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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비행기
‘미국 최고의 장인이며 그의 위력은 문체로부터 온다’ 고 평가받는,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미국 최고의 팝아트 소설가 죠 메노, 그의 대표 단편집
1. 출판 개요
제 목 : 유령비행기 (원제『Demons in the Spring (봄날의 귀신)』)
저 자 : 죠 메노 (팝아트, 전위소설가 팝아트)
역 자 : 김현섭(『서태지 담론』을 쓴 저술가이자 전문번역가, 고려대영문과 졸)
출간일 : 2008년 11월 20일
판 형 : 신국판 변형 / 368쪽
정 가 : 13,200원 /
발행처 : 늘봄
2. 작가 소개
죠 메노(Joe Meno), 미국 팝아트, 전위소설가로 불리며 「소년탐정 실패하다」(늘봄 근간) 「저주 받은 자의 헤어스타일」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미국의 작가다, 베스트 셀러 이외에 「훌라걸이 노래하는 법」,「지옥의 불처럼 부드러운」,「한때 파랑새는 합창을 하곤 했다」 등의 작품이 있다. 2003년 넬슨 올그런 상 단편소설 부문을 수상했으며, 현재 시카고 콜롬비아 칼리지의 문예창작 교수이다.
옮긴이 김현섭은 고려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런던 시티대학교에서 예술평론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전문번역가, 집필, 출판기획 등을 하고 있다. 지은책으로는 『서태지담론』 『논리이야기』 등이 있으며, 번역한 책으로는 『위대한 편지』『첫번째 수업』 『자기만의 방』 외에 다수 있다.
3. 이 책의 특징
1) 현대 미국의 두려움과 공포를 엿볼 수 있는, 익숙한 곳에서의 유령같은 사건들, 폭죽 같은 귀신 쫓기
회사, 공항, 학교, 동물원, 응급실에 이르기까지, 현대인들에게 친숙한 공공장소에서 기이한 현대적 상황이 발생한다. 유령 복장을 하지 않으면 아무 곳에도 가지 않으려는 소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는 스톡홀름 은행 강도사건, 모의국제연합 클럽에서 토론하는 학생들에게 애정을 느끼는 교사, 젊은 여자의 흉곽 안에서 발전하기 시작하는 축소판 도시…, 저자의 비범하고 독창성이 빛나는 스토리 들은 재미있으면서 마음 아프다.
2) 미국을 대표하는 컨템포러리 화가들이 주제에 맞게 그린 60여 편의 화려한 원작그림들
「유령비행기」는 20편의 단편소설 모음집으로, 각 편마다 20여명의 컨템포러리 화가, 순수미술, 그래픽아트, 만화아티스트들이 영감을 받아 그린 일러스트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
* 수록 미술작가 명단 토드 박스터, 켈시 브룩스, 이반 브루네티, 찰스 번즈, 닉 부처, 스테프 데이빗슨, 에반 히콕스, 심 키요르토이, 폴 혼슈마이어, 코디 허드슨, 캐롤라인 황, 코진단, 죠프 맥피트리지, 앤더스 닐슨, 로라 오웬스, 아처 프레위트, 존 레시, 제이 라이언, 수더 살라자, 레이첼 섬터, 크리스 업휴즈 .(웹하드 자료 참조)
4. 작가와 책에 대한 미국문단과 뉴욕타임즈 등 언론의 평
“그의 위력은 문체(文體)로터 온다. 죠 메노는 최고의 장인(匠人)이다.”
- 후버트 셀비 주니어(‘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의 저자)
자극, 익살, 그리고 끊임없는 의외성 - 이것은 단편소설집에 허용되는 특징이며, 죠 메노의 「유령비행기」가 완벽하게 구현하는 특성이다. 메노의 견고한 산문체와 대범한 아이디어를 주재료로 하여 여기에 작품마다 각각 다른 현대미술작가의 일러스트를 곁들인다는 뛰어난 장치를 더함으로써, 풍부하고 잊을 수 없는 맛을 가진 책 한 권이 만들어졌다.
