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도움 어디서 오나?
2023년 4월 30일 시 121:1-8
1. 찬양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시편 121편)
2. 시편 121편 1절-8절
이 시 앞에는 【성전에 올라가는 순례자의 노래】라는 설명이 달려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1년에 세 차례(유월절-무교절, 칠칠절-오순절-맥추절, 장막절-초막절-수장절)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제사 드려야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1년에 두 차례, 설 명절과 추석에 고향에 내려가는 것과 비슷하지요. 이렇게 정기적으로 수도 예루살렘에 올라가 성전에서 제사 드리는 것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일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어려움들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오랜 시간 고향집을 비우니 고향에 대한 걱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산악지대를 통과해서 가야 하는데 그 길 가운데 험난한 곳들이 있어서 위험하고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때때로 발생하는 강도 사건으로 인해 그 순례의 길은 더욱 더 위험하였습니다. 그리고 산길에는 많은 산당들이 있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를 숭배하는 많은 산당과 신당들이 순례자들을 유혹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계룡산도 골짜기마다 이런 저런 신당들이 있지요. 계룡산을 연상하시면 이해가 쉽겠습니다. 아무튼 이런 모든 위험과 유혹을 감수하면서 나아가는 것이 예루살렘 순례길입니다. 이런 순례자들을 위하여 제사장들은 오늘의 본문 시 121편과 같은 노래를 만들어 위로하고 격려하였습니다. 시 120편에서 134편에 걸쳐 나오는 이와 같은 노래를 읊조리면서 순례의 길을 가도록 인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성전으로 나아가는 순례자는 이런 노래들을 입에 달고 있었을 겁니다. 농사할 때는 노동요를, 장례 치를 때는 상여소리를 하듯이 예루살렘 성전 순례 길에서는 이 노래를 부르는 겁니다.
1. 내가 눈을 들어 산을 본다. 내 도움이 어디에서 오는가?
2. 내 도움은 하늘과 땅을 만드신 주님에게서 온다.
지금이야 독일이 유럽연합의 착실한 지도자급으로 행세합니다만, 100년 전만해도 독일은 유럽의 골치 덩어리였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의 주역이 바로 독일입니다. 독일과 이웃한 프랑스는 이 말썽꾼, 깡패 같은 독일이 골치 덩어리였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끔찍한 고생을 했던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독일과 맞닿은 국경을 따라 철저한 방어진지를 구축했습니다. 이 방어진지는 당시 프랑스 육군 장관이었던 앙드레 마지노(Andre Maginot)라는 사람의 제안으로 구축되었다고 해서 그 이름이 마지노선입니다. 1930년부터 1936년까지 무려 6년에 걸쳐 건설하였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의 경험을 살려 프랑스와 독일 사이 국경의 지세를 잘 활용해 구축했습니다. 독일 전차의 침입을 막기 위해 철골 벽을 이중으로 세우고, 보병의 침입을 막기 위해 철조망지대를 설치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두께 6m의 콘크리트 벽을 설치했습니다. 이런 요새의 길이가 장소에 따라 수km에 달했으며, 발전실과 탄약고, 작전실은 모두 지하 70m의 벙커에 설치했습니다. 통신선도 모두 지하에 묻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50만의 병력을 포함해 모든 화력을 집중 배치했습니다. 그야말로 믿음직한 방어막이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2차 세계대전이 터졌을 때 이 마지노선은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독일군이 프랑스와의 국경이 아니라 옆에 있는 벨기에와 룩셈부르크의 산악지대로 우회해서 침공했기 때문입니다. 50만의 프랑스군 병력이 투입되어 있던 마지노선은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오히려 우회 침공한 독일군에게 포위되었습니다. 정말 허무하게도 그 어마어마한 위용의 마지노선은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 어디 마지노선뿐입니까? 고대 터키의 트로이성에서부터 시작하여 중국의 만리장성에 이르기까지 안전한 곳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마음 한편에 마지노선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겉으로 남에게 드러내지는 않지만 자기 마음속 한 구석에 내심 의지하는 마지노선을 구축하고 있단 말입니다. 우리의 마지노선은 내가 의지하는 경제력일 수도 있고, 아직은 괜찮은 건강일 수도 있고, 안정적인 일자리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든든한 노후의 연금일수도 있고, 생명보험이나 건강보험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마지노선을 너무 믿어선 안 됩니다. 오늘 본문 시편 121편에서 시인은 나의 도움이 그 마지노선에 있지 않다고 합니다. “내가 눈을 들어 산을 본다.”고 할 때 시인이 보는 산에는 나무와 풀들만 있지 않았습니다. 그 산에는 수많은 산당과 신당들이 있었으며, 그곳에서는 바알과 아세라 등 온갖 우상들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우상들이 그 앞에 절하는 이들에게는 마지노선이었습니다. 믿거라 하는 구석이었단 말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나의 도움이 그따위 것들에서가 아니라,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고 고백합니다. 이 신앙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3. 주님께서는, 네가 헛발을 디디지 않게 지켜 주신다. 너를 지키시느라 졸지도 않으신다.
