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길에 우연은 없습니다(사 55:6-13)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지난 한 주간 동안, 어떻게 사셨습니까?
서울 기준으로 40도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하고, 무더위와 열대야가 계속 될 것이라고 하는데, 걱정됩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옛날에는 어느 낯선 지역을 정확하게 찾아가려고 하면, 종이로 된 지도책이 있어야 했습니다. 지도책이 없을 경우에는 때로, 차를 길가에 세우고, 처음 본 사람에게, 길을 물어보아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네비게이션이 있어서, 가고자 하는 주소를 입력하면, 똑똑한 네비게이션이 목적지까지 잘 인도해 줍니다.
때로는 이 길이 아닌 것 같은데 하면서도, 네비게이션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는 경우가 있기도 합니다. 이 길이 내가 알고 있는 길은 아니지만, 네비게이션이기 때문에, 목적지까지 나를 잘 인도해 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따라갑니다.
간혹, 전혀 엉뚱한 곳으로 인도하여,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있기도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인생의 길을 잘 걸어가고 계십니까? 정확하게 알고 가는 길이든, 알지 못한 채 무작정 가는 길이든, 우리는 각자의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이 인생길을 감에 있어서,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우연’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각자 정해진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욥처럼, 어떤 사고가 갑자기 우리를 덮치고 불행이 살금살금, 우리가 가는 길로 다가오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건 겉으로만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이런 것들이 불운이라고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숨겨진 은밀한 각본을 읽을 수 없고, 하나님의 최종 목적을 정확하게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참된 믿음이 찾아오면, 우연과 불운은 우리 곁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연과 불운은 성령님으로 거듭난 사람들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보살핌을 받는 귀한 존재이기에, 우연이나 불행이 우리를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머무는 동안, 우리 역시 자연의 법칙에 굴복해야 하기에, 질병이나 노화나 죽음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분별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그리스도인들도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것 없구나”라고 중얼거릴 것입니다.
참된 믿음의 사람은 주님께서 그의 발걸음을 정해 놓으셨다고 확신해도 좋습니다.
우리는 이 넓고 넓은 세상에서, 의지할 곳 하나 없는 떠돌이가 아닙니다. 고아가 아닙니다. 사랑받지 못하고, 버려진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돌보심을 받고 있는 사랑스러운 아들이요, 딸들입니다. 귀한 보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의심해서는 안됩니다. 어떤 형편에 있든지,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여러분! 욥기서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내용은 욥을 위로하고자 찾아왔던 세 친구들과 욥의 길고 긴 논쟁입니다. 누구의 견해가 옳고, 틀렸다고 말할 수 없는 그런 쓸데없는 논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논쟁에서는 우리 인생에게 닥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명한 답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때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과 논쟁을 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논쟁이 있다고 한다면, 누가 옳고 누가 틀릴까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논쟁에서는 언제나 하나님이 옳으시고, 사람은 틀린 것입니다.
다윗은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시 51:4)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순전하신 분이십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어찌 창조주인 하나님과 논쟁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과 맞서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맞선다고 하는 것 자체가 미련하고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하나님과 대립하여, 자기의 견해를 계속 고수하는 사람은 언제까지나 잘못된 입장에 서 있을 수밖에 없게 됩니다. “자기의 견해가 옳고, 하나님의 생각은 틀렸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정말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당장 우리 앞에서 벌어질 일들조차도 전혀 알지 못한 데, 어찌 하나님의 깊고 깊은 계획하심을 알 수가 있겠습니까?
내 일 하나도 가당하기 힘든데,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어찌 다 헤아릴 수가 있겠습니까?
8-9절 말씀입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아멘.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믿음의 사람들은 어떤 경우라 할지라도, 하나님과 논쟁하려고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이의를 제기하지 말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기의 생각을 접어두어야 합니다. 자기의 고집을 부려서는 안됩니다.
자기 나름대로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매끄럽게 처리하고, 깔끔하게 마무리 하리라는 자기만의 노하우가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그것은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면, 그냥 그대로 멈추어야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것저것 따지면서, 하나님과 논쟁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과의 논쟁에서 자신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판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 고집을 꺾을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우리의 가고자 하는 길을 고집하지 않는 것이 우리 인생에 있어서, 가장 좋은 길입니다. 우리의 길을 고집하는 것은 미련하고 어리석은 짓이요, 결국 우리에게 나쁜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가라고 하신 그 길만이 최선의 길이요, 최고의 길이기 때문에 우리의 고집과 아집을 버리고 순종해야 합니다.