- 데이브 에거스(맥스위니즈 발행인)
최고의 위력을 지닌 단편소설에 각각 다른 미술가의 일러스트가 곁들여진 이번 단편집에서 저자 죠 메노는 문체의 탁월함으로 독자를 현혹시키려는 지나친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 특유한 내면세계를 갖고 있는 등장인물을 서서히 끌어내어 우리가 ‘현실세계’라고 인식하는 영역에 투영한다. 이 모든 영혼들을 통합하는 공통언어는 상실감이다. 상처받은 영혼에 대한 메노의 공감은 예리하기 때문에, 작가 자신은 물론 독자들로 하여금 소설적 현란함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의 인간적 특성을 간과하지 않도록 한다. - 뉴욕 타임스
죠 메노의 소설은 젊음의 에너지, 그리고 젊음의 순수와 감정 등을 분출하며 폭발한다. 메노는 우리 인생의 초기 25년을 구성하는 어설픈 실수를 그것이 가공이든, 경험이든, 무엇이든 간에 정교하게 조율된 이해력으로 그려낸다. - 뉴욕 옵서버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포스트모던 단편소설. 시카고 출신 작가의 소설에 다양한 시각으로 작품을 재해석한 일러스트가 곁들여짐으로써 예술적 기교가 한층 강화되었다. 다양한 일러스트는 소설의 매력을 더하고 있지만, 메노의 글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위력을 지니고 있다. 메노의 작품에는 심오한 공감이 관통하고 있는데, 바로 이 점 때문에 작품이 문체주의 소설 이상의 가치를 지니게 된다. - 커커스 리뷰
죠 메노는 흥미로운 케이스다. 펑크이며 느와르적인 문체주의 작가이면서도 좀 더 순화되고, 시적이며, 보편적인 내용을 다루는 것이다. 그런 특성은 이번에 출판된 책, 그래픽아티스트와 카툰작가 등이 그린 일러스트를 곁들인 스무 편의 단편소설에서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소설 전체가 일상적 대화, 명료한 백일몽, 그리고 순전히, 너무나 인간적이기 때문에 우스꽝스러운 경험 등으로부터 추출한 음시(音詩)와 서정단장(抒情斷章)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 - 엘르 매거진
5. 제목(원제 : Demons in the Spring)에 대한 죠 메노 작가가 보낸 편지
본 책의 번역 제목을 정하는 문제에 있어서, 원제 Demons in the Spring(직역을 하면 ‘봄의 악마, 봄날의 유령, 귀신’ 등으로 해석 되는)의 의미는 본문 20편의 작품과 내용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결국 그 작명의 의미에 대해 본사 늘봄에서 작가에게 직접 문의서신을 보냈고, 그의 답변을 받았다. 늘봄은 이번 이 첫 한국번역서에 대해서는 고민 끝에 원제 <봄의 악마> 대신 본문 안에 있는 단편 중 성격에 맞는 제목 하나를 골라 「유령비행기」로 결정하였다. 아래는 그에 대한 작가의 답신으로 본 책에 작가 서문으로 실었다.
♬ 무엇보다 먼저, 번역본을 통하여 한국의 독자들을 만날 수 있게 되어 기쁘고 영광입니다.
이번 단편집에 실린 스무 편의 소설을 쓰는 지난 7년 동안, 지구상에는 태풍, 지진, 전쟁, 홍수, 그리고 나날이 무능해지는 것 같은 정치인들에 이르기까지, 재앙에 이은 재앙이 우리의 상상력을 둔화시켜 왔습니다. 이처럼 세상이 뒤죽박죽 엉망이 되어갈 때 우리는 어디에서 도움을 구하려 할까요? 실망과 비극으로 점철되었던 근래, 시대의 망령을 떨쳐버리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방법을 썼습니까?
마치 한 통의 폭죽처럼 구성된 이 단편집은 우리가 살고 있는 가장 현대적인 시대에 진행되고 있는 재앙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의도로 기획되었습니다. 중국의 폭죽은 원래 재앙을 불러온다는 귀신들을 놀라게 하여 쫓아버리려는 목적으로 발명되었다고 합니다. 여기 스무 편의 단편소설은 그 전통을 차용한 폭발력을 가진 글과 그림으로 전개됩니다. 이는 대형 참사에서부터 일상적인 비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재난을 잠재우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재앙에 직면함으로써, 우리가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얼마나 서로 닮은 존재인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 2008년 10월 시카고에서 죠 메노
6. 작품 해설 - 김현섭(번역자/평론가)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는 미국 소설가 죠 메노의 신작 단편소설집의 원제는 『Demons in the Spring』으로 우리말로 하면 ‘봄날의 귀신’쯤 되겠다. 저자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이 ‘귀신’은 현대적 일상에서 발생하는 재앙을 지칭한다. 악귀를 몰아내기 위해서 폭죽을 만들었다는 중국 전통에 착안한 저자는 폭죽 같은 효과를 내는 소설을 통하여 재앙과 화해하는 법을 제시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재앙을 예방할 수는 없지만 극복할 수는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스무 편의 단편을 묶어놓은 이 책은 재앙을 불러오는 귀신을 몰아내는 폭죽 한 세트인 셈이다. 귀신 몰아내기는 봄날부터 시작되어 겨울까지 계속되며,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뉜 각 장마다 다섯 편의 소설이 포함되어 있다.
