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돌 방
조 향 미
할머니는 겨울이면 무를 썰어 말리셨다 해 좋을 땐 마당에 마루에 소쿠리 가득 궂은 날엔 방 안 가득 무 향내가 났다 우리도 따순 데를 골라 호박씨를 늘어놓았다 실겅엔 주렁주렁 메주 뜨는 냄새 쿰쿰하고 윗목에선 콩나물이 쑥쑥 자라고 아랫목 술독엔 향기로운 술이 익어가고 있었다 설을 앞두고 어머니는 조청에 버무린 쌀 콩 깨 강정을 한 방 가득 펼쳤다 문풍지엔 바람 쌩쌩 불고 문고리는 쩍쩍 얼고 아궁이엔 지긋한 장작불 등이 뜨거워 자반처럼 이리저리 몸을 뒤집으며 우리는 노릇노릇 토실토실 익어갔다 그런 온돌방에서 여물게 자란 아이들은 어느 먼 날 장마처럼 젖은 생을 만나도 아침 나팔꽃처럼 금세 활짝 피어나곤 한다 아, 그 온돌방에서 세월을 잊고 익어가던 메주가 되었으면 한세상 취케 만들 독한 밀주가 되었으면 아니 아니 그보다 품어주고 키워주고 익혀주지 않는 것 없던 향긋하고 달금하고 쿰쿰하고 뜨겁던 온돌방이었으면
- 조향미, 「『그 나무가 나에게 팔을 벌렸다』, 실천문학사, 2006(2006년 4분기 우수문학도서)
□ 조향미 1961년 경남 거창 출생. 부산대 국어교육과 졸업. 1984년 무크지『전망』을 통해 작품활동 시작. 현재 부산 문현여고에 재직 중이다. 시집『길보다 멀리 기다림은 뻗어 있네』『새의 마음』『그 나무가 나에게 팔을 벌렸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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