여러분! 사람들 사이에서 문제가 생기면 대개는 두 개 이상으로 편이 갈리며, 때로는 여러 편으로 갈리기도 합니다. 종종 찬반양론이 너무 팽팽히 맞서기 때문에, 어느 편이 옳은지를 판단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할 때도 있습니다.
조선 역사를 보면, 중앙 정계에 진출한 사림들간에, 제일 먼저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지고, 권력을 쥔 동인 안에서, 서인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를 두고, 다시 남인과 북인으로 나뉘어지고, 또, 북인은 다시 대북과 소북으로 나뉘어졌습니다. 그리고, 인조반정으로 정권을 잡은 서인도,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정치 현실은 어떻습니까? 여당이 있고, 야당이 있습니다. 여당은 아니지만, 뜻을 같이하는 다른 당 사람들이 있습니다. 진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야당도 마찬가지입니다. 뜻을 같이 하고 싶지만, 당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당 밖에서 눈치만 보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보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같은 당 안에 있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권력을 잡기 위해서라면, 상대방을 향하여, 온갖 비난을 쏟아내고 있는 형국입니다.
어느 당, 어느 사람이 가장 합당한 사람일까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지지율을 따라, 사람들이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고, 왔다갔다 하는 상황에 있습니다. 누가 최종적으로 웃을 수 있을까요? 누가 옳다고 할 수 있을까요? 진보 쪽일까요? 아니면 보수 쪽일까요?
여러분! 진보와 보수, 어느 쪽에 속해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오직 하나님 편에 서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편은 선하고 거룩하며, 다른 편은 모두 잘못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의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잘못은 더욱 깊어지고 심각해집니다.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오기가 힘들어집니다.
어떤 상황이 닥친다 할지라도, 흔들리지 않고, 우리는 하나님 편에 머물러야 합니다.
지지율에 웃고 우는 정치판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헛된 세상에 기웃거려서는 안됩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참딘 만족과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에게 맞서면 승리할 수 없고, 하나님 편에 서서 일하면 패배가 없습니다.
우리를 향한, 더 나아가,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향한 하나님의 길이 어디에 있는지,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우리는 솔직히 모를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떤 정치인을 좋아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정치인의 가고자 하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 그의 계획이 무엇인지, 다 알고 있습니까? 하나도 모릅니다. 그냥, 뉴스에 나오는 것만 대충 아는 것입니다. 그래도, 좋아합니다. 그러면서 그에 대하여, “다 안다”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말한 것은 “다 옳다”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한 행동은 “다 그만한 가치가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추종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는 깊은 영적이고 신비적인 요소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름뿐인 그리스도인에 머물지 않으려면, 이러한 영적이고 신비적인 요소를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불타는 사람은 진리를 바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앞에 가로막혀 있는 베일을 열어젖히고, 그 안으로 들어가 ‘어떤 것’을 보고 듣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될 수도 없는 것들입니다. 우리의 이성을 초월하는 것들입니다. 우리의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것들입니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보이지 않아도 볼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들리는 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들리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점치는 무당이 푸닥거리를 하면서, “죽은 조상 귀신이 지금 여기에 왔다”라고 하면, 벌벌 떨면서 잘들 믿는데,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가, “하나님이 지금 여기에 계십니다”라고 전하면, 잘 안 믿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보이는 것만이 우리 믿음의 실체가 아닙니다. 들리는 것만이 우리 믿음의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의 육신의 눈으로 보이지 않아도, 영적으로 볼 수 있고, 우리의 육신의 귀로는 들리지 않아도, 영적으로 들을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배운다고 배워지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 7:3-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적이고, 신비적인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면, 저절로 깨달아집니다.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게 되고, 들리지 않던 것들이 들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것만 보고, 따라가면 잘못될 수 있습니다. 넘어질 수 있습니다.
지금 귀에 들리는 것만 듣고, 따라가다 보면, 실패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듣기 위해서는 우리는 하나님에게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이 무엇인지 가르쳐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영적이고 신비로운 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딤후 3:5) 그런 믿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믿음의 옷은 입었을지 몰라도, 믿음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혀 닮지 않았다고 한다면,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믿음의 옷을 입고, 믿음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광야에서 구름기둥, 불기둥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주었듯이, 진리의 성령님께서 우리의 영적 여행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어주시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5-6)라는 단 하나의 구절에 순종할 마음만 있어도, 우리의 믿음의 상태는 크게 좋아질 것입니다.