죠 메노의 소설에는 크고 작은 재앙이 등장한다. 작게는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여자아이로부터 크게는 빛을 잃은 달이나 지구를 집어삼키는 블랙홀 등,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만한 사건이다. 하지만 저자가 초점을 맞추는 것은 거대비극에 맞서는 인류의 모습이 아니라 일상적 비극을 겪는 개인의 모습이다. <달의 건축양식>에서 주인공 토머스의 관심사는 빛을 잃고 사라진 달이 아니라, 어둠 때문에 매일 길을 잃고 헤매는 아버지의 귀가를 돕는 것이다. <세상의 종말 전에 들리는 소리>에서 일단의 중년남자들을 극한슬픔으로 몰아넣는 것은 도시를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아니라, 그룹 ‘키스’의 멤버가 탈퇴했다는 소식이다. <유령 프랜시스>에서 실제로 자넷을 괴롭히는 것은 남편을 중동의 사막으로 끌어가 버린 전쟁이 아니라 침대시트를 뒤집어쓰고 다니는 어린 딸이다. 뿐만 아니라, <빛의 에어포트>에는 도시가 발달하여 마천루가 올라가고 비행기가 날아다니며 공장에서는 독성물질을 뿜어대기 시작하면서 인류의 미래에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운다는 비극적인 문명론이 나오지만, 주인공이 해결하기에는 너무 막연한 사건이다. <1973년 스톡홀름>은 실제로 일어났던 은행 강도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사건은 소설의 소재일 뿐이며 주제는 다른 곳에 있다. <유나바머와 우리 형>에서는 테크노산업문명에 대한 반감으로 무작위 폭발행위를 자행한 전설적인 폭파범 유나바머의 사건일지가 등장하지만, 이 역시 소설의 배경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죠 메노가 다루고자 하는 것은 전 세계적이며 전 인류적인 재앙이 아니라, 일상적이며 개별적인,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극히 인간적인 비극이다.
인간적인 비극을 관통하는 첫 번째 주제는 상실감이다. <동물원의 동물>에서 아내에게 배반당한 사육사는 동물원에 있던 맹수들을 탈출시키고는 자살해 버리는데, 이러한 상실감은 엄마가 멀리 떠난 이후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어린 에밀리의 상실감과 맞닿아 있다. <나는 파티 걸의 고요한 순간을 원한다>는 거칠 것 없이 세상을 헤쳐 나가던 젊은 커플이 자연유산으로 아기를 잃고 나서 겪는 상실감을 그리고 있다. 이들이 견딜 수 없는 것은 아기를 잃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스스로 특별하다고 믿었던 자신감이 파괴되면서 남긴 상실감, 그리고 그로부터 오는 좌절이다. <사람들은 구름이 되어간다>에서 주인공은 애정을 표현할 때마다 수증기가 되어 버리는 아내 때문에 좌절하고 상심하지만, 동시에 욕구불만 때문에 아내를 사랑하지 않게 되면 어쩌나 하는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사과 하나면 웃을 수 있다>에서 남자는 스스로 전혀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우리 일상에 기적은 없는 법이다. 이러한 실망의 확인은 <얼음호텔에서의 겨울> 한 장면에서도 되풀이된다. 방만한 조이스 반후즈가 진부하기 그지없는 남자와 키스하면서 ‘이것이 마술이 되고 불꽃놀이가 되고,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입맞춤이 되기를’ 기원하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상실(혹은 결여)로부터 오는 좌절은 스스로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 좀 더 마음 쓰리게 다가온다. 그러나 동시에 자기 자신의 실체를 인정하는 것은 좌절로부터 탈출하는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너는 놀라운 여학생이다>에서 어색한 사춘기를 맞고 있는 주인공은 자기는 가지지 못한 미모에, 자기는 가질 수 없는 미남 애인을 가졌던 응원단장이, 자기는 실행할 수 없는 방법으로 자살한 이후, 응원단에 지원하여 죽은 소녀가 입던 유니폼을 물려받는다. 