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분은,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신다.
제가 가만히 들여다보니 우리 인생이란 게 꼭 기울어진 널빤지 위에 올려놓은 공 같습니다. 누군가 붙들어주지 않으면 굴러 내립니다. 제 생각에는 신학자들이 오랜 세월 ‘원죄’라고 설명한 인간의 속성도 마치 이 같은 인생의 모습을 지적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이 기울어진 널빤지 같은 우리네 인생을 붙들어줄 수 있는 이는 누구일까요? 부모님일 수도, 친구일 수도, 좋은 선배와 직장 상사의 도움일 수도, 때로는 목회자의 조언과 인도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의 붙들어줌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유한합니다. 궁극적인 차원의 문제에 들어가면 이런 사람들의 도움은 정말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도움을 구해야 하는 까닭입니다.
네가 헛발을 디디지 않게 지켜 주신다. ; 이 구절은 헛발을 디뎌 발목이 삘 것을 염려하는 게 아니라, 마른 우물에 빠져 생명을 잃을 수 있음을 우려하는 것입니다.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신다. ; 무슨 신이 졸거나 자냐고 물을 수 있지만, 메소포타미아 문헌에서 신이 졸거나 잔다는 표현은 응답이 없다는 뜻입니다. 즉 그 신은 응답하지 않는 죽은 신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신이 아니란 뜻입니다.
5. 주님은 너를 지키시는 분, 주님은 네 오른쪽에 서서, 너를 보호하는 그늘이 되어 주시니,
6. 낮의 햇빛도 너를 해치지 못하며, 밤의 달빛도 너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주님은 네 오른쪽에 서서, 너를 보호하는 그늘이 되어 주시니 ; 오른쪽이란 강한 쪽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약한 쪽이기도 합니다. 고대의 전투, 창과 칼과 화살로 하는 전투에서 보통 군인들이 칼과 창을 맞거나 화살을 맞는 쪽은 오른쪽입니다. 왼손은 방패를 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칼을 휘두르는 그 팔에 화살을 맞는 법입니다. 강한 쪽이 약한 쪽입니다. 이것은 전투에서만이 아닙니다. 우리네 인생살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가진 재주로 말미암아 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사슴의 이야기처럼, 사슴은 멋진 뿔 때문에 사냥꾼에게 잡히는 것입니다. 압살롬은 그 잘난 머리채 때문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우리가 겸손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시편에서는 하나님께서 내 오른쪽에서 나를 보호하는 그늘이 되어주신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은혜로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낮의 햇빛 ; 사막의 뜨거운 열기를 말합니다. 이것의 위력은 말할 나위가 없지요.
밤의 달빛 ; 고대인들은 밤의 달빛에 음험한 기운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달빛에 노출되는 것을 매우 위험한 일로 생각했습니다. 라틴어와 영어에서 luna는 달입니다. lunatic은 정신이상자, 미친 사람을 말하는데, 이는 라틴어 lunaticus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lunaticus는 달의 영향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고대인들은 달의 영향을 받으면 사람이 이상해진다고 믿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낮의 해와 밤의 달에게서조차 우리를 지켜주시는 분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7. 주님께서 너를 모든 재난에서 지켜 주시며, 네 생명을 지켜 주실 것이다.
8. 주님께서는, 네가 나갈 때나 들어올 때나, 이제부터 영원까지 지켜 주실 것이다.
모든 재난에서 지켜주시며 ; ‘아무런 재난도 당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모든 재난에서 지켜 주신다.’라고 표현한 것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신앙인은 모든 어려움을 요령 있게 피해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그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내는 사람입니다. ‘모든 재난에도 불구하고’의 신앙입니다.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승리하는 것이 신앙인입니다. 비 사이로 막가라는 농담이 있었지요. 너무 날씬해서 비를 피해 다닌다는 것이지요. 비 사이로 막가처럼 모든 비를 피하는 것이 신앙이 아닙니다. 피할 수 없는 비를 맞을지언정 쉽게 무너지지 않는 신앙이 기독교신앙입니다.
네가 나갈 때나 들어올 때나, 이제부터 영원까지 ; “이제부터 영원까지”라는 이 표현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의 지평을 넓게 바라보고, 그 인생을 전체로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을 때, 우리 인생은 담대해지고, 더욱 여유로우며,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3. 나의 도움 어디서 오나?
오늘은 예루살렘 성전을 순례하던 구약시대의 신앙선배들의 노래를 묵상하였습니다. 이 노래에 나타난 신앙을 함께 느낌으로 이 땅에서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하늘샘교회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시편 121편 찬양 하시겠습니다.