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밖으로 나와 새 건물 한 바퀴 돌아, 곶감이랑 말리고 있는
비닐하우스 지나, 옛집(헌 집?)으로 가본다. 그대로다. 아니,
아저씨가 그대로 놔뒀을 리 없지. 방 앞에는 통나무로 긴의자
만들어 앉아 쉴 수 있게 해놓았고, 군데군데 조금씩 또 손본
흔적..
예전에 묵었던 방들 열어본다. 이 집 유일한 아궁이방도..
그리고 할머니 생전에 기거하시던 방.. 문 열고 안 들여다본다.
가구가 치워져 그런가 더 넓어 보인다. 할머니.. 몇 년 전부턴
왔다 갈 때마다, 인제 못 볼지도 모른다 입버릇처럼 말씀
하시며 멀끄럼이 바라보시던 눈..가에 진물 같은 눈물..
두 달 반 누워계셨다는데, 가시기 전 모습이야 어땠든 고운
얼굴과 단정하게 빗어넘긴 하이얀 머리..로 남아 있으니..
집 한 바퀴 돌아 나온다. 아저씨 손길 닿은 뜨락.. 한가운데
붉은 열매 단 채 호랑가시나무 한 그루 서 있고, 우물 돌아
대문간엔 사루비아 아직 피어 있고..
문 밖 언덕 위로 이어진 '정든산책로' 올라갔다 이내 내려와
절 쪽으로 방향 튼다. 가는 길에 보니 동글동글 황토알갱이
죽 깔아 맨발 걷기 코스를 만들어 놓았다. 물론 아저씨 작품
일 테지.. (아니었다. 나중에 보니, 여기가 전통문화 체험 마을
뭐 그런 거로 뽑혀 도에서 지원을 받게 되었나 보다.)
내소사 입구 못미처 저 아래 주차장 쪽에서 왁자지껄 아이들
소리 들려온다. 단체 손님들인가 부다. 좀 빨리 올라가든지,
아님 좀 뒤늦게 올라가든지 해야 할 거다. 표 끊고 전나무
숲길 따라 올라간다. 숲 향기 맡으며, 전나무 둥치 어루만지며
천천히 가다 보니, 한 학교 학생들(삼백몇십 명이라 그랬지)
우루루 지나간다. 그래, 곧장 내소사로 들어가지 않고 지장암
가는 옆길로 샌다. 지장암.. 여전히 조용하고 단정하다. 비구니
스님이 계시는 암자답게.. 뒤따라 여학생 너댓 행렬에서 빠져
이쪽으로 온다. 법당 들어가 삼배하고 나와, 툇마루에 걸터
앉아 있는다. 햇빛 비치는.. 여학생 무리 요사채 옆 나무원탁에
둘러앉아 뭐 먹으며 재잘대고, 그 곁에 누렁이 한 마리 얼쩡
거리고 있다.. 댓잎 스치는 바람소리 들린다...
지장암에서 내려와 다시 내소사 쪽으로 전나무 길따라 걸어
간다. 도중에 왼쪽 부도탑 있는 곳으로 갔다 다시 돌아온다.
이제 아이들 무리 거의 다 나가고, 사진 찍느라 뒤늦은 아이들
몇몇 급히 쫓아 나간다.
사천왕문 지나 봉래루 지나 대웅보전.. 그 왼쪽 요사채(부엌
있던) 공사하고 있다.(공연히 뜨끔했는데, 보수공사랜다.)
대웅전 들어가 부처님께 삼배, 양쪽에 각각 삼배.. 일어나니,
나이 꽤 잡수신 보살님이 부처님상 뒤쪽에 숨어(?) 있는
부처님 그림 설명과, 천장이며 기둥 벽 들에 그려진 단청과
목각에 대해 자상하게 설명해 주시네. 예전에도 들었는데,
들을 때마다 새롭다. 천장에 악기가 그려져 있는 절은 거의
없다며, 그리고 온통 연꽃, 연봉오리로 새겨지거나 그려진
법당도 잘 없고.. 다 극락세계를 뜻하는 거라며...
절 마당 돌아 사천왕문 못미처 한쪽 곁에 만들어 놓은, 물건도
팔고 차도 파는 곳 들러, 염주랑 책, 엽서 훑어보다가 차 한잔
시켰다. 솔바람차. 솔잎효소에 물타 희석시킨 것.. 차 마시고
있는데, 영선씨 전화와 어디냐고, 빨리 오라고.. 그래 차마시고
곧 가겠다고.. 이내 내려와 부안 가는 버스 타고 곰소 내려
정읍행 버스 있길래 곧장 올라탔다. 3시 15분에 내소사 앞에서
타서 4시 5분쯤 정읍 도착했으니 한 시간도 안 걸린 것. 차가
바로바로 이어졌으니..
