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집은 아직 설도 오지 않았건만 전 부치는 소리와, 지글지글 생선 굽는 소리가 하루 종일 집안을 차지하고 있다. 오늘이 바로 할머니 제삿날이기 때문이다. 우리집이 큰 집이어서 일년에 4번은 이렇듯 집안 가득 진동하는 전을 굽는 진한 향수 냄새와 생선굽는 교향곡으로 가득차 있다.
처음에는 그냥 할머니 할아버지 제삿날만 챙기면 될 것을 증조부대까지 챙기는 것이 못마땅 했지만 자그만치 20년이 넘는 세월을 보아와서 그런지 이제는 이런 풍경이 우리 집의 활기를 갖다 주는 몇 차례의 월례 행사처럼 여길 수 있게 되었다.
그도 그럴것이 일년에 2번 정도는 서울에 사는 친척은 물론이거니와 전라도에 사시는 작은 아버지까지 올라오시니 이 정도되면 설이 남부럽다 도망갈 정도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오늘처럼 할머니 제삿날은 더욱 심하다.
저녁 7시가 넘기면 꼭 밤 영업을 준비하는 나이트 클럽처럼 속속들이 친척들은 몰려온다. 하지만 친척이라 해서 꼭 방가운 것만은 아니란 것을 큰집에 사는 나같은 큰 집 자손들은 모두 느낄 것이다.
손이 발이 되도록 분주히 움직여도 꼭 자기 먹을 것만 따로 싸고서는 손도 까딱 안하고 열심히 뱃속의 허기에 저축을 하는 몇몇의 얄미운 고모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다 그런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고모들이 그렇다는 걸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오늘 같은 날은 하루에 한 두번 할까 말까 하는 인사도 웨이터가 된 마냥 하루 종일 굽신굽신 거려야 한다. 때문에 밤에 잠자리에 들면 다리가 저린 것은 예사고 그보다 허리의 고통이 더욱 심하다.
"경아야~ 저기 나물하고 밤이랑 은행 같은 것 좀 제기에 담아"
이럴때 보면 우리 엄마는 레스토랑의 매니저 쯤이 되도 거뜬히 모든 걸 해낼 수 있는 슈퍼우먼처럼 보인다. 어느 때 보다도 더욱더....
"어머~ 언니~ 이거 전 너무 맛있게 됐다. 언니 우리 챙겨 갈 것 좀 남겨놨지?"
밥맛. 정말 친척만 아니라면 얼굴에 냉수라도 들이 붓고 싶지만 그렇게 한다한들 결국 내게 돌아오는 건 엄마의 꾸중밖에 없으리라는 걸 알기에 오늘도 근 20년 동안 그러해 왔듯이 저 가슴 한 켠의 울화통이란 분리수거통에 가득 밀어 넣어 버렸다.
"언니? 옥이언니?"
"처제~"
웅성웅성. 가뜩이나 시끄러워 미어 터질것 같던 집안이 더욱더 시끄러워 졌다. 지금 들어온 옥이고모 때문이다.
엄마가 바쁘던 손길을 멈추고 물기가 촉촉한 눈으로 옥이 고모의 손을 어루만지며 얼싸 안았다.
"언니 미안. 일찍 와서 언니 좀 도와줘야 하는데..."
옥이 고모와 우리 엄만 비록 시누이와 올케 사이지만 모르는 사람들은 저 둘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자매지간에 정말 우애가 돈독하네요라고...
뒤늦게 온 걸 참회하고 만회하려는 듯 옥이고모는 나를 제쳐두고 엄마의 바쁜 손길을 엄마보다도 더 바쁘게 움직이며 모든 일들을 척척해냈다.
