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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 자유게시판 스크랩 지리산천왕봉 사진들(옛이야기)
파일럿 추천 0 조회 244 16.01.09 20:1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천왕봉(天王峰)과 정상석의 변천

제정일치 시대(祭政一致 時代)의 군장(君長)을 천왕(天王), 천왕랑(天王郞), 천군(天君)이라 하였다.

지리산의 천왕봉은 "수호신에게 제()를 올리는 높은 산정(山頂)"이란 의미이다.

중산리의 천황사에 모셔진 성모(2006년 촬영사진)

옛날 천왕봉에 있었다는 성모사와 천왕봉

 

천왕봉에 있던 성모상과 마애불을 지키며

천왕봉에 기거 했다는 김순용옹

김순용옹의 움막 70년대 이 움막을 이용할려면 돈을 지불해야 했다.

천왕봉의 성모사는 1489년 이곳을 오른 김일손의 "속두류록"에 의하면

성모사는 천왕봉 정상에 한 칸 정도의 돌담벽이 있고 담안의 너와집에

성상이 안치돼 있었다고 전한다.

이 사당은 빨치산에 의해 파괴된 뒤 오늘날까지 노천암대만 남아있다.

1968(?) 천왕봉 성모석상과 석상 1

1965 6월 지리산 등반대 천왕봉 도착 주변 청소후

1965년 지리산종주등반대 2(지리산남부관리소에서 발췌)

 

 

 

 

 

 

천왕봉의 서측 암벽에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란 의미의 "천주(天柱)"라는 두 글짜가 음각되어 있다.

 

돌로 만든 정상석을 언제 누가 처음 세워놓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앞면에는 천왕봉.

뒷면에는 남명 조식 선생의 천왕봉의 싯구에서 뒷부분을 빌려와 새겨놓았습니다.

請着千石鐘 /청간천석종/ 청하여 천석종을 보니
非大叩無聲 /비대구무성/ 큰 종채가 아니면 소리가 나지아니한다네
萬古天王峰 /만고천왕봉 /만고의 천왕봉은
天鳴猶不鳴/ 천명유불명 /하늘은 울어도 오히려 울지 아니하네

나지막하니 딱 앉기 좋은 40센티 정도의 높이로 현재의 정상석보다 장터목 방향쪽에 가깝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현재의 정상석은 중산리 방향을 보고 서 있는데 정면으로 사진을 찍기에는 공간이 부족해 상당히 위험하기도 합니다.

조금 뒤로 해도 상관이 없었을텐데 말이죠.

산의 높이에 비해 정상석이 너무 작아 초라해보였기도 하거니와 먼놈의 낙서를 그렇게 새겨놓았는지

진주지역 산악인들이 82년에 까만 오석으로 정상석을 다시 세웠습니다.

초기의 정상석과 같은 글귀가 앞면 뒷면에 새겨져있었습니다.

앞면은 천왕봉/ 뒷면은 만고천왕봉 천명유불명 이란 음각이 새겨져있었죠.

보통은 이 무거운 돌을 여러명이서 .

그 까만 오석 표지석의 사진이 82 717일 제헌절에 찍은 사진입니다.

허망하게 표지석이 얼마지나지 않아 다른 표지석으로 바뀌게 됩니다.

당시 산청?함양지역의 5공의 실세 국회의원이 권익현씨였는데, 대통령이 합천출신이란거 하고 무슨 연관이 있는지?

82 7월 이후 관할 도청인 경남의 이규호 도지사(나중에 교육부장관) 와 권익현씨가 공무원들을 동원

헬기까지 동원해서 표지석을 바꾸게 되는데 문제는 뒷면의 ‘경남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였습니다.

85년쯤 보니 뒷면의 경남이란 글자가 누군가에 의해 망실이 되어있었습니다.

당시 들리는 소문에는 여수산악인 2분이 헤머로 때렸다는 설도 있고 누군가 정으로 쪼았다는 설도 있습니다.

94년쯤에 보니 한국으로 바뀌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그 전에 지금의 표지석의 모양을 갖춘것 같습니다.

민족의 성산 정상석을 정치세력이 지역감정을 이용되고

수 천년 내려온 성모상이 72 5월경 무식한 종교인들이 성모상을 훼손하여 15년간 실종되어

87년 혜범 스님에 의해 몸통과 머리가 각각 통천골과 진주 비봉산 근처에서 발견되어

머리와 몸통을 봉합한 뒤 중산리 천왕사에 모셔져 있으니 말입니다.

반 만년의 민족사가 의식없는 정치.종교인의 편협함에 원망스럽습니다.

지리산 자락에 사는 민초들은 예나 지금이나 도 시군에 관게없이 조상 대대로 사는 방식 그대로 살고 있더군요.

백두대간중에 직접 격어보니 전라도 무주군 설천면에 사는 사람은 경상도 말을쓰고

경상도 하동마을에는 전라도 말씨를 쓰면서 나라도 정권도 행정구역도 필요없이

지리산 자락에 보금자리를 피고 살아가는 것이 지리산 사람이 아닐까요

(다음 불로그 -산노을-님)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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