경건의 모양과 경건의 능력을 모두 갖추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자꾸 반복하면 완전해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잘못된 일을 계속 반복하면, 완전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옳은 일을 계속 반복해야 합니다. 영적 생활을 계속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 3:12)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아직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지 않았습니다.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끝까지 가야 합니다. 중도에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딴 데로 가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나아가는 길에는 우연도 없고, 불운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만 있을 뿐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름 기둥과 불기둥을 보고, 움직였듯이,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따라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앞서 가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가신 길만을 밟고 따라가야 합니다. 그 길이 가장 안전한 길이요, 생명과 축복의 길이요, 우리를 최종 목적지로 인도하는 가장 올바른 길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시간이 흘러가면, 지금보다는 더 좋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자신의 신앙이 더욱 깊어져서, 그리스도를 저절로 더욱 닮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잘못된 길은 세월이 아무리 흐른다 할지라도, 역시나 잘못된 길입니다.
그러므로, 애초부터, 옳은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 주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여러분! 영적 믿음의 길에는 언제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싱크홀 때문에, 멀쩡하게 서 있던 건물 자체가 땅 속으로 사라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잘 포장된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움푹 팬 포트홀 때문에, 자동차가 크게 흔들리거나, 위험한 일을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무리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고 해도, 피할 겨를도 없이, 엄청난 사고에 직면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가는 길에 있는 장애물들을 제거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아무런 사건이나 사고 없이, 최종 목적지에 잘 도착할 수 있도록, 우리의 인생의 핸들을 붙잡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6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아멘.
기도할 수 있을 때,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수 없을 때, 억지로라도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만이 우리의 살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의 생명줄입니다.
우리의 지식, 노하우, 정보, 기술 등이 우리의 나아가는 길에 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맹신해서는 안됩니다.
지식만 고집하다가, 시대 흐름에 따라오지 못한 지식으로 인하여, 뒤처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노하우만 믿다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큰 코 다칠 때가 있습니다. 정보만 의지하다가, 잘못된 정보로 인하여, 실패할 때가 있습니다. 기술만 믿다가, 엉뚱한 기술로 인하여, 당황할 때도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습니다. 따라가기가 벅찹니다.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면, 읽지 못한 책이 수천, 수만 권이나 된다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어떻게 세상 지식을 금방 좇아갈 수 있겠습니까? 따라잡을 수가 없습니다.
연애인들이 퀴즈 문제를 못 맞힐 때, “저것도 못 맞히다니”라면서, 웃을 때가 있지만, 솔직히 나도 그 문제의 답을 모를 때가 있습니다. 함께 웃고 떠들지만, 웃는 것이 웃는 것이 아닙니다.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더 많습니다. 나도 모르는데, 연애인도 모른다고 하니 신나서 웃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나, 아무리 많은 세월이 빠르게 흘러간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진리입니다.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진리이십니다. 예수님은 변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대상은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변하지 않습니다. 동일합니다.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다윗, 솔로몬, 베드로와 요한, 사도 바울이 받았던 하나님의 말씀과 오늘 우리들이 받는 하나님의 말씀에는 다른 것이 없습니다.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776798
동일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도 동일합니다.
우리의 나아가는 길에는 우연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다윗, 솔로몬,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사도 바울과 함께 하시고, 그들의 나아가는 길을 항상 인도하셨던 것처럼, 오늘, 바로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나아가는 길을 항상 인도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가 드리는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은 언제나 풍성하게 임합니다.
모자람이 있거나 부족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복은 열두 바구니의 축복이요, 백 배의 열매를 거두게 하는 축복입니다.
여러분!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끝까지, 믿음의 길을 달려감으로,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예비해 놓으신 풍성하신 은혜와 복을 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크신 은총을 베풀어 주옵소서.
오직 주님만 바라보오니,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주여, 우리와 항상 함께 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늘 주님께 기도함으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모든 장애물들을 물리치게 하여 주옵소서.
세상 길로 빠지지 않게 하여 주옵시고, 잘못된 길로 나아가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유혹하는 모든 시험으로부터 승리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와 우리 자녀들에게 백 배의 은혜와 복을 쏟아 부어 주옵소서.
우리 한마음교회의 지경을 넓혀 주옵소서.
우리 대한민국에 참된 평화가 있게 하여 주옵소서.
코로나 19가 하루 빨리 종식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