이 ‘놀라운 여학생’에게 있어서는 전혀 아름답지 않은 자기 모습을 사람들 앞에 드러내는 것 자체가 자살과 다를 바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주인공은 절대로 죽지 않을 뿐 아니라, 불완전하지만 남자친구도 사귀게 되고, 인간피라미드 꼭대기에 올라가서 사람들의 시선도 받게 된다. <미술학교는 너무 지루하다>에서 주인공 오드리는 미술학교가 너무 지루해서, 룸메이트가 너무 섹시해서, 그 섹시한 룸메이트가 밤낮으로 애인과 섹스하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우주인 헬멧을 쓰고 있다. 하지만 오드리는 나름대로 복수도 한다. 자기가 얼마나 똑똑하고 사랑스러운지 몰라주는 세상에 대한 반격을 글로 써서 작문 숙제로 제출하는가 하면, 룸메이트의 애인의 미래를 예견한다면서 저주를 퍼붓기도 한다. 이들 두 명의 여주인공은 각각 좌절과 화해하는 법을 터득한 셈이다. 전자는 좀 더 화려한 생활에 이르는 지름길(즉, 응원단장의 자살)을 이용함으로써, 그리고 후자는 이 세상 모든 것은 진부하다는 믿음을 통해서(‘더 이상 독창적인 아이디어 같은 건 없어. 모든 게 전부 다 베끼기에다 전부 다 수준이하야.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은 다 그런 거야.’) 스스로를 구제하는 것이다.
좀 더 적극적으로 비극에 직면하여 해결방법을 찾는 주인공들도 있다. <유령 프랜시스>의 자넷은 한 줄짜리 소식만 전해오는 남편에게 이제 더 이상 참지 않겠다는 최후통첩을 (마음속으로) 전하고는, 어린 딸이 목숨처럼 소중하게 간직하는 침대시트를 빼앗아버린다. 성이 난 딸은 울음조차 터뜨리지 않으며, 그걸 보면서 자넷은 좌절보다는 오히려 분노가 낫다고 결론짓는다. <세상의 종말>의 주인공 론은 자타가 인정하는 2류 인생을 살아간다. 가족으로부터 따돌림 당하고, 버릇없는 청소년들로부터 ‘돼지 같은 경찰 놈’이라고 욕을 먹고, 불어나는 뱃살 때문에 신체검사를 가까스로 통과해 가면서도 미래를 위한 계획 같은 것은 없다. 그의 유일한 정열은 록음악이고, 유일한 진리는 ‘키스 아미’다. 아내가 집을 나가도, 딸이 집을 나가도, 아들이 집을 나가도, 블랙홀이 도시 전체로 퍼져나가도 절대적인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던 론은 키스 멤버가 탈퇴했다는 소식에 드디어 충격을 받는다. 그러고 나서야 정작 소중한 것은 아내 베스라는 진실을 깨닫게 된 그는 아내에게 전화한다. 그러자 아내는 곧 거기로 가겠다고 화답한다. <유령비행기>에도 이에 버금가는 한심한 남자주인공이 등장한다. 젊고 아름답지만 정숙하지는 않은 니콜이 책을 읽는다는 사실에 경외심을 가지고, 그처럼 지성적인 여자가 섹스도 즐긴다는 사실에 홀딱 반하지만, 정작 니콜이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정신질환에는 관심이 없다. 벨리즈 여행은 엉망진창이 되고, 극도로 신경질적이 된 두 사람은 파국에 이른다. 하지만 혼자서 폭죽으로 장난치던 주인공은 문득 잘못은 자기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고 폭죽으로 니콜의 마음을 풀어주려 한다. 다행히도 니콜 역시 환한 웃음으로 화답한다. 그렇게 해서 이들은 모두 비극과 화해하는 셈이다.
하지만 주인공이 모두 다 그렇게 운이 좋은 것은 아니다. 자기변명조차 먹히지 않는 회복불능의 파멸을 맞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로맨스다>의 주인공 미스터 앨비는 30대 후반의 외로운 동성애자이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것은 아둔한 파트너와의 육체적인 교통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가능성이 전율하는’ 로맨스이다. 불행히도 미스터 앨비의 연정은 자신이 지도하는 토론클럽의 학생들을 향하고 있으며, 그 사랑의 무게가 너무 크기 때문에 상식적인 판단력을 잃게 된다. 마침내 미스터 앨비는 뻔뻔한 술수를 사용하여 학생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우리가 만들어 갈 새로운 문명’에 대한 엄청난 희망을 털어놓지만, 아이들은 이 비정상적인 이야기를 차마 들어줄 수 없다. 이제는 돌이킬 수 있는 방법도, 화해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미스터 앨비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흐느끼며 쓰러지는 것뿐이다.