"언니 저기 과일이랑 다 깍아놨어. 그거랑 탕만 갔다 주면 돼"
"으...응"
바쁜 손길을 도와줘도 마음이 편치 않은 듯 엄마는 얼굴에 한 가득 수심을 띠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옥이고모는 막노동으로 하루하루 벌어먹는 고모부가 술이 만취해서 사람을 폭행하고 기물을 파손한 죄로 교도소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파출부 일도 마다 않으며 하루하루를 근근히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 고통은 누구보다도 우리 엄마가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 시간여 동안 분주히 움직여서 제삿상을 차려 놓으면 한시간이 조금 넘게 문을 열어놓고 조상들의 영혼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며 자손들은 절을 한다. 하지만 그 절을 하는 것도 아직까지 뿌리깊은 유교사상의 관습으로 생고생을 한 여자들을 제쳐놓고 멋지게 절 하는 특권은 남자들에게만 주어져 버린다.
우리 집도 흔하고 흔한 그런 집들 중 하나이기에 오늘도 역시 절을 하는 몫은 우리 아빠와 그리고 작은 아버지들 뿐이다. 근데 아빠가 절을 하고 나오는 순간 뒷정리를 하던 옥이고모가 말 없이 제삿상 앞으로 걸어갔다.
"언니 뭐 하는 거야?"
얄미운 고모들이 옥이고모를 미쳤다는 듯 큰 소리를 치며 부리나케 달려와 만류하려 했을 때이다.
"나, 잠깐만 엄마 좀 보고.... 우리 엄마 좀 보고 싶어서.... 오빠~"
한참을 가만히 옥이고모를 쳐다보던 아빠가 입을 열었다.
"그래 너도 자식인데 누가 널 말릴 수 있겠니. 절이나 해라"
무뚝뚝한 아빠의 놀랄만한 한 마디.
다른 고모들은 넋이 나간 듯 아빠만을 쳐다봤다. 그도 그럴것이 우리 아빠는 전통적이다 못해 보수적이고 앞뒤가 꽉꽉 막힌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고모들의 벌린 입이 그리 과장된 것만은 아니다.
"흑....흑...."
왠지 모르게 슬픔이 베어있는 듯한 고모의 표정에 가만히 지켜보던 나는 떨어지던 한 두방울의 액체 끝에 서러운 듯 목놓아 부르짖는 고모를 보게 되었다.
"엄....마~ 어....엄....마~"
부모를 잃어버려 막막함에 눈물을 흘리는 네살박이 어린 아이처럼 한 참을 말없이 고모는 그렇게 할머니의 사진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 고모를 보고 일 순간 시장바닥처럼 시끄럽던 집안이 갑자기 숙연해 지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
"언니. 고생 되겠지만 엄마 제사 좀 잘 챙겨줘요. 그리고 그 동안 제대로 명절때마다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마지막을 정리하는 사람처럼 한 마디를 던지고는 곧바로 고모는 나갔다. 그런 고모의 말이 맘 한 구석에 걸린 것인지 엄마와 나는 황급히 신발을 구겨 신으며 달려나갔지만 어느새 고모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옥이 고모가 다녀간 영향으로 제사가 끝이 나고 시끄럽게 그 동안의 담소를 나눌 식사 시간이 되었지만 집안은 싸늘했다. 그렇게 넘어가지 않은 밥알을 삼키고 있을 때였다.
딩동딩동
조용한 집안을 일 순간에 메워버린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혜령아? 혜성아?"
방금 전 다녀간 옥이 고모의 아들 딸을 보며 놀란 나의 말 소리에 일 순간에 식구들의 눈은 그 아이들을 향했고 그 시선은 점차 위에서 아래로 떨구어 졌다. 그리곤 아까의 일이 재현되듯 고모들의 입은 다시 벌려졌다.
사진.
그 이유는 사진때문이었다. 두 아이의 손에 들린 자그마한 보통 사진. 하지만 그 사진은 보통 사진이 아니었다. 옥이고모 혼자서 세상의 모든 시름을 잊은 듯한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큰 엄마~ 우......우...우리 엄마...바...밥 좀 주세요. 우...우리 엄마도 밥 좀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