에 있다. 그런데도 진주시는 관내에 있는 이보다 낮은 봉우리(548m)를 정상이라고 주장하며 정상석까지 설치해 놓았다. 산청군은 이곳을 '집현산 부봉'이라 부르고, 관내 '577 고지'에 따로 정상석을 세워놓은 데 이어 산행구간의 등산 안내도와 이정표에 이같이 표시해 뒀다. 이를 보고 산행하던 등산객이 두 개의 정상석을 발견하고 어떤 게 정상인지 혼란스러워하는 상황을 한번 상상해 보라. '진주시 정상'에 올라 정상 등정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또 다른 정상을 만났으니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자치단체의 행정구역은 지도상 경계 표시일 뿐이지 산을 무 자르듯 잘라 나눌 순 없다. '걸쳐 있다'는 말 자체가 '연속'을 뜻한다. 백두산이 우리나라와 중국에 걸쳐 있듯 산은 국경과 행정경계를 넘어 지세가 뻗어나간 데까지 이어진다. 그럼에도 지자체는 산을 자기 관내로만 범위를 한정해 정상을 정하니 어떻게 '견강부회' '아전인수'라는 비판을 비켜갈 수 있겠는가. 하지만 사람의 편협한 구획 관리와 달리, 산은 자연 그대로 의연하고 넉넉하다. 산에서 차별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미물에서 낙락장송에 이르기까지 뭇 생명은 하나하나가 의미를 지닌다. 각기 다른 음색의 생명들이 대자연의 교향악을 연주하는 곳이 산이다.
'어진 이들이 모인다'는 뜻의 집현산은 '인자요산(仁者樂山)'이란 말을 실감케 한다. 20m가 넘는 늘씬한 소나무들이 군락하는 숲 사이로 난 낙엽 수북한 오솔길을 걷노라면 호젓한 아름다움에 젖는다. 어른 팔 길이로 한 아름이 훨씬 넘는 낙락장송도 있다. 솔숲을 지나 탁 트인 푸른 하늘을 만날 때면 소나무는 하늘이 파견한 '푸름의 정령'인 듯한 생각이 든다. 그래서 솔숲 걷기는 영혼의 필터링으로 다가온다.
집현산은 임진왜란 때 진주성 탈환을 위해 아군이 왜군과 격전을 벌인 곳이기도 하다. '진양지'에 '집현산은 진주의 북쪽 40리에 있다. 덕유산의 일맥이 동쪽으로 달려와서 자굴산(897m)이 되고 자굴산의 한 가닥이 서쪽으로 구부려 와서 이 산이 되었다'라고 기록돼 있다. 이번 산행은 5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리지만 경사가 그리 급한 곳이 없어 무릎에 큰 부담이 가지 않는다. 산행은 대둔마을 입구에서 시작해 까치봉과 장군봉, 부봉, 정상을 거쳐 원점회귀하는 코스다. 총길이는 약 12.5㎞, 5시간가량 소요된다.
대둔마을 입구에서 양천변 도로를 따라 가다 금장선원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진행한다. 30m가량 걷다 왼쪽으로, 다시 5분쯤 후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접어든 뒤 50m가량 지나 또 오른쪽으로 길을 이어간다. 그 이후 15분가량 거리의 갈림길에서도 모두 오른쪽으로 길을 잡아 가면 5분쯤 후 능선에 올라선다. 역시 오른쪽으로 가다 5분가량 후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25분가량 후 나오는 갈림길에서는 오른쪽으로 꺾어 진행하면 5분쯤 후 까치봉(530m)에 이른다. 여기서 25분가량 걸으면 장군봉(549m, 집현산 동봉)이다. 낮은 돌담을 둥글게 쌓은 제단이 설치돼 있고, 그 주위에 수백년 된 듯한 우람한 낙락장송 세 그루가 서 있다.
5분쯤 후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10분 후 헬기장이 나온다. 5분쯤 후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길을 잡아 50m가량 가면 부봉(548m, 진주시 정상)에 닿는다. 부봉에는 용 승천 전설이 서려 있다. 도를 닦기 위해 지상에 내려온 하늘의 용이 다시 승천하려 할 때 마을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며 고함을 지르는 바람에 승천하지 못하고 이승에서 고생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을 원망한 용은 가뭄과 질병으로 보복했다. 노인으로 변한 용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은 한 마을 청년이 100일 동안 기도하며 잘못을 빈 끝에 용의 저주를 풀 수 있었다는 전설이다.
부봉에서 20분쯤 내려가면 오봉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왼쪽으로 길을 잡아 10분가량 걸으면 무너지재에 이른다. 곧장 직진해 15분쯤 가면 나오는 갈림길(563m)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10분가량 더 걸으면 정상(577m)에 닿는다. 정상에는 숲이 우거져 시야를 가린다. 정상에서 10분쯤 내려오면 만나는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다시 30분가량 후 갈림길에서도 오른쪽으로 진행한다. 그 이후 35분가량 더 걸어 출발지로 돌아온다.
◆떠나기 전에
- 도승 비량의 덕 살아있다 해서 '생비량' 지명 유래
집현산은 '삼산은 하늘 밖에 반쯤 걸려 있고/진수(秦水)와 회수(淮水) 두 강은 백로주에서 갈라져 흐르네(三山半落靑天外 二水中分白鷺洲·삼산반락청천외 이수중분백로주)'라는 당나라 시인 이백의 시구에 어울리는 명당이라고 한다. 이 시구의 삼산에 비견한 곳이 집현산과 자굴산, 황매산이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 비량(比良)이라는 도승이 집현산에 절을 지어 포교하며 선행을 베풀었다. 그 도승이 입적한 뒤 마을 사람들이 '그의 덕이 살아 있는 곳'이라는 뜻에서 '생(生)' 자를 붙여 마을 이름을 '생비량'이라 불렀다고 한다. 대둔마을 입구에 이 같은 내용을 적은 '생비량유래비'가 세워져 있다.
한편 이백의 해당 시구는 '등금릉봉황대(登金陵鳳凰臺)'의 일부다. 이 시는 동시대 시인 최호(崔顥)의 절창 '등황학루(登黃鶴去)'를 의식해 지은 것이다. 이백은 애초 황학루에 관한 시를 지으려 했다. 그러나 현지에 가 보니 이미 최호가 시를 지어놓았고, 그 시가 너무 아름다워 그를 뛰어넘는 시를 짓기 어렵다고 판단해 포기한 뒤 금릉의 봉황대로 가 이 시를 지었다고 한다.
'옛 사람 황학 타고 이미 떠나버려/이 땅에 부질없이 황학루만 남았구나(昔人已乘黃鶴去 此地空餘黃鶴樓·석인이승황학거 차지공여황학루)'라는 최호의 시구는 인생의 허무가 짙게 배인 장중한 아름다움으로 유명하다.
◆교통편
- 부산 서부터미널서 원지 하차
- 송계행 농어촌버스 갈아타야
부산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함양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진주를 지나 원지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린다. 이어 송계행 농어촌버스를 타고 장란 버스정류장에서 하차하면 산행 출발지로 갈 수 있다.
송계행 버스는 오전 7시 40분, 8시 40분, 10시 10분에 있다. 장란에서 원지로 나가는 버스는 송계 출발 오후 3시 40분, 4시 30분, 6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