그만큼 가차 없는 좌절은 <건강하라, 세이머!>에서도 나타난다. 주인공 죠쉬는 프린스턴대학교 신입생이라는 것 외에는 변변하게 내세울 게 없는 젊은이로, 세련되지 못한 부모와 ‘애처로울 정도로’ 못생긴 여동생과 함께 ‘어울릴 수 없는’ 유람선 여행을 하는 중이다. 여동생에게 모욕을 준 건방진 여자를 찾던 죠쉬는 그 여자가 놀랍게도 아름답고 우아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연습을 했기에 저렇게 쾌활하고 저렇게 균형 잡힌 자태에 저렇게 아름다우리만치 자신감에 찬 모습으로 보이는 걸까.’ 좌절은 그렇게 시작된다. 운 좋게 그녀와 마주친 죠쉬는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전혀 중요하지 않은 장난에 동참하고, 마침내 그녀의 가족이 머물고 있는 특실까지 따라간다. 사회적으로나 인격적으로나 훌륭한 부모와 예의바르고 똑똑한 자녀들로 구성된 세련된 가족 틈에서, 죠쉬는 잠시 그들과 동화되어 꿈결 같은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그 화려한 세계에서 밖으로 나오는 순간 현실은 ‘침울한 것보다 더 침울하고 외로운 것보다 더 외롭게’ 다가오는 법이다. 여동생의 비극은 절대로 백조가 될 수 없는 미운오리새끼라는 점이고, 죠쉬의 비극은 절대로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했다는 것이다. 드러낼 수 없는 비밀스러운 욕망이, 그것을 포기해야 하는 상실감이, 처음부터 공정한 게임이 아니라는 상대적 박탈감이, 그의 마음에 깊은 좌절을 남길 것이다.
상대적 박탈감으로부터 오는 좌절이 남긴 통렬한 상처를 가장 치열하게 그린 작품은 <오션랜드>라 하겠다. 스스로 능력 있고 열심히 일한다고 믿는 형은, 자기보다 어리고, 능력도 떨어지고, 생활도 제멋대로이고, 마약과 기타에 심취하느라 오션랜드를 엉망으로 만들고 있는 동생을, 왜 아버지가 그냥 놔두는지 이해할 수 없다. 자기가 운영한다면 훨씬 더 잘할 것이라고 아버지에게 어필해 보지만, 잘난 척 하지 말라는 싸늘한 대답만 돌아온다. 망해가는 회사를 뛰어난 회계조작기술로 살려 놓았지만 결국 인정받지 못한 채 사표를 던져야 했던 것처럼 말이다. 몸속에서는 엄청난 궤양이 자라고 있으며, 욕구불만 아내는 옷을 벗고 돌아다닌다. 자살하려는 여자를 애써서 구해놨더니 상관하지 말라고 원망만 한다. 해결책을 찾아보려고 동생을 찾아가지만, 집 밖으로 흘러나오는 동생의 천재적인 기타연주를 듣고는 용기를 잃을 뿐이다. 그는 ‘동생에게 뭔가 잘하는 게 있다는 것을 절대 알지 못했다. 그는 뒤로 기대어 눈을 감은 채, 동생을 싫어했던 것에 대해서 끔찍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온 세상이 오직 자기에게만 냉혹한 것 같은 생각에 가슴은 터질 것 같지만 오래전에 다시는 울지 않겠다고 결심한 이후로는 울 수도 없다. 자만심과 완벽주의가 스스로 만들어 놓은 덫이다. 이 덫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는 영원히 파멸할 수밖에 없다.