(영선씬 내가 부안 내소사 아래에서 며칠씩 묵을 때
-엄마 돌아가셨을 때니 1998년-채석강 바로 곁 낮은산에 올라가
전망대카페에서 서해바다가 내려다보며 시간보내다 만난 길동무.
집이 정읍이고 그땐 자유부인 행세하고 있었더랬지..^^)
영선씨한테 전화 걸어 오라는 대로 택시 타고 수성동 농협
앞으로 갔다. 영선씨, 길 저쪽 위에서 불러 가니 음식점으로
들어간다. 아는 동생이 하는 분식집에 잠깐 도와 주러 나와
있었다고.. 거기 조금 앉아 있다 그 근처 아는 친구가 한다는
포장마차집에 갔다. 낙지볶음 시켜놓고 맥주 한 잔씩 나눈다.
서비스 나온 김치전과 김치국 안주로.. 낙지볶음과 사리 많이
얹은 본안주가 나왔다. 낙지가 아주 연하고 부드럽다. 간도
알맞고. 산낙지 써서 그렇단다.
거기 한 시간 정도 있다 집에 전화 걸어 지예(영선씨 딸내미)
나오라 그랬다. 우리가 택시 타고 가다 집 앞에서 지예 태워
가지고 터미널까지 같이 갔다.. 나 바래다준대서.. 그러면서
지예얼굴이라도 잠깐 보고 가려고.. 곰소행(막차)표 끊어놓고,
한 30분 남았길래, 편의점 들어가 차마셨다. 지옌 아이스크림
먹고. 지옌 작년 여름 서울 와서 봤을 때보다 또 더 숙녀티가
팍팍 난다. 이제 곧 고3 될 터니.. 얼마전 지네 연극부에서
서울 올라와 공연했다는데 최우수상 받았다며 자랑한다.
지예 주려고 챙겨간 핀과 머리끈 주니 너무 좋아한다. 색깔도
모양도 다 좋단다. 좋아하는 거란다. 다행이다. 잘 골랐나 조금
걱정됐는데.. 지훈이 줄 책까지 전해주고 나니, 영선씨 딸내미
질투하면서^^ 섭섭해하는 거 같길래 내소사에서 산 향나무로
깎아만든 계란 모양의 탈취천연향 하나 골르라 했다. 둘다
고마워하며, 영선씬 또 내내 자기네 집에서 안 자고 또 후딱
돌아간다고 아쉬워하며 배웅해 줬다. 사실 내가 늘상 고맙지.
맨날 이렇게 불쑥 찾아오는데도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니 말이다.
차 떠날 때까지 밖에 계속 서 있길래 빨리 돌아가라 손짓..
8시에 정읍 출발한 차, 8시 40분에 곰소 도착.. 가게에 물어
보니 9시 10분께 내소사행 막차 지나간다고.. 한 30분 남았네.
건너편에 치킨 가게 보인다. 하림 맥시칸.. 잘 됐다.
아주머니한테 전화거니 아저씬 술드시고 벌써 주무신다 하고,
말리시는 거 그래도 아주머닌 주무시지 말라 하고 통닭
한 마리 튀겨 달라 부탁했다. 사실 오늘 좀 일찍 들어갈 수
있었으면, 아저씨 아주머니 부부랑 밖에서(산촌식당) 술 한잔
할까 했는데... 아저씨 주무신다니 아주머니하고 둘이서라도
회포풀자 하며...
9시 20분에 차 내려 걸어들어오는데, 옛집에 불켜져 있고
그 방에서 새나오는 떠들썩 사람들 소리.. 새 손님들 들었나
보다. 아주머니 문따 주시며 비 안 맞았냐고.. 아뇨, 비왔어요?
아까참에 조금씩 오던디? 근데, 이내 좌르륵 소나기 쏟아지는
소리.. 용케 딱 맞게 들어왔네. 아주머니랑 둘이서 통닭하고
끼워준 사이다 한잔씩 앞에 놓고 앉았다. 아주머니 여기
들어온 지 7년째. 그전엔 아저씨 근무하던 전주에서 오래
살았다지. 아저씨따라 여기 들어와서 첨엔 힘들어하시더니..
이제 큰일들 치렀으니 좀 편히 지내시겠다고... 얘기 나누다
씻고 들어와 책 읽다 꾸벅... (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