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0월경 일본에서 톱뉴스가 수신되었고 온 나라가 뒤집어졌다
북한을 선박으로 탈출한 일가족이 따뜻한 남쪽나라로 갈테니, 식량과 연료를 달라고 한다
우리정부는 이들을 데려오려고 갖은노력을 다하는데, 이들은 죽어도 한국으로 안간다고 버텻다.
지옥으로 갈수가 없다가 그 이유다??
그 이야기를 들은 국민들은 뭘 몰라도 너무 모른다
이들을 설득하는데 이웅평씨가 나서서 해결됐다
조종사가 남쪽으로 갔다라는 소문은 북한에도 있었던 모양이다
얼마전에 스페인대사관을 경유하여 한국으로 온 동포들이 있었다
두 가지 사건을 볼 때.....차이가 많다
전자는 모시러 가고, 후자는 이런 방법을 안 쓰면 한국에 오기가 힘들고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날까??
홈쇼핑도 마찮가지다
전자의 겨우 처럼 모험을 하면 대우를 받고.........이 경우는 대박
후자의 경우처럼 남쪽에 가니 잘사네 를 확인하고 오려니 힘이 들고 또 어렵고
지난 80년말 90년초에 남북이 서로 극과 극을 달리던 시절 상호 장관급회담으로 서울과 평양을 방문회담중이있던 일이다
평양의 휴일표정을 촬영하던 기자가 대동강에서 낚시를 하던 시민에게 고기가 잘 잡히나요 하고 질문을 하느데, 질문하나 합시다 하는 시민의 반응에 예 라고 하는 순간 왜 흡수 통일을 하려 하는가?? 왜 일방적으로 통일하려 하는가 하고 따지듯이 인터뷰를 하였다
즉, 짜여진 각본대로 시민은 인터뷰에 응했고 이를 모르는 기자는 일방적으로 당했다 라는 느낌이 뉴스를 타고 전달 되었다
이에 열받은 정부는 다음에 보자고 했고
이후 평양의 기자단이 서울을 오자
정부는 이들을 임수경 자택으로 유도했다
당시 임수경은 불법입북으로 교도소에 있을 때 였다
신이 난 북한기자단은 임수경 자택입니다 하면서 보도준비를 하면서 카메라를 집안으로 들이 댔다
물론 임수경의 자택에서는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당시 안내원은 이를 저지하는 시늉만 했다
이후 집안에서 인터뷰가 진행되고, 임수경의 근황, 임수경의 방 등이 보여지고 집안 구석 구석 이 보여졌다.
이것이 평양에서 방송되자 북한이 난리가 났다
북한의 생각으로는 그 정도로 대 정부 비난발언을 한 장본인의 집이 북한에서는 고위층도 같고 있기 힘든 당시 386PC가 개인 책상위에 있고, 불과 30분만에 배달되는 중국음식등 으로 기자단을 접대하고, 북한주민 개인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상황이 방송이 된 것 이다
이 사건 이후로 양쪽의 기자단에는 서로간의 신사협정이 맺어졌다
취재는 하되 서로를 자극하는 것은 하지 말자
그래서 다음부터는 공원, 유치원등의 서로가 부담없는 장면들만 취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