동생과 형의 관계를 그린 또 다른 소설 <유나바머>에서는 동생이 형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괴로워한다. 어릴 때부터 힘이 센 형을 당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왜소하고 소심하며 만화책을 사기 위해서 돈을 모으는 자신에 비해서, 형은 야성적이고 마력적인 남성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형이 고등학교 2학년 때 여자를 임신시켰다는 것을 알게 된 동생은, 기독교적 도덕적 우위를 점함으로써 자신감을 회복하는 기회로 삼으려 한다. 그러나 형이 그 여자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한층 더 비참한 기분만 가지게 된다. 그처럼 끝없는 열등감의 근원이 되었던 형이 정신질환을 겪으면서 점차 폐인이 되어가는 동안 동생은 모르는 척 할 뿐이다. 더 이상 원상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에 이른 형을 보면서, 동생은 비로소 자신이 형을 시기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키 크고 체격 좋으며 핸섬한 외모에서부터 말하는 방법, 체력, 유머센스, 그리고 교회에 앉아서 두 손을 모으고 실제로 기도하는 것처럼 보일 때 얼마나 진지해질 수 있는가에 이르기까지, 나는 형의 모든 것을 질투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 것도 되돌릴 수 없다. 형은 야성을 잃은 저능인간처럼 살아갈 것이고, 동생은 결코 특별한 것 없는 평범한 인생을 살면서 끊임없이 죄책감에 시달릴 것이다.
죠 메노의 소설에는 악역은 있지만 악인은 없다. 화려한 스타도 없고 비참한 범죄자도 없다. 권선징악도 없고 신앙에 의한 구원도 없다. 다들 조금씩은 정신적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현실에서 찾아볼 수 없는 허구적 캐릭터는 아니다. 소설의 배경은 지극히 일상적이며 도시적이고 동시대적이다. 거창한 담론이나 위대한 진리를 전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일상에서 수없이 발생하는 소소한 재앙과, 그것의 원인이 되거나 결과가 되는 잠재적 비극요소에 대해서 잠시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그 모든 실수와 치기와 욕심과 오해에 대하여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인간적이기 때문’이라는 면죄부를 준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확실히 휴머니스트다. 그 외에도 죠 메노 소설의 장점은 많다. 언론 서평에서 공통적으로 찬사를 보내는 뛰어난 문체는 물론이고, 놀라운 감정이입, 사족 없는 단정한 구성, 대중문화 코드의 적절한 사용, 숙련된 유머와 위트, 그리고 스무 명의 컨템포러리 아티스트가 그려내는 삽화에 이르기까지, 완성도 높은 소설이 줄 수 있는 다양한 재미와 성공적으로 감동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장치들이 작품 전체에 포진하고 있다. 죠 메노는 미국에서 마니아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 번역본 출판을 계기로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독자들이 죠 메노의 작품세계를 경험하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본문 중에서)
7. 죠 메노 베스트셀러(늘봄근간)「소년탐정 실패하다」 The Boy Detective Fails 예고
소년탐정으로 이름을 날렸던 빌리는 여동생 캐롤라인이 원인 모를 자살을 한 후, 충격과 죄책감으로 정신병원에서 10년을 보낸다. 서른의 나이에, 항불안제 복용으로 심신이 나약해진 채 뉴욕 ‘고담’시에 도착한 빌리는 사회적응을 위한 훈련시설에 머물게 된다. 여전히 베일에 싸여있는 여동생 자살의 비밀을 밝히기로 마음먹은 빌리는 길 건너편에 살고 있는 아이 두 명과 연합하여 운명의 적수 폰 골룸 교수가 과거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증거를 찾아내는데…. 진실, 사랑, 구원을 찾아가는 빌리의 놀랍고 흥미진진한 여정이 죠 메노 특유의 정직하고 감각적인 문체로 한층 감동을 더한 작품이며, 죠 메노의 대표 소설이며 도저히 손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 연극으로 공연되기도 했으며, 내년 초 늘봄 출판사에서 번역되어 한국에 소개된다.
첫댓글 이미지 안보인다.
저도요.
나는 보이는데,,, 왜 안 보이는 걸까?
나는 보인다. 유령 비행기가.^^문학을 좋아하더니 드뎌 일 냈구나. 책 제목과 단편들의 제목들이 쏙쏙 맘에 든다. 타블로 소설'당신의 조각들'도 언제 읽어야 되는데. 배경은 비슷한듯 하네. 꾸준한 마케팅을 준비하기 바란다. 전도사 답게 매장에 가서 보도자료도 전달하고. 결과에 관계없이 (잘 될테지만)조촐한 축하파티 해야쥐.
착한 사람만 보이는게 아니라...부섭이가 파일 수정했단다.^^
처음 소개 됐다며, 많은 독자를 찾아라
일단 책 속 삽화가 눈의 확 띄더구만. 간만에 단편소설 재미에 빠져볼까나~^^
